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86화 (186/240)

# 186

드디어 만나다 (4)

눈앞에서 놓쳐 버린 카인.

묻고 싶은 게 정말 많았지만, 카인은 미안하다는 말만 남긴 채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머릿속에서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나마 휴즈가 뭔가 더 알고 있는 듯했다.

“혹시 스승님이 찾으러 다닌다는 사람이…… 카인이었습니까?”

휴즈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인간 불신에 걸린 휴즈를 다시 세상으로 끌어들인 인물이라기에 보통 사람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내 상상을 훨씬 뛰어넘은 존재일 줄은 몰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카인에 대해 물어보는 거라면…… 너한테 알려 줄 게 별로 없다. 왜냐하면 나도 아직 카인에게 전후 사정을 듣지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카인이 칠흑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알고 계셨습니까?”

다시 한번 휴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카인이…… 칠흑입니까?”

중요한 질문이다.

만약 카인과 칠흑이 동일인물이라면…….

나는 카인을 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휴즈는 내 질문을 부정했다.

“아니, 카인은 카인일 뿐이다. 칠흑과는 다른 존재지. 그리고 카인만큼 칠흑을 증오하는 자도 없을 거다.”

케프리와 드레드도 휴즈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칠흑과 비슷한 냄새가 나긴 했지만, 칠흑은 아니었어. 형씨, 저 아저씨의 말이 맞아.”

“…….”

그래도 내 의구심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휴즈를 응시했다.

“카인이 어째서 칠흑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는 겁니까?”

“나중에 카인이 다 설명해 줄 거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는 민감한 문제니까.”

결국 나한테는 말해 줄 수 없다는 뜻인가?

휴즈가 가지고 있는 진실의 눈이 차라리 나한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휴즈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말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때가 되면 진실이 먼저 너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라. 그것이 네가 해야 할 일이다.”

휴즈도 장소를 이탈하려 했다.

그전에 나는 휴즈에게, 아니 카인에게 꼭 전했어야 할 말이 있었다.

“스승님! 혹시 카인을 만나거든, 이 말만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지?”

“카일루스라는 대현자가 죽기 전에 카인을 꼭 뵙고 싶다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베르투의 대현자인가……. 그래, 카인과 만나거든, 그 말을 꼭 전해 주마.”

휴즈도 카일루스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도대체 저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소설책에서도 안 나왔던 이야기다.

‘떡밥투성이네.’

회수만 제대로 된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 * *

갈로아에서 의도치 않은 혈전을 벌인 후에 나는 다시 나울로 돌아왔다.

케프리와 드레드는 카인 때문에 헛걸음을 했다면서 투덜거리곤 그대로 사라졌다.

칠흑과 비슷한 힘을 지닌 남자, 카인.

‘정체가 뭘까?’

카인과 칠흑의 관계가 가장 궁금하다.

칠흑의 힘을 사용하는 아군이라.

듣도 보도 못했다.

아니, 애초에 카인은 내 편이 맞을까?

델리피나 대륙을 구하기 위해 예언서를 작성하고, 나를 이곳으로 소환한 걸 보면 적어도 적은 아닌 거 같은데.

‘아, 머리 아파.’

생각이 너무 복잡해졌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쉬어야지.

……하려던 찰나였다.

“대장님!”

파이스가 나를 향해 뛰어왔다.

이제 막 나울에 도착했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겠다.

“왜 그래,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

“보,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호흡을 진정시킨 파이스가 이내 내 귀가 번뜩 뜨일 만한 보고를 들려줬다.

“라스 씨가…… 눈을 떴습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와중에도 눈을 뜰 생각을 안 하고 있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던 찰나였다.

나는 파이스와 함께 바로 치유소로 향했다.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라스가 힘겹게 눈을 떴다.

“……로인 씨입니까?”

“네, 접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나의 물음에 라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예,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긴 하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한 네다섯 번은 죽고도 남았을 일을 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냈으니까.

“너무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계셔서 걱정했습니다.”

“……칠흑을 죽이기 전까지는 절대로 죽을 수 없죠.”

칠흑을 향한 분노의 불길은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파이스는 다른 환자들을 살피러 가겠다면서 자리를 비웠다.

나와 라스, 두 사람만 병실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때, 라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 꿈을 꿨습니다.”

라스의 아버지, 테이른.

칠흑에게 최초로 잠식된 남자.

라스는 아버지 테이른을 잃고 칠흑에게 복수하기 위해 분노의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강하고…… 뚝심 있는 그런 분이셨죠. 전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게 정말로 자랑스러웠습니다. 언젠가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칠흑은 제 아버지를 앗아갔습니다. 저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 버린 셈이죠.”

“……그랬군요.”

“아마 제 아버지에 대해서 모르셨을 겁니다. 칠흑에게 최초로 잠식당한 존재가 바로 제 아버지였거든요.”

《델리피나 전기》를 읽었기 때문에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모른 척을 했다.

라스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웬만하면 잘 꺼내지 않는 남자였다.

솔직히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라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칠흑에게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여기까지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 힘은 많이 부족하더군요.”

칠흑과 직접 싸워 보고 난 이후에 겪은 패배…… 그리고 절망.

하지만 라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속에서 희망의 끈을 절대로 놓지 않았다.

“이번 일을 통해 부족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칠흑과 마주쳤을 때에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짐했다.

멘탈이 상당히 강하다는 게 느껴졌다.

