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04화 (204/240)

# 204

새로운 단장 (1)

휴즈가 테이른과 같이 다니겠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다닌다면 테이른이 허무하게 칠흑에게 잡아먹히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나는 먼저 두 사람을 보내 주게 되었다.

‘나도 슬슬 가야지.’

나울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

내 머리 위에서 작은 날개를 펄럭거리며 날고 있는 반투명한 미니 드래곤, 벨라시오닉을 바라봤다.

벨라시오닉은 오히려 내 시선에 갸우뚱하는 반응을 보였다.

-왜 그러지?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요.”

나는 벨라시오닉의 혼을 가리켰다.

“한번 소환하면, 계속 이렇게 소환된 상태로 남아 있어야 합니까?”

-아니, 딱히 그럴 필요는 없다만.

“그러면 죄송한데 제가 소환할 때만 나타나 주시면 안 될까요? 굉장히 신경이 쓰이거든요.”

-야박하군. 간만에 바깥세상 구경 좀 하겠다는데.

“아까는 졸리다면서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칠흑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늘어지게 하품하는 모습이.

그러나 벨라시오닉은 변명을 들려줬다.

-그때는 막 소환된 찰나였으니까. 너도 한번 생각해 봐라, 긴 잠에서 깨어났을 때 눈 뜨자마자 막 생기가 돌고 그러진 않잖아? 몸이 나른하고, 아직도 꿈나라행 기차에 머무는 것 같고. 뭐, 그런 기분이 드는 게 보통이지.

“제가 보기엔 벨라시오닉, 당신한테 붙은 호칭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어떻게?”

“보물을 삼키는 드래곤이 아니라 변명과 핑계의 드래곤으로.”

-어허! 변명과 핑계라니! 엄연히 사실인 것을!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

아무튼 나는 벨라시오닉의 혼을 다시 되돌려 보냈다.

일단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칠흑에게 잠식을 당하고 말고의 유무를 떠나서 벨라시오닉은 한때 델리피나 대륙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 뻔했던 존재였다.

그런 벨라시오닉을 사람들 앞에 드러낸다면, 얼마나 큰 혼란이 야기될까.

이게 걱정돼서 나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베라시오닉의 혼을 소환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카오스 필드 건은 대충 마무리가 된 거 같으니까 이제 정말로 나울로 돌아가 볼까.

“가면 시간이 얼마나 흘러 있을까?”

이게 가장 궁금했다.

* * *

카오스 필드를 떠난 뒤에 나는 곧바로 나울로 향했다.

나울을 본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뭐야, 이건……!”

잠깐 못 본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울은 나 없는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맞이한 상태였다.

보고 들은 적도 없는 건물들이 마구 세워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시 주변에 뭔가 잡다한 시설들도 많이 들어선 상태였다.

입구를 지키던 경비병이 나를 가로막았다.

“거기 너! 신분 검사도 안 하고 멋대로 이곳에 들어갈 생각을 해? 정신 나갔구먼!”

경비병은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오히려 황당한 건 나였다.

나울에서 나를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뭐지, 이 녀석은?

처음 보는 얼굴이긴 한데, 그래도 나울을 먹여 살리다시피 한 나는 딱 보자마자 알아차려야지.

선임이 교육을 똑바로 안 시킨 거 같은데?

나는 경비병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모르세요?”

“니가 누군데.”

거름뱅이 같은 차림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외형이 크게 변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름을 말해야 하나.

“로인인데요, 로인.”

“뭐? 로인 님이라고? 웃기는 소리하고 있네! 내가 너처럼 자기가 로인 님이라고 거짓말 치는 놈을 몇 명이나 본 줄 알아? 자그마치 열다섯 명이나 봤어! 로인 님이 1년째 행방불명 중이라고 그걸 막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데. 내 눈은 못 속이지!”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요?”

“응? 뭐가?”

“방금 했던 말, 다시 해 봐요.”

“자기가 로인 님이라고 주장하는 놈, 열다섯 명이나 봤다고.”

“아니, 그다음이요.”

“내 눈은 못 속인다는 거?”

“너무 갔어요. 이전 거 있잖아요.”

“……로인 님이 1년째 행방불명 중이라고…….”

이건 또 무슨 상황이냐? 내가 1년이나 사라져 있었어?

‘카오스 필드 때문인가!’

심지어 다른 세계로 차원 이동까지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날짜 개념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건 나울로 오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눈치를 채긴 했는데, 설마 1년이나 흘렀을 줄은 몰랐다.

멍하니 있는 나를 향해 경비병은 언성을 높였다.

“어쨌든 좋은 말로 할 때 썩 꺼지는 게 좋을 거다.”

“…….”

“어쭈,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해? 이 녀석 봐라!”

경비병은 손가락으로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렸다.

소란이 벌어진 것을 확인한 모양인지 또 다른 경비병 한 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글쎄 이 녀석이 자기를 ‘로인 님’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혼쭐을 좀 내 주려고 합니다.”

“또 사기꾼이야? 가만…….”

선임 경비병은 나를 유심히 바라봤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이자는 나를 알아보는 모양인가 보군.

나는 씨익 웃었다.

그와 동시에 선임 경비병의 이마에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로로로로로로로로인 님 아니십니까!”

너무 놀란 나머지 말까지 더듬었다.

그렇게나 놀랄 일인가?

하긴. 1년째 행방불명이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으니까 당황할 만도 하겠지.

선임병의 반응 때문인지,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후임병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악마와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선임병에게 이렇게 말해 줬다.

