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80화 (180/240)

# 180

대현자 카일루스 (1)

계속해서 머리를 굴려 봤으나, 도무지 누가 라스를 배신할지 감이 1도 안 잡혔다.

누구지?

아니, 그보다 대체 왜 라스를 배신하는 걸까?

‘설마 처음부터 라스를 암살하기 위해 일부러 동료로 접근해 온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획 범행일 수도 있지 않은가.

솔직히 어떤 동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확실한 건…….

라스는 동료의 손에 암살당한다는 것.

그가 이 세계에서 사라졌으니, 칠흑을 막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애초에 주인공이 죽은 시점부터 소설은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골 때리네.’

안 그래도 재미없는 《델리피나 전기》가 5권 중반에 들어선 더 재미가 없어졌다.

주인공이 죽는 소설은…… 물론 있기야 하지.

그러나 대게는 없다고.

그 유명한 ‘셜록 홈즈’도 작가가 죽였다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욕을 다 듣고, 심지어 그의 부모님한테도 ‘주인공 왜 죽였니?’라는 말을 듣다가 참다 못 해서 다시 등장시키지 않았나.

그만큼 주인공은 정말 특별한 존재다.

《델리피나 전기》 내에서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내가 고생해서 겨우 얻은 글레드를 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주인공의 특별함이 입증된 셈이다.

아무튼 그렇다 치고.

‘누가 라스를 암살하는지부터 먼저 알아내야 해.’

미래에 있을 비극을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내가 일찌감치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방법은 하나다.

범인을 밝혀내면 된다.

그러나 무슨 수로?

다시 한번 차원 이동 마법을 통해 5권 내용을 확인하든가.

아니면…….

‘내가 여기서 밝혀내면 되는데.’

어떻게 밝혀내야 좋을지 마땅한 방법이 안 떠오른다.

가장 좋은 방법이 있긴 하다.

델리피나 전기의 저자이자 대예언가, 카인에게 직접 가서 물어보면 된다.

카인은 알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카인 만나기’는 거의 하늘에 있는 별을 10개 따야 하는 정도로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건 진작 포기했다.

일단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나갔다.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어둑해진 나울에는 이제 찬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모두가 잠들 시간임에도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곳이 존재했다.

그중 한 곳이 바로 라스 일행이 안정을 취하고 있는 치유소였다.

나는 치유소로 향했다.

치유소 바깥에선 카이딘이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로인? 늦은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잠깐 라스 씨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고요.”

“그 녀석, 아직도 꿈나라에서 못 돌아오고 있어. 꿈나라 여행이 길어도 너무 긴 거 같지 않아?”

“그러게 말이에요.”

나도 어서 라스가 눈을 떠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바란다고 갑자기 벌떡 일어설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카이딘 씨는 좀 괜찮죠?”

“어. 나는 거의 다 나았어. 아 참, 엔드라하고 릴리안도 눈 떴어. 알고 있지?”

“예, 파이스한테 보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둘은 아직 카이딘처럼 돌아다닐 만큼의 컨디션은 회복하지 못했다.

그래도 눈을 떴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엘라시아는 어디 갔습니까?”

“잠깐 바깥 순찰. 혹시 모르잖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칠흑 일당들이 알아차리기라도 하면 자객을 보내올지도. 그걸 미연에 방지하려고 나울 곳곳에 함정을 설치해 둘 거래.”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이미 내가 부하들을 시켜 작업을 해 뒀지만, 엘라시아가 여기에 추가로 함정을 더 설치해 준다면 보안 단계가 더욱 올라갈 것이다.

카이딘은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 댔다.

그런 뒤에 품 안에서 두꺼운 담배를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한 대 피울래?”

“괜찮습니다. 저는 비흡연자에요.”

“흠, 그래? 아쉽네.”

담배 자체는 피울 줄 안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 내 속을 썩이던 원고가 몇 개 있었다.

한 권 작업하는데 최소 이틀은 잡아야 할 정도로 많은 수정을 요하는 그런 원고들이었다.

이런 원고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시기가 있다.

그때는 그야말로 야근 지옥이 된다.

집에 돌아가서 잠만 잔 다음에 다시 회사로 출근하고, 또 새벽 넘어서 퇴근하고, 집에서 잠만 잤다가 출근하고…….

이 생활을 3주간 반복하니까, 쌓인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군대에서 몇 번 피웠던 담배에 다시 손을 대고 말았다.

그때 한창 담배를 피우다가 몇 달 만에 끊어 버렸다.

담배 끊기가 참 어렵다.

그렇게 겨우겨우 끊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손을 대고 싶진 않았다.

물론 피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말이다.

카이딘은 슬쩍 내 얼굴을 바라봤다.

“뭔가 고민이 많아 보이는데?”

“그렇게 보입니까?”

“어, 무슨 고민이기에 그래? 칠흑? 아니면 연애? 전자는 몰라도 후자라면 내가 상담해 줄 수 있어. 이래 봬도 나, 연애 박사거든.”

연애 박사가 아니라 유흥 박사겠지.

카이딘이 파이스와 같은 부류라는 건 이미 잘 안다.

그리고 연애 상담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인물이라는 것 또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둘 다 아닙니다.”

“그래? 그러면 뭔데.”

“…….”

나는 카이딘을 빤히 바라봤다.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카이딘은 마치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 하나를 띄운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응?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혹시 카이딘 씨는 라스 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냥 궁금해서요. 별 뜻은 없습니다.”

사실 ‘별 뜻이 없다.’라는 건 거짓말이다.

카이딘의 속내를 떠보고 싶었다.

“뭐…… 라스는 좋은 녀석이지. 예전에 내가 다른 용병들한테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을 때, 극적으로 등장해서 나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라스였으니까.”

