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영웅의 복귀 (1)
에이든이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았다.
저녁에 다시 술을 마시게 해 주겠다는 그 말.
나는 그걸 듣자마자 안 좋은 느낌을 받았다.
의심은 들었으나, 에이든이 정말로 검은 괴물이 맞는지 확신까진 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에이든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이 와모르 남작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마지막 날이 될 거라는 사실을.
‘경황이 없어서 에이든의 인물 정보창을 못 봤던 게 큰 실수였어.’
만약 에이든의 인물 정보창을 확인했더라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내 실수다.
에이든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소년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살기가 가득했다.
무엇이 소년을 검은 괴물로, 악마로 만들었을까?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바로 증오다.
와모르 남작에게 자신의 누나를 빼앗겼다는 증오, 그것이 소년을 악마로 만든 것이다.
나는 에이든에게 말했다.
“와모르 남작이 다른 도시로 도망칠 거라는 말은 헛소문이다. 내가 너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 소문을 퍼트린 거지.”
에이든은 충격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케프리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에이든은 칠흑의 조각에 잠식당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에이든은 나를 다시 노려봤다.
“와모르의 개 주제에……!”
“와모르의 개가 아니라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로인이다.”
“돈만 주면 와모르 같은 천하의 나쁜 놈도 주인으로 모시는 놈이 개가 아니고 뭐지?”
“용병이지.”
돈에 움직이고 돈에 행동한다.
그것이 우리 용병의 철칙이다.
나는 글레드의 힘을 더욱 키웠다.
흰색의 불꽃은 에이든의 전신에 붙기 시작했다.
에이든은 인상을 가득 찡그렸다.
“아버지…….”
에이든은 죽음을 각오한 듯했다.
하나 화이트플레임은 에이든에게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에이든을 잠식하고 있던 칠흑의 조각을 떼어 내기만 했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에이든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글레드만 있으면, 몸이 멀쩡한 상태로 칠흑의 조각만 숙주로부터 떼어 낼 수 있다는 건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고급 정보다.
당사자인 에이든조차 몰랐을 것이다.
나는 칠흑의 조각을 그대로 봉인구에 넣었다.
“내가 와모르 남작에게 의뢰받은 건 ‘검은 괴물 퇴치’다. 하지만 넌 더 이상 검은 괴물이 아니게 되었으니…… 퇴치할 이유가 없겠지.”
나는 에이든을 놓아 줬다.
“가라. 그리고 네 아버지와 함께 이 도시를 떠나라.”
만약 와모르 남작이 검은 괴물의 정체가 에이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에이든과 울리버를 죽이려 들 것이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에이든이 와모르의 목숨을 노린 것은 분명하니까.
와모르의 성격상, 에이든을 가만히 놔둘 리가 없다.
돈도 따로 건네줄 생각이었다.
우선은 에이든을 먼저 보내는 게 우선이었다.
하나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거기까지.”
와모르 남작이 뒤뚱거리면서 현장에 출몰했다.
분명 내가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구석에 얌전히 처박혀서 나오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을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나와 버렸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네.
나는 짧게 혀를 찼다.
와모르 남작은 에이든을 내려다봤다.
에이든은 주먹을 꽉 쥐었다.
칠흑의 조각이 없는 에이든은 평범한 소년에 불과하다.
와모르 남작이 어떻게 에이든을 처리할지가 가장 걱정이었다.
그러나 사건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나에게 넘기도록.”
와모르는 에이든이 아닌 내게 말했다.
그것?
설마…….
“칠흑의 조각을 말씀하시는 건 아니겠죠?”
나는 와모르 남작의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
그러자 와모르 남작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맞네.”
“…….”
“이런 꼬맹이조차 다룰 수 있는 칠흑의 조각을 내가 다루지 못할 리가 없지. 안 그런가?”
나이를 불문하고 칠흑의 조각을 자신의 힘처럼 사용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체질 문제라고, 이 빌어먹을 돼지 녀석아.
그러나 와모르 남작은 이미 맛이 가 버린 듯했다.
“그것만 있다면, 이 썩어가는 몸뚱어리 대신 강인하고 건강한 육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터! 자, 어서 그것을 나에게 넘겨라!”
드레인은 안절부절못하며 나와 와모르 남작을 번갈아 바라봤다.
와모르 남작은 더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놈들을 포위해라!”
“예!”
경비병들이 나와 용병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용병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들어 나를 보호하려 했다.
“그만.”
나는 용병들의 행동을 만류했다.
와모르 남작에게 해 줄 말은 이것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넘겨드리겠습니다.”
“대, 대장!”
드레인은 놀라 입을 쩍 벌렸다.
이건 미친 짓이다. 나도 아주 잘 안다.
하지만.
“용병은 돈 주는 사람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거니까요. 그렇죠? 와모르 남작님.”
“물론.”
와모르 남작은 나에게서 칠흑의 조각을 넘겨받았다.
칠흑의 조각은 새로운 숙주를 접하자마자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점점 와모르 남작의 육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와모르 남작은 웃었다.
“힘이 넘치는구나!”
아직까지는 여유가 있나 보군.
그 여유,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지켜보도록 할까?
와모르 남작은 얼마 안 가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끄으으……!”
결국 견디다 못해 스스로 검은 연기를 떼어 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파, 너무 아파!”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한 아픔이 와모르 남작을 좀먹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힘은 공짜로 얻는 게 아니다.
희생을 통해 얻는 것이 바로 칠흑의 힘이다.
힘을 가지는 대신, 숙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칠흑의 조각에게 바쳐야 한다.