“후임 교육, 다시 시켜야겠어.”

* * *

로인이 돌아왔다!

이 소식이 나울 전역에 퍼지자마자 사람들이 내가 있는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내가 나울에서 나름 유명인이긴 한데.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으니 좀 부담스럽긴 했다.

“잠시만요! 좀 나와 보세요!”

수많은 인파를 해치고 내 앞까지 온 남자, 라그너가 나를 보자마자 감격의 포옹을 시전했다.

“로인 님! 무사하셨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미안,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워 버렸네. 설마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 줄은 몰랐어.”

“살아 계신 것만 하더라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입니까! 안 그래도 해 드릴 말이 너무 많습니다. 일단…… 뭐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내 외형을 쭉 훑어보던 라그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배가 고프긴 하다.

그리고 좀 씻고 싶고.

“내가 자리 비운 동안, 내 집 관리는 잘해 뒀겠지?”

“물론입니다!”

역시 라그너다.

일단 집으로 향한 뒤에 샤워를 하고 새로이 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에 나는 블루로즈단 R팀 사무실로 간부라 부를 만한 이들을 소집했다.

라그너, 드레인, 게럴, 그리고…….

“프렌이 아니라 세올라가 왔네?”

별일이었다.

이런 미팅 자리가 있으면, 세올라는 본인이 아닌 프렌을 항상 내보내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올라가 직접 왔다.

“로인 씨가 살아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으니까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나저나 무사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그동안 카오스 필드에 계속 머물렀던 거예요? 아, 카오스 필드는 어때요? 정말로 시공간의 개념이 뒤죽박죽인가요? 직접 체험해 보니 어떤 기분이었나요?”

“……정말로 내가 걱정되어서 온 거 맞아?”

“그럼요!”

내가 보기에는 나의 카오스 필드 체험기를 직접 듣고 싶어서 일부러 여기까지 온 거 같은데.

뭐, 상관없겠지.

페른이 왔든, 세올라가 왔든 둘 중 한 명만 이 미팅에 참가하면 된다.

두 사람 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를 대표하는 인재들이니까.

드레인과 게럴은 내가 카오스 필드에서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수색대를 꾸려 적어도 내 시체라도 수습할 생각이었다고 했는데, 마침 내가 짜잔! 하고 등장해서 놀랐다는 말을 들려줬다.

그러나 내가 듣고 싶은 건 따로 있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설명해 줘.”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건, 대충 계산해 봐도 델리피나 전기 5권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것과 같은 뜻일 것이다.

이야기가 어디쯤 진행되었는지. 나는 보고를 들으면서 내가 아는 책 정보와 대조를 해 보고 싶었다.

“우선은 라그너부터 먼저 보고해 봐.”

“예, 로인 님.”

그동안 로그 상단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리고 국제 경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등에 대한 보고를 들려줬다.

이 중에서 관심 있게 들을 만한 건 바로 웨일 상단에 대한 소식이었다.

“3달 전에 칠흑의 추종자들과 노마국이 장기간 해상전을 벌였습니다. 그 일로 인해 웨일 상단이 타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웨일 상단이 잠시 주춤한 그래서 저희 로그 상단이 웨일 상단의 전체 매출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제 로그 상단이 세계 제일의 상단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웨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래도 난 2등보다 1등이 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나저나 칠흑과 노마국이 붙다니, 의외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다음 이어지는 드레인의 보고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칠흑의 세력이 델리피나 대륙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어. 문제는 칠흑에 가담한 국가들이 몇몇 있다는 거지. 덕분에 우리 블루로즈단하고 여기 레드 라인 기사단은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추종자들과 잦은 전투를 벌였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피해 상황은요?”

“없다시피 해. 사실 우리보다 S팀이 더 문제야.”

“S팀이요?”

단장인 제나드가 이끄는 엘리트 팀이 문제라니, 무슨 문제인지조차 예상되지 않았다.

드레인의 입에서 한숨이 연달아 새어나왔다.

“저번 전투가 꽤 지독했거든. S팀은 거의 궤멸 직전까지 갔어. 단장과 첸버도 부상이 심각하고. 그것 때문에 지금 파이스가 파견 나가 있는 상태야.”

“그 정도입니까?”

“상황이 많이 안 좋아.”

휴즈 정도의 실력자는 아니지만, 제나드도 한가락하는 실력자다.

그런 자가 이끄는 S팀이 거의 궤멸 수준까지 가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B팀은요?”

S팀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리오나가 이끄는 B팀의 상황이 궁금해졌다.

설마 B팀도 S팀처럼 안 좋은 상황인가?

걱정이 앞섰다.

“B팀은 괜찮아. S팀만 심각한 상황이고, 우리 R팀이나 B팀 전력은 멀쩡해.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괜찮다니 다행이네요.”

리오나가 열심히 B팀을 복구시켰는데, 그 수고가 다시 물거품으로 돌아간다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러면 내가 라크스 공작을 볼 면목이 없어질 것이다.

듣자하니 라크스 공작은 라스 일행과 같이 이곳저곳 종횡무진하면서 칠흑의 세력을 상대로 계속 항쟁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레드 라인 기사단의 명성은 높아졌다.

내가 카오스 필드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에 레드 라인은 어느 새 5기 멤버까지 뽑아서 전력을 키워 갔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계속 활약을 펼친 결과, 레드 라인은 칠흑 세력의 천적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없어도 다들 알아서 잘하는구나.’

믿음직스러운 이들의 활약에 나는 절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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