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
차원을 넘어서 (1)
라스가 나울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한 지 이제 2일째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직까지 라스는 눈을 뜨지 못했다.
다른 일행들도 요양을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직 회복되려면 한참 멀긴 했다.
일단은 치유에 최선을 다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라비.”
R팀 본부로 돌아온 나는 사무원 라비를 찾았다.
라비는 한창 정신이 없었다.
“네, 대장님!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에요?”
라비의 눈빛에는 ‘일감 또 가져오면 저, 파업 선언할 거예요!’는 생각이 가득 담겨 있었다.
천만 다행이네.
일거리를 시키려고 말을 건 것은 아니었다.
그냥 물어보고 싶은 게 있을 뿐이었으니 말이다.
“B팀이 어디 있는지 알아? 위치 정보 좀 알려 줘.”
“B팀이라면……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
라비는 바쁜 와중에도 빠르게 정보를 확인했다.
“페이더에 있어요.”
“페이더라……. 땡큐, 알려 줘서 고마워.”
“그런데 B팀은 왜요?”
“잠깐 리오나랑 이야기할 게 있어서. 리오나도 B팀이랑 같이 있는 거 맞지?”
“네.”
“그럼 됐어. 아, 그리고 퇴근 시간 넘기면서까지 너무 무리하지 말고. 일 다했다 싶으면 바로 퇴근해도 돼. 건강이 중요하지, 일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
환자는 라스 일행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내 주변에 환자가 생기는 건 사양하고 싶다.
* * *
소규모 도시, 페이더에 도착한 나는 리오나와 B팀 단원들이 머물고 있다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할 때쯤,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머, 대장님 아니세요?”
에나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했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지?”
“네, 그보다 소식 들었어요. 대장님, 스카이 랜드에 다녀오셨다면서요?”
“그렇게 되었어.”
“가르시아가 엄청 걱정하더라고요. 대장님이 크게 다치진 않았을까 하면서요.”
“멀쩡히 살아 돌아왔으니까 됐지, 뭐. 다른 사람들은 다 숙소에 있어?”
에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들어가면 바로 만나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 나중에 또 이야기하자.”
에나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후에 나는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리오나가 관자놀이를 지그시 누른 채 깊게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리오나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리오나.”
“……응? 언제 왔어?”
리오나는 깊게 고민하고 있었는지, 내가 말을 걸기 전까지도 인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방금.”
“무슨 일로 왔는데?”
“할 말이 있어서. 이야기 좀 할까?”
“조용한 곳이 좋다면 장소를 이동하자.”
“괜찮아. 여기서 해도 되는 이야기니까.”
리오나에게 약간의 협력만 구하면 된다.
“파견 멤버를 좀 교체할까 하는데.”
“누구를?”
“파이스를 베라로.”
“베라라고?”
리오나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베라는 R팀에서도 중요한 전력인데 굳이 우리 쪽으로 파견을 보낼 이유가 있어? 얼마 전에 힘든 전투도 치렀다며?”
그녀의 말이 옳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생겨 버렸다.
베라를 나울에 계속 두면 안 된다.
왜냐하면 엘라시아도 나울에 당분간 머물 테니까.
베라와 엘라시아를 만나게 할 바에야 차라리 베라를 이곳, B팀으로 파견을 보내는 게 훨씬 낫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엘라시아가 지금 나울에 있거든.”
“……아하.”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리오나는 내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베라가 그곳에 있으면 안 되겠네.”
“맞아. 그리고 치유사가 필요하기도 하고.”
“라스 씨 때문이지?”
“어, 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파이스는 실력 있는 치유사이다.
비록 술과 여자, 도박에 미쳐 있는 날라리 성직자지만 실력 하나는 확실하다.
파이스가 나울에 와 주면 도움이 많이 될 거다.
리오나는 내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알았어, 네 뜻대로 해. 그리고 어차피 난 너에게 도움받는 신세인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
“고마워.”
“그 말은 내가 너한테 해야 할 말이야.”
리오나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B팀 재정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추가 단원을 모집한 이후에 부대장을 뽑는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B팀 재정비를 마치면 리오나의 B팀은 다시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가르시아와 에나, 그리고 파이스를 대신할 베라가 리오나를 잘 보필해 줄 것이다.
* * *
파이스를 데려가기 위해 나는 야밤에 어느 한 술집으로 향했다.
완전 가관이었다.
그야말로 유흥에 미친 녀석이었다.
나는 파이스의 뒤통수를 나름 가볍게 때렸다.
“아이 씨! 누구야!”
성질을 내면서 고개를 홱 돌리는 파이스.
나는 무표정으로 파이스를 바라봤다.
“나다.”
“헉, 대장님 오셨습니까!”
파이스는 곧바로 저자세를 보였다.
“여긴 어쩐 일로……?”
“네가 치료해 줘야 할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까 나울로 와라.”
“예? 하지만 전 B팀으로 파견 나온 상태인데…….”
파이스는 파견을 나온 김에 ‘이때다!’ 싶어서 마음껏 유흥을 즐기는 나날을 보내 온 듯싶었다.
하긴 내 통제가 없으니까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즐겨 댔겠지.
하지만 유흥도 이젠 끝이다.
“베라하고 너하고 바꾸기로 했으니까 짐 싹 다 꾸리고 복귀해라. 30분 줄 테니까 다 끝내. 만약 내 명령을 어긴다면……. 알고 있겠지?”
“예! 알겠습니다!”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파이스.
꼭 이렇게 반 협박을 해야 말을 듣는다니까.
* * *
나에게 등을 떠밀려 짐을 챙기고 나온 파이스는 나와 함께 나울로 향했다.
