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8
차원을 넘어서 (2)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향하던 길이었다.
“어디 가나?”
한 남성이 나를 불렀다.
상당히 꼬질꼬질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를 보자마자 바로 예를 갖췄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 일이 있어서 잠시 들르려고 했습니다, 스승님.”
권왕 휴즈가 낚싯대를 담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들쳐 멘 채 나를 부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연구소가 있었지.”
휴즈는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나울을 꽤 자세히 둘러본 모양인가 보다.
어떤 시설이 있는지, 어느 곳에 무슨 가게가 이러이러한 것이 유명하다든지 하는 정보를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 강가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종류도 이미 섭렵해 둔 상태인 듯했다.
“이 도시는 참 좋군. 내가 생전 본 적이 없는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거 같아서 말이야.”
“오늘은 많이 잡으셨습니까?”
“대충. 한 요 정도?”
휴즈는 나에게 자랑하기 위함인지 양동이를 불쑥 내밀었다.
안에는 물고기가 가득……하지 않았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물고기가 딱 두 마리 들어 있을 뿐이었다.
“많이는 못 잡으셨군요.”
“어허! 많이 잡은 거야! 내가 자그마치 하루에 두 마리나 잡았다고! 엣헴!”
잠시 잊고 있었다.
휴즈는 낚시를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실력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네르킨 산맥에서 그와 함께 생활할 때에도 물고기보다는 육고기를 위주로 식단을 꾸렸다.
휴즈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내 낚시 실력이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나 보군.”
“그건…… 예, 맞습니다.”
보통은 ‘아닙니다.’라고 한차례 부정을 한 다음에 휴즈가 듣기 좋게 말을 포장하면서 적당히 핑계를 둘러댔을 것이다.
그러나 휴즈 앞에서는 거짓말이 안 통한다.
그는 ‘진실의 눈’을 소유하고 있다.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는지, 아니면 진실을 말하는지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이다.
‘진실의 눈’ 앞에선 사탕발림은 통하지 않는다.
차라리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 든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휴즈는 혀를 찼다.
“강제로 진실만을 봐야 한다는 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야. 안 그러냐?”
“솔직히 저는 그런 일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공감은 잘 안 됩니다만,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스승님의 의견이 맞는 거 같습니다.”
어쩌면 휴즈는 라바인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심각한 후유증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승님은 나울에 언제까지 계실 예정이십니까?”
“왜. 내가 빨리 사라져 줬으면 좋겠어?”
“그럴 리가요.”
나는 빙그레 웃었다.
휴즈는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차릴 것이다.
휴즈가 사라져 주기만을 바라고 이런 질문을 한 게 아니다.
정말로 단순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다.
혀를 찬 휴즈는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들려줬다.
“3일 뒤에 떠날 거다. 찾아야 할 사람이 있거든.”
“그게 누구입니까?”
휴즈가 인간 불신을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오게 만든 인물이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그러나 휴즈는 이번엔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조만간 알게 될 거다. 아무튼 3일 동안 쥐 죽은 듯이 얌전히 있을 테니까 너도 일일이 나 찾지 마라. 괜히 낚시하고 있는데 다가오면 물고기 다 도망가니까.”
안 그래도 낚시 실력이 별로인 휴즈인데, 여기에 훼방까지 놓으면 하루에 한 마리도 못 잡을 것이다.
나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그러겠다고 말했다.
* * *
휴즈와 헤어진 후에 나는 다시 갈 길을 갔다.
목적지는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
여기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뭐냐 하면…….
“꼭 던전에 들어가는 기분이네.”
음산한 기운이 너무 많이 풍긴다.
뭐랄까. 음침하고, 분위기가 축 쳐지고…… 이런 거 말이다.
밤샘 연구 때문에 연구원들은 거의 죽어 가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제시간에 숙면을 취하는 것도, 이들에겐 먼 나라 이웃 나라 같은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일정을 강요한 건 결코 아니다.
난 분명히 말했다.
쉬어 가면서 하라고.
……가만. 생각해 보니까 갑자기 대표가 나타나서 직원들에게 ‘쉬엄쉬엄 해, 허허허!’라고 말하면 정말로 푹 쉬면서 하겠나?
나 때에도 안 그랬는데?
갑자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어쨌든!
연구소 로비에 발을 들이자, 직원이 나를 바로 알아봤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어서 오세요, 대표님!”
“식사는 하셨습니까, 대표님!”
연구소 직원들은 나를 ‘대표님’이라 불렀다.
어쩌다 보니 호칭이 이렇게 굳어졌다.
사실 난 그냥 연구소에 자금을 지원하는 사람일 뿐인데 말이다.
“세올라…… 아니, 프렌은?”
“소장님 말씀이십니까?”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세올라를 찾으려고 하다가 나는 도중에 말을 바꿨다.
세올라는 부른다고 올 사람이 아니다.
또 어디선가 구석에 박혀서 연구에만 몰두하고 있겠지.
대외적인 활동은 역시 프렌을 부르는 게 최고다.
게다가 프렌이 현재 연구소 소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프렌은 피곤한 표정을 애써 지우려고 노력하면서 나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로인 님.”
프렌은 연구소 사람들 중에서 세올라와 더불어 나를 이름으로 부르는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다른 연구원들은 대표님이라고 하던데.
솔직히 나는 ‘대표님’보다 ‘로인 님’이 더 편하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지?”
