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06화 (206/240)

# 206

새로운 단장 (3)

마일한테서 마지막으로 보고를 받은 후에 나는 집에 혼자 남아 생각에 잠겼다.

내가 없는 동안, 정말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다.

특히 레이샤르의 실종 건이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줬다.

칠흑에게 당한 것인지, 아니면 배신인지……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었다.

‘이 이야기 흐름대로라면, 5권 초반부는 금방 넘어가겠어.’

문제의 중반부에 들어서게 된다.

5권 중반부에 라스는 동료에 의해 암살당하게 된다.

지금으로선 레이샤르가 배신자일 확률이 매우 크다.

레이샤르 말고 수상쩍은 행동을 보이는 등장인물이 아직까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찔리는 구석이 있으니까 잠적했을지도 모른다.

‘머리 아프네.’

카오스 필드 2단계에 있는 것도 아닌데 머리가 굉장히 아파 왔다.

생각이 많아져서였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잠’이다.

‘일단 자고 생각해 보자.’

자고 나면 이 두통이 조금은 덜하겠지.

* * *

눈을 뜬 나는 바깥을 보자마자 눈을 의심했다.

“왜 아직도 낮이지?”

엄청 길게 잔 거 같은데, 밖은 여전히 낮이었다.

내가 잠을 잔 지 1~2시간밖에 안 흘렀나?

일단 바깥으로 나갔다.

마침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던 에나와 길거리에서 마주쳤다.

“어머, 대장님.”

“안녕, 에나. 어디 가?”

“집에 먹을 게 떨어져서 장 보고 있던 중이었어요. 그나저나 대장님, 정말 피곤하셨나 봐요.”

“내가?”

“네. 집에서 이틀을 꼬박 잠만 자고 있었잖아요?”

“내가 이틀이나 잤다고?”

새우잠을 잔 게 아니었다.

지나칠 정도로 푹 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안 깨운 거야?”

“라그너 씨가 깨울까 말까 고민했는데, 너무 곤히 자는 대장님의 모습을 보니까 깨울 생각이 없어졌대요. 안 그래도 카오스 필드에서 고생도 많이 하고 오셨는데 푹 쉬게 해 주자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더라고요.”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 안 써 줘도 되는데.

아무튼 라그너의 배려 덕분에 나는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잠만 자다가 일어나게 되었다.

어쩐지, 몸이 너무 가볍다 했다.

그래도 잠이 좋긴 좋은 모양인가 보다.

자고 일어나니까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내가 이틀 동안 잠에 빠진 사이에 나울에 새로운 방문자들이 있었다.

블루로즈단 마크가 새겨진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는 용병들이었다.

‘저 마크…… S팀 건데?’

블루로즈단의 핵심 세력이라 할 수 있는 S팀 용병들이 여긴 어쩐 일로?

나는 이들을 부른 기억이 없었다.

나울까지 굳이 올 이유는 없을 터.

‘S팀이 있다는 건, 제나드와 첸버도 나울에 왔다는 뜻이 아닐까?’

그러면 이해가 된다.

나울에는 실력 좋은 치유사들이 많이 배치되어 있다.

R팀 용병들과 레드 라인 기사단의 멤버들이 부 당할 때를 대비해, 나는 치유소에도 많은 투자를 해 왔다.

여기에 더해 차원 이동 마법 도중 사고를 당한 연구원들도 의료 혜택을 보게끔 해 줬다.

로그 상단과 블루로즈단 R팀, 레드 라인 기사단, 그리고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는 자들이라면 무상으로 치유소를 이용할 수 있다.

S팀이 이곳에 왔다는 건, 파견 나갔던 파이스도 나울로 다시 돌아왔다는 것을 뜻했다.

치유소로 향했다.

내 예상대로 파이스가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라, 대장님!”

파이스는 내 모습을 보더니 반가운 기색을 드러냈다.

“살아 돌아오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 이렇게 직접 제 눈으로 대장님의 모습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요. 모처럼 끊었던 술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기쁩니다.”

“술을 끊었다고? 네가?”

“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뻥치지 마. 네가 술을 어떻게 끊냐?”

차라리 칠흑이 개과천선했다는 말을 믿겠다.

그러나 파이스는 내 앞에서 당당히 금주를 자랑했다.

“확실히 끊었습니다.”

“끊은 지 며칠째인데.”

“1일째요.”

“……믿었던 내가 바보지.”

애초에 믿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단장은 여기에 있어?”

파이스에게 제나드의 행방을 물었다.

“예. 다른 곳에서 계속 치료하고 있었는데 역시 나울의 치유소보다 시설 좋은 곳은 찾아보기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나울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잘했어. 상태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라스 씨에 비교하자면 정말 멀쩡한 편이에요. 2주 정도 푹 쉬면 다시 싸우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로 회복될 겁니다.”

“다행이네. 첸버도 괜찮지?”

“예. 부상이 심각한 건 단장밖에 없었으니까요.”

사실은 그보다 더 심한 부상자들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치료 도중에 상처가 심해 결국 삶을 다했다.

제나드도 먼저 간 S팀 용병들의 뒤따를 뻔했지만, 파이스가 그를 기적적으로 구해 냈다고 보고를 받았다.

나는 파이스의 어깨를 토닥여 줬다.

“고생했어. 치료 끝나면 내가 확실하게 휴가 보장해 줄 테니까 당분간만 좀 고생해 줘.”

“네, 알겠습니다.”

나는 제나드와 첸버가 입원해 있다는 병실에 들렀다.

제나드는 온몸에 붕대가 칭칭 감긴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반면, 첸버는 오른쪽 손과 왼쪽 다리에 각각 깁스만 한 채였다.

