# 207
새로운 단장 (4)
새로운 단장을 정하기 위한 대장전.
대결 장소는 레드 라인 기사단의 훈련장으로 정해졌다.
R팀 대장과 B팀 대장이 블루로즈단 단장 자리를 놓고 대전을 한다는 소식이 나울 전역에 퍼졌다.
덕분에 훈련장은 나와 리오나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로인 대장! 힘내!”
“파이팅입니다, 리오나 대장님!”
서로 각자 밀고 있는 대장의 이름을 외치면서 열띤 응원을 펼쳤다.
사실 여기 있는 모두가 다 이 대전의 결과를 알고 있었다.
내가 이길 것이다.
나는 칠흑과 대결을 펼쳐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리오나는 다르다.
리오나도 많이 노력을 하긴 했지만, 아직 그녀의 실력은 제나드조차 뛰어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리오나와 대전을 가지고 싶어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번 보고 싶었어.’
한동안 리오나와 함께 임무를 수행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리오나가 얼마나 강해져 있을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졌다.
리오나가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파악해 둬야, 내가 블루로즈단 단장 자리를 꿰차게 되었을 때 리오나와 B팀을 운영하기가 편해질 테니 말이다.
리오나는 연습용으로 제작된 레이피어 한 자루와 단검 두 자리를 골랐다.
두 자루의 단검은 허리춤에 꽂아 뒀다.
그러고는 나에게 레이피어 끝을 겨누는 리오나.
“준비 다 됐어?”
“물론.”
내가 고른 건 너클이었다.
어차피 난 무기 다루는 데에는 소질이 없다.
연습하면 실력은 나아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델리피나 전기》의 흐름이 5권 초반부에 들어섰는데 여유롭게 검술 따위를 배우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고수해 왔던 방식을 그대로 추구하면 된다.
나는 휴즈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싸움이라는 건 ‘힘’만 있다고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기교가 필요하다.
기술적인 면에서 봤을 때에는 분명 리오나가 나보다 앞설 것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다수의 실전 경험을 통해, 그리고 라크스 공작과의 잦은 대련을 통해 자신만의 검술을 완성시켰으니까.
반면, 나는 벼락치기 형식으로 싸움을 배웠다.
내가 리오나에 비해서 기교가 부족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지닌 힘은 이 차이를 메꾸고도 남을 정도다.
힘과 기술의 대결.
단판 승부로 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심판은 나와 리오나의 공통된 의견에 따라 드레인이 보기로 했다.
“두 사람 다 준비됐지?”
나와 리오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드레인은 손에 쥐고 있던 있던 청색 깃발을 위로 크게 치켜들었다.
드레인의 신호와 함께 나와 리오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리오나는 내가 레이피어의 사정권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찌르기 공격을 감행했다.
노리는 부분은 나의 왼쪽 허벅지였다.
‘다리를 공략해서 내 움직임을 묶어 두겠다는 심산이군.’
휴즈에게 나름 빡세게 가르침을 받아 와서 그런지 상대방이 어느 부분을 노리는지만 봐도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나는 몸을 옆으로 빼면서 리오나의 공격을 흘렸다.
과거의 나였더라면 용신단의 능력 중 하나인 ‘용의 비늘’ 능력을 믿고 그냥 리오나의 공격을 받아 냈을 것이다.
용의 비늘은 물리 방어력, 마법 저항력을 크게 상승시켜 주는 패시브 스킬이다.
웬만한 무기로는 내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다.
하물며 연습용 레이피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도 웬만하면 용신단의 능력으로 리오나를 상대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배워 왔던 것들로만 승부를 보고 싶었다.
리오나의 성장을 확인하는 게 주 목적이지만, 더불어 나도 얼마나 성장했는지 이 대결을 통해 확인하고 싶거든.
나는 리오나의 공격을 흘리자마자 반격을 시도했다.
라크스 공작이 주로 애용하는 패턴이다.
그래서일까, 리오나는 내가 바로 반격해 올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거리를 벌리면서 나에게 반격의 기회를 허용해 주지 않았다.
리오나는 나를 보면서 옅은 미소를 보였다.
“저번에 비하면 싸움 실력이 엄청 늘였네.”
“사람은 죽을 뻔한 위기를 몇 차례 겪다 보면 강해지는 법이거든.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맞아.”
리오나는 결코 약하지 않다.
그저 넘사벽인 존재가 주변에 너무 많을 뿐.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나다.
리오나는 그 사이에 자세를 바꿨다.
언제든지 앞으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그런 자세였다.
이번에는 내가 선공을 가져가기로 했다.
리오나가 나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레이피어를 이용한 긴 공격 범위다.
나는 이 이점을 없애기로 했다.
스탭을 통해 리오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리오나는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 싶어 했다.
하나 나는 리오나를 끝까지 따라갈 기세로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오른 주먹을 내지르며 리오나의 측면을 노렸다.
힘을 조절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펀치를 날리면, 리오나는 즉사할 테니까.
리오나는 레이피어의 날을 세워 내 공격을 받아쳐 냈다.
그녀는 내 공격을 막아 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레이피어의 날에 금이 갔다.
리오나는 박살 나기 일보 직전인 레이피어를 버리더니 단검 두 자루를 꺼내 들었다.
그러더니 그중 하나를 번개같이 내게 투척했다.
노리는 곳은 나의 머리였다.
그러나.
‘쉽게 당해 줄 생각은 없지!’
나는 왼손을 휘둘러 단검을 쳐 냈다.
이제 리오나가 가진 무기라고는 단검 하나뿐이다.
리오나는 단검으로 나를 견제해 보려 했지만 그 단검조차 얼마 안 가 내 주먹과 정면충돌 하더니, 날에 금이 가고 말았다.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이제 리오나가 가진 무기는 더 이상 없다.
