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83화 (183/240)

# 183

드디어 만나다 (1)

카인이 준 편지는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

횟수로 따지면 두 번째다.

‘나한테 편지 줄 여력이 있으면 직접 만나러 오지. 이해가 안 되네.’

내가 모르는 속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나는 편지를 개봉하기 전에 카일루스를 응시했다.

카일루스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이미 눈치챈 모양인 듯했다.

“편지 내용은 나도 모르오. 내 역할은 오로지 전달자일 뿐.”

그렇다면 안심이다.

편지를 뜯어 안의 내용을 살폈다.

내용은 아주 심플했다.

-10일 뒤. 최초의 이터블 앞에서.

이건 또 무슨 암호냐.

대신,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최초의 이터블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

이터블 중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이터블을 가리키는 건가?

최초의 이터블이라고 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하나.

‘아니, 카인이라면 이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리가 없어.’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최초의 이터블이라…….

‘내가 소설 속으로 들어온 다음에 처음 접했던 이터블을 말하는 건가?’

그러면 답이 나온다.

갈로아의 이터블이다.

난 그곳에서 블루로즈단, 그리고 리오나와 처음 조우했다.

‘10일 뒤라고 하면…….’

체릴과 카람의 매직 쇼를 보러 가기로 한 날짜가 5일 뒤다.

카람의 매직 쇼가 열리는 장소는 카오프라는 도시다.

카오프와 갈로아는 제법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5일 안에는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다.

‘카오프에서 매직 쇼를 보고 곧바로 갈로아로 가면 되겠군.’

내 머릿속에는 앞으로의 일정이 차곡차곡 세워졌다.

나는 편지를 안주머니에 넣어 뒀다.

“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 카인 님에게 받은 도움에 비하면 이 정도 심부름은 아무것도 아니지. 만약 카인 님을 만나거든…… 내가 죽기 전에 꼭 한 번이라도 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 주시게.”

“알겠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카일루스는 마일과 함께 다시 현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카일루스와 카인은 꽤 돈독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베르투라면 믿을 만한 조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인은 베르투조차 멀리하면서 혼자서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이유가 뭘까?

‘나중에 만나 보면 물어봐야지.’

카인을 만나면 물어볼 게 산더미다.

* * *

카일루스와 만나고 난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나는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그런 뒤에 R팀 본부로 향했다.

본부에는 내가 호출한 이들이 일찌감치 모여 있었다.

라그너, 드레인, 게럴, 그리고 프렌까지.

내 나를 대신해 각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이유가 있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한 7일가량 나울을 비우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각자 거느리고 있는 조직들 관리, 잘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졌다 싶으면 라그너에게 보고하세요. 라그너, 내 빈자리는 당분간 너한테 맡길게.”

“예, 로인 님.”

“그리고 치유소에 관한 일도 신경 좀 써 주고.”

“맡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각자 임무를 하달한 후에 나는 곧장 말을 타고 나울을 떠났다.

목적지는 카오프다.

* * *

카오프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체릴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체릴은 나와 데이트할 생각에 하루 종일 웃는 얼굴로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움직이기 힘든 드레스 차림인데도 불구하고 움직임이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역시 의류계 마스터답다.

“로인 님, 이제 슬슬 공연 시작할 거예요. 빨리 가요!”

“아, 알겠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음유시인 공연장보다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온통 사람 천지다.

압사 사고가 발생하는 건 아닐까 할 정도였다.

카람의 매직 쇼가 이리도 유명했나?

라비한테 한 번 듣긴 했지만,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카람이라는 마법사가 선보이는 화려한 마법들.

내가 알고 있는 종류의 마법들과는 달랐다.

화려함을 중시한 마법들.

드래곤의 형상을 한 더미(Dummy)가 사람들을 향해 불을 뿜어 댔다.

물론 진짜 불은 아니었다, 그저 환상일 뿐.

불꽃놀이 같은 마법도 펼쳐지고 분수 쇼도 나오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한 마법들이 연달아 펼쳐졌다.

분명 눈요기하기에는 좋긴 하지만…….

나는 매직 쇼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며칠 후면 카인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 혼자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갈로아의 이터블 근처에 힌트가 될 만한 물건만 놔두고 나 보고 알아서 찾아가라는 뜻일 가능성도 있DMSLrK.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카인의 흔적을 놓칠 수는 없다.

‘여기서 갈로아까지 3일 정도 걸린다고 했지?’

여유롭게 움직여도 충분할 것 같았다.

무대를 지켜보던 나는 수상한 장면을 포착했다.

‘설마 저거…… 검은 괴물인가?’

갑자기 무대 위에 검은 괴물 3마리가 어슬렁거리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검은 괴물을 목격했다.

그러나.

“와, 저거 봐! 검은 괴물이랑 똑같이 생겼네!”

“생긴 것도 디테일하고, 움직임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갈수록 연출이 재미있어지네. 비싼 돈 들여서 올 만한 가치가 있다니까!”

사람들은 검은 괴물을 환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환상이 아닌 진짜였다.

“잠시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려 했다.

그러자 체릴이 내게 물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설마 도망가실 생각은 아니죠?”

“화장실 좀 다녀오려고.”

“어머, 그래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도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 체릴의 눈빛에 살기가 뿜어져 나왔던 거 같은데…….

