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라스 구출 작전 (3)
뛰어내리라는 나의 명령에 병력들은 어이를 상실한 눈빛을 보내 왔다.
“대장님! 방금 설마…….”
“뛰어내리시라고 하신 겁니까?”
이놈들이 귀가 먹었나, 한번 했던 말을 계속 되풀이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 맞아. 뛰어내리라고.”
“그치만…….”
“뛰어내리면 죽는 거 아닙니까?”
밑이 바다이기는 하나, 이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과연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를 것이다.
부유 마법은 스카이 랜드 근처에 있을 때에는 사용할 수 없다.
날아서 가는 건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앵글 브릿지를 통해서 이동한다?
그러면 오히려 더 위험하다.
칠흑은 우리를 곱게 보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앵글 브릿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칠흑은 앵글 브릿지를 파괴시킬 게 분명하다.
이도저도 안 된다면…….
“뛰어내리는 것밖에 답이 없잖아. 아니면 더 좋은 방법 있는 사람, 손 들어봐.”
“…….”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거 봐라.
“그러면 그냥 군말 없이 뛰어내려! 신호 줄 테니까! 자! 3, 2, 1…….”
나는 영혼을 담아 목청껏 외쳤다.
“번지이이이이!”
“에라이, 모르겠다!”
“으아아아아악!”
병력들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뛰어내렸다.
그 와중에 드레인은 나에게 다급히 외쳤다.
“나, 고소공포증 있는데 어떻게 뛰어내려!”
“아, 그래요?”
그러면 방법이 있지.
나는 드레인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이 느낌 그대로 드레인의 등을 강제로 떠밀었다.
“로인, 너 이 자시이이이이이이익!”
점점 멀어지는 드레인의 목소리.
음. 착실하게 잘 떨어지고 있군.
이제 나 혼자만 남았다.
칠흑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에게 먹히기 싫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건가? 이 높이에서 떨어지면 너희들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텐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게 똑같다면 너에게 잡아먹힐 바에야 차라리 뛰어내리는 게 낫지.”
당연한 선택이다.
헤어지기 전에 나는 칠흑과 데르킨 백작, 그리고 추종자들에게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악당 녀석들아.”
나는 망설임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일부러 먼저 떨어진 동료들과 위치를 맞추기 위해 속도를 좀 더 높였다.
드레인을 비롯해 레드 라인 기사단, R팀 단원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살아 있지?”
내 물음에 반응한 것은 반드였다.
“드레인은 기절했는데?”
“흠, 그래?”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말, 거짓이 아니었구나.
설령 진짜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드레인의 등을 강제로 떠밀어야 했던 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 자리에서 드레인 혼자만 남겨 두고 뛰어내릴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냥 나중에 잔소리 몇 마디 듣고 말지, 뭐.
“그나저나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지?”
반드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침착하게 나에게 앞으로의 일을 물었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살아서 육지로 돌아가야지.”
“방법은 있나?”
“이제 곧 그 ‘방법’이 올 거야.”
슬슬 시간이다.
바다와 충돌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우리의 몸은 낙하를 멈추고 붕 뜨기 시작했다.
그 위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하늘을 가렸다.
병력들은 놀란 나머지 입을 쩍 벌렸다.
“저건 설마……!”
“마, 말도 안 돼!”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거 아니지? 그렇지?”
거대한 날개를 펼치면서 빠르게 다가오는 드래곤.
지식을 탐구하는 자, 레이샤르다.
* * *
바닷속으로 처박히기 직전에 레이샤르가 등장해 마법으로 우리를 구해 줬다.
스카이 랜드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법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그것을 일부러 노렸다.
수십 명을 단체로 띄울 마법사가 있으면 좋겠지만, 우리 파티에는 그런 기량을 지닌 마법사는 없었다.
안 그래도 어려운 부유 마법인데, 그것도 짧은 시간에 수십 명에게 동시에 마법을 거는 것은 인간으로서 불가능한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마법의 종족이라 불리는 드래곤이라면 가능하다.
레이샤르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목숨을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레이샤르는 우리를 데리고 나울로 향했다.
이동하는 시간에 레이샤르는 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크게 위험할 뻔했어.
“그러게요. 레이샤르 님이 적절한 때에 와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심 조마조마했지. ‘이 작전이 과연 먹힐까?’ 하고 말이야. 그런데 자네의 생각대로 척척 흘러가더군. 처음에 자네가 그 파랑새라는 자를 통해서 나한테보낸 편지를 읽었을 때, 무모한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정하도록 하지.
나울을 출발하기 전에 파랑새에게 반드시 전해 달라고 했던 편지 한 통.
그 편지는 레이샤르에게 보내는 일종의 구조 신호였다.
스카이 랜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바다로 떨어지려는 낌새가 보이면 즉시 나타나서 구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레이샤르는 이런 나의 부탁에 쉽게 응해 줬다.
만약 레이샤르가 없었더라면…….
‘아니, 상상하지 말자.’
작전은 이미 성공했다.
그런데 굳이 실패했을 때의 위험성을 상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레이샤르와 함께 나울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나울 도시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레이샤르는 우리들을 내려놓은 후에 바로 모습을 감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현명한 드래곤이다.
나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라스 일행들을 치유소로 옮겼다.
한가락한다는 치유사들을 죄다 불러 라스에게 붙였다.
치유사들 다섯 명이 달라붙어 라스의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치유 마법을 발동시켰다.
3시간이 흐른 뒤 치유사 중 한 명이 나를 찾았다.
