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
불균형한 차원, 카오스 필드 (2)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나와 휴즈는 이미 인연이라는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
서로 만나기로 한 것도 아닌데, 벌써 두 번째로 마주치게 되었다.
의심스러운 나머지 나는 휴즈에게 이런 질문도 했다.
“혹시 스승님께서는 저를 몰래 미행하신 겁니까?”
“내가? 왜?”
“아니요, 그냥…….”
이름하야 합리적 의심이라는 녀석이다.
그러나 휴즈는 강하게 부정했다.
“나를 할 일 없는 놈 취급하는군. 내가 아무리 할 짓이 없다 해도 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일을 왜 하겠나.”
“하긴, 그렇죠.”
나도 모르게 인정하고 말았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맥주 하나 마시겠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닐 텐데.’
이곳은 꽤나 변두리에 위치한 곳이다.
여기를 찾아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설마 스승님, 카오…….”
카오스 필드가 목적이냐고 물어보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가게 직원이 양 손 가득 묵직하게 맥주를 들고 우리 앞에 등장했다.
“손님! 주문하신 맥주 5잔 나왔습니다!”
“오! 고맙군!”
저 5잔의 맥주는 전부 휴즈의 것이다.
참고로 돈은 내가 지불했다.
휴즈는 맥주가 나오자마자 우선 한 잔을 들고 벌컥벌컥 마셔댔다.
“푸하! 시원하고 좋네! 맛도 있어! 완전 내 취향인데?”
질문할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뭐, 상관없으려나.
‘설마 스승님이 카오스 필드에 볼 일이 있을 리는 없고.’
그리고 휴즈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카인을 쫓는 것.
애초에 목적이 다르다, 그러니 목적지도 다를 터.
휴즈는 나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나한테 뭔가 말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아닙니다. 모처럼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으니 한 잔 하시죠, 스승님.”
“그럴까? 잘 마시마!”
스승과 제자의 술자리는 밤새도록 이어졌다.
* * *
오전 7시 반.
나는 일찌감치 도시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말도 다시 구했고, 식량도 충분히 보충했다.
‘이다음 마을이 마지막으로 들르는 마을이 되겠군.’
그다음부터는 카오스 필드까지 가는 데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각오를 단단히 해 둬야겠어.’
나울을 떠날 때부터 이미 충분히 해 뒀지만 말이다.
때마침 휴즈도 나와 비슷한 시간에 떠날 생각인지 말안장에 짐을 올려놓고 있었다.
“스승님도 이제 떠나시나 보군요.”
“그래, 어제 충분히 여기서 놀 만큼 놀았으니까 이제 다시 떠나야지.”
“원하시는 목표를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너도.”
그러고 보니 휴즈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물어보지 못했네.
뭐, 상관없겠지. 어차피 나랑 크게 관련 없…….
……을 텐데.
도시를 나온 이후부터 반나절이 넘도록 휴즈는 나와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기, 스승님?”
결국 나는 참다못해 물었다.
“혹시 카오스 필드로 가시는 겁니까?”
“응? 네가 그걸 어찌 아느냐?”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저도 카오스 필드로 가는 중이었거든요.”
“거긴 왜?”
“그곳에 아직 발굴되지 않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많이 묻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요. 그나저나 스승님이 카오스 필드로 가신다는 건…… 그곳에 카인이 있다는 뜻입니까?”
“내가 아는 정보에 의하면 그렇다.”
하긴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곳에 카인이 있을 확률이 매우 컸다.
카인도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아 해매는 듯한 행적을 많이 보였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곳에 카인을 봤다는 목격담을 심심치 않게 접해 왔었다.
이제 남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얼마 없다.
카오스 필드에 다량으로 묻혀 있다는 정보를 카인이 들었다면,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휴즈한테 어디로 가는지 진작 물어볼걸.
설마 목적지가 같을 줄은 몰랐네.
휴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너털웃음을 흘렸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군. 누가 보면 소설인 줄 알겠어.”
소설 맞는데요.
딴죽을 걸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나 혼자만 알고 있는 이 비밀을 떠벌리고 다녀 봤자 얻을 게 없을 거 같기 때문이었다.
* * *
카오스 필드로 향하기 전에 들릴 수 있는 마지막 마을, 블리즈.
델리피나 대륙 내에서도 거의 최서단에 위치한 마을답게 마을 규모는 굉장히 작았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었다.
이곳에서 마지막 보급을 마친 나는 휴즈와 함께 여관에 들려 식사 시간을 가졌다.
“스승님은 카오스 필드에 가 보신 적 있습니까?”
휴즈는 경험이 굉장히 많은 인물이다.
심지어 라바인 전투에서 대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나는 살아남느라 전전긍긍했지만 말이다.
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한 번. 젊었을 때의 호기심으로 가 본 적이 있지. 하지만 그날 이후로 카오스 필드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 아주 지독한 경험들뿐이었거든.”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 모양인지 휴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묻고 싶었으나, 괜히 안 좋은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말을 아꼈다.
카오스 필드가 어떤 곳인지 마일에게 여러 차례 설명을 들었다.
불균형한 차원이라고 불리는 만큼, 다수의 차원이 교차되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어딘지도 모를 차원에 휩쓸려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경고도 들었다.
반대로 운이 좋다면, 원래 내가 살던 차원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차원이 얼마나 많을지 감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카오스 필드의 존재를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를 따로 만들어 자체적으로 마법 개발에 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는 몰라도 이게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목숨이 걸린 일에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말이다.
