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91화 (191/240)

# 191

약한 건 죄가 아니다 (5)

“울리버라는 사람을 찾아왔다만…… 이곳에 있느냐.”

“……어디서 오셨나요?”

소년은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와모르 남작이 보낸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테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때였다.

“…….”

울리버가 에이든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더니 수화로 뭔가를 전했다.

나는 수화를 전혀 할 줄 모른다.

그래서 울리버가 에이든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에이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문을 열어 줬다.

“들어오세요.”

“고맙구나.”

아무래도 울리버가 에이든에게 내가 누군지 설명해 준 모양인 것 같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마실 거라도 내올게요.”

에이든은 주방으로 추정되는 공간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울리버는 나를 거실로 안내했다.

상당히 좁은 거실이었다.

바닥에는 벌레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야영을 워낙 많이 해 온 나였기에 벌레가 바닥에 기어 다니는 모습에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다.

그보다 위생 상태가 완전 별로인데?

주변을 둘러봐도 상태가 멀쩡해 보이는 가구는 없었다.

울리버는 손을 움직이다가 도중에 관뒀다.

내가 수화를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듯했다.

나는 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들었다.

“글자는 적을 수 있소? 그렇다면 이걸 사용하시오.”

예전에 등장인물들과 친밀도 부족 때문에 강제로 말을 못 하는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수첩과 펜으로 대신 의사소통을 나눠야 했다.

지금이야 히든 칭호 같은 것들을 많이 모아 놓아서 그런지 이제는 그런 제약이 많이 없어지긴 했으나, 수첩과 펜을 가지고 다니던 습관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울리버는 내게서 건네받은 필기구로 나에게 말을 건넸다.

첫 마디는 이러했다.

-낮에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천만에.”

나는 슬며시 웃었다.

나이로 따지면 내가 한참 아래이긴 하지만, 지금 나는 노인을 연기해야 했다.

그래서 울리버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 많이 어색했다.

그래도 노인의 모습을 울리버에게 존댓말을 하는 게 더 어색하게 보이겠지.

그래서 나는 최대한 자기 자신에게 세뇌를 시켰다.

나는 노인이다, 나는 노인이다, 나는 노인이다.

이렇게 말이다.

“그래…… 몸은 좀 어떤가?”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안 괜찮아 보였다.

여기저기 피멍이 들어 있었다.

게다가 치료도 제때 못 한 모양인지 상처가 곪아 터진 흔적도 몇 군데 보였다.

울리버는 뭔가를 떠올렸는지 잠시 자리를 비웠다.

책상 위에 가져온 무언가를 올려 뒀다.

내가 준 돈주머니였다.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돌려준다고? 이걸? 자네 쓰라고 준 건데 굳이 나한테 다시 줄 필요 없어. 그냥 가져가게.”

-이렇게 많은 돈을 그냥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냥 준 게 아니야.”

순간 나는 머릿속으로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시켰다.

“자네의 딸…… 에들리였나? 그 아가씨가 예전에 나를 도와준 적이 있었어. 이 도시에 처음 놀러 왔을 때 길을 잃은 적이 있었지. 그때 에들리 양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적이 있네. 그에 대한 보답이니 그냥 받아 두게나.”

“…….”

“딸의 선행을 못 본 척할 셈인가?”

한참을 고민하던 울리버는 마지못해 내가 준 돈을 받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만 돈을 받을 거 같았다.

마일에게 에들리에 관해서 조사해 달라고 한 것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딸을 언급해서 미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여기까지 찾아온 거였으니까.

“에들리에 관한 일은 안타깝게 되었네. 그때 나는 이곳에 없어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나중에야 듣고서 알게 되었지. 뭐라 할 말이 없더군.”

-아닙니다. 이게 다 와모르 때문이지, 어르신 탓이 아닙니다.

울리버, 이 남자는 와모르와 다르게 인성이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불공평하게도 착한 사람의 편이 아니었다.

나쁜 놈들이 판치고 잘사는 세상.

이거야말로 더러운 세상 아닌가.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에들리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와모르 남작을 증오하는가?”

울리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질문이다.

자신의 딸을 죽인 남자를 어찌 좋게 생각할까.

“와모르 남작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겠군.”

“…….”

울리버는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향한 증오. 누군가를 향한 분노.

이 감정은 인간에게서 한순간에 ‘이성’이라는 것을 빼앗아 간다.

그리고 이성을 잃었을 때, 그 빈틈을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칠흑의 조각’이다.

어쩌면 울리버라는 남자가 검은 괴물의 정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걸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울리버의 집을 방문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번에 벌어진 검은 괴물 사건은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검은 괴물은 보통 인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존재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 결과, 아직 검은 괴물에게 희생당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재산 피해를 입은 와모르 남작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검은 괴물은 특정 누군가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바가 없었다.

검은 괴물이 노리는 건 틀림없이 와모르 남작, 한 명뿐이다.

그는 와모르 남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러면 범인의 폭은 굉장히 좁혀진다.

와모르 남작에게 분노를 품고 있는 자들 중 한 명이다.

