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85화 (185/240)

# 185

드디어 만나다 (3)

카인이 원래 전투 능력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나?

이런 의심이 들었다.

비록 델리피나 전기 내에선 거의 등장하지 않은 캐릭터지만, 카인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여기서 카인이 목숨을 잃으면 곤란하다.

‘아직 못 들은 대답이 산더미라고!’

카인을 돕기 위해 움직이려 했으나, 도중에 루크가 나를 가로막았다.

“어딜 가려고!”

낫을 사정없이 휘둘러 댔다.

녀석의 공격은 쉽게 피할 수 있었지만, 완전히 따돌릴 수는 없었다.

거리를 조금 벌렸다 싶으면 루크가 다시 나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루크의 속내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전담 마크군!’

나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마크하겠다는 의사가 노골적으로 풍겨져 나왔다.

한편 루크를 제외한 다수의 추종자들은 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인은 자세를 낮췄다.

이후에 앞으로 튀어 나가더니, 순식간에 앞쪽에 있던 추종자의 목을 베어 버렸다.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우연의 일치인가?

그것도 아니었다.

카인은 추종자들의 공격을 간단한 회피 동작으로 흘려 버린 뒤에 거리를 좁혀 나이프로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

그가 나이프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추종자들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군더더기가 없는 깔끔한 동작이었다.

아픈 사람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까는 다 죽어 가고 있다고 스스로 밝혔으면서.

하지만 지금 봤을 때에는 전혀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검은 괴물을 상대할 때에도 카인은 거침이 없었다.

나이프의 날을 세워 정확히 검은 심장을 파괴했다.

경악을 금치 못할 솜씨였다.

그러나 중간에 골치 아픈 적이 한 명 더 추가되었다.

검은 연기에 둘러싸인 거대한 뱀의 형상이 우리를 덮쳤다.

“저건……!”

데르킨 백작이 가지고 있는 아홉 번째 조각, 스네이크(Snake)다.

카인과 나는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뱀의 머리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한 남자.

데르킨 백작이 우리를 내려다봤다.

“어디 있나 싶었더니 여기 있었군, 카인. 그리고…… 옆에는 로인이군?”

“알아봐 주니까 영광인데?”

문제아 둘이 나란히 있으니 데르킨 백작의 표정이 좋을 리 없었다.

데르킨 백작은 다른 칠흑의 조각을 발동시켰다.

사자(Lion)와 울프(Wolf)가 소환되었다.

데르킨 백작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세는 우리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데르킨 백작이 난입한 순간, 우리에게 승산은 없어 보였다.

방법은 하나뿐.

36계 줄행랑밖에 없다.

그러나 카인이 과연 버텨 줄 수 있을까?

나는 슬쩍 카인을 바라봤다.

그의 호흡이 매우 거친 것을 보니 슬슬 한계인 듯했다.

데르킨 백작은 팔을 크게 휘저었다.

“놈들을 없애라.”

그의 소환수들이 일제히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쿠우우우웅!

검은 괴물, 아니 케프리와 융합한 드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칠흑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여기까지 온 건데…… 칠흑은 어디 있지?”

드레드는 칠흑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결국 못 찾겠는지 나한테 물었다.

“칠흑은 어디 있나.”

“몰라. 나한테 묻지 마. 난 못 봤으니까.”

“이상하…….”

드레드의 말은 중간에 끊어졌다.

데르킨 백작의 소환수, 사자가 그의 전신을 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드레드의 등에서 촉수들이 다수 형성되었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운 가시처럼 튀어나왔다.

드레드의 일격으로 인해 사자는 벌집투성이가 되어 그대로 사라졌다.

“스스로 의지도 없는 조각 따위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다니, 어이가 없군.”

드레드는 데르킨 백작과 그의 부하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꿩 대신 닭이라고 했나? 칠흑이 없으니 네놈들이나 먹어치워 주마!”

“네가 그 소문의 드레드라는 녀석이군.”

데르킨 백작은 드레드에게 아는 척을 해 왔다.

그러나 드레드는 데르킨 백작과 말을 섞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의 소환수 중 하나였던 울프를 붙잡아 그대로 물어뜯어 버렸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갈라진 울프는 검은 연기가 되어 데르킨 백작에게 되돌아갔다.

데르킨 백작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보통내기는 아니군. 그렇다면…… 나도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데르킨 백작의 팔에 박힌 칠흑의 조각 중 가장 마지막 조각이 검은 빛을 뿜어 댔다.

검은 연기가 모이더니 하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 형상은 하늘을 덮을 정도로 매우 컸다.

열한 번째 조각.

드래곤(Dragon)이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소설책에서도 나오지 않았던 소환수야!’

게다가 드래곤이라니!

데르킨 백작이 앞서 보여 줬던 검은 짐승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검은 드래곤이 한 번 날갯짓을 할 때마다 강풍이 형성되었다.

사람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전부 날아가 버렸다.

데르킨 백작은 검은 드래곤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놈들을 없애라.”

크게 한 차례 포효를 한 검은 드래곤은 우리를 향해 입을 벌렸다.

무엇을 하려는지 나는 바로 감을 잡았다.

브레스다.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나도 용의 숨결을 쏘아 냈다.

밝은 빛의 기둥과 검은 기둥이 맞부딪쳤다.

내 몸은 뒤로 사정없이 밀려나갔다.

감당하기 힘든 파워였다.

“빌어먹을!”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야, 드레드! 저 놈은 못 먹어치우냐!”

“기다려 봐!”

드레드의 등에서 촉수들이 튀어나와 검은 드래곤을 옭아매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루크가 훼방을 놓았다.

“어딜 감히!”

스으윽!