떠나기 전에 가르시아와 에나, 그리고 R팀 용병들에게 리오나를 잘 보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한편 파이스는 나울을 보면서 잠시 감상에 젖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랜만에 보네요. 마치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 듭니다.”
“술집 사장들이 매번 너 어디 갔냐고 찾고 그러더라.”
“그동안 못 간 만큼 열심히 출석 도장을 찍어야겠네요. 하하하!”
이 녀석,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네.
그래도 사고를 치거나 하진 않으니까.
본인이 알아서 잘 절제만 한다면 나는 크게 관여할 생각은 없다.
곧장 R팀 본부로 향했다.
1층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베라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정말로 제가 B팀으로 가야 하나요?”
“어, 혹시 가기 싫은 거야? 그때 물었을 때에는 반대 안 했잖아.”
“그야 그렇긴 한데…….”
베라는 왜 하필이면 자신을 보내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합당한 이유를 들려줬다.
“파이스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반드, 선배, 아니면 너. 이렇게 셋밖에 없어. 선배는 1소대를 이끌고 있으니까 자리를 비우면 안 되고, 반드는 라드리치인지 뭔지 하는 능력을 오랫동안 사용해서 그 후유증으로 1주일 동안 쉬어야 되니까 반드도 제외해야 돼. 그러니 파견 나갈 사람은 너밖에 없어.”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그제야 베라는 내 결정을 완전히 받아들였다.
사실 진짜 목적은 베라와 엘라시아를 떨어뜨려 놓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나는 일부러 베라를 B팀으로 파견을 보내기로 한 것이고.
아직 베라는 이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참으로 다행이다.
베라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요.’라는 말을 남긴 채 B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것으로 큰 문제 하나는 해결했다.
베라가 떠났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엘라시아는 그제야 복면을 벗을 수 있었다.
치유소에 들른 나를 바라보면서 엘라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죽기 직전에 일이 해결되어서 다행이네.”
“그런데 베라가 갑자기 말도 없이 나울로 돌아오거나 하면 어쩌죠?”
“그건 걱정하지 마. 믿음직한 감시 요원을 붙여 뒀으니까.”
마일에게 베라의 소재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두라고 말했다.
혹여나 그녀가 나울로 몰래 돌아올 것 같은 낌새가 느껴진다면, 나에게 바로 보고하라는 말까지 전해 뒀다.
그러니 베라가 몰래 나울로 들어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보다 라스 일행이 더 걱정이다.
라스는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면 다른 일행들은?
“혹시 정신을 차린 사람들 있어?”
“카이딘 님요. 오전에 겨우 눈을 떴는데, 일어나자마자 했던 말이 가관이에요.”
“뭔데?”
“술 가져오래요.”
……파이스랑 참 잘 어울리는 양반이겠군.
나는 엘라시아와 함께 카이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카이딘은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몸 상태가 좋아 보였다.
“오, 로인!”
카이딘은 손을 흔들며 나를 반겼다.
어느 순간부터 카이딘은 나에게 말을 놓기 시작했다.
어차피 카이딘이 나보다 연상이기도 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고 있다.
“몸 상태는 좀 괜찮으세요?”
“어, 덕분에 살았어. 그나저나 라스 녀석이 나중에 지원군이 와서 우리를 구해 줄 거라고 했는데, 설마 그 말이 사실일 줄은 몰랐네. 녀석, 언제 이런 보험을 들어 뒀는지 모르겠어.”
“티이나라는 이름을 가진 베르투의 현자가 와서 알려 줬습니다. 만약 라스 씨와의 연락이 끊긴다면 저에게 와서 도움을 요청하라는 부탁을 미리 해 뒀다고 하더라고요.”
“라스 저 녀석, 그러면 제대로 설명을 해 주든가 했어야지. 하여튼 오랜만에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 어떤 건지 느꼈어.”
“심장이 쫄깃해지는 경험이 되었겠네요.”
“하지만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야.”
카이딘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진절머리가 나는 모양인지 고개를 가로젓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추가로 나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주로 다른 사람들은 어찌 되었는지…… 이런 것 위주였다.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해줬다.
“라스 씨는 아마 당분간은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담당 치유사의 말을 빌리자면, 기력을 회복하는 데 최소 두 달은 걸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미친 짓을 저질렀는데 두 달이면 정말 양호한 편이네.”
레이샤르와 같은 말을 하는 카이딘이었다.
“오히려 잘됐네. 라스는 스스로를 너무 몰아붙이는 경향이 있으니까. 이번 기회에 숨 좀 돌리게 해야지. 사람이 어찌 쉬지도 않고 계속 싸우기만 할 수 있겠어, 안 그래?”
“맞는 말입니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라스는 기계가 아니다.
사람이다.
너무 전력질주만 하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다.
“아무튼 정말로 고마워, 로인.”
“아니에요. 일단 몸조리부터 잘하세요.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이곳 직원에게 말씀하시고요.”
“땡큐.”
라스 일행이 다시 기력을 회복할 때까지 파이스가 책임지고 이들을 맡기로 했다.
나는 주기적으로 얼굴을 비추면서 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이제 지금 당장 할 일은 얼추 다 끝내 놓은 건가?’
베라와 엘라시아의 문제도 해결했고.
라스 일행도 하나둘씩 기력을 회복해 가고 있으니, 급한 불은 다 끈 셈이다.
이제 칠흑을 어떻게 견제해야 좋을지에 대한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이야기 흐름은 3권을 넘어서 4권으로 진입했다.
문제는 내가 4권 내용을 전혀 모른다는 건데…….
‘간만에 연구소나 한번 들러 볼까?’
얼마나 연구가 진행되었는지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