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05화 (205/240)

# 205

새로운 단장 (2)

다음으로 레드 라인 기사단 측의 보고를 받기로 했다.

“엇흠!”

게럴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보고 준비를 마쳤다.

그러면서 무의식적으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난 이런 자리 영 어색한데…….”

저 녀석은 너무 솔직해서 탈이다, 이제 어엿한 부단장이 된 줄 알았는데.

게럴은 역시 게럴이었다.

“그냥 레드 라인이 1년간 보여 온 행보를 압축해서 나한테 설명해 주기만 하면 돼. 간단하잖아?”

“우리가 한 거라고 해 봤자 추종자 녀석들과 미친 듯이 싸우고 뭐, 이런 거밖에 없지……. 아, 그러고 보니 특이한 녀석이 왔던 적이 있어.”

“특이한 녀석?”

“그, 뭐라고 했더라? 소년 하나가 너를 찾아왔던 적이 있는데 이름이…….”

잘 안 떠오르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말끝을 흐리는 게럴이었다.

나는 드레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선배는 알아요?”

“알 리가 있나? 우리 쪽 말고 레드 라인 기사단 쪽으로 간 거 같은데? 나는 모르는 일이야.”

“게럴. 그 소년이라는 녀석, 지금도 여기에 있어?”

“아니. 이틀 전에 떠났어. 너 오면 나중에 알려 달라고 하더라.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데.”

도대체 어떤 소년일까?

내가 아는 소년이라고 해 봤자 최근에……는 아니지, 이미 1년이라는 기간이 지나 버렸으니까.

어쨌든 한 명 있긴 했다.

“케프리?”

“어, 맞아! 그 녀석이야!”

“걔가 왜 나를 찾아왔대?”

“그건 만나서 직접 들어 봐야 할 거 같은데? 나한테는 이야기 안 해 주더라고.”

케프리한테는 나중에 따로 찾아가 보든가 해야겠다.

레드 라인 기사단 측의 보고는 이것으로 모두 끝났다.

이다음.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 관한 보고가 이어졌다.

“연구 진행은 얼마쯤 진행되고 있어?”

나는 세올라에게 연구 성과 단계에 대해 물었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라스를 누가 죽였는지 암살자의 정체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한번 차원 이동을 해서 델리피나 전기 5권을 읽어야 한다.

세올라는 잠시 말을 아꼈다.

그런 뒤, 수치를 언급했다.

“한 56퍼센트 정도 진행되었어요.”

“무엇을 기준으로 56퍼센트라고 말하는 거야?”

“완벽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요.”

“뭐? 완벽?”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방금 ‘완벽한 차원 이동’이라고 말한 거 같은데.

세올라는 고개를 두세 차례 끄덕였다.

“네, 이번에는 시간 제한 같은 리스크 없는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단계를 연구하고 있어요. 영구적인 차원 이동이라고 보시면 되요.”

처음에 56퍼센트 진행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영구적인 차원 이동이라고 한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정말이지, 그거?”

“네, 제 안경을 걸게요.”

“너무 싸구려를 거는 거 아니야? 이럴 때에는 목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거 같은데.”

“저에게 있어서 이 뿔테 안경은 제 목숨과도 같은 거예요. 어쩌면 목숨 이상일지도 모르죠.”

“안경에 깊은 사연이라도 담겨 있나 보네.”

“사연은 없는데요?”

“…….”

오랜만이다, 이 감정.

세올라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도 어느 새 정신이 4차원으로 향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곤 한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차원 이동이 아닐까……는 개뿔.

여하튼 간부 회의를 마친 후에 나는 용병과 기사들, 그리고 로그 상단의 상인과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을 찾았다.

내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것을 이들에게 직접 확인시켜 주기 위한 심산이었다.

가장 격렬하게 반응을 보였던 건 R팀 용병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르시아가 심했다.

“로인 니이임! 살아계셨군요!”

