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98화 (198/240)

# 198

불균형한 차원, 카오스 필드 (4)

차원 몬스터들의 습격이 어느 정도 잦아들 무렵, 발끝에 뭔가가 걸렸다.

차원 몬스터의 시체가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딱딱했다.

“뭐야, 이건?”

검 하나가 쑥 들려 나왔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중 하나인 ‘에이션트 소드’였다.

나는 그것을 환약으로 만들어 꿀꺽 삼켰다.

-용신단의 경험치가 상승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레벨 업까지는 턱도 없었다.

한편.

주변을 모두 정리한 휴즈는 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살아 있었군.”

“스승님의 제자가 쉽게 죽을 순 없죠. 후후.”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나저나 이거, 아까 놈들 쓰러뜨리다가 우연히 찾아낸 물건이다.”

휴즈의 손에 들려 있는 것 역시 벨라시오닉의 보물이었다.

카오스 필드 2레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아이템 2개를 손에 얻었다.

소득이 괜찮은데?

나쁘지 않다.

이 기세 그대로 쭉쭉 벨라시오닉의 보물들을 찾아냈으면 좋겠다만…….

그전에 잠깐.

“좀 쉬었다가 가죠.”

“허허, 요 녀석.”

휴즈는 나를 보면서 작게 웃었다.

시공간의 뒤틀림 속에서 무리하게 능력을 발휘하려고 하다 보니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힘들다, 힘들어.

이렇게 빡센 경험은 라바인 전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 * *

내가 잠시 쉬고 있는 동안, 휴즈는 근처를 돌아다니면서 2개의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더 더 찾아내서는 내게 건네줬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천만에. 어려울 때에는 서로 돕고 사는 게 좋은 거 아니냐.”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나저나 나에게 곧장 돌아온 것으로 보아선…….

“카인은 못 찾았나 보군요.”

“틀림없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없는 거 같더구나.”

“이런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 수도 없을 테니까요.”

“하긴, 그렇지.”

카인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으니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다시 한번 휴즈에게 카인에 대한 것을 물어보기로 했다.

“카인이 어째서 칠흑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지 스승님은 알고 계신다고 하셨죠?”

“정확히 말하자면…….”

휴즈는 뭔가를 망설이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알지. 하지만…….”

“아직 저한테 말해 줄 수 없다는 말씀이시죠?”

“잘 아는군.”

“저번에도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요.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 겁니까?”

휴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생각이 있었더라면, 진작 나에게 카인에 대한 것들을 말해 줬을 것이다.

카오스 필드에 들어오기 전까지 시간이 정말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휴즈는 나에게 카인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들려준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휴즈에게 강제로 카인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설령 내가 강하게 주장을 한다 하더라도 말해 줄 위인도 아니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휴즈는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카인, 그자의 운명도 참 딱하지…….”

어떤 의미로 이런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전후사정을 모르니까.

무거운 한숨만 계속 내쉬던 휴즈가 갑자기 내게 경고했다.

“숙여라!”

‘왜요?’라고 물어보기도 전에 나는 휴즈가 한 말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무언가.

그것은 그대로 벽에 쿵! 하고 처박혔다.

처음에는 뭔가 싶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벽에 박힌 물건이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확인을 했다.

“이게 뭡니까?”

처음 보는 쇳덩이었다.

휴즈도 난생처음 본다는 말을 흘렸다.

“다른 차원의 물건인가 보군.”

“예? 그런 물건이 어떻게 여기에…….”

“잊었나, 여긴 시공간이 뒤틀린 곳이라는 사실을.”

“다른 세계의 물건이 날아오기도 합니까?”

“가끔. 이것도 보거라.”

휴즈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다른 물건을 꺼내 내게 보여 줬다.

디자인이 SF 영화에서 볼 법하게 생긴 그런 형태였다.

광선총?

아니, 애초에 총기류가 맞긴 할까?

버튼을 눌러 봤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휴즈는 이런 내 행동을 보더니 주의를 줬다.

“조심해라.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는데 막 눌러 대면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까.”

“그렇군요. 주의하겠습니다, 스승님.”

불균형한 차원의 틈에 휩쓸러 날아온 물건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물건도 보였다.

‘이건 설마……?’

틀림없다.

스마트폰이다!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혹시나 했는데 배터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액정 화면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베터리 양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25퍼센트 정도.

휴즈는 내가 스마트폰을 다루는 모습을 매우 관심 있게 지켜봤다.

“사용할 줄 알고 건드는 건가?”

“예, 제가 있던 세계의 물건입니다.”

“호오, 그래?”

휴즈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나저나 스마트폰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이렇게 보니 반갑기도 하고, 또 신기하게도 했다.

보니까 스마트폰 말고 다른 물건도 있었다.

키보드였다.

키보드와 편집자는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인데.

여기서 키보드를 보니까 갑자기 원고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만 따로 내 주머니 속에 넣어 뒀다.

어차피 베터리가 거의 없어서 얼마 사용 못하겠지만 말이다.

키보드는 그냥 버려두기로 했다.

‘아니지, 가만있어 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키보드를 삼키면 어떻게 될까?’

키보드는 델리피나 대륙의 아이템이 아니었기에 등급이라든지 아이템 정보가 표기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키보드를 환약으로 변환시켜 봤다.