루크의 낫이 드레드의 촉수들을 베어 버렸다.

그 와중에 검은 드래곤은 다시 브레스를 장전하려 했다.

한 번은 어찌어찌 버티긴 했는데…….

‘두 번은 힘들어!’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더 나은 방법이 없을까?

내가 드래곤을 상대하러 가 버리면, 루크나 데르킨 백작이 카인을 노리고 덤벼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드레드에게 카인을 맡길 수는 없었다.

녀석은 내 말을 안 듣는다.

오로지 칠흑을 집어삼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똘똘 뭉쳐 있는 놈이다.

언제 카인을 내팽개칠지 모르는 녀석에게 그를 맡길 수는 없다.

이럴 때 차라리 내 몸이 두 개였더라면 좋았을 텐데.

용의 숨결로 검은 드래곤을 쓰러뜨리기도 힘들어 보였다. 데르킨 백작의 최종 병기답게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었다.

고민하는 와중에 검은 드래곤이 두 번째 브레스를 발사하려 했다.

위기의 순간이 도래했을 때, 카인이 짧게 외쳤다.

“내가 하마.”

무엇을? 이라고 묻기도 전에 카인이 먼저 움직였다.

카인의 팔이 검은 연기로 물들기 시작했다.

‘저건……!’

검은 연기에 감싸인 카인의 팔은 거대한 짐승의 머리로 변했다.

짐승은 검은 드래곤의 왼쪽 날개를 물어뜯었다.

생물, 무생물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집어삼킬 기세였다.

무게중심을 잃은 검은 드래곤은 그대로 추락했다.

한편 카인은 멀쩡한 손으로 나이프를 들더니, 검은 연기에 집어삼켜진 자신의 팔을 그대로 찔렀다.

짐승의 머리로 변했던 카인의 팔은 거칠게 요동을 치더니 다시 카인의 원래 팔로 돌아왔다.

“방금 그건……!”

나는 카인을 노려봤다.

틀림없다.

카인이 보여준 저 능력은 낯이 익었다.

드레드의 이빨은 더 이상 데르킨 백작에게 향하지 않았다.

카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레드는 살기를 드러냈다.

“그 힘, 칠흑의 것이로군!”

* * *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카인이 보여준 능력은 놀랍게도 칠흑의 능력과 매우 흡사했다.

검은 연기와 포식 본능! 분명 칠흑의 것이다.

“후우, 후우……!”

카인의 입에서 다시금 거친 숨결이 새어 나왔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더니, 입에서 피를 토해 냈다.

피의 색깔은 검붉었다.

피조차 검은 연기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자는 카인이 맞다.

첫 만남 때, 카인은 분명 나를 이렇게 지칭해서 불렀다.

‘편집자’라고.

내가 원래 세계에서 편집자로 일해 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오로지 카인, 단 한 명뿐이다.

권왕 휴즈도 내가 이쪽 세계의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나의 원래 직업까지 알진 못했다.

카인만이 알고 있는 나의 비밀.

하지만…….

카인은 칠흑과 똑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의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카인, 당신은…… 정체가 뭐지?”

나는 카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카인은 힘겨운 듯 다시 한번 호흡을 급하게 내쉬었다.

그런 뒤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나는…….”

카인의 말이 이어지려던 찰나에 방해꾼이 나타났다.

루크가 낫을 들고 카인의 목을 노린 것이다.

하나 루크의 일격은 카인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무산되고 말았다.

“꺼져라.”

터엉!

루크의 몸이 수십 미터가량 나가 떨어졌다.

누군가가 나서서 카인을 도와줬다.

내가 잘 아는 남자였다.

“스승님이 여긴 어떻게……!”

권왕 휴즈였다.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런지 내 뇌가 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즈는 나에게 잠시 기다려 보라고 말했다.

이후에 데르킨 백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더 싸울 텐가?”

데르킨 백작은 헛웃음을 삼켰다.

“설마 당신까지 이곳에 와 있을 줄은 몰랐군.”

“산골에 틀어박혀서 먹고 자고 싸고 평생을 그렇게 보내려고 했는데, 이놈의 세상이라는 녀석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더군.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계속 싸울 건가? 그러면 이제부터 내가 직접 상대해 주도록 하지.”

“…….”

데르킨 백작은 대답 대신 루크를 불렀다.

“병력들을 데리고 철수한다.”

휴즈와 싸울 생각이 없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밝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득실거렸던 추종자와 검은 괴물들은 데르킨 백작, 그리고 루크와 함께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위기는 넘겼다.

하지만 상황이 종료된 건 아니었다.

드레드는 여전히 카인을 향해 이빨을 세우고 있었다.

도중에 드레드는 케프리와 융합을 해제했다.

케프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가 이상한데?”

케프리는 카인을 수상쩍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드레드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케프리를 닦달했다.

“놈에게서 칠흑의 냄새가 나.”

“하지만 우리가 알던 칠흑이 아니야.”

마침 잘됐다.

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꼭 집고 넘어가고 싶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줬으면 하는데.”

“…….”

카인은 침묵했다.

대답을 회피하려는 건가?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하나뿐이다.

“어째서 당신이 칠흑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거지?”

카인은 이 세계를 구하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모아 예언서인 《델리피나 전기》를 완성시켰다.

그리고 조커 역할을 할 사람으로 나를 골라 이곳으로 소환했다.

이 세계를 지키고자 카인은 이런 희생을 치렀다.

그런 카인이 칠흑의 힘을 가지고 있다?

납득이 가질 않았다.

카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드디어 입을 열 생각인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미안하군.”

카인의 몸 주변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아직 이야기 안 끝났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카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기껏 《델리피나 전기》 저자를 만났다 싶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기가 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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