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차원을 넘어서 (3)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차원 이동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매우 긴장된다.
어쩌면 칠흑과 싸울 때보다도 더 긴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칠흑, 혹은 데르킨 백작이나 루크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싸워 보기라도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차원 이동 마법의 경우에는 까딱 잘못했다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냥 차원 이동 중에 소멸되어 버리거나 이름도 모를 차원에 갇히는 베드 엔딩으로 향할 수 있다.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
이것이 가장 무섭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다.
모험 없이는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나는 사람 한 명이 딱 들어가기에 좋은 캡슐에 누웠다.
주변에는 수많은 소형 마력 측정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파지지지직!
마력을 불어넣을 때마다 마력 측정기들 사이에서 강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프렌은 누운 내게 다가와서 상태를 살폈다.
“좀 어떻습니까, 로인 님.”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은데.”
“5분 뒤에 마력 측정기에 마력을 한꺼번에 불어넣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차원 이동 마법이 시작됩니다. 시작 전에 미리 카운트를 셀 테니 그리 알고 계시면 되실 거 같습니다.”
“알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차원 이동 마법 도중에 사고가 벌어지면 용신단으로도 커버 칠 수가 없다.
손쓸 도리도 없이 그냥 죽는 거다.
멀리서 세올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인 씨! 준비 다 됐죠?”
“준비 완료! 시작해 줘!”
“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스파크의 세기가 더욱 강해졌다.
동시에 저 멀리서 프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0초! 9! 8! 7……!”
드디어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2초를 남겨두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출발해 보자!
내가 있던 원래의 세계로!
* * *
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나는 강한 어지럼증을 느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가는 듯했다.
마치…… 드럼 세탁기 안에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구토를 하고 싶은데도 불구하고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입뿐만이 아니었다.
손, 발, 눈조차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움직이려 했지만, 몸은 내 명령을 거부했다.
좋지 않은 감각이다.
이어서 숨이 턱 막히기 시작했다.
깊은 바닷속 한가운데에 강제로 처박힌 기분이 들었다.
이 감각, 실로 오랜만이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적응 안 되는 건 여전하네!’
속으로 욕지거리를 사정없이 내뱉었다.
이윽고 이질적인 감각이 나를 엄습했다.
“헉, 헉, 헉!”
마치 오랫동안 숨을 참았던 것처럼 거칠게 호흡했다.
흐릿했던 시야가 천천히 회복되었다.
“나…… 살아 있는 거, 맞지?”
손을 움직여 내 몸을 더듬었다.
일단은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야가 완벽하게 회복되었을 때, 나는 직감했다.
“성공했어……!”
내 방이다!
흐트러진 책들은 여전했다.
이 흔적들은 내가 세올라의 도움을 받아서 첫 번째로 차원 이동 마법에 성공해 이곳에 왔을 때 벌였던 것들이다.
우선 나는 현재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2시 반이라…….”
저번에는 오전이었는데, 이번에는 도착해 보니 점심시간을 한참 넘었다.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부장님한테 걸려온 전화 통화만 10통이 넘어갔다.
“역시 우리 부장님, 집념의 사나이시네.”
그냥 하루 쉬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부장님은 내가 한 말이 그저 핑계라고 생각하는 모양인가 보다.
그래, 핑계이긴 하지.
그렇다고 어렵게 차원 이동 마법으로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왔는데, 출근길에 오를 수는 없다.
시간은 한정적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여유가 좀 있지.”
프렌은 다른 차원에 6시간 정도 머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유가 넘치고 넘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할 건 미리 해 두기로 했다.
델리피나 전기 4권을 집어 들었다.
“웃차.”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원래 누워서 책을 보는 습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 차원 이동 마법의 여파 때문인지 머리에 아직까지 어지럼증이 남아 있어서 앉아서 책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엎드려서 책을 보기로 했다.
4권을 읽기 시작했다.
도중에 스카이 랜드 사건이 튀어나왔다.
“여기서 라스가 치명상을 입는 건 변함이 없구나.”
대신에 위기에 처한 라스 일행을 구해 주는 인물이 내가 아닌 라크스 공작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하긴, 라크스 공작의 실력이라면 라스 일행을 구하고도 남겠지.
우리가 처한 현재 상황을 넘어서 나는 이후의 스토리를 머릿속에 새겨 두기 시작했다.
“……좋았어.”
4권 독파 완료.
아직까진 무난하게 이야기가 흘러나갔다.
그리고…….
“재미없는 것도 여전하네.”
소설로서의 재미로 따지면 《델리피나 전기》는 10점 만점에서 1.5점이다.
그러나 델리피나 전기는 정확히 따지자면 소설이 아니다.
카인이 만든 예언서라고 했다.
그러니 재미가 없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예언서가 재미있으면 큰일이니까.
4권을 옆에 두고 바로 5권을 집어 들었다.
“드디어 문제의 5권이구나.”
《델리피나 전기》의 완결권이다.
이 소설은 5권에서 끝난다.
……그것도 베드 엔딩으로.
어째서 《델리피나 전기》가 베드 엔딩으로 끝마치게 되었는지 나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로 했다.
우선 글레드에 대한 언급이 소설 속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5권 중반부로 향하고 있음에도 글레드의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 이건 그렇다고 치고.’
