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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떠보니 엑스트라-192화 (192/240)

# 192

약한 건 죄가 아니다 (6)

검은 괴물을 둘러싸기 시작한 블루로즈단 단원들.

나와 같이 다니면서 검은 괴물을 많이 상대해 봤기 때문에 단원들은 검은 괴물을 마주하고도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파악하여 스스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드레인은 나를 대신해서 용병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떻게든 놈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예!”

검은 괴물은 애초에 우리들과 싸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놈의 생각은 하나뿐.

도망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놈의 발목을 붙잡으려 했지만…….

마음먹고 도망치기를 선택한 검은 괴물을 붙잡는 건 꽤 힘든 일이다.

추격전을 펼치려면 적어도 반드 정도는 있어야 한다.

검은 괴물은 단원들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내가 바로 따라잡으려 했지만 이번 검은 괴물은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하지만.

‘어림없지!’

나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강해졌다.

용신단의 능력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렸다.

크게 발돋움을 하자, 내 몸은 내가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튀어 나갔다.

마치 내 자신이 미사일이 된 기분이었다.

오른손을 뻗어 놈의 왼쪽 다리를 잡았다.

‘나이스 캐치!’

그러나 기뻐하기에는 일렀다.

놈은 스스로 자신의 왼쪽 다리를 잘라 냈다.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스스로 끊고 도망치는 것과 같은 형태였다.

한쪽 다리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괴물은 재빠르게 자신의 다리를 복구시킨 뒤에 담장 벽을 넘었다.

뒤를 쫓으려 했지만, 이미 놈의 흔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비록 검은 괴물을 놓치긴 했지만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놈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라 냈다.

물론 검은 괴물은 잘라 낸 팔다리를 다시 수복하긴 했지만, 급속 재생은 기력을 많이 요하는 스킬이다.

검은 괴물은 만능이 아니다.

신체를 다시 급속으로 재생시킨 만큼,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상당할 것이다.

‘일단 검은 괴물의 활동에 제약을 걸어 둔 것으로 만족할까?’

아쉽지만 오늘은 여기까지였다.

* * *

날이 밝았다.

나는 드레인과 함께 와모르 남작을 다시 찾았다.

일종의 병문안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남작님.”

“……네 덕분에 살았다.”

와모르 남작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그래도 내가 목숨을 구해 줬다는 것 정도는 인지하고 있나 보다.

나는 또 그런 것도 다 잊어 먹은 줄 알았지.

와모르 남작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표정은 검은 괴물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라는 것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검은 괴물이라고 했나? 굉장하더군. 그 신체 능력, 참으로 탐이 나.”

이런 미친 녀석을 봤나?

자신을 죽일 뻔한 괴물을 보고 오히려 반해 버리다니.

할 말이 없었다.

와모르 남작이 강인한 육체에 유독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을까?

갑자기 이게 궁금해졌다.

빠르게 병문안을 마친 나는 마일을 찾았다.

마일에게 와모르 남작의 개인 정보를 하나부터 열까지 다 조사해 오라고 시켰다.

마일은 도중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조사하게끔 시키셨으면 좋았을 텐데…….”

“방금 어디서 불만이 들린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냥 혼잣말이었습니다. 바로 조사해 올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마일은 내 말이라면 꼼짝을 못한다.

그를 차기 대현자로 만들어 준 게 바로 나니까.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내가 가지는 말의 무게감은 적어도 마일한테는 한없이 무겁게 느껴질 것이다.

잠시 후.

마일은 내 지시대로 와모르 남작에 대한 모든 자료들을 조사해 왔다.

자료를 살피던 중에 나는 와모르 남작이 감춰 왔던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건강 상태가 영 별로군.’

비대한 몸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와모르 남작이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죽는 병은 아니다.

성인병을 비롯해 복합적인 병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단명할 것이다.

‘그래서 유독 강인한 육체에 욕심을 내는 거로군.’

그렇다고 해도 칠흑의 조각에 손을 대는 건 반대인데.

그 전에 나는 빨리 검은 괴물을 없애기로 했다.

‘이 방법만큼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필살기를 사용할 때가 된 것 같다.

“선배!”

나는 드레인을 찾았다.

“왜, 대장?”

“와모르 저택에 가서 협조 하나만 해 달라고 대신 양해를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즉, 쓴 소리를 듣는 역할을 해 달라는 뜻이었다.

드레인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알았어. 할게. 그 대신, 검은 괴물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인 건 맞지?”

“예, 오늘 안으로 잡을 수 있을 겁니다. 확실합니다.”

“좋아. 나도 하루라도 빨리 여기 메블로를 떠나고 싶으니까 대장한테 협조할게. 어떤 양해를 구하면 되는데?”

“실은 말이죠…….”

내 말을 들은 드레인의 표정이 금세 썩어 갔다.

“진짜 싫은 역할이네.”

“하루라도 빨리 나울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셨죠? 그러면 제 말대로 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게 검은 괴물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니까요.”

“하아…….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눈 딱 한번 감고 와모르 저택에 가서 살살 기면 되는 거지? 근데 저쪽에서 허락할까?”

“검은 괴물을 100퍼센트 유인할 수 있는 작전이라는 걸 어필하면 무조건 허락할 겁니다.”

“어휴, 알았어.”

나는 드레인의 어깨를 몇 차례 토닥여 줬다.

“힘내세요, 선배. 이번 작전이 성공하면, 특별 수당 챙겨 드릴게요.”

“그 말, 잊지 마라.”

역시 사람의 아픈 마음을 달래 주는 데에는 돈이 최고인 거 같다.