물론 와모르 남작도 예외는 없었다.
“로, 로인! 이걸 당장 떼어 내라, 어서!”
“칠흑에게 한 번 잠식당하면 떼어 낼 방법은 없습니다.”
“바, 방법이 없다고? 방금 저 꼬맹이한테선 떼어 냈잖아!”
“그건 글레드 덕분이었죠.”
“그, 그럼 나한테도 글레드인지 뭔지를 사용해라! 어서 당장! 설마 돈이 필요한가?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빨리!”
무리를 하면 글레드를 다시 소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다.
“제 생명력 깎아 먹는 짓은 하고 싶지 않거든요.”
아무리 돈이 좋다고 한들, 내 목숨을 희생하고 싶진 않았다.
요양을 취하는 건 라스 한 명이면 충분하니까.
게다가 와모르는 내 생명력을 바칠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와모르 남작이 검은 연기에 먹히는 동안, 나는 남작의 집사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에게 말했다.
“전 와모르 남작으로부터 이런 의뢰를 받았습니다. 검은 괴물을 퇴치해 달라고. 그런데 눈앞에 검은 괴물이 있군요. 이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
“…….”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더 이상 와모르 남작은 우리 앞에 없었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당한 되다 만 생물, 검은 괴물만 있을 뿐.
검은 괴물은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와모르 남작이었던 생명체의 오른쪽 어깻죽지에 드래곤 클로를 박아넣었다.
-크워어어어어어!
검은 괴물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이제 막 잠식에 접어들었으니, 잠식 단계가 1단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잠식 단계가 낮은 만큼 재생력도 매우 낮다.
나는 그 점을 노렸다.
드래곤 클로를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괴물의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잘려 나간 신체는 재생되지 못했다.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검은 괴물은 고통에 견디다 못해 발악하기 시작했다.
와모르 남작을 보필하던 집사를 공격하려 했다.
“으, 으아악!”
집사는 비명을 질러 댔다.
“괴, 괴물 녀석! 저리 가!”
그러나 검은 괴물은 집사를 계속해서 노렸다.
나는 집사에게 물었다.
“의뢰받은 대로 제가 검은 괴물을 없애도 되겠습니까?”
“나, 나한테 그런 거 물을 시간 있으면 빨리 괴물 녀석이나 없애 버리시오! 어서!”
“알겠습니다.”
집사의 허락이 떨어졌다.
나는 드래곤 클로로 검은 괴물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잘라 냈다.
와모루 남작의 덩치에 걸맞게 검은 괴물의 덩치 또한 비대했다.
그러나 움직임이 둔하고 재생력도 약하다.
내 입장에선 때리기 딱 좋은 샌드백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검은 심장을 도려냈다.
작별 인사할 필요가 있나?
‘굳이 그럴 이유가 없잖아?’
그냥 미련 없이 검은 심장을 파괴했다.
잘 가라는 말을 건넬 만큼 정이 쌓였던 것도 아니고. 동정심도 안 든다.
와모르 남작의 육체는 검은 연기와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런 걸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하는 거겠지.
나는 집사와 경비병들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와모르 남작님이 주신 의뢰는 모두 끝났네요.”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잘됐네, 잘됐어.
* * *
아침이 되자마자 나는 용병들과 함께 메블로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이동하기 전에 드레인에게 잠시 다른 곳에 다녀오겠다고 말을 전해 뒀다.
울리버가 있는 곳이었다.
울리버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노인의 모습이 아닌 원래 나의 모습으로 울리버의 자택을 방문했으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나는 최대한 밝게 웃었다.
“에이든을 만나고 싶어서요.”
“…….”
울리버는 나를 잔뜩 경계했다.
그러나 에이든이 알아서 내 앞에 등장했다.
“무슨 이야기죠?”
“이거, 선물이다.”
나는 에이든에게 돈주머니를 건넸다.
“이걸 왜……?”
“너하고 내가 공동으로 검은 괴물을 퇴치했으니까.”
“공동이요? 전 아무것도…….”
“어허,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건 줄 알고 있어.”
에이든이 내가 준 돈을 거절하기 전에 나는 빠르게 장소를 떠나기로 했다.
그 전에 에이든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힘을 가지고 있다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아무리 힘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와모르처럼 될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힘이 없다고, 스스로가 약하다고 그걸 죄라고 생각하지 마. 힘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진짜 죄니까.”
힘을 통제하지 못하는 존재.
그들은 검은 괴물이 되어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다.
그리고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 바로 칠흑의 조각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 * *
와모르 남작 사건을 해결…… 이라고 해도 괜찮을라나?
뭐, 결과적으로 검은 괴물을 퇴치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니까. 해결이라고 치자.
아무튼 해결하는 데에 성공한 우리는 다시 나울로 복귀할 수 있게 되었다.
나울에 돌아오자마자 반가운 소식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을 가져온 인물은 파이스였다.
“대장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좋은 소식? 아니면 나쁜 소식?”
“전자입니다.”
“그래? 말해 봐.”
나쁜 소식이면 안 들으려고 했는데, 마침 잘됐다.
“라스 님에 관련된 겁니다. 예전만큼의 컨디션은 아니지만, 칠흑 녀석들과 다시 싸워도 문제가 없을 정도까지는 회복된 거 같습니다.”
라스가 다시 활동할 수 있다고 하니, 좋은 소식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심 걱정이 된다.
저번처럼 또 무리하다가 다시 큰 위기에 봉착할까 봐.
그리고.
‘아직 라스를 죽인 배신자가 누군지 찾지 못했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