역시 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만약 내가 라스 입장이었더라면, 몇 번이고 마음이 무너졌을 텐데.

갑자기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혹시 카인에 대해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카인이라면…… 대예언가 아닙니까?”

“예, 저번에도 제가 몇 번 부탁했을 겁니다. 카인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다면 저한테 알려 달라고 했던 거요.”

“기억납니다. 하지만 말로만 들었을 뿐, 카인이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군요.”

어쩌면 라스가 카인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딱히 그런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라스에게 더 이상 물어볼 건 없었다.

“일단 푹 쉬시기 바랍니다. 필요한 게 있다면 우리 양아치 힐러를 꼭 부르시고요.”

“하하, 네. 알겠습니다.”

치유소에서 빠져나온 후에 나는 마일을 찾았다.

이번에도 5분 대기조처럼 부르자마자 바로 내 앞에 등장했다.

“부르셨습니까, 로인 님?”

“갈로아에서 있었던 일, 내가 너한테 굳이 설명 안 해도 다 알고 있지?”

“예.”

“카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 그자는 칠흑의 힘을 가지고 있었어. 악의는 없어 보이지만 혹시 모르니 위치는 파악해 두는 게 좋을 거 같아.”

“하지만 카인의 위치를 파악하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휴즈가 카인의 뒤를 쫓고 있어. 휴즈를 추적하다 보면 카인의 위치까지 알 수 있을 거야.”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만약 카인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되면 나한테 알려 줘. 벨라시오닉의 보물찾기보다도 카인을 찾는 게 더 중요해. 우선순위를 무조건 1순위로 설정해 둬.”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퍼즐이 있으면 퍼즐을 맞춰 나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이건 어째 퍼즐 조각만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다.

* * *

라비로부터 보고가 하나 들어왔다.

블루로즈단 B팀의 재창단식 일정이 잡혔다고.

재창단식은 5일 뒤에 있을 예정이었다.

R팀 대장인 나하고 부대장인 드레인은 재창단식에 무조건 참석해야 했다.

B팀이 재창단을 함으로 인해 파견을 나갔던 가르시아 부대와 에나, 그리고 베라가 다시 나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R팀이 다시 완전체가 된다.

좋은 일이긴 하지만, 걱정거리도 있었다.

바로 베라의 복귀였다.

재창단식이 거행되기 전에 나는 엘라시아를 따로 찾았다.

“재창단식이 끝나면 베라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

“네? 정말로요?”

엘라시아의 얼굴에 벌써부터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듯했다.

“어쩌죠?”

“둘 중 하나야. 베라한테만 가짜 임무를 하달해서 다른 도시에 가 있게 하든가, 아니면 네가 잠시 자리를 비우든가.”

“어느 방식이 좋은가요?”

“후자가 나을 거야. 너무 베라를 외곽으로 돌리려고 하면 오히려 베라가 의심할 수 있으니까. 파이스를 데려오고 베라를 파견 보낼 때에도 베라는 왜 하필 자신인지 나한테 물었어. 그때는 합당한 근거를 대면서 보내긴 했는데, 이것도 계속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은 아니거든.”

그래서 나는 엘라시아를 다른 곳으로 잠시 피신(?)시키려고 했다.

“라크스 공작가에 잠시 가 있어.”

“그쪽에서 저를 얌전히 숨겨 줄까요?”

“이미 라크스 공작과 이야기를 다 해 둔 상태야. 자초지종도 다 말해 놓았고. 라크스 공작도 흔쾌히 허락했으니까 문제는 없을 거야.”

“철저하시군요, 로인 님.”

“타임 그레이브 때 겪은 그 일을 또 겪고 싶진 않으니까.”

베라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엘라시아만 보면 눈이 돌아가서 적군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덤벼들려고 할 것이다.

안 그래도 칠흑 때문에 골치가 아픈데, 문제를 더 늘리고 싶진 않았다.

“알았어요. 로인 님 말씀대로 따를게요.”

“고마워. 무슨 문제가 생겼다 싶으면 바로 알려 줄게.”

“네. 저희 일행분들을 잘 부탁드려요.”

“알았어.”

이것으로 엘라시아와 베라의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B팀 재창단식에 참가하기만 하면 된다.

* * *

이제 와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그렇지만, 사실 재창단식을 굳이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첸버는 일부러 재창단식을 추진했다.

리오나와 B팀 단원들에게 과거의 아픔은 끊어 내고, 새롭게 출발해 보자는 의식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재창단식은 새 출발의 신호탄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나와 드레인은 새롭게 선출된 B팀 단원들을 쭉 훑었다.

“유명한 놈들이 꽤 보이네.”

드레인은 몇몇 단원들의 얼굴을 알아봤다.

“유명이요?”

“어. 용병계에서 한가락 한다고 정평이 난 놈들 말이야. 성격이 좀 그지 같긴 한데, 리오나 대장이라면 저들도 잘 다룰 수 있겠지. 전력으로 봤을 때에는 우리 R팀 못지않아. 잘 뽑았네.”

그래서 기간이 유독 오래 걸렸던 건가?

단원들 뽑는 데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릴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나 이건 리오나의 큰 그림이었다.

실력 있는 용병을 뽑기 위해 리오나는 강도 높은 테스트를 몇 차례 거행해 왔다.

이 테스트를 모두 합격한 용병만이 B팀의 일원이 되었다.

몇 번의 절망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꺾이지 않은 건 라스뿐만이 아니었다.

리오나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건가?’

교훈을 하나 얻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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