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202화 (202/240)

# 202

마지막 각성 (1)

휴즈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다 보면 카인을 만날 거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카인을 만났다.

하지만 동시에 칠흑이라는 최악의 적과 마주치고 말았다.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을 쫓는 건 나와 카인뿐만이 아니다. 칠흑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점은 칠흑 혼자만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는 권왕 휴즈와 최초로 칠흑에게 잠식되었던 자, 테이른이 나란히 서 있었다.

어쩌면…….

‘승산이 있을지도 몰라!’

오히려 여기서 칠흑을 없앤다!

위기를 기회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테이른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틈을 봐서 도망치는 게 좋을 거다.”

“여기서 칠흑을 쓰러뜨리는 게 더 좋은 방법 아닌가?”

나는 테이른의 말에 반론을 가했다.

그러나 테이르는 거세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칠흑을 쓰러뜨릴 수 없다. 여기에 라스 일행이 추가로 합류해 다 덤벼도 칠흑을 쓰러뜨릴 순 없어.”

아니, 그럼 칠흑은 도대체 어떻게 쓰러뜨릴 수 있단 말인가.

주인공도 최종 보스를 쓰러뜨릴 수 없다면, 이 세계의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

그 와중에 칠흑의 몸이 검은 연기로 변했다.

검은 연기는 우리를 사방으로 애워싸기 시작했다.

테이른이 다급하게 외쳤다.

“놈의 영역에서 벗어나야 해!”

휴즈가 바로 자세를 취했다.

“걱정 마라, 친구! 내가 돌파구를 만들어 줄 테니까!”

휴즈는 오른 주먹을 강하게 내질렀다.

주먹에서 발생한 권풍(拳風)이 검은 연기를 일시적으로 몰아냈다.

빈틈이 생기자마자 우리는 빠르게 검은 연기의 영역에서 탈출하기로 했다.

그러나 칠흑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놓칠 순 없지!”

상반신을 재구축한 칠흑은 입을 쩍 벌리면서 우리를 그대로 삼키려 했다.

나는 드래곤 클로를 휘둘러 칠흑의 턱을 잘라 냈다.

그러나 녀석의 입 안에서 또 다른 입이 튀어나왔다.

‘무슨 에×리언도 아니고!’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다시 한번 드래곤 클로로 입을 베어 냈지만, 베어 내고 또 베어 내도 끊임없이 입이 형성되었다.

검은 연기들이 다수의 입으로 변했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칠흑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직전이었다.

테이른이 나섰다.

“꺼져라, 칠흑!”

테이른의 오른 팔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주변의 연기를 몰아냈다.

테이른의 연기와 칠흑의 연기는 미묘하게 색깔이 달랐다.

칠흑이 빛조차 삼킬 정도로 어둡다면, 테이른의 연기는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글레드와 칠흑의 힘이 뒤섞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힘은 물과 기름 같은 존재다.

서로 시너지를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에게 독이 되는 힘이다.

테이른은 여태껏 이 모순을 혼자서 견뎌 왔다.

테이른의 회색의 연기가 검은 연기를 몰아냈다.

그 사이에 휴즈가 반격을 시도했다.

“너한테도 검은 심장이 있나?”

휴즈의 물음에 칠흑은 싱긋 웃었다.

“글쎄. 한번 찾아내 보시지.”

“그게 네 소원이라면야!”

휴즈의 주먹이 칠흑의 가슴을 관통했다.

심장이 있어야 할 위치에 손을 꽂아 넣은 휴즈였으나…….

손끝에는 아무것도 들려 나오지 않았다.

“……!”

휴즈는 뒤늦게 손을 빼내려 했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점점 휴즈를 물들여 가고 있었다.

칠흑은 휴즈를 지그시 바라봤다.

“진실의 눈을 가진 자인가? 진실을 볼 줄 알기에 더더욱 인간의 어두운 단면을 잘 들여다볼 수 있지. 어떤가, 보기만 했던 어둠에 직접 물드는 기분이?”

“최악이군!”

휴즈는 거칠게 자신의 손을 뽑아냈다.

