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
불균형한 차원, 카오스 필드 (1)
나는 사무실로 돌아왔지만 파랑새가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파랑새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마일은 분명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벨라시오닉의 보물들이 다수 묻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설마 이미 사람들에게 발견되어서 일부러 말을 안 한 걸까?’
이런 의심도 들었다.
그러나 어느 장소인지를 모르니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뭐다?
‘불러서 물어보면 그만이지.’
가장 확실한 방법 아닌가.
이제는 익숙해진 ‘마일 호출하기’.
마일은 가면을 쓰고 내 앞에 등장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일이 어떤 생각으로 등장했는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마일을 보자마자 먼저 이 말을 들려줬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사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마일은 가면을 벗더니, 쓴 미소를 선보였다.
“죄송합니다, 로인 님.”
역시.
마일은 본인이 왜 호출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이러면 이야기가 빨라지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한 개도 아니고 다수가 묻혀져 있는 곳을 알고 있었다며?”
차근차근 진실 여부를 확인해 가기로 했다.
과연 마일의 대답은?
“예, 알고 있었습니다.”
파랑새의 말이 사실이었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 볼까.
“왜 나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았지?”
“로인 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들어서입니다.”
이 무슨 닭살 돋는 멘트래?
“위험한 장소라도 되나 보네?”
“굉장히 위험한 곳입니다. 설령 로인 님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가는 건 개인적으로 정말 추천드리고 싶지 않군요.”
마일에게 있어서 나는 정말로 중요한 정보원이다.
그러니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그 심정은 잘 이해한다.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지금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루라도 빨리 용신단을 최대 레벨까지 키워야 한다.
이 와중에 찬밥, 더운밥을 가릴 여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위험한 장소라 해도 무조건 가야만 해. 칠흑이 남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전부 가로채기 전에.”
“…….”
“알고 있다면 나에게 알려 줘.”
“그것은…… 명령입니까?”
“아니, 부탁이야.”
마일의 입에서 상당히 무거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마일이 이렇게까지 곤란해 하는 모습은 난 처음 봤다.
그 정도로 위험한 곳인가?
“벨레너의 13난제를 알고 있습니까?”
“알다마다.”
나는 여태껏 다섯 개의 벨레너의 난제와 마주했다.
모를 리가 없지.
“그중 하나입니다.”
“몇 번째 난제인데?”
“첫 번째입니다.”
벨레너의 13난제 중 가장 어렵다고 알려져 있는 첫 번째 난제.
불균형한 차원, 카오스 필드.
이것이 벨레너의 첫 번째 난제의 정체다.
인간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곳.
시간의 무덤보다도 훨씬 위험한 장소로 알려져 있는 장소다.
마일이 나에게 일부러 장소 정보를 알려 주지 않은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그곳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있다는 정보는 사실이지?”
“기어코 그곳으로 가실 생각인가 보군요.”
“당연하지.”
라스의 기세가 크게 꺾인 마당에 나라도 어떻게든 칠흑와 맞상대할 수 있는 능력을 하루라도 빨리 갖춰야 한다.
《델리피나 전기》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난다면 내 목숨도 끝날 테니 말이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모험을 강행하는 수밖에.
한숨을 푹 내쉰 마일은 가면을 벗었다.
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눈빛은 달랐다.
나를 굉장히 걱정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마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카오스 필드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아서 로인 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카오스 필드에 관해서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습니다. 이 점은 로인 님께서 감안하셔야 합니다.”
“알고 있어.”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다.
설령 카오스 필드라 하더라도 나는 그곳에 가야만 한다.
* * *
카오스 필드는 굉장히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곳에 레드 라인 기사단과 블루로즈 R팀 용병들을 데려갈 생각은 없다.
카오스 필드로 향하는 목표는 전투가 아닌 탐색이다.
그러나 병력이 필요하진 않았다.
나 혼자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내가 장시간 자리를 비워도 나를 대신해 각 조직을 이끌 리더 격인 존재들이 있다.
그들을 믿고 나는 카오스 필드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가는 데에만 하더라도 왕복 10일이 걸린다.
단순히 이동 거리만 따져서 10일이지, 카오스 필드에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벨라시오닉의 보물들을 찾아내려면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가는 게 좋겠어.’
어쩌면 이번이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아 떠나는 나의 마지막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철저하게 짐을 꾸렸다.
이후에 나는 라그너를 비롯해 드레인, 게럴, 그리고 페튼까지.
네 명을 따로 불렀다.
“잠시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15일에서 20일 정도 자리를 비우게 될 거 같으니, 그동안 저를 대신해서 여러분들이 담당하고 있는 각 분야에서 철저하게 관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내가 가리고 가려서 뽑은 인재들이었기에 충분히 믿음이 갔다.
라그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말을 해줄까 말까 하다가 그냥 말해 주기로 결심했다.
“카오스 필드.”
“예?”
라그너는 말도 안 된다면서 고개를 격하게 가로저었다.
“카, 카오스 필드로 가신다고요? 그곳은 절대로 안 됩니다! 인간이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곳 아닙니까? 로인 님께서 들렸던 모든 장소가 하나같이 다 위험한 곳투성이였긴 했지만, 카오스 필드만큼은 절대로 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라그너가 이렇게까지 반대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카오스 필드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그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나를 말렸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안 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제 손에 세계의 운명이 걸려 있을지도 몰라서요.”