그대로 꿀꺽 삼켰다.

하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용신단의 경험치에 변동이 없습니다.

-경험치를 올리려면 고등급의 아이템을 삼켜야 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직접 결과를 보고 나니까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스마트폰이라도 삼켜 볼까 했으나 키보드와 같은 결과만 반복될 거 같아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나의 실망하는 표정을 옆에서 직접 목격한 휴즈는 내게 물었다.

“이세계의 아이템은 삼켜 봤자 효과가 없나 보군.”

“방금 삼킨 물건이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흔한 물건이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키보드라는 물건이었나? 그건 구하기 쉬운 물건이었군.”

“예, 싼 물건은 아니지만, 도시라면 어디서든 접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입니다.”

희귀도로 따지면 매우 낮은 편이다.

스마트폰도 희귀도로 치면 낮은 등급에 속할지 모르지만 가격으로 따지면 키보드보다는 비싼 축에 속한다.

그래도 스마트폰까지 삼킬 생각은 없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싶을 때.

나는 휴즈에게 이동을 제안했다.

“슬슬 움직여도 될 거 같습…….”

말을 이어 가려던 찰나에 갑자기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무언가가 이 주변 일대를 강력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뭐, 뭐야……!”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 기둥을 붙잡았다.

휴즈도 아무거나 붙잡고 끌려가지 않도록 간신히 버티기 시작했다.

“스승님! 이건 또 뭡니까!”

“난들 알겠냐!”

격하게 외치는 휴즈.

하긴 휴즈도 이번을 포함해 딱 두 번 이곳에 와 봤을 뿐이다.

그것도 오랜 시간을 머물렀던 게 아니었다.

휴즈의 몸이 공중에 떠올랐다.

점점 빨아들이는 세기가 강해지고 있었다.

결국 휴즈와 나는 동시에 카오스 필드 한가운데를 향해 강제로 끌어당겨졌다.

도중에 나는 빨간색 팻말이 꽂혀 있는 걸 목격했다.

‘설마……?’

저 팻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카오스 필드 3레벨!’

순식간에 3레벨 지역까지 끌려오게 된 나와 휴즈.

갑자기 엄청난 두통이 우리를 엄습했다.

시야가 차단되었다.

보이는 거라고는 카오스 필드의 보라색 하늘과 별빛 같은 불빛들뿐.

이 현상, 이 감각, 그리고 이 느낌…… 매우 익숙했다.

‘차원 이동을 할 때 느꼈던 것들이야……!’

나는 본능적으로 내가 차원의 틈으로 빨려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너무 늦었다.

뭔가 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 * *

“……([email protected]#)*#(@……!”

근처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가 회복되기 전에 미칠 듯한 갈증이 먼저 나를 덮쳤다.

“무, 물을…….”

나는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로 애타게 물을 찾았다.

근처에서 다수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후, 차가운 액체가 내 목을 적시기 시작했다.

물이다!

나는 미친 듯이 물을 목 안으로 넘겼다.

갈증이 조금씩 사라져갔다.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을 때, 마침 시야도 회복되었다.

“푸하!”

겨우 살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기력을 회복해갈 즈음, 옆에서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물었다.

“#@)@#)[email protected]%$)^?”

뭐라고 하는 거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에게 무언가를 물어보고 있었다.

“아아아.”

일단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이제야 목소리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차원 이동 중에서 가장 최악이었다.

그보다 나, 살아 있는 거 맞지?

몸을 더듬어 봤다.

팔, 다리 등등.

다 제대로 붙어 있다.

나는 천천히 옆을 돌아 봤다.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여자 한 명과 남자 두 명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복장과 들고 있는 물건이 영 신경 쓰인다.

복장은 SF 영화에 나올 법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들고 있는 건, 분명 총이다.

‘이건 또 뭐야?’

내가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아니, 그럴 리 없다.

온 몸에 촉각이 그대로 느껴진다.

즉, 이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여기가…… 어디입니까?”

나는 이들에게 물었다.

그러나 들려온 대답은 이상한 외계어뿐이었다.

여전히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주변을 빠르게 둘러 봤다.

낯선 건물들이 보였다.

디자인이 굉장히 특이했다.

그리고 근처에 공중을 떠다니는 차량 같은 것도 보였다.

순간 난 직감했다.

‘다른 차원으로 휩쓸렸구나!’

카오스 필드 3레벨의 위험이 바로 이것인 듯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차원으로 강제로 이동된다는 것.

그래서 카오스 필드 3레벨에는 얼씬도 안 하려고 했으나, 차원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사이에 우리도 모르게 3레벨 근처까지 가 버렸던 모양인가 보다.

‘스승님은 어디 있지?’

휴즈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들과 대화가 통해야 하는데.

어쩐다?

《델리피나 전기》 소설 속에서는 언어 문제를 겪었던 적은 없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언어의 장벽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럴 때에는 뭐다?

전 세계…… 아니, 전 차원에 통하는 공통 언어가 있지 않은가!

‘보디랭귀지!’

나는 손짓, 발짓을 동원해 가며 물었다.

“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본 적 없나요?”

“…….”

“…….”

여성과 두 남자는 서로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여성이 내게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것으로 보였다.

내 뜻이 통한 걸까? 역시 보디랭귀지는 만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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