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약한 건 죄가 아니다 (1)
블루로즈단 B팀 창단식이 거의 마무리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귀빈 참가자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여야 할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라크스 공작은 오지 않았나 보군.’
딸을 지극히 생각하는 남자니까 나는 분명 리오나의 새로운 B팀 창단식에 참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
아니, 그렇진 않을 텐데.
설령 바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딸과 연관된 행사가 있다면 만사를 제치고 무조건 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아니고.
‘이상하네.’
별거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꾸 신경이 쓰였다.
“대장, 아까부터 누구를 찾고 있는 거야?”
드레인이 내 태도에 수상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라크스 공작님요. 여기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안 보여서요. 아니면 제가 못 찾고 있는 건지…….”
“내가 알기론 여기 참가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역시 그렇죠?”
내가 못 찾고 있던 건 아닌 걸로 결론이 났다.
혹시나 해서 드레인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라크스 공작님은 왜 안 왔을까요?”
“글쎄, 바쁜 일이 있어서 안 온 거 아닐까?”
“바쁜 일이 있어도 리오나 일이라면 무조건 올 사람이잖아요.”
“하긴, 그렇지.”
듣고 보니 내 말이 그럴듯한 모양인지 드레인은 고개를 여러 차례 끄덕였다.
“어쩌면…… 일부러 안 오는 것일지도 몰라.”
“일부러요? 이해가 잘 안 갑니다만.”
“그런 거 있잖아. 자식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는데, 내가 너무 지켜 주기만 하면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서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홀로서기를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거든.”
생각해 보니 드레인도 아버지였다.
“언제까지고 내가 내 아들을 계속 품고 지낼 순 없는 법이잖아?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 걱정을 더 심하게 할 수밖에 없지. 왜냐하면 용병이니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 갑자기 내가 죽어 봐. 여태껏 내 보호만 받던 아들내미가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신세가 되어 버리는데, 어떻게 혼자서 살아갈 수 있겠어? 물론 엄마도 있고 그렇지만……. 난 적어도 내 아들은 내가 없어도 혼자서 알아서 클 수 있는 자립심을 가졌으면 좋겠어.”
드레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런 뒤, 리오나를 바라보면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마 라크스 공작님도 같은 생각일 거라고 봐. 특히 리오나는 성인이잖아? 라크스 공작님이 너무 자주 리오나의 앞에 나타나면, 리오나는 결국 라크스 공작님의 그림자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거야. 라크스 공작님이 죽어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만큼 리오나가 강해졌으면 하는 게 라크스 공작님의, 아니 자식을 둔 아버지의 욕심이기도 하지.”
“그렇군요. 지금의 저로선 절대로 공감할 수 없는 생각이겠네요.”
“그렇지. 뭐, 대장이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둔 아버지도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
리오나를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리오나의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리오나와 B팀을 두고 블루로즈단 간부 회의를 가졌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비쳤다고 해도, 굳이 창단식까지 참가할 필요는 없겠지.
리오나가 정말로 힘들 때,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과 맞닥뜨렸을 때, 그때 손을 빌려주면 된다.
……아마도.
* * *
창단식을 모두 마친 후.
R팀 2소대 단원들과 에나, 베라가 나를 찾아왔다.
가르시아가 2소대 단원들과 함께 나를 향해 예를 갖췄다.
“가르시아 외 십칠 명! 금일부로 R팀 복귀를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나는 가르시아의 어깨를 몇 차례 토닥여줬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아닙니다. 오히려 대장님께서 고생을 더 많이 하시지 않았습니까? 스카이 랜드에 관련된 일을 보고받았을 때, 당장에라도 대장님 곁으로 달려가고 싶었던 그 심정……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가 대장님을 평생 지켜 드리겠습니다!”
“하하, 듬직하네.”
역시 가르시아는 믿음직스럽다.
에나와 베라의 복귀도 충분히 기쁘다.
두 사람은 우리 R팀의 유일한 마법 전력이다.
특히 에나는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그녀가 있으면 전략을 더욱 다양하게 짤 수 있게 된다.
라스 구출 작전에서도 에나가 있었더라면 좀 더 수월하고 위험부담이 덜한 작전을 짰을 것이다.
가르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에나는 나에게 때아닌 고충을 털어놓았다.
“대장니임! 여기, 너무 더워요! 빨리 나울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울도 여기랑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은 아니잖아.”
“적어도 제 집은 시원하잖아요.”
에나는 본인의 집에 반영구적인 온도 유지 마법진을 그려 놨다.
그 덕분에 그녀의 집은 항상 영하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정방문을 할 때 절대로 가고 싶지 않은 집 넘버원이 에나의 집이다.
뭐, 용병들 가정방문 같은 건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말이다.
‘여유 있을 때 가정방문 같은 것도 해 보면 재미있을 거 같은데.’
아니, 됐다.
내가 가정방문을 한다는 건, 다시 말해서 군복무를 잘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말에 사단장이 부대 방문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급이지 않은가?
괜히 용병들 고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가정방문 계획은 그냥 없던 걸로 하기로 했다.
에나의 요청을 받아들여 용병들을 이끌고 다시 나울로 떠나려던 찰나였다.
“로인.”
리오나가 나를 불렀다.
“벌써 가려고?”
“어. 창단식 다 끝났으니까 굳이 남아 있을 이유가 없어서.”
“왔으니까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지.”