모두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누군가는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현재로서는 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하지 않겠나.
결국 이들은 나를 보내 주기로 했다.
어차피 말린다고 해도 안 갈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출발은 내일로 잡았다.
아침에 일찍 나울을 나설 예정이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침대에서 잠을 청했다.
아니, 청하려고 했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잠갔던 창문이 저절로 열렸다.
창문으로 소리 없이 등장한 남자.
레이샤르가 나를 찾았다.
“아직 안 자고 있었군.”
“예, 레이샤르님.”
……솔직히 막 잠들 뻔했는데.
도중에 레이샤르가 와서 잠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분위기상 ‘레이샤르 님 때문에 잠 깼는데요.’라고 말하기에는 좀 그런 거 같아서 그냥 대충 말을 맞춰 줬다.
레이샤르는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카오스 필드에 간다고 들었는데.”
“예, 내일 출발할 예정입니다. 아니, 오늘이 되어 버렸군요.”
자정이 넘었으니까 오늘이겠지.
“카오스 필드는 드래곤들조차 가는 걸 꺼리는 곳인데…… 굳이 그곳을 가야 하나?”
“예, 다른 방법을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내기도 전에 칠흑이 먼저 칼을 빼 들지 모릅니다. 미리미리 대처를 해 두는 게 좋겠지요.”
“나는 자네가 걱정되네. 눈앞에 있는 걸 쫓다가 더 큰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말이야.”
소탐대실(小貪大失)인가?
마일도 그렇고, 나를 따르는 측근들도 그렇고…… 그리고 레이샤르도 그렇고.
모두가 다 나의 카오스 필드행을 반대한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까.
레이샤르는 나에게 무언가를 건넸다.
아이템이었다.
-레이샤르의 팔목 보호대
-등급 : 레전드
-마법 저항력 : +328
-물리 방어력 : +543
-근력 : +213
-지력 : +423
-레이샤르의 비늘로 만들어진 팔목 보호대. 높은 물리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가지고 있으며, 착용할 경우에 상태 이상 효과를 크게 줄여 준다.
“선물이네. 그걸 가져가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가지고 있고 안 가지고 있고의 차이는 클 거야.”
“이렇게 귀한 물건을…… 감사합니다.”
순간 ‘이걸 삼키면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버렸다.
선물로 준 건데 삼킨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겠나.
레이샤르는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아무쪼록 무사히 다녀오게.”
“조심해서 다녀오겠습니다, 레이샤르 님.”
지식을 탐구하는 자, 레이샤르의 가호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 * *
드디어 대망의 나 홀로 여행 첫날이 다가왔다.
지금까지 혼자서도 많은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딱히 큰 걱정은 없다.
하지만 장소가 카오스 필드라는 점이 불안 요소였다.
나울을 떠나기 전에 나는 드레인에게 신신당부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엘라시아와 베라가 만나게 될 것 같은 상황이 조성되면, 베라를 다른 곳으로 보내세요. 아셨죠?”
“알고 있어.”
드레인도 시간의 무덤에서 베라의 황소고집을 목격했던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사달이 나지 않도록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드레인의 가장 큰 임무다.
나울을 벗어난 나는 카오스 필드가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말을 몰았다.
식량은 적정량만 가져가기로 했다.
부족한 건 중간에 들르는 마을에서 보충하다가 카오스 필드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에서 마지막으로 보급할 때 식량을 넉넉히 가져가면 되겠지.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를 지났다.
처음 보는 도시들이 정말 많았다.
나름 많은 도시들을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가 모르는 세계가 참으로 많았다.
오늘 도착한 도시, 반크러도 내가 처음 와 보는 곳이었다.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쳐흐르는 도시였다.
마침 도시에는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어느 술집을 가든 맥주 파티가 벌어졌다.
게다가.
“세일입니다, 세일! 맥주 한 잔에 80% 세일이에요! 오늘 아니면 반크러의 고오오오급 맥주를 마음껏 즐길 기회가 없습니다! 마음껏 주문하세요!”
80퍼센트? 상당히 파격적인 가격이다.
이건 놓치기 힘든 기회다.
모험가들은 1인당 최소 3~4잔의 맥주잔을 두고 저녁 시간을 보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집 맥주가 생각보다 괜찮네.’
다른 곳 둘러보지도 않고 그냥 들어온 첫 가게였다.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반크러의 모든 술집들은 기본적으로 이런 맛을 모두 다 유지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맛이 상당히 깔끔하고 좋았다.
적어도 내가 살던 원래의 세계에선 맛볼 수 없던 풍미의 맥주였다.
그런데 도수가 좀 높았다.
그러다 보니 맥주에 취한 모험가들 중 시비가 붙은 자들도 있었다.
“한판 해보자는 거야, 뭐야!”
“얘들아, 덮쳐!”
서로에게 우르르 달려드는 모험가들.
그러나 그들은 마치 종잇장처럼 여기저기 뿌려졌다.
고작 한 명에게 모조리 당해 버린 것이다.
그 한 명은 공교롭게도 내가 잘 아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스, 스승님?”
“음? 넌 또 왜 여기에 있냐?”
권왕 휴즈와 또 만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