다시 한번 거리를 좁힌 나는 리오나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크게 내질렀다.
진짜로 때릴 생각은 없었다.
바로 앞에서 공격을 멈출 것이다.
그때, 나는 리오나의 눈을 바라봤다.
휴즈가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눈을 보면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일 때가 있다.
지금처럼.
리오나는 끝까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리오나의 옷소매에서 숨겨진 단검 하나가 튀어나왔다!
‘어느 틈에……!’
단검이 두 개가 아니라 세 개였다.
리오나는 이걸 최후의 최후까지 감추고 있었다.
단검은 정확히 나의 목을 노리며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단검은 내 목에 닿자마자 허무하게 부서졌다.
용의 비늘 패시브 능력 때문이었다.
나는 의도대로 리오나의 얼굴 바로 앞에서 공격을 멈췄다.
잠시 후.
드레인이 승자를 선언했다.
“로인 대장의 승리!”
“우와아아아!”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쁨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나는 영 석연치 않았다.
용신단의 능력 없이 승리를 따내겠다는 내 목표는 무용지물로 돌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리오나는 오히려 나를 칭찬했다.
“실력 많이 늘었네. 이제는 내가 닿을 수 없는 수준까지 멀리 가 버린 거 같아.”
“만약 내가 능력을 발동시키지 않았더라면 오히려 내가 졌을지도 몰라. 이겨도 영 이긴 기분이 안 드네.”
“무슨 소리야? 그 능력 또한 네 실력의 일부인데.”
리오나는 나와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녀의 말이 옳다.
용신단이 너무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기 능력 또한 내 힘이다.
리오나의 얘기를 들으니 이런 나를 상대로 일발 역전을 노렸던 그녀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단검, 언제 챙긴 거야?”
“연습용 무기 수령할 때. 일부러 너한테 ‘나는 단검 두 자루만 챙겼다.’고 믿게끔 하려고 두 개만 보여 줬던 거야. 내 무기가 다 떨어져서 네가 승리를 확신했을 때, 그때를 노리지 못한다면 너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
역시, 전략적인 면에선 리오나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대전 준비에서부터 나는 리오나의 작전에 넘어간 것이었다.
장미(Rose)에는 숨겨진 가시가 존재하는 법.
나는 마지막에 리오나가 숨긴 이 ‘가시’의 존재를 망각하고 말았다.
리오나의 놀라운 능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띠링! 인물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리오나의 종합능력이 SS랭크로 변경되었습니다.
처음 나와 만났을 때 확인했던 리오나의 종합 능력 랭크는 B였다.
그러더니 기어코 SS랭크를 달성하고 말았다.
‘정말로 대단한 여자야.’
한편으론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 * *
대결을 통해 승리를 거머쥐게 된 나는 동시에 단장의 자리까지 얻게 되었다.
대전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단장 취임식이 바로 거행되었다.
취임식이라고 해 봤자 거창한 건 없었다.
제나드는 치유소에서 움직일 수 없는 몸이고, 첸버도 거동이 불편했다.
S팀 용병들도 대부분은 부상 치료 단계였기에 취임식은 약식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드레인이 몸이 불편한 첸버를 대신해 나에게 블루로즈단 단장을 상징하는 배지를 오른쪽 가슴에 달아줬다.
파란 장미를 형상화해서 디자인한 배지였다.
오직 블루로즈단 단장만이 가질 수 있는 명예로운 아이템이다.
드레인은 내게 손짓했다.
“로인 대장…… 아니, 로인 단장. 와서 단원들에게 한마디 해 줘.”
따로 준비한 대본은 없었다.
뭐라고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너무 길게 끌면 지루할 거 같기도 해서 짧게 끝내기로 했다.
“끝나고 취임 기념으로 밥이나 살 테니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갑시다.”
“오오오!”
“역시 새 단장님이셔!”
맛있는 음식만큼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취임식을 마친 나는 리오나, 드레인, 첸버와 함께 제나드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블루로즈단 간부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직을 개편할까 합니다만.”
“개편? 어느 방향으로 할 텐가?”
첸버가 내게 물었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블루로즈단 개편안이 있었다.
“우선 S팀과 R팀, B팀. 이렇게 흩어져 있는 3개의 팀 체제를 없앨 겁니다. 팀 개념 대신 소대 단위로 쪼개서 블루로즈단을 운영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지금의 R팀 체제를 블루로즈단 전체에 적용시키겠다는 거로군.”
“예.”
예전에 첸버에게 S팀과 B팀, R팀, 이렇게 팀 단위로 용병들을 나눈 이유가 뭔지 물어봤었다.
어느 팀이 약체고, 어느 팀이 강팀이고 하는 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일 텐데 말이다.
첸버는 오히려 이런 현상을 노렸다고 했다.
‘내가 속한 팀이 저 팀보다는 강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인식이 들게 만들어 팀들 간의 경쟁력을 고취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들었다.
경쟁을 통한 실력 향상.
이것이 초기 블루로즈단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칠흑이라는 거대한 적이 등장한 이상, 굳이 우리끼리 경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3팀 체제를 없애고 블루로즈단을 하나로 통합하기로 했다.
제나드와 첸버, 그리고 리오나는 내 말에 동의했다.
동의라고 해야 할까.
첸버와 리오나, 제나드가 순차적으로 각각 본인들의 생각을 들려줬다.
“새로운 단장의 말이니 따르는 수밖에.”
“단장이 하자는 대로 해야지.”
“……알아서 해라.”
동의가 아니라 그냥 나한테 전적으로 맡기겠다는 느낌이 강했다.
내가 정하면 이들은 내 뒤를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음, 단장이 되니까 확실히 좋네.
굳이 굽신거리면서 양해를 구할 필요도 없고…….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