“괜찮아. 게다가 에나가 아까부터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하도 징징거려서 바로 출발해야 할 거 같아.”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나중에 내가 따로 나울로 찾아갈게. 가르시아나 에나, 베라, 그리고 파이스하고 2소대 용병들도 내 밑에서 고생 많이 했으니까 보답의 의미로 맛있는 거 살게.”
“알았어. 기대하고 있을게.”
리오나와 짧은 작별 인사를 주고받은 후에 나는 용병들을 이끌고 바로 나울로 향했다.
도시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저건……?’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 분명…….
‘라크스 공작이잖아?’
말을 걸어 볼까 하다가 도중에 관두기로 했다.
라크스 공작은 창단식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리오나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한 듯했다.
아마 자기가 여기 왔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겠지.
드레인이 했던 말처럼 말이다.
그래도 딸이 걱정되긴 하고, 그렇다고 안 오기에는 너무 신경이 쓰였을 테니, 결국 라크스 공작이 택한 방식은 ‘염탐’이었던 것 같다.
‘사랑받고 있구나, 리오나.’
역시 아버지는 위대하다.
* * *
파견 갔던 인력들이 돌아오고 나니, R팀 본부도 제법 시끌벅적해졌다.
그 사이에 나는 레드 라인 기사단 본부로 향했다.
2기 멤버 선별 과정이 잘 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라그너와 게럴, 레비가 고생을 많이 해 주고 있었다.
라그너는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 업무까지 맡게 되었으니, 아마 쉴 틈이 없을 것이다.
나는 라그너를 따로 불렀다.
“레드 라인 2기 멤버 선정이 끝나면 가서 좀 쉬도록 해.”
“아닙니다. 저는 일하는 게 삶의 낙입니다. 오히려 일할 때가 삶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 로인 님께서 너무 배려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소설책에서 봤던 그대로였다.
라그너는 일에 미친 남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그너에게 일도 좋지만 적당히 하라는 말을 전해 뒀다.
쓰러지면 곤란하니까.
레드 라인 기사단 본부를 나선 뒤에 치유소로 향했다.
라스 일행이 요양을 잘하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라스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아니,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겁니까?”
“말씀드렸잖아요. 외부인 출입 금지라고요.”
“라스라는 분한테 볼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출입 금지라면 그분에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와서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안 된다니까요.”
파이스와 어느 남자가 실랑이가 붙었다.
뭔 일인가 싶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 대장님!”
파이스는 마침 잘 됐다면서 나를 반겼다.
“글쎄 이 사람이 자꾸 막무가내로 여기 치유소를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까?”
나는 혹시나 해서 남자에게 물었다.
“왜 라스 씨를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당신이 알아서 뭐 하려고?”
“…….”
초면에 사람을 굉장히 짜증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남자로군.
마음 같았으면 그냥 엉덩이를 걷어차면서 썩 꺼지라고 말하고 싶지만, 일단 한 번 참기로 했다.
라스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제가 이곳 치유소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한테 이유를 말씀해 주시면, 제가 판단해서 라스 씨와 면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잘됐구먼.”
남자는 거만한 태도를 취했다.
“메블로에서 왔다. 와모르 남작님께서 라스라는 사람에게 의뢰를 하고 싶어 하셔서 내가 직접 여기까지 온 거다.”
귀족의 대리인인가?
어쩐지, 거만하게 말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슨 의뢰입니까?”
“라스 본인을 만나게 해 주면 말하지.”
“그걸 말씀해 주지 않는다면 면담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답답한 자로군. 이야기가 안 통하네! 감히 천민 주제에 와모르 남작님의 말씀을 못 들은 척해? 그러고도 무사할 거 같아?”
“…….”
좋아.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참아 주는 건 딱 여기까지다.
이후부터는 그냥 내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다.
“Kusan(복종하라).”
용언 마법이다.
남자의 몸이 경직되었다.
내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숨조차 마음대로 쉬지 못할 것이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용건을 말해라.”
오로지 내가 지시한 것만 따라야 한다.
이것이 용언마법의 효과다.
남자는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억지로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 검은 괴물 처리 의, 의뢰를 맡기러…….”
“검은 괴물? 메블로라는 도시에서?”
“그, 그렇소……. 라, 라스라는 자는…… 검은 괴물 사냥꾼이라고 드, 들어서…….”
그런 소문이 있었지.
라스가 칠흑에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다니다 보니 이런 의뢰를 많이 받곤 한가 보다.
그럼 진즉에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꼭 험한 꼴을 당하고 난 다음에 솔직하게 말을 하네.
하여튼 매를 벌어요, 매를…….
나는 손가락을 강하게 튕겼다.
딱!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남자는 드디어 자유가 되었다.
“켁켁!”
기침하기 시작하는 남자.
나는 남자에게 짧게 지시했다.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아, 알겠습니다!”
남자는 그제야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라스는 지금 의뢰를 받을 만한 몸 상태가 아니다.
그래도 일단 본인에게 들어온 일이니까 이야기 정도는 전해 주기로 했다.
곧바로 병실로 찾아간 나는 라스에게 방금 있었던 일들을 전해 줬다.
라스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도우러 가야겠군요.”
“지금의 몸 상태로는 안 됩니다. 제가 허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검은 괴물 녀석 때문에 사람들이 위험에 처하는 건 볼 수 없습니다.”
다 방법이 있다.
라스는 이대로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검은 괴물은 따로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
“그 의뢰, 저희 R팀이 대신 맡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