“예. 무사고 100일째를 이어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은 100일 전에 사고가 있었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무슨 사고인지는 나도 잘 안다.
마력 측정기 축소 실험을 하다가 도중에 폭발 사고가 발생했었다.
불길이 더 번지기 전에 에나가 마법으로 화재를 금방 진압시켰다.
그 사건 말고 다른 사건은 없다.
……아마도?
“100일 중에 사건 사고가 벌어지긴 했는데, 그냥 무마시킨 건 없어? 왠지 한두 개 정도는 있을 거 같은데.”
“그, 그럴 리가요! 저, 절대로 그런 적 없습니다! 하하하!”
거 봐라. 있잖아.
말은 아니라고 해도 눈빛과 목소리의 떨림이 ‘로인 님의 추측이 정확합니다.’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걸 추궁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건 아니다.
“연구는 얼마나 진행되고 있어?”
슬슬 《델리피나 전기》 다음 권 이야기가 필요하다.
벌써 4권 초반부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일단 4권은 무조건 다 봐 둬야 한다.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5권까지 전부 다 독파하고 싶다.
프렌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임시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그래? 얼마나?”
“6시간입니다.”
“……뭐라고?”
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30분도, 1시간도 아니고, 6시간이라고?
그러나 프렌은 이런 내 반응을 보더니 느닷없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로인 님께서 정말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는데, 고작 ‘이 따위’ 성과밖에 내질 못해서…… 입이 열 개라도, 아니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난 혼낼 생각으로 되물은 게 아닌데…….
프렌이 용서를 구하기 시작하자, 졸지에 다른 연구원들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이 사람들이 왜 이래?
나를 완전히 악독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작정했나?
“일단 다들 진정해. 나는 화내려고 그런 게 아니라…….”
“그, 그럼 설마…….”
“저희, 모두 실직자 되는 겁니까?”
“죄송합니다, 로인 니이이이임!”
“…….”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오해만 쌓여 가는 거 같은데.
착각은 아니겠지?
* * *
6시간 때문에 화가 난 게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이들을 겨우 안심시켰다.
오히려.
“6시간이나 확보할 수 있어서 놀랐어.”
첫 실험 때에는 6시간보다 한참 부족한 시간 동안 차원 이동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려 6시간이다.
‘4, 5권을 읽고도 남을 시간이야!’
이 정도면 충분하다.
내가 대만족을 표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왜 이리 시끄러운 거야……?”
막 잠에서 깬 듯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괴짜 마법사, 세올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상당히 세올라스러웠다.
“어머나! 로인 씨 아니에요?”
“안녕, 잘 지내고 있었지?”
“잘 지냈다기보다는…… 맞아요! 6시간 동안 차원 이동을 할 수 있는 실험에 성공했어요. 보고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어차피 방금 프렌한테 다 들었어. 그것보다 지금 바로 차원 이동기, 가동시킬 수 있어?”
“지금요?”
“어. 당장.”
시간이 없다.
무리한 부탁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세올라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면서 프렌과 이것저것 상의하기 시작했다.
회의 결과.
“네, 바로 준비할게요. 대신,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얼마나?”
“대략…… 2시간 정도?”
오래 안 걸린다.
그 정도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는 수준이다.
“괜찮아. 진행시켜 줘.”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할게요.”
세올라와 프렌, 그리고 연구원들은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두 시간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웠다.
그 사이에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만의 생각에 잠겼다.
우선 차원 이동을 하고 난 다음에 해야 할 것.
‘책 읽는 거지, 뭐.’
책을 가져올 순 있을까?
차원 이동을 할 때 그 세계에 있는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세올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된다는 것이 그녀의 대답이었다.
차원 이동을 한 후에 다시 돌아오는 건 문제가 없지만, 차원 이동을 해서 그쪽 세계의 물건을 이쪽으로 가져오는 건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괜히 다른 차원의 물건을 가져오다가 차원 이동 마법에 영향을 미치기라도 하면, 돌아오지도 못하고 차원 중간에 갇혀 영원히 떠도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들었다.
-차원 이동 마법은 아직 실험 단계에 불과해요. 이런 상황에서 불완…… 불안……? 불완전! 불완전한 요소는 완전히 배제하는 게 좋죠!
이것이 세올라의 의견이었다.
어차피 내가 읽지 않은 《델리피나 전기》 권수는 4, 5권뿐이다.
하루에 두 자리 권수에 달하는 원고도 소화해 본 적 있는 나인데, 까짓것 소설 두 권 분량을 기억 못할까?
머릿속으로 내용을 기억하면 되는 것이었기에 나는 미련 없이 ‘책을 가져온다.’라는 작전은 포기했다.
‘차원 이동은 이번이 두 번째인가?’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세 번째다.
첫 번째는 바로 내가 이 소설 속 세계로 들어오는 거였으니 말이다.
앞으로 또 언제 차원 이동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죽어라 읽어야 해!’
그야말로 ‘Read or die’다.
읽거나, 아니면 죽거나.
목숨 걸고 책을 읽어야 하는 경우는 결코 흔치 않다.
아니, 고금을 통틀어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뒤에 나는 다시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향했다.
약속했던 2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뉴 버전 차원 이동기가 내 눈앞에 드러났다.
세올라는 나에게 물었다.
“각오는 되셨나요?”
각오?
그건 진작 다 되어 있었다.
“물론이지!”
자, 다시 한번 세계의 끝을 확인하러 떠나 보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