첸버도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지만, 제나드에 비하면 굉장히 멀쩡한 축에 속했다.

첸버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했다.

“로인 대장! 역시 살아 있었군!”

“오랜만입니다, 첸버 씨, 그리고 단장.”

“…….”

제나드는 말을 아꼈다.

굳이 무리해서 내 말에 대답해 줄 필요는 없었다.

그걸 바란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의자를 끌어와 자리를 잡은 후에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인 첸버에게 그간의 행적을 물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루크라는 녀석이 이끄는 군대에 당했어. 방심한 결과지. 명백히 나의 실수야.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서 아까운 용병들을 다수 잃고 말았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네.”

자책하는 첸버를 말없이 응시하던 제나드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나드는 첸버의 탓이 아니라고 말을 하고 싶은가 보다.

첸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나마 단장이 있었기에 궤멸은 간신히 면할 수 있었지. 단장이 없었더라면……. 나뿐만 아니라 S팀 용병들 전체가 추종자들에게 목숨을 잃었을 걸세.”

“‘만약에’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우선은 ‘살아남았다.’라는 결과가 중요하니까요.”

루크는 데르킨 백작이 데리고 있는 엘리트 행동대장이다.

나도 루크를 확실하게 제압한 적이 아직까진 없었다.

그 루크를 상대로 생환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첸버의 말대로 제나드의 활약이 컸다고 들었다.

역시 단장은 단장이다.

첸버가 이야기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틀었다.

“조만간 리오나 대장이 이곳으로 올 걸세. 로인 대장하고 나란히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리오나 대장이 오거든 두 사람이 같이 이곳에 다시 한번 들러 줄 수 있겠나?”

“어렵지 않은 일이긴 합니다만…… 미리 알려 줄 수는 없습니까?”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야 하는 이야기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중요한 이야기인 모양인가 보다.

리오나가 여기까지 오는 데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때까지 당분간 참기로 했다.

* * *

2일 후.

리오나가 이끄는 B팀 용병들이 나울에 입성했다.

S팀에 B팀까지, 블루로즈단이 모두 집결했다.

이런 모습은 실로 오랜만에 본다.

좋은 일로 모인 건 아닐 것이다.

첸버는 나와 리오나가 한자리에 있을 때 이야기해 주겠다고 했지만, 웃으면서 들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건 진작 눈치챘다.

그건 리오나도 마찬가지였다.

“첸버 씨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벌써부터 걱정돼.”

“나도 마찬가지야.”

설마 ‘금일부로 블루로즈단을 해산한다.’라는 말은 하지 않겠지?

일단 리오나와 함께 가 보기로 했다.

첸버는 우리 두 사람을 보면서 힘없이 웃었다.

그 사이에 제나드는 말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회복한 듯했다.

그래도 말을 막 하고 다닐 만큼 회복한 건 아닌 듯했다.

첸버가 제나드의 의도까지 취합해서 대표로 우리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새로운 단장을 뽑으려고 하네.”

“……!”

블루로즈단의 새로운 단장을 뽑는다?

첸버가 나와 리오나, 두 사람이 함께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첸버와 제나드는 단장 후보로 우리 둘을 지목했다.

“리오나 대장은 블루로즈단이 창립된 지 얼마 안 된 시기부터 지금까지 쭉 B팀을 이끌어 오면서 많은 공적을 남겼지. 그리고 블루로즈단 내에서도 리오나 대장을 따르는 사람이 적지 않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과 남성 못지않은 카리스마, 그리고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닌 여장부, 리오나.

“로인 대장은 우리 블루로즈단이 델리피나 대륙 전체에 명성을 널리 떨치게 한 장본인이지. 활약상만 따지고 본다면 제나드 단장 이상의 활약을 보여 주었네. 그뿐만 아니라 최약체였던 R팀을 S팀 못지않은 전력을 가진 조직으로 만들었고.”

막상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까 좀 부끄러운데?

그래도 기분은 좋다.

첸버는 나와 리오나를 번갈아 바라봤다.

“나와 제나드 단장이 보기에는 두 사람 다 차기 단장으로서 이미 그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하네. 둘 중 누가 단장이 되어도 손색이 없어. 우리를 대신해서 블루로즈단을 잘 이끌어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지.”

지극히 당연한 말이죠.

그래서 누구한테 단장의 자리를 줄 건데요?

“우선 대장들의 의사를 확인하고 싶네만…… 단장 후보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나? 만약 한 사람만 후보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한다면, 다른 한 사람에게 단장 자리를 줄 걸세.”

일단 나는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블루로즈단 단장 자리는 오랫동안 내가 목표로 삼았던 자리다.

칠흑과 추종자들이 벌벌 떨 정도로 강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하지만 그렇다고 리오나의 생각을 강제로 접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리오나.”

나는 리오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네가 단장직에 욕심이 있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괜히 나 배려해 준답시고 단장 자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해 주진 않았으면 해.”

“…….”

리오나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런 뒤, 첸버에게 물었다.

“만약 후보자가 둘이라면, 어떤 식으로 새로운 단장을 정하나요?”

블루로즈단은 여태껏 제나드 말고 다른 사람을 단장 자리에 앉혀 본 적이 없었다.

그 방식도 아직 정해지진 않았을 터.

회의를 통해서 그때 상황에 맞는 방식을 정한다는 규정은 있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규정에 나와 있는 그 ‘회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첸버도 나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자네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하면 되네.”

“…….”

“…….”

나는 리오나와 시선을 교환했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었다.

때마침 우리는 공통적으로 떠오른 단어를 동시에 언급했다.

“그야 물론…….”

“……대전 아닐까요?”

누가 더 강한지 자웅을 겨루면 된다.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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