* * *

메블로에 이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와모르 저택이 검은 괴물한테 습격당해 겁을 먹고 내일 당장 다른 도시로 몰래 떠날 거라고.

마을 주민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 소문을 빠르게 퍼트렸다.

“아니, 자기 영지 주민들을 버리고 혼자서 도망친다고?”

“양아치도 이런 쌩양아치가 다 있나!”

“저런 자가 귀족이라니……! 속이 탄다, 속이 타!”

마을 주민들의 분노는 더더욱 상승했다.

한편 나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소문이 잘 퍼지고 있나 직접 확인하기 위해 나섰다.

‘음, 역시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법이군.’

요즘 들어 조상님들 말씀이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거 같다.

사실 와모르 남작이 몰래 도망친다는 소문은 거짓이다.

일부러 내가 용병들을 시켜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이다.

이 소문을 퍼트리기 전에 나는 와모르 남작 측에 먼저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그 역할을 수행한 것이 드레인이었다.

드레인의 말발이라면 어렵지 않게 와모르 남작의 협조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의 용병술은 정확했다.

와모르 남작은 검은 괴물을 확실히 유인할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결국 내가 이런 거짓 소문을 퍼트리는 일에 동의했다.

검은 괴물이 노리는 건 와모르 남작이다.

이건 더 이상 확인할 필요가 없다.

그런 와모르 남작이 바로 내일, 다른 도시로 몰래 떠난다는 소문을 칠흑의 조각의 숙주가 접하게 된다면…….

‘녀석은 분명 다시 오겠지!’

이게 나의 작전이다.

백여 명이나 되는 검은 괴물 의심자들을 일일이 다 면담, 심문할 순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반대로 유인책을 사용하기로 했다.

이 유인책이 제대로 먹혀들지 어떨지는 오늘 저녁에 확인해 보면 된다.

‘가서 미리 잠이라도 자 둘까?’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찰나였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소년은…….’

울리버의 막내아들, 에이든이었다.

물건이라도 사러 온 모양인가 보다.

나는 에이든에게 다가갔다.

그 전에 노인의 모습으로 다시 외형을 바꿨다.

“또 보는군.”

“……!”

에이든은 내가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온 것에 놀란 모양인지 작은 어깨를 크게 움찔거렸다.

“여긴 어떻게……?”

“그냥 낮술이 당겨서. 여긴 술가게라도 밤만 되면 문을 닫는 도시지 않은가? 그래서 낮에 미리 술을 마셔 두는 거지.”

“아하, 그렇군요.”

“울리버는 어디 있지?”

그러고 보니 오늘 저택에서 나올 때, 울리버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매일 빠지지 않고 1인 시위를 했다고 들었었는데 말이다.

에이든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는……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셔서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가?

어제 검은 괴물은 나에게 치명상을 두 번이나 입었다.

기력을 많이 소모했으니 정상 컨디션은 아닐 터.

그런데 울리버도 때마침 몸이 안 좋아졌다는 말을 들으니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설마 울리버가?’

그러나 울리버가 아니라는 증거도 많았다.

어제 경비병한테 폭행당한 후유증이 뒤늦게 몰려왔을지도 모르는 거다.

그리고.

‘어차피 오늘이면 범인이 잡힐 테니까 상관없겠지.’

더 이상의 탐문 수사는 의미가 없다.

어차피 검은 괴물은 와모르 남작을 죽이기 위해 오늘 저녁, 강제로 저택을 다시 방문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검은 괴물의 숙적인 와모르 남작을 어쩌면 평생 놓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에이든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줬다.

“가서 아버지 잘 간병하게나.”

“예, 어르신.”

에이든은 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자리를 뜨기 직전, 에이든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일부터는 저녁에 다시 술 마실 수 있게 되실 거예요.”

“뭐라고……?”

방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되묻기도 전이었다.

에이든은 금세 사라졌다.

“…….”

안 좋은 느낌이 드는데.

* * *

소문이 도시 전역에 퍼진 후, 첫날 저녁이 도래했다.

나는 용병들을 와모르 저택 이곳저곳에 잠복을 시켜 뒀다.

검은 괴물이 나타나면, 내 신호에 따라 움직이라는 말을 미리 전해 뒀다.

우리의 목적은 검은 괴물을 사로잡는 것이다.

새벽 2시경.

침입자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왔구나.’

틀림없다.

이 기척…….

‘검은 괴물이야.’

그러나 나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녀석이 와모르 남작이 있는 방까지 들어가도록 놔뒀다.

검은 괴물은 조심스럽게 와모르 남작의 방으로 침입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바로 옆방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와모르…… 네놈이 도망치기 전에 내가 먼저 네놈을 죽이러 왔다.”

검은 괴물은 와모르 남작이 덮고 있는 이불을 거칠게 걷어 냈다.

그 순간, 검은 괴물은 침음을 흘렸다.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와모르 남작은 거기에 없으니까.’

나는 발로 벽을 허물면서 검은 괴물이 있는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정이다, 이 녀석아.”

“……!”

검은 괴물은 다시 도망치기 위해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놓칠 생각이 없었다.

“에나, 지금이다!”

여태껏 아껴 뒀던 비장의 카드, 에나를 꺼내기로 했다.

에나는 검은 괴물의 두 다리를 얼려 버렸다.

이도저도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검은 괴물.

용병들이 검은 괴물을 에워쌌다.

나는 천천히 검은 괴물에게 다가갔다.

글레드의 힘을 발동시켜 검은 괴물의 머리 근처에 가져갔다.

칠흑의 조각에서 풍겨 오는 검은 연기를 걷어 내 숙주의 정체를 확인했다.

나는 숙주의 이름을 읊었다.

“에이든, 역시 너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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