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
불균형한 차원, 카오스 필드 (3)
첫 번째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얻고 나서 바로 근처에서 두 번째 아이템을 손에 거머쥐었다.
‘태양의 방패’라는 이름의 아이템이었다.
이것도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로, 등급은 최고 단계인 레전드였다.
이것으로 두 번째 아이템을 꿀꺽 삼켰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96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이제 만렙까지 4레벨이 남았다.
아이템 2개를 삼키면 대략 1레벨씩 오르니까 이제 대략 8개만 삼키면 되나?
‘아니지. 오를수록 요구되는 경험치가 많아지니까 최소 8개라고 보는 편이 좋겠지.’
그보다 확실히 카오스 필드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이었다.
예전 같으면 한 장소에 보물이 2~3개가 발견되는 것만으로도 꽤 놀랐을 텐데.
그러나 카오스 필드에서는 오히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너무 잘 발견되어서 탈이었다.
조금 걸어 다녔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벌써 5개째를 발견했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97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좋아, 레벨링은 순조로워!’
이대로만 쭉쭉 가면 될 것 같다.
* * *
벨라시오닉이 보물을 찾아다니다 보니 어느 새 용신단의 레벨은 99레벨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3개를 삼켜도, 4개를 삼켜도 용신단은 100레벨에 도달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경험치 바를 확인했다.
‘세상에. 아직도 50퍼센트가 안 됐어?’
5개째를 삼켰는데도 50퍼센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98레벨까지 올리는 데에는 솔직히 많은 힘이 들지 않았다.
문제는 99레벨부터였다.
이 구간이 본게임이나 다를 바 없었다.
계속 돌아다니다 보니 점차 지쳐 가고 있었다.
카오스 필드라서 그런지 체력이 더더욱 빨리 닳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휴즈가 마침 나에게 휴식을 제안했다.
“좀 쉬었다 가지.”
“그러는 게 좋겠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해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사방은 보라색 하늘에 별빛 같은 것만 수두룩하게 비춰지고 있는 풍경이었다.
이게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하늘은 난생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오스 필드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는 하는데…….
처음에는 솔직히 말해서 좀 무서웠다.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자연의 낯선 변화에서 느껴지는 경외심 같은 거 말이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좀 익숙해졌다.
우리는 가져온 식량을 꺼냈다.
도중에 몇 개의 음식에서 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못 먹겠군.”
휴즈는 과감하게 음식을 버렸다.
3일 전에 보급한 음식이 상할 정도였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흐른 건지 감도 안 잡혔다.
신체 변화 주기도 불규칙했다.
방금 소변을 봤는데도 불구하고 소변이 또 마렵다든지, 밥을 먹었는데도 금방 배가 고파진다든지, 급격하게 잠이 쏟아진다든지…… 신체 변화가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1레벨이 이 정도인데 2레벨은 얼마나 감당하기 힘들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
가급적이면 2레벨은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그럴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보니까 1레벨 구역에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군.”
“그러게 말입니다.”
휴즈의 말대로였다.
1레벨 근처를 거의 다 돌아다녔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들어오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없었다.
이제 레벨 하나만 더 올리면 만렙인데…….
휴즈는 안쪽을 가리켰다.
“2레벨에 한 번 도전해 볼 텐가?”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지가 없네요.”
만렙을 위해 가는 수밖에 없다.
* * *
2레벨 경계 구역에는 주황색 팻말이 박혀 있었다.
저 팻말이 꽂힌 곳을 넘어서면 카오스 필드 2레벨에 들어서게 된다.
휴즈는 내게 다시 한번 물었다.
“각오는 굳혔겠지?”
“예.”
“그럼 가 보도록 하지.”
휴즈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뒤따라 나도 2레벨 구역 안으로 들어섰다.
아주 놀랍게도 2레벨에 발을 들이밀자마자 엄청난 현기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카오스 필드 1레벨은 시간의 뒤틀림뿐이지만, 2레벨은 시간의 뒤틀림과 함께 공간의 뒤틀림이 시작된다.
‘시공간이 뒤틀린다는 느낌이 이런 거로구나’ 하는 느낌을 온몸으로 받았다.
뭐랄까.
‘차원 이동 마법을 경험하는 기분이야!’
차이점이 있다면, 갈증은 아직까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앞으로 가고 있는 건지, 뒤로 가고 있는 건지, 또는 여기가 오른쪽이 맞는지, 아니면 왼쪽인지 구분할 수도 없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구토를 했다.
“우웩……!”
방금 먹었던 내용물을 전부 토해 버리고 말았다.
휴즈는 나에게 다가와 내 등을 토닥여 줬다.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거다. 조금이라도 정신 줄을 놓는 순간, 시공간의 뒤틀림에 잡혀 먹힐지도 모르니까.”
“잡혀 먹힌다고요? 그냥 추상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거죠?”
“아니.”
휴즈는 앞을…… 아니, 솔직히 앞인지 뒤인지 옆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어느 한 방향을 가리켰다.
“물리적인 의미로 한 말이다.”
휴즈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상어와 비슷하게 생긴 거대 몬스터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피부색과 덩치의 차이일까?
하필이면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틈에 몬스터의 습격이라니, 최악이다.
반면, 휴즈는 멀쩡하게 자세를 잡았다.
“물러서 있어라.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래도 스승님 혼자서 고생시킬 수는…….”