휴즈는 나를 응시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때문이라 해도, 카오스 필드에 발을 들이기로 결심한 건 대단하군. 웬만한 사람들은 거들떠도 안 볼 텐데.”
실제로 벨레너의 13난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험가들조차도 유일하게 기피하는 난제가 바로 첫 번째 난제, 카오스 필드다.
솔직히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나는 잘 모른다.
휴즈처럼 내가 그곳에 직접 다녀와 본 것도 아니고, 그냥 말만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 본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들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거든요.”
“그렇군.”
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기왕 같이 가게 되었으니, 서로 돕고 도와 보도록 하지.”
“예, 스승님.”
권왕과 함께 간다고 하니, 두려움이 많이 사그라졌다.
하지만 카오스 필드는 이런 휴즈조차도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드는 무서운 장소다.
‘나도 각오를 해 두는 게 좋겠어.’
* * *
마지막 마을에서 보급을 마친 후에 나와 휴즈는 3일 밤낮을 계속 달리고 또 달렸다.
카오스 필드라는 지역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변화하는 환경이 눈에 확 띄었다.
“카오스 필드는 레벨이 나뉘지.”
휴즈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높은 레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가장 높은 레벨은 3레벨. 카오스 필드의 핵이라 불리는 지역이지. 3레벨 이전 구역이 2레벨. 그리고 1레벨. 1레벨부터는 시간의 관념이 사라진다. 시간의 무덤에 가 봤다고 했지?”
“예.”
“그곳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거다. 단, 시간의 무덤의 경우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일관성이 있지만, 카오스 필드는 시간이 랜덤으로 흘러간다는 차이점이 있지. 카오스 필드에서의 하루가 바깥에서의 2일이 될 수도 있고, 1시간이 될 수도 있다. 워낙 불규칙하게 변화하니 정확하게 시간을 계산하려고 하는 노력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헛수고가 될 테니까.”
음. 이럴 줄 알았더라면 15일에서 20일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될 거라는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휴즈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갔다.
“2레벨 구역부터는 시간뿐만이 아니라 공간이라는 개념이 비틀어지기 시작하지. 좌, 우, 위, 아래, 앞, 뒤 개념이 사라질 거야. 그때부터는 심한 멀미 증세가 밀려오니 조심하도록.”
“무시무시하군요. 3레벨은 그럼 어떤 곳입니까?”
카오스 필드의 핵이라 불리는 장소.
그러나 휴즈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3레벨은 직접 가 본 적이 없다. 그때 당시의 나는 2레벨이 한계였지.”
마일한테서도 3레벨에 관한 정보는 들을 수가 없었다.
3레벨까지 갔다가 무사히 살아 나온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딱 한 명 있다.
용병왕 벨레너.
오로지 그만이 3레벨이 어떤 곳인지 알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벨레너에게 난제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캐물어 볼걸.’
설마 내가 카오스 필드에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앞을 향해 나아가던 도중에 이상한 팻말을 발견했다.
노란색 팻말이었다.
“저게 뭡니까?”
나는 팻말을 가리키며 물었다.
“카오스 필드 1레벨 지역을 가리키는 표식이다. 저 팻말이 있는 곳을 넘어서면, 그때부터 1레벨 구역에 들어서게 되는 거지.”
여기서부터 시작인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반면 휴즈는 아직까지는 여유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긴장할 필요 없다. 나중에 가면 다 적응될 테니까.”
그래도 2레벨의 멀미 현상은 적응하기 쉽지 않을 거 같은데…….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다시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
천천히 1레벨에 발을 들여놓았다.
여기서부터 시간의 관념이 랜덤으로 흘러간다.
1레벨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넓었다.
나는 마일에게 받은 종이를 꺼냈다.
카오스 필드 1레벨 지역을 그려 놓은 약도였다.
휴즈는 내가 든 지도에 관심을 보였다.
“신기하군. 카오스 필드 지도는 구하기가 정말로 어려운 물건인데.”
“베르투에 아는 현자가 있어서요.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받은 물건입니다.”
“베르투라면 이해가 가는군.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는다고 했지?”
“예.”
“그러면 같이 돌아다녀 보자.”
“괜찮으십니까, 스승님?”
휴즈는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카오스 필드에 왔다.
그런데 나를 도와줘도 괜찮은지 궁금했다.
“어차피 카인, 그 친구도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노리고 이곳에 왔을 테니까. 보물의 흔적을 찾으러 다니다 보면 카인과 만날 수 있겠지.”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결국 나는 휴즈와 함께 이동을 개시했다.
첫 번째 보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반토의 건틀릿’이라는 이름의 아이템이었다.
레전드 등급 아이템임에도 불구하고 흙바닥에 그냥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시간의 흐름이 꽤 빨리 흐른 모양인지 보물 군데군데에 녹이 슨 흔적이 보였다.
나는 삼키기 좋게 아이템을 환약 형태로 바꿨다.
그리고 그대로 꿀꺽 삼켰다.
-용신단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아직 레벨을 올리기에는 부족한가?
한편 내가 아이템을 삼키는 모습을 처음 접한 휴즈는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희한한 재주를 가지고 있군.”
“용신단의 특별한 능력 중 하나입니다.”
“하여튼 너란 녀석은 참 신기하다니까.”
그 신기한 녀석이 바로 당신의 제자입니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