“죽을 위기는 넘겼습니다.”
참으로 다행이다.
내심 라스가 죽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앞이 캄캄했었는데.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당분간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력을 완벽히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나?”
“적어도 두 달은 쉬어야 합니다.”
두 달이라…….
그 사이에 칠흑은 마치 자기 세상인 것 마냥 마음대로 활개를 치고 다닐 텐데.
큰일이다.
그나마 라스 일행이 추종자들의 발목을 붙잡아 줬기 때문에 문제가 덜 커질 수 있었던 건데.
‘이건 나중에 대책을 세워 보든가 해야겠어.’
일단 치유사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바깥으로 나오니 바깥은 벌써 밤이 찾아온 상태였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온 레드 라인 기사단, 그리고 R팀 용병들은 현재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 쉬는 중이다.
라스 일행은 치유사들의 보살핌 아래에서 다시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유일하게 엘라시아만이 멀쩡했다.
하이 엘프는 참 대단하다.
‘하긴. 베라가 보여준 능력들도 보통은 아니었으니까.’
아직까진 베라가 엘라시아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해서 다행이다.
차가운 바깥바람을 마시면서 머리를 식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던 찰나였다.
“고생이 많군.”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레이샤르가 나에게 다가왔다.
“고생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자네가 없었으면 라스는 아마 칠흑에게 삼켜졌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하나의 희망의 끈을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지.”
레이샤르는 라스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임페르노 하트와 글레드를 지닌 남자.
그리고 칠흑과 맞상대가 가능한 존재.
레이샤르조차도 칠흑 앞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없다.
오히려 드래곤들은 칠흑의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
제2, 제3의 벨라시오닉이 나타나면 안 되니 말이다.
나는 레이샤르에게 현재 고민 중인 사항을 하나 털어놓았다.
“라스가 회복하려면 두 달이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두 달이라. 그래도 그 정도면 비교적 싸게 희생을 치른 편이군. 듣자하니 라스는 3일 내내 글레드의 불을 피웠다고 하던데.”
“예, 맞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1일…… 아니, 1시간만 글레드의 불을 지속시켰어도 모든 생명력을 소진했을 거야. 그나마 라스니까 3일을 버티는 기적을 만들어 낸 거지.”
주인공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는 되어야 주인공을 하는 거겠지.
“아무튼 두 달이나 누워 있어야 한다면, 앞으로 칠흑은 더욱 활개치고 다니겠군.”
“마침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자네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몸일 테니…… 당분간은 라크스 공작이 힘내 주는 수밖에 없겠군.”
“저도 최대한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준다면 나야 좋지. 나도 최대한 뒤에서 도와줄 테니, 라스가 없는 동안 서로 열심히 힘내 보도록 하세.”
“예, 레이샤르 님.”
대화를 마친 뒤에 레이샤르는 빠르게 모습을 감췄다.
라스의 공석을 채워야 한다.
이것이 새롭게 우리에게 부여된 미션이었다.
* * *
라스 일행이 입원해 있는 치유소로 향했다.
마침 엘라시아가 일행들을 돌보고 있었다.
“아, 로인 님.”
엘라시아는 나의 기척을 바로 알아차렸다.
“다른 사람들 몸 상태는 좀 어때?”
“많이 호전되었어요. 라스 님만 빼고요.”
라스가 가장 걱정이다.
회복되는 데 두 달이 걸린다고 했지만, 언제 제정신을 차릴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나는 엘라시아와 함께 라스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위기가 도래했다.
“로인 님.”
베라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순간 나와 엘라시아의 몸이 굳었다.
설마…….
‘눈치챈 건가!’
엘라시아는 아직 변장을 풀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얼굴은 여전히 복면으로 가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베라와 거리가 가까우면 그녀가 눈치챌 확률이 높다고 했다.
슬그머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하는 엘라시아.
그녀를 바라보던 베라는 왜 그러냐며 물었다.
“뭐죠? 저분, 마치 저를 피하는 거 같은데…….”
“그, 그럴 리가요! 오, 호호호호홋!”
“목소리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고요.”
“…….”
엘라시아, 이 바보 엘프야!
거기서 목소리를 내면 어쩌자는 거냐!
베라가 엘라시아의 목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 없다.
베라는 점점 엘라시아와의 거리를 좁혀 가기 시작했다.
“당신, 혹시…….”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
그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
젠장, 모르겠다!
“이, 이 사람은 말이지!”
나는 베라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정의의 사도. 프레시 우먼이야. 프레시 우먼!”
“그게 뭔가요?”
“그, 있잖아. 악당이 나타나면 정체를 숨기고 등장하는 히어로. 몰라?”
“모릅니다만.”
나는 엘라시아에게 최대한 눈치를 줬다.
그녀는 마지못해 나의 거짓말에 어울려 주기로 했다.
“저, 정의를 수호하는 프레시 우먼! 저는 제 역할을 마쳤으니, 이만 사라지도록 하죠. 오, 호호호호홋!”
“앗, 잠깐만요!”
베라는 엘라시아를 붙잡으려 했지만, 나를 쉽게 뿌리치진 못했다.
“원래 이럴 때에는 못 본 척하고 조용히 보내 주는 게 매너야.”
“그건 도대체 어느 나라 매너인가요?”
“대한민국이라는 곳이지.”
“그런 나라는 처음 듣는데요? 델리피나 대륙에 없는 나라 아닌가요?”
응, 맞아.
내가 시간을 번 사이에 엘라시아는 빠르게 장소를 이탈했다.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휴우, 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