검은 연기가 묻어 나왔지만, 휴즈는 기합만으로 부정한 것들을 떨쳐 냈다.

역시 권왕이라는 칭호는 아무나 가지는 게 아니었다.

순수한 무력만으로 저런 강함을 보일 줄이야.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칠흑은 오히려 휴즈의 기백을 보면서 입맛을 다셨다.

“삼킬 가치가 있는 인간이로군.”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칠흑의 포식 본능만 커져 갔다.

휴즈가 시간을 버는 동안, 나는 용언 마법을 발동시키려 했다.

그러나.

같은 용족 속성을 지닌 상대방에게는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망할! 생각해보니 용신단 레벨을 힘들게 올려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거 아니야?’

갑자기 회의감이 들었다.

이제 믿을 건 하나뿐이다.

‘벨라시오닉의 혼을 각성시키면 뭐라도 있겠지!’

게임에서 보면 만렙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있지 않은가.

경험치, 아이템 드랍율 10퍼센트 상승 버프를 받을 수 있다든지, 최고 레벨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다든지…….

혜택은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더 이상 삼킬 아이템이 없어!’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내 표정을 읽은 모양인지 테이른이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거 받아라! 그리고 삼켜! 어서!”

벨라시오닉의 보물들이었다.

총 3개.

이 정도면 만렙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환약으로 바꿨다.

아이템을 삼키기 직전, 칠흑이 내 쪽을 돌아봤다.

“뭔가 수작을 펼치려 하는 모양인가 보군. 곱게 놔두진 않는다!”

칠흑의 등에서 검은 연기가 펼쳐졌다.

검은 연기는 늑대의 머리들로 변했다.

어림잡아도 십여 마리는 넘어 보였다.

검은 늑대들은 나를 향해 돌진해 왔다.

날카로운 이빨을 보니 조금만 스쳐도 치명상이 될 듯했다.

검은 늑대들이 내게 달려들기 직전, 테이른은 회색 연기로 장막을 펼쳤다.

투웅! 퉁! 터엉!

회색 연기의 장막에 가로막혀 검은 늑대들은 머리가 튕겨 나갔다.

그러나 검은 늑대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장막을 향해 머리를 부딪쳤다.

테이른의 몸이 점점 뒤로 밀려나갔다.

“빨리 삼켜! 얼마 못 버텨!”

재촉하지 않아도 그러려고 했다고!

나는 아이템들을 빠르게 삼켰다.

포만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레벨 업 메시지가…….

-용신단의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최고 레벨 달성까지 1퍼센트의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이런 빌어먹을!

하나도 아니고 자그마치 3개나 삼켰는데, 아슬아슬하게 만렙 달성에 실패하고 말았다!

“테이른! 벨라시오닉의 보물, 또 없어?”

“방금 준 게 전부였…… 큭!”

테이른의 입에서 침음이 새어 나왔다.

어느새 검은 늑대들의 숫자가 급격히 불어나 있었다.

휴즈가 칠흑의 관심을 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그 혼자 칠흑을 전담 마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쩌지?

위기 상황이다.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칠흑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베드엔딩이야!’

어떻게든 베드엔딩을 피하기 위해 미친 듯이 노력해 왔는데, 여기서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생각해 보자!

분명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야!

머리를 굴려 보려던 찰나에, 테이른이 나를 향해 경고했다.

“조심해라! 늑대 한 마리가 새어 나갔어!”

내 쪽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검은 늑대.

놈은 나를 사정없이 물어뜯으려 했다.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왼팔을 들어 올렸다.

깡!

소매 속에 감춰 놓았던 레이샤르의 팔목 보호대로 검은 늑대의 물어뜯기를 막아 냈다.

그리고 즉시 오른손으로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켜 검은 늑대의 목을 베어 냈다.

목적 달성에 실패한 늑대는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찢겨져 나간 왼팔 옷소매를 내려다봤다.

“……그래, 이거였어!”

아직 삼킬 만한 아이템이 남아 있었다.

레이샤르가 준 팔목 보호대다!

-아이템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삼켜야지!”

두 말하면 잔소리!

레이샤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은 우선 살고 봐야 한다.