“카오스 필드 2레벨부터는 의리니 뭐니 이런 걸 생각하지 마라. 자기 자신의 생존을 우선으로 생각해. 싸울 상태가 아닌데도 체면치레하겠답시고 괜히 차원에 사는 몬스터들에게 덤볐다간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20년 전에 그런 식으로 많은 동료들을 이곳에서 잃었어.”
“…….”
이렇게까지 말하니 휴즈의 말에 안 따를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휴즈라면 믿을 만하다.
권왕이라 불리는 남자 아닌가.
차원 몬스터가 날아오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휴즈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먹을 내질렀다.
가볍게 내지른 주먹 한 방.
그러나 차원 몬스터의 미간에 정확히 꽂히니, 거대한 덩치가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겉으로 봤을 때에는 몬스터에게 생채기 하나 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일격이었지만 막상 들어가니 제대로 먹혀들었다.
하나 차원 몬스터는 끈질기게 우리를 노렸다.
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순간 이동 마법이라도 사용한 건가?”
내 말에 휴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이 아니다. 놈들은 차원과 차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놈들이다. 공간 이동 역시 마찬가지지.”
“그렇군요.”
순간 이동 마법이 아니라 그냥 공간 사이를 움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휴즈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언제, 어디서 달려들지 모르는 녀석을 상대로 휴즈는 침착했다.
괜히 권왕이라 불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 후, 휴즈는 내 쪽으로 걸어왔다.
“끝났습니까?”
“아니.”
휴즈는 정확히 내 머리 위쪽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꽈직!
뭔가 박살이 나는 효과음이 들렸다.
이후, 공간이 박살 났다.
쩌저저적!
공간에 균열이 발생했다.
균열 사이로 머리가 함몰된 차원 몬스터가 축 늘어진 채 바로 내 옆에 등장했다.
나는 놈이 살아 있는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놈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휴즈의 주먹을 단 두 번 맞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투는 끝나 있었다.
나는 휴즈를 올려다봤다.
“역시 스승님이십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카오스 필드 2레벨에 적응한다면 너도 나처럼 어렵지 않게 차원 몬스터를 상대하는 단계에 들어설 거다.”
“문제는 언제쯤 적응할지 모르겠다는 거지만요.”
나름 빠르게 적응을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몸은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난생처음 하는 경험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뱃멀미의 10배 정도라고 해야 하나.
용신단의 능력으로도 커버를 치기가 쉽지가 않다.
휴즈는 일단 나를 앉혔다.
그리고 말했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 봐라. 이건 정신력으로 버텨 내야 하는 거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어.”
자주 들었던 ‘노오오오오오력!’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뉘앙스의 충고였다.
하지만 지금은 휴즈의 말이 맞았다.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다져야 한다.
침착하자.
평정심을 잃으면, 정말로 끝이다!
눈을 감고 무아지경에 빠졌다.
정신을 집중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할 수 있다고, 해내야만 한다고 다짐을 굳혔다.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왔는가?
내가 해내지 못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입에서 무거운 한숨을 토해 냈다.
“후우……!”
천천히 눈을 떴다.
이 빌어먹을 카오스 필드의 풍경은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래도 아까에 비해선 훨씬 나아졌다.
휴즈는 나를 보면서 씨익 웃었다.
“좀 괜찮아졌나 보군.”
“예, 스승님이 해 주신 조언 덕분입니다.”
“조언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그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흡수해서 언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냐. 이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리고 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건 조언해 주는 자의 역할이 아닌 조언을 듣는 자의 역할이니까. 결국 네가 마음먹기 나름인 거다.”
휴즈는 내가 쉽게 일어날 수 있도록 부축해 줬다.
“몸을 천천히 움직여 봐라. 그리고 이 공간의 개념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라. 그러면 될 거다.”
“예, 스승님.”
확실히 아까에 비해서 많이 괜찮아졌다.
이 시공간의 뒤틀림에 익숙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마일이 건네준 두 번째 지도를 꺼내 들었다.
카오스 필드 1레벨에 비해서 2레벨은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야 나은 편이겠지.
“저쪽입니다.”
나는 휴즈에게 방향을 가리켰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여서 사실 저기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가만히 있어 봤자 아무런 득이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우리는 일단 움직이기로 했다.
이동하는 와중에 차원 몬스터라 불리는 놈들이 세 마리 정도 더 나타났다.
두 마리는 휴즈가, 나머지 한 마리는 내가 맡았다.
차원과 차원 사이를 헤엄치는 차원 몬스터가 입을 쩍 벌리면서 나에게 날아들었다.
나는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다.
“꺼져, 이 빌어먹을 녀석아!”
스윽!
수평 방향으로 드래곤 클로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내 공격은 허공을 갈랐다.
시공간이 뒤틀린 세계였기에 거리 감각도 없었다.
차원 몬스터는 내 공격을 유유히 피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싶더니, 바로 내 등 뒤에서 나타났다.
나는 피지컬로 이 위기 상황을 극복했다.
몸을 뒤로 돌리면서 차원 몬스터의 턱을 그대로 날려 버렸다.
뚝뚝 떨어지는 차원 몬스터의 피.
혈액 색깔조차 남달랐다.
파란색의 피가 굉장히 많은 이질감을 선사했다.
큰 부상을 입은 차원 몬스터는 무작정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은 차원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쉬웠다.
푸욱!
차원 몬스터의 머리를 관통하는 드래곤 클로.
“겨우 잡았네.”
처음으로 차원 몬스터를 잡아 본 소감은…….
……잠깐만, 구토 좀 더 하고.
우웨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