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영웅의 복귀 (2)
치유소로 도착했지만 라스는 그곳에 없었다.
“어디 갔어?”
파이스는 레드 라인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손을 가리켰다.
“훈련장에 있을 겁니다. 몸이 찌뿌둥하다면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레드 라인 기사단 훈련장을 추천했습니다.”
“R팀 훈련장이 아니라?”
나는 당연히 R팀 훈련장을 추천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파이스의 소속이 R팀이니까.
파이스는 내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레드 라인 기사단 쪽이 신식이잖아요. 시설도 좋고요.”
“하긴, 그렇지.”
잠깐, R팀 훈련장도 새롭게 리모델링을 해 달라는 요구를 은근히 돌려서 말한 거 같은데?
아무튼 뭐, 그렇다 치고.
파이스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남기고서 나는 레드 라인 기사단의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은 레드 라인 본부를 거쳐야 갈 수 있다.
내가 본부에 모습을 드러내자, 쉬고 있던 1기 멤버들이 마치 서로 맞추기라도 한 듯이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뒤에 나에게 예를 표했다.
“기사단장님 오셨습니까!”
“오랜만이야. 그동안 별일 없었지?”
“예!”
“게럴은?”
“지금 훈련장에 있습니다. 라스라는 분이 오셔서 안내 중일 겁니다.”
“음, 그래?”
도중에 신경 쓰이는 무리가 있었다.
쭈뼛쭈뼛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기사단원들이 보였다.
새로운 얼굴들이었다.
“이자들은 2기 멤버들인가?”
“예, 그렇습니다!”
2기 기사단으로 뽑힌 자들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 질문에 답했다.
아마 나와 직접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듬직하게 생겼네. 앞으로 잘 부탁해.”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평소에 로인 님을 굉장히 존경했습니다! 같이 싸우게 되어 영광입니다!”
패기와 충성심이 넘친다.
라그너와 게럴이 심혈을 기울여 뽑아서 그런지 매우 마음에 든다.
나는 2기 멤버들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줬다.
그런 뒤에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가장 먼저 나를 맞이했다.
이 화기(火氣).
낯설지 않다.
‘인페르노 하트의 불이군.’
워낙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이제는 딱 봐도 알 것 같았다.
훈련장 한 가운데에서 검을 든 게럴이 라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반면에 라스는 맨손이었다.
원래 라스도 나처럼 맨손 격투에 익숙한 타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라스는 화염술사다.
불을 이용한 다양한 공격을 펼친다.
게럴이 들고 있는 검과 방패는 화염 내성 처리가 되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과 방패 표면에 녹은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인페르노 하트의 불길 앞에선 화염 내성이 무의미하다.
‘라바인 전투 때에도 그랬으니까.’
벨라시오닉이 마지막 화염을 토해 냈을 때, 나는 화염 내성 옵션이 붙은 아이템을 덕지덕지 착용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신 화상은 기본이고,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다.
그 불은 라스에게 그대로 계승되었다.
주인공 라스.
그의 오른손에 인페르노 하트의 불이 맺혔다.
“갑니다!”
라스의 경고에 게럴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불덩이가 쏟아지는 타이밍에 맞춰 왼손에 든 방패를 추켜올렸다.
터어엉!
폭발음과 함께 게럴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방패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게럴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굉장하군요, 라스 님!”
“아닙니다. 원래 컨디션이었더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었을 텐데……. 확실히 많이 약해지긴 했나 보네요.”
이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약해졌다는 말을 하니 게럴은 몰래 혀를 찼다.
게럴은 아마 체감이 잘 안 될 거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예전의 라스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죽다 살아났으니까. 그래도 그때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
글레드를 자그마치 3일 동안 사용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저런 힘을 사용할 기력이 남아 있었다.
오로지 주인공만이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훈련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라스는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알은척을 해 왔다.
“로인 씨! 돌아오셨군요. 의뢰는 다 끝났습니까?”
“예, 검은 괴물은 확실하게 퇴치했습니다.”
더불어 와모르 남작도요.
그러나 그런 말은 일부러 하지 않았다.
긴 사정을 설명하려면 내 입만 아플 거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라스의 손에 아직도 맺혀 있는 작은 불덩이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많이 나아지신 거 같군요.”
“그래도 예전의 컨디션을 되찾으려면 한참 먼 거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한데…… 칠흑은 그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겠죠.”
그 이전에 《델리피나 전기》의 이야기가 끝나겠지.
라스는 나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감사합니다. 이게 다 로인 씨 덕분입니다.”
“제가 한 게 뭐가 있다고요.”
“로인 씨가 아니었더라면, 저는 그날 칠흑에게 죽었을 겁니다. 로인 씨는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갑자기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라스와의 친밀도가 초대량 상승합니다.
-라스와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이건 또 뭐야?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주인공인 라스와 친밀도가 최대치가 되다니.
친밀도가 최대치에 달하면, 그에 따르는 혜택이 주어진다.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공과 친밀도가 최대가 되었을 때에는 도대체 어떤 혜택이 주어지는 걸까?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주인공과의 친밀도가 최대치가 되었습니다.
-히든 칭호 퀘스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칭호 : 주인공의 신뢰를 얻은 자
-효과 : 등장인물 모두에게 친밀도가 +50 가산되어 적용됩니다.
-효과 : 전체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95에 도달했습니다.
-드래곤 피어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드래곤 클로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이미테이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용언 마법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새로운 용언 마법이 25종 추가됩니다.