거대한 덩치가 나에게 꽉 달라붙었다.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라고 가만히 있었더니 놓아 줄 생각을 하질 않았다.

“숨 막혀, 이 녀석아. 좀 떨어져!”

그제야 가르시아는 정신을 차리고 나와 거리를 두었다.

덩치에 맞지 않게 훌쩍이는 모습이 참…… 묘하게 귀엽다.

이런, 내가 정신이 나갔나 보다.

반드와 에나, 베라, 기타 R팀 간부들에게 각각 생존 신고를 했다.

파이스는 파견 나간 상태였기에 서로 얼굴을 볼 순 없었다.

용병들과 일일이 대면을 하는 사이에 낯선 얼굴이 나를 반겼다.

“살아 있었구나, 로인.”

“카이딘 씨? 왜 여기 계십니까?”

라스 일행과 같이 돌아다녀야 할 카이딘이 나울에 있다니, 별일이었다.

카이딘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왼팔을 내밀었다.

붕대로 칭칭 감겨져 있었다.

“부상당하신 겁니까?”

“어, 루크라는 녀석과 싸우다가 도중에 좀 다쳤어. 근데 칠흑의 힘을 정통으로 맞았거든. 근데 상처가 쉽게 낫질 않더라. 그래서 결국 나울까지 오게 된 거야. 여기에 실력 있는 치유가 있었으니까, 그 친구한테 도움 좀 받으려고 왔지.”

“파이스는 지금 파견 나가 있다고 하던데요.”

“파견 가기 전에 치료를 받았지. 지금은 요양 중이야.”

“그렇군요. 아무튼 크게 안 다치셔서 다행입니다.”

카이딘은 라스의 중요한 전력인데 다치면 큰일이다.

바우너 그랑트를 마지막으로 나를 걱정하고 그리워 했던 사람들과 인사를 모두 마쳤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 집으로 향했다.

아직 만나 보지 않은 중요한 인물이 한 명 더 존재했다.

놈은 때마침 내 집에 멋대로 들어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살아 계셨군요, 로인 님.”

마일이 나에게 예를 갖췄다.

나는 마일의 이런 반응이 오히려 의아했다.

“알고 있던 거 아니었어?”

나는 마일이 내 생존 여부를 알고 있을 줄 알았다.

왜냐?

베르투의 대현자니까.

정보력은 델리피나 대륙에서 최고라 칠 수 있는 조직 아닌가.

그런데 마일은 마치 나의 생존 여부를 몰랐다는 것처럼 반응을 했다.

마일은 쓴웃음을 지었다.

“예, 베르투의 정보력이 완전히 닿지 않는 영역이 딱 두 군데 있습니다. 드래곤의 세계, 그리고 카오스 필드. 이렇게 두 군데죠. 아, 정정하겠습니다. 칠흑도 포함시켜야겠군요.”

“그럼 넌 내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어?”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역시 살아 계셨군요.’라고요. 저는 로인 님이라면 아무리 카오스 필드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악착같이 살아서 돌아오실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악착같이?”

날 칭찬하는 건지, 아니면 날 은근슬쩍 디스하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질 않았다.

아무튼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까…… 결과만 좋으면 됐지, 뭐.

나는 마일과 서로 마주 본 채로 소파에 앉았다.

“나한테 보고할 게 1년 치는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안 그래?”

“예, 내용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나마 다른 분들이 일단 큰 맥락들은 이미 로인 님에게 다 설명을 드려서 천만다행이더군요.”

내가 마일에게 들을 정보들은 딱 정해져 있다.

“내가 보고 받지 않은 것들, 전부 다 알려 줘.”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정보다.

***

나와 휴즈가 행방불명된 1년 동안, 칠흑 역시 델리피나 대륙에서 자취를 감췄다고 했다.

카오스 필드 때문이리라.

“칠흑이 사라진 요 1년 동안, 데르킨 백작이 칠흑을 대신해서 이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기세가 어마어마했죠. 데르킨 백작이 추종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탓에 귀족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습니다. 대륙 정계며 뭐며 할 것 없이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이었죠.”