환약으로 외형을 바꾼 뒤에 나는 지체 없이 레이샤르의 팔목 보호대를 삼켰다.

비록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은 아니지만, 레이샤르가 준 팔목 보호대 아이템의 등급은 벨라시오닉의 보물과 같은 레전드 등급이다.

이거라면…….

‘경험치 1퍼센트는 채울 수 있겠지!’

꿀꺽!

목을 타고 흐르는 감각.

그리고 잠시 후.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10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최대치에 달했습니다.

-‘벨라시오닉의 혼’ 스킬 각성 조건에 도달했습니다.

-각성하시겠습니까?

굳이 이걸 물어볼 필요가 있을까?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나는 힘을 주며 대답했다.

“물론!”

갑자기 내 주변에 강한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기를 가진 바람이었다.

바람은 곧 화기(火氣)로 변했다.

이윽고 내 머리 위로 거대한 형상 하나가 강림했다.

카오스 필드의 하늘을 뒤덮을 것 같은 거대한 생명체.

쩌렁쩌렁 울리는 포효 한 번에 검은 늑대들은 부리나케 뒤로 물러섰다.

테이른은 새로이 등장한 형상을 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벨라시오닉……!”

* * *

드디어 벨라시오닉의 혼을 각성시켰다.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니지, 엄밀히 말하면 실물은 아니었다.

벨라시오닉은 이미 죽었으니까.

단지 그의 영혼만 남았을 뿐.

벨라시오닉의 혼은 나를 내려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거 같은데…….

-후아암!

“…….”

말이 아니었다.

그냥 하품하는 거였다.

벨라시오닉은 손으로 기다란 목을 벅벅 긁어 댔다.

그러더니 반쯤 감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졸린데 나중에 등장하면 안 될까?

이보세요, 드래곤 양반.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아?

정말로 어렵게 각성했는데, 이대로 얌전히 퇴장하려고?

모처럼 등장했으니 드래곤으로서의 위엄을 보여 줘야 할 거 아니야!

아니! 하품 좀 그만하고!

내가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이미지였다.

위엄 넘치는 드래곤의 모습을 예상했건만, 허무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반면 테이른은 이럴 줄 알았다면서 작게 웃었다.

“그 나태한 태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군.”

-음? 테이른인가? 살아 있었군.

“어찌어찌.”

둘은 잘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오랜만의 재회를 방해하고 싶진 않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저기요. 벨라시오닉 씨?”

-뭐지? 용신단의 주인이여.

“좀 도와주면 안 되겠습니까? 저기 눈앞에 당신을 죽인 범인이 멀쩡히 버티고 있는데요.”

-저 녀석이 칠흑이었군. 난 그냥 입이 수십 개 달린 괴생명체라고 생각했는데.

벨라시오닉은 뒤늦게 칠흑의 존재를 인지했다.

한편, 칠흑도 벨라시오닉의 혼의 존재를 이제야 확인한 듯했다.

“용의 영혼이라! 먹을 게 또 늘었군!”

벨라시오닉의 영혼조차 먹을 생각으로 달려드는 칠흑.

무지막지한 녀석이다.

첫 등장부터 어이없는 모습을 보인 벨라시오닉이었으나.

할 땐 하는 드래곤이었다.

-찌그러져 있어라.

벨라시오닉의 한 마디에 칠흑이 몸이 순식간에 ‘납작쿵’이 되어 버렸다.

용언 마법이 통했다고?

어째서?

내가 묻기도 전에 벨라시오닉은 알아서 나에게 답을 들려줬다.

-100레벨에 도달함으로 인해 용신단은 이제 ‘내 힘’이 아닌 ‘너의 힘’이 되었다. 그러니 상성이니 뭐니 하는 문제가 사라지게 되는 거지.

처음에는 단순히 벨라시오닉의 능력을 빌리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나.

그러나 각성을 통해 나는 용신단의 힘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그 말은 스킬에 용족 속성이 지워졌다는 뜻이다.

즉.

‘이제부터 내 능력이 칠흑에게 통한다는 소리군!’

칠흑, 넌 이제 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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