-용의 숨결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생명의 불씨, 글레드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너무 많아서 다 훑어볼 정신이 없었다.
일단 크게 두 가지 효과를 적용받는다.
등장인물 모두의 친밀도가 50 가산된다.
이게 사실이라면…….
‘더 이상 커뮤니티 문제는 없겠어.’
뭐, 솔직히 주, 조연급들과 다 알고 지내게 되었는데, 커뮤니티 문제가 큰 제한은 아니긴 하다.
그래도 등장인물과의 친밀도를 최대치로 만드는 작업을 할 때에는 많은 도움이 될 만한 효과인 거 같다.
그리고 눈에 띄는 효과가 하나 더 있었다.
용신단의 레벨을 95까지 올려 줬다.
용신단 레벨이 100에 도달하면 벨라시오닉의 혼을 각성시킬 수 있다고 전해 들었다.
여태까지 워낙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용신단의 레벨링이 많이 더딘 편이었는데, ‘주인공의 신뢰를 얻은 자’ 칭호 효과 덕분에 단숨에 95레벨까지 상승했다.
‘이제 5레벨만 더 올리면 되는구나!’
역시 주인공이다.
칭호 효과도 굉장하다.
게다가 글레드 스킬 레벨도 오른 덕분에 앞으로 좀 더 여유롭게 글레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얻은 게 정말 많다.
나 혼자 멍하니 칭호 효과 내용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을 때, 라스는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습니까, 로인 씨?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네요.”
“아, 아닙니다. 잠깐 신경 쓰일 만한 일이 떠올라서요. 그나저나 라스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몸도 다 나았으니, 이제 다시 칠흑과 싸우기 위해 이곳저곳 떠돌아다닐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어디가 되었든 간에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인 씨가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믿음직하군요.”
라스가 다시 활동을 재개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저번처럼 무리하진 않았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앞섰다.
* * *
다음 날, 라스는 일행을 데리고 라크스 공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엘라시아와 합류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라스를 비롯해 카이딘, 엔드라, 릴리안과 악수를 나누면서 작별 인사를 했다.
나중에 또 나울에 들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길을 떠나는 라스 일행.
같이 배웅을 나온 라그너는 멀어져가는 라스 일행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울도 이제 조용해지겠군요.”
“그러게.”
언제 칠흑과 추종자들이 습격해 올지 몰랐기에 나울 주변의 경계 레벨이 잔뜩 올라간 상태였다.
그러나 라스가 떠났으니, 이제는 다시 잠잠해질 차례가 되었다.
라스 일행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면 앞으로 마일이 나에게 바로 알려 주기로 했다.
라스의 담당 현자인 티아나가 마일과 연계를 해 나한테 바로 보고가 들어가게끔 하는 그런 체계를 미리 구축해 뒀다.
이게 다 마일이 차기 대현자가 되었기에 가능한 협력 관계였다.
라스에 관련된 건 일단락되었고.
‘이제 미뤄 뒀던 숙제를 할 차례군.’
용신단의 레벨이 95에 도달했다.
이제 5레벨만 올리면 최고 레벨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 5레벨을 올리기가 생각보다 너무 빡세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하나 정도로는 레벨이 오르지 않는다.
대충 계산을 때려 본 결과.
‘최소 9개에서 12개는 삼켜야 100레벨이 될 거 같은데.’
용신단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레벨링 작업이 힘들다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벨라시오닉의 보물 하나를 삼키면 적어도 1레벨은 꾸준히 올랐다.
하나 90레벨부터는 그런 자비 따윈 없다.
보다 많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필요하다.
라바인 전투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런지 예전에 비해 벨라시오닉의 보물에 관한 정보가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대부분 내가 삼켰거나, 아니면 칠흑이 삼켰거나, 혹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었거나.
셋 중 하나였다.
1차적으로 노리는 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아내는 건데…….
‘이게 굉장히 어려워.’
마일도 요즘은 발견되지 않은 벨라시오닉의 보물들은 찾기가 힘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베르투의 차기 대현자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이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일단 생각을 좀 해 보기로 했다.
사무실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대장.”
파랑새가 나를 불렀다.
난 파랑새게 이곳, 나울에 와 있는지도 몰랐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파랑새다웠다.
“안녕하세요.”
“어디 갔다가 오는 거야?”
“라스 일행 배웅해 주고 오는 길입니다.”
“아, 퇴원했어?”
“예. 아직 정상 컨디션은 아니지만요.”
“역시 젊은 영웅은 다르네. 아주 바빠 보여. 물론 로인 대장도 마찬가지고.”
파랑새는 나에게 편지를 건네줬다.
“이거.”
“이게 뭡니까?”
“로인 대장의 팬이 보내오는 러브레터.”
“체릴의 편지군요.”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편지를 뜯어 보기 전에 나는 문득 파랑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혹시 벨라시오닉의 보물에 관련된 정보는 없습니까? 아직 남들이 모르는 고급 정보요.”
파랑새도 베르투의 현자 출신이다.
정보력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베르투가 모르는 정보를 파랑새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일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아?”
“찾기 힘들다던데요?”
“그래? 내가 아는 것과 다른데?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잔뜩 묻힌 장소가 분명 있을 텐데. 마일도 그 장소를 알고 있고. 아직 로인 대장한테는 말 안 해 줬나 보네.”
“예?”
마일이 나에게 일부러 정보를 주지 않았다고?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