내가 몰랐던 이야기였다.

“라스는 나에게 있어서 동료이자 생명의 은인이야. 그리고 최근에 나뿐만 아니라 엔드라, 릴리안, 엘라시아…… 우리 모두의 목숨을 구했잖아? 본인의 생명력을 불태우면서까지 우리들을 지켜 줬는데 라스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지. 물론 내가 라스랑 말다툼을 자주 하곤 하지만, 그렇다고 라스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난 라스가 좋아. 아, 물론 이상한 의미는 아니고, 동료로서, 친구로서 좋아한다는 의미야. 오해 말라고.”

“하하, 알고 있습니다.”

하기야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 줬는데, 어떻게 라스에게 앙심을 품겠나?

괜히 카이딘을 의심한 거 같아 미안해졌다.

“죄송합니다, 카이딘 씨.”

“뜬금없이 웬 사과?”

“그냥 갑자기 사과를 하고 싶어서요.”

“……?”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카이딘의 의심만 쌓게 만드는 꼴이 되고 있었다.?

더 의심을 받기 전에 자리를 피해야겠다.

나는 카이딘에게 볼 일이 있다면서 황급히 치유소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파이스와 함께 라스의 상태를 살폈다.

라스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다.

그러나 예전에 비해 호흡은 많이 안정되어 있었다.

라스의 상태를 확인한 파이스는 입을 뗐다.

“기력을 많이 회복했습니다. 계속해서 치료에 전념한다면, 늦어도 다음 주 중에는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네가 고생이 많다.”

“천만에요. 그보다 대장님.”

파이스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라스, 이분을 보고 대장님도 깨달으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글레드는 굉장히 위험합니다. 물론 칠흑을 상대하는 데에 효율적인 무기라는 건 저도 잘 알지만…… 남발하게 되면, 다음에는 대장님이 여기 병실 침대에 눕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글레드는 주의해서 써 주세요.”

“알고 있어.”

나도 최후에 최후의 순간까지 아껴 뒀다가 마지막 일격을 날릴 때만 사용한다.

그리고 라스처럼 마구잡이로 사용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된다.

능력 부족이 나에게는 오히려 안전장치로 작용하고 있었다.

파이스와 함께 복도를 빠져나왔을 때였다.

“어머, 로인 님 오셨어요?”

엘라시아가 나를 반겼다.

나울 주변에 함정을 설치하러 갔다고 들었는데 벌써 다 끝내고 온 모양인가 보다.

나는 파이스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 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눈치 빠른 파이스는 나와 엘라시아가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끔 슬쩍 빠져 줬다.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저랑요?”

“어. 잠시면 돼.”

엘라시아를 바깥으로 데리고 나갔다.

카이딘이 있는 정문은 피했다.

후문으로 엘라시아를 데리고 나간 나는 카이딘에게 했던 것처럼 떠보기 질문을 날렸다.

“엘라시아, 너는 라스 씨를 어떻게 생각해?”

“라스 씨요? 혹시 인간들이 자주 언급하는 ‘연애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시는 건가요?”

“그것도 포함해서 전부 다.”

“음, 글쎄요.”

엘라시아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세계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 그 정도인 거 같아요.”

“사적인 감정은 없어?”

“연애 감정은 없어요. 오히려 릴리안 님이 라스 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거 같던데요?”

뭐야, 그건 알고 있었구나.

작중의 히로인은 릴리안이다.

라스와 ‘썸’을 타는 관계로 발전하는 것까지는 확인했으나, 칠흑이 세계를 집어삼킴으로 인해 두 사람의 연애 전선에 해피엔딩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세계가 멸망했으니까.

당연한 결과다.

일단 칠흑을 쓰러뜨려야 연애건 뭐건 하지 않겠나.

“라스 씨를 싫어한 적은 있어? 악감정이 쌓일 만한 일화가 있다든지……. 그런 거.”

엘라시아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바로 답했다.

“없는데요.”

하긴 하이 엘프인 엘라시아가 라스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애초에 같이 행동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하고도 웃긴 질문이었다.

엘라시아는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들이 이상한 모양인지 이번에는 역으로 내게 물었다.

“왜 이런 질문들을 하시는 거죠? 뭔가 있나요?”

“아니, 그냥.”

라스가 동료라 생각하는 존재에게 암살당할 거 같아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미래에 벌어질 말도 안 되는 일이기에 억측이라는 말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카이딘도, 엘라시아도 라스를 죽일 만한 동기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이럴 때에는 다 방법이 있긴 하지.’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말이 있다.

모르면 물어보라.

그래, 모르면 물어보면 그만이지.

나는 치유소를 나섰다.

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간 나는 마일을 호출했다.

내 질문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마일밖에 없다.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와중에도 마일은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과 흰 가면으로 내 앞에 등장했다.

언제, 어떤 시간에 불러도 항상 평소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마일.

무슨 ‘5분 대기조’도 아니고.

저런 부분은 존경스럽다.

“무슨 일로 또 저를 찾으셨습니까, 로인 님?”

“물어볼 게 있어서.”

“말씀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로인 님의 명령이라면 신의 존재 여부까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실 그냥 해 본 말입니다.”

립 서비스 같은 건가?

……괜히 기대했네.

“라스 일행들의 과거 이력을 조사해 줬으면 좋겠어. 릴리안, 엘라시아, 엔드라, 카이딘. 일단 이렇게 넷만.”

“알겠습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왜 갑자기 이런 의뢰를 하시려고 하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몰라도 돼.”

“흐음, 그렇군요.”

마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내일 오전 중으로 정리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해.”

뒷일은 마일에게 맡겨 두고…….

‘일단 잠부터 자야겠어.’

머리를 너무 굴렸더니 피곤해서 쓰러질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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