“그럴 만도 하지.”

데르킨 백작은 그동안 추종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자기 자신을 영웅으로 추대받게끔 이미지 관리에 힘을 써 왔다.

그런 그가 알고 보니 칠흑의 심복이었던 것이다.

데르킨 백작을 믿었던 사람들이 받았을 충격은 결코 적지 않았을 터.

“근데 왜 데르킨 백작이 갑자기 스스로 정체를 밝힌 거야?”

나는 이게 궁금했다.

“도중에 사건이 있었습니다.”

“무슨 사건인데?”

“데르킨 백작이 연설하던 곳에 케프리가 난입했습니다. 칠흑의 냄새를 맡고 데르킨 백작이 있는 곳까지 찾아간 거죠.”

여기서 또 케프리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데르킨 백작은 전투 도중에 방심을 했던 모양인지 드레드에게 크게 물어뜯기는 중상을 당했습니다. 칠흑의 조각들의 방어 본능에 의함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칠흑의 힘이 발휘된 탓에 결국 정체가 탄로 나게 되어 버렸습니다.”

“설마 케프리가 여기서 이런 공을 세울 줄은 몰랐네.”

데르킨 백작의 가면을 벗겨 내고 추악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게 만든 것이다.

안 그래도 한번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만나게 되면 칭찬이라도 해 줘야겠군.

엉덩이라도 토닥거려 줘야겠어.

“다른 건? 이제 없어?”

“큰 사건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또 뭔데?”

1년 비웠다고 이렇게 크나큰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져 있을 줄은 몰랐다.

나 없으면 델리피나 대륙 전체가 정상적으로 안 돌아가는구먼, 안 돌아가.

마일의 입에서 흘러나온 정보는 내가 들었던 그 어떠한 보고보다도 심각한 내용이었다.

“레이샤르가 종적을 감췄습니다.”

“……뭐?”

아니, 레이샤르가 왜?

“언제부터?”

“로인 님이 실종된 지 1달 후에 인간계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췄습니다. 목격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아직까지도 종적을 감춘 상태인 거 같습니다.”

“숨어야 할 이유가 있나?”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다.

설마 내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레이샤르가 나를 찾기 위해서 카오스 필드로 향한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카오스 필드에서 레이샤르와 만났어야 했지만 그런 적도 없었다.

그리고 레이샤르는 베르투 못지않은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정보력이라고 해야 하나, 통찰력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건 둘째 치고.

그런 레이샤르가 나의 복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미 나울을 중심으로 내 복귀 소식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레이샤르는 내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설마!’

안 좋은 생각이 들었다.

‘데르킨 백작에게 당한 건가?’

어쩌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벨라시오닉이라는 훌륭한 전례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칠흑의 조각 따위로 드래곤을 잠식시킬 수는 없어. 드래곤은 조각이 아니라 칠흑이 직접 삼켜야만 잠식이 가능하니까.’

이 정보는 나울로 오면서 벨라시오닉에게 들었던 것이다.

드래곤을 잠식시키려면 칠흑의 조각으로는 안 된다.

칠흑 본인이 나서야 한다.

벨라시오닉도 그런 형태로 잠식되었다고 했다.

이거 큰일인데.

레이샤르는 우리에게 있어서 크나큰 전력이다.

만약 정말로 칠흑의 손아귀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제2의 라바인 전투가 발생할 수도 있어!’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 중 하나다.

내가 알고 있는 5권 정보에 의하면, 레이샤르가 잠식당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책의 정보와 현재 스토리 진행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미래는 책이 가리키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칠흑에게 잠식된 게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설마.

‘배신인가?’

아군인 척하면서 여태껏 거짓 모습을 연기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라스를 죽인 범인이 자연스럽게 레이샤르로 연결되는군.’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경우의 수로 남겨 둬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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