나는 울리버를 그중 한 명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울리버는 노골적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만약 울리버가 칠흑의 조각의 숙주라면, 굳이 1인 시위를 할 필요가 없었겠지.’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검은 괴물로 변하면, 경비병들은 우습게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울리버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한 것이다.

왜냐?

‘숙주가 아니니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울리버는 후보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벌써 가시는 겁니까?

“오랫동안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때마침 에이든이 마실 것을 가지고 나왔다.

“이거라도 마시고 가심이…….”

“괜찮다. 그보다 네 아버지를 잘 간병해 주거라. 오늘, 와모르 남작의 부하들에게 모진 일을 당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에이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의미 없는 행동이라고, 그러니까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더라고요.”

1인 시위는 딸이 죽은 이후부터 계속 해 왔던 거군.

더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그렇다고 죽은 딸이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 건 아니다.

에이든은 이를 잘근 깨물었다.

“차라리 와모르 남작이 검은 괴물한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검은 괴물은…… 약자인 저희와 다르게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힘으로 부디 와모르 남작을 없애 줬으면 하고 매번 바랄 뿐입니다.”

소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약한 건 죄다.’

“…….”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 * *

울리버와 에이든은 밤도 늦었으니 이곳에서 자고 가라고 말했다.

밖에 검은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빠르게 이들의 집에서 빠져나왔다.

울리버가 검은 괴물이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으니, 더 이상 저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되었으니, 수사를 다시 해 봐야겠네.’

와모르 남작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고 있는 이들은 많다.

딸을 빼앗긴 가족들을 대상으로만 해도 100여 명이 넘어간다.

이들을 언제 다 일일이 심문할지,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오고 있었다.

‘작전을 다시 짜 봐야겠어.’

언제까지 메블로에서 계속 시간을 축내고 있을 수는 없다.

내가 장기간 나울을 비우고 있다는 정보가 칠흑과 추종자들에게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에서의 의뢰를 마치고 나울로 돌아가야 한다.

숙소로 복귀하면서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검은 괴물을 끄집어낼 수 있는 작전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던 찰나에 갑자기 근처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검은 괴물이 나타났다!”

“모두, 집으로 들어가! 어서!”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더니만.

역시 옛 조상님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

검은 괴물이 어디로 향할지.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와모르의 저택이겠지, 뭐!’

뻔하지 않은가.

저택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괴물이 나타났다는 정보가 퍼지자마자 드레인은 블루로즈단을 이끌고 와모르의 저택으로 출동했다.

“대장!”

드레인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외쳤다.

“어디 가 있던 거야!”

“잠시 밤 산책 좀 하다가 왔습니다.”

“하필이면 이런 중요한 때에! 그보다 소식 들었어? 지금 검은 괴물이 나타났대!”

“예, 그 말 듣고 여기까지 온 겁니다.”

“역시 대장이구먼! 빨라!”

빠르다기보다는 타이밍이 좋았던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무튼 우리가 이곳, 메블로에 온 이후 처음으로 검은 괴물과 마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드레인과 용병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혼자서 빠르게 와모르 저택으로 향했다.

근처에는 피를 흘린 채 쓰러진 경비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들이 입은 상처로 보아선…….

‘틀림없어. 검은 괴물의 흔적이야!’

확신이 들었다.

여태껏 내가 상대해 왔던 검은 괴물들이 남긴 흔적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설마 벌써 와모르 남작이 당하진 않았겠지?

저택 입구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도중에 생각을 바꾸었다.

와모르 남작의 방으로 바로 향하기로 했다.

크게 도약을 해 와모르 남작의 방 창문을 그대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단숨에 와모르 남작이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때마침 검은 괴물이 와모르 남작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검은 괴물은 뒤늦게 와모르 남작의 목숨을 앗아가려 했으나, 이미 내가 도착한 시점에서 많이 늦었다.

‘드래곤 클로!’

검은 괴물의 팔을 그대로 잘라 냈다.

절단된 검은 괴물의 팔은 와모르 남작을 그대로 놓아주고 말았다.

“켁, 켁!”

와모르 남작은 거칠게 기침을 토해 냈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그대로 질식사했을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진짜 타이밍이 예술이네.

검은 괴물은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갑자기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아하니, 잠식 3단계로 추정된다.

‘의식은 남아 있다는 뜻이겠지.’

어쩌면 루크나 데르킨 백작 같은 경우일지도 모른다.

나는 드래곤 클로를 검은 괴물 쪽으로 겨눴다.

“좋은 말로 할 때 얌전히 포기해라. 죽기 싫다면 말이지.”

“…….”

검은 괴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입을 굳게 다물던 검은 괴물은 이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드는 척했을 뿐이다.

놈이 애초에 노리던 건 도주였다.

내가 박살을 내 버린 창문 틈 사이로 몸을 날렸다.

때마침 바깥에 용병들이 보였다.

“선배! 놓치면 안 됩니다!”

“아, 알았어!”

드레인이 이끄는 블루로즈단이 검은 괴물을 붙잡기 위해 전투태세를 갖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