설마 글레드 하나 때문에 《델리피나 전기》가 베드 엔딩을 맞이하진 않았을 테지.
다른 이유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알아내는 것이 나의 주된 목적이다.
5권 1챕터.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다.
2챕터. 무난하다.
3챕터. 그저 그렇다. 그리고 여전히 소설은 재미없다.
4챕터에 돌입했다.
“응?”
이상한 문구를 발견했다.
-……칠흑과 마지막 결전을 남겨둔 라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라스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이거 뭐냐? 라스가 암살당했다고?
누구한테?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구를 확인하려 했다.
바로 그때.
띵동!
갑자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가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다.
‘지금 저게 문제가 아니잖아!’
깔끔하게 무시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갑자기 문을 쿵쿵쿵! 두드리기 시작했다.
“야! 강시언! 너, 집에 있는 거 다 알아! 문 안 열어?”
망할!
부장님이 설마 우리 집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집념의 사나이라고 칭찬했는데…… 이건 집념이 아니라 집착이잖아!
어쩔 수 없이 나는 문 건너편에 있는 부장님에게 또다시 핑계를 둘러대기로 했다.
“부장님! 저,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오늘은 쉰다고 말씀드렸…….”
“안 좋긴 개뿔! 지금 마감 쳐야 하는 원고가 산더미인데 뭐 하고 있어! 아파도 내일 아파! 지금 아프지 말고!”
이런 빌어먹을 부장을 봤나!
욕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필사적으로 참았다.
일단 문은 걸어 잠가 뒀다.
지금 원고가 중요한가?
내가 죽느냐, 사느냐가 더 중요하지!
다음 페이지를 읽으려고 했다.
그러나 부장의 외침은 계속 이어졌다.
“강시언! 문 안 열면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쳐들어갈 거다!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열어!”
참 답답한 양반이다.
나는 그냥 부장의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라스가 누구한테, 어쩌다가 암살을 당했는지. 이것부터 확인해야 한다.
페이지를 넘기려는 순간.
파지직!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차원 이동을 할 때 들었던 스파크 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설마……!”
스파크와 함께 내 몸은 점점 흐릿해졌다.
“미친! 6시간 동안 이동할 수 있다며!”
중간에 문제라도 생겼나?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타이밍에 차원 이동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얌전히 넘어갈 수는 없지!
어떻게 해서든 라스가 죽는 원인을 밝혀내야 한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겨우 페이지를 넘겼다.
-라스의 사인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것은…… 동료의 배신이었다.
-라스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동료, 그자는 바로…….
이 문구를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 * *
“푸하!”
기나긴 잠수를 끝내고 이제 막 물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처럼 거칠게 호흡을 몰아쉬었다.
마침 미리 대기하고 있던 연구원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대표님! 여기 물 드세요!”
“고, 고마……!”
고맙다는 말을 미처 다 할 틈도 없이 곧장 입을 벌렸다.
그리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차원 이동을 하고 오면 항상 이렇게 수분이 부족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한동안 계속 물을 퍼마셨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죽는 줄 알았네.”
“고생하셨습니다, 로인 님.”
“수고하셨어요.”
프렌과 세올라가 내게 말을 건넸다.
그전에 나는 이들에게 따져야 할 게 있었다.
“6시간 동안 저쪽 세계에서 머무를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오차가 너무 심한데? 들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돌아왔잖아.”
프렌이 내 항의에 답을 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마력 측정기의 출력이 훨씬 부족했습니다. 중간에 추가로 마력 측정기를 보충하려고 했습니다만……. 만약 그렇게 되면 로인 님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조치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차원 이동 마법이 완성 단계가 아닌 실험 단계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프렌이나 세올라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다.
“미안……. 내가 너무 예민했네.”
“아닙니다, 로인 님. 저희가 계산을 잘못한 탓입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 실패를 경험해 봐야 성공으로 향하는 길을 발견하는 법이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이대로 쭉 계속 연구해 줘.”
“예,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항상 2%가 부족하다는 게 뭔가 아쉽다.
* * *
집으로 돌아온 후에 나는 곧장 생각에 잠겼다.
라스를 죽인 자가 누군지, 시간이 조금이라도 더 있었더라면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미처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젠장!’
동료의 배신이라고 했지?
라스의 동료라고 해 봤자 많은 편은 아니다.
카이딘, 엔드라, 엘라시아, 릴리안, 그리고 티이나까지.
‘가만. 라크스 공작하고 웨일도 포함시켜야 하나?’
같이 여정에 오르는 등장인물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동료라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관계성은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명 더 있지.’
만약 웨일과 라크스 공작을 범주에 넣는다면, 레이샤르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레이샤르는 라스의 든든한 조력자니까.
‘총 여덟 명인가?’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다.
이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
‘누굴까?’
솔직히 누구인지 감이 하나도 안 잡힌다.
애초에 배신자가 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았다.
전부 다 라스와 끈끈한 유대감으로 뭉친 자들뿐이다.
그런데 배신자라니.
‘설마 카인이 잘못된 예언을 써 두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젠장, 의심병 걸리겠네.
이러다가 나도 휴즈처럼 인간 불신에 걸리는 거 아닐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