무서운 여자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나는 무대 뒤쪽으로 몰래 돌아 들어갔다.

짐승처럼 입을 벌리면서 사람들을 잡아먹기 위해 다가가던 검은 괴물 한 마리의 뒷덜미를 그대로 낚아챘다.

관중들은 나의 등장도 매직 쇼의 일부인 것처럼 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괴물 사냥꾼인가 봐!”

“완전 리얼해!”

리얼할 수밖에, 왜냐하면 진짜거든.

나는 검은 괴물의 목을 잡고 그대로 비틀었다.

빠각!

검은 괴물의 목이 180도 돌아갔다.

잠시 움직임이 멈췄을 때, 나는 검은 괴물의 심장을 뽑아냈다.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대로 심장을 터트렸다.

한 마리 처치 완료.

남은 두 마리를 처리하기 위해 나는 다시 움직였다.

그때, 난입자가 등장했다.

또 다른 검은 괴물이다.

그러나 그 검은 괴물은 내가 아닌 동족들을 노렸다.

등에서 뿜어져 나온 촉수들이 검은 괴물 두 마리를 끌어들였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검은 괴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더욱 커졌다.

저들은 아직도 지금 이 싸움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긴 하지.’

나는 동족을 잡아먹은 검은 괴물을 향해 다가갔다.

자세히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여긴 뭐 하러 왔냐, 꼬맹이.”

드레드와 융합을 해제한 케프리가 나를 향해 손을 스윽 들어 올려 흔들었다.

“오랜만이야, 형씨.”

“여기서 이야기 나누긴 좀 그러니까 일단 내려가자.”

“그러는 게 좋겠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관중들에게 환영 취급을 받았다.

* * *

무대 뒤쪽으로 자리를 옮긴 나는 케프리와 드레드에게 물었다.

“매직 쇼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건 아니겠지?”

“뭐, 그런 이유도 있고.”

케프리의 취향인지 아니면 드레드의 취향인지 모르겠지만, 은근히 문화생활을 잘 즐기는 거 같다.

저번에는 음유시인들의 합동 공연장도 찾아오고.

케프리가 입을 열기도 전에 드레드가 튀어나와서 말했다.

“칠흑의 냄새가 강하게 풍기더군. 그 냄새를 쫓아 여기까지 왔다.”

“칠흑이 이 근처에 있다고?”

“아마도.”

확실한 게 아닌 건가?

하지만 만약 드레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안 그래도 이곳에는 카람의 매직 쇼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칠흑이 정말로 이곳에 있다면…… 파리마 사건보다도 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케프리는 드레드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야. 놈은 여기에 없어. 어제 기억 안 나? 추종자로 보이는 놈들 몇 명 잡아서 심문했잖아.”

“그때 칠흑이 여기에 없다고 했던가?”

“어. 바로 어제 일인데도 기억을 못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크흠, 그랬군.”

없다면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칠흑의 기운이 감지되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선 정보를 먼저 얻기로 했다.

“칠흑이 어디로 갔는지 알아?”

“알면 우리가 여기에 죽치고 있진 않았겠지.”

케프리의 말대로다.

칠흑의 기운을 감지하긴 했으나, 아직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진 못했다, 이것이 이들의 입장이었다.

케프리는 다시 드레드와 융합을 했다.

검은 괴물 모드로 전환한 케프리는 나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무튼 근처에 칠흑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형씨.”

공중으로 크게 도약하면서 자취를 감췄다.

칠흑이라…….

‘설마 갈로아까지 쫓아오진 않겠지?’

그러면 큰일인데.

* * *

카람의 매직 쇼가 끝날 때까지 추가로 별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

원래대로라면 매직 쇼가 끝나자마자 바로 갈로아로 향하려 했으나, 혹시 추종자들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 일부러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식사를 마친 이후에 나는 체릴이 잘 아는 술집으로 향했다.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

“로인 님하고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그러게.”

“요즘 굉장히 바빠 보이시던데요?”

“정신없을 정도야.”

나도 사람인지라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주변 환경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카인도 마찬가지였다.

쉬려고 할 때 즈음에 뜬금없이 편지를 보내오질 않나.

아무튼 참 바쁘다.

“조심하세요. 로인 님. 안 그래도 요 근처에서 얼마 전에 칠흑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목격되었다고 하니까요.”

케프리와 드레드가 했던 말과 비슷했다.

왜 칠흑이 여기에?

이게 가장 이해가 안 된다.

카오프는 변두리에 위치한 도시다.

칠흑이 굳이 이곳까지 올 이유는…….

‘있긴 하지.’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다는 것.

그렇다면 검은 괴물 세 마리만 보낼 게 아니라 본인이 직접 나서서 사람들을 먹어치우든가 했어야 하지 않았나?

카람의 매직 쇼는 오늘로서 전부 끝났다.

사람들도 대부분 카오프를 빠져나갔다.

‘이해가 안 돼.’

칠흑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잘 알지만, 그래도 이번 행동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혹시 사람이 목적이 아닌가?’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노리고?

하지만 카오프에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없다.

만약 있다면 마일이 나에게 알려 줬을 것이다.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갑자기 체릴이 내 앞에 놓인 술잔에 자신의 술잔을 부딪쳤다.

쨍! 하는 소리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충 핑계를 둘러댔다.

방금 내가 말한 대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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