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
스카이 랜드 (2)
스카이 랜드가 정상적으로 바다의 섬으로 있을 때, 섬과 육지 사이를 연결해 주던 다리 역할을 한 앵글 브릿지.
그러나 지금은 본의 아니게 부유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스카이 랜드와 연결되어 있다 보니 약간 경사진 비탈길을 하고 있었다.
카이딘은 엘라시아에게 물었다.
“거리가 얼마나 돼?”
“글쎄요. 저도 스카이 랜드에 대해서는 들어본 게 많지 않아서 잘 몰라요.”
“그렇다면…….”
이럴 때 필요한 건 바로 엔드라의 의견이다.
엔드라는 거의 베르투의 현자에 근접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스카이 랜드에 대해서 박식한 편이었다.
“앵글 브릿지로 스카이 랜드에 가려면 도보로 하루는 걸립니다.”
“하루? 멀진 않네. 우리 말 타고 갈 거잖아.”
“아니요. 걸어가야 할 겁니다.”
“엥, 왜? 말이 멀쩡히 있는데 그냥 걸어간다고? 바보 같은 말 하지 마.”
카이딘은 말을 앵글 브릿지 입구 쪽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했다.
푸르릉!
거친 콧김을 뿜어내던 말은 점점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래?”
안개를 통과할 때만 하더라도 멀쩡히 잘만 달렸던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앵글 브릿지를 앞에 두고는 겁을 먹다니.
카이딘이 타고 온 말만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말들도 지레 겁을 먹은 상태였다.
도저히 말을 타고 앵글 브릿지로 갈 상황이 안 됐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아마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겠죠. 스카이 랜드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요. 동물은 인간에 비해 훨씬 민감한 존재니까요.”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스카이 랜드.
말은 몬스터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상황이 이런데 과연 스카이 랜드에 가고 싶어 할까?
천만에,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엘라시아는 말들을 진정시켰다.
“옳지, 옳지. 괜찮아. 너희는 안 데려갈 거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엘라시아가 말들을 안심시키는 동안, 카이딘은 라스를 찾았다.
“라스, 어떻게 할 거야?”
“나한테 물어볼 필요가 있나? 이미 답은 나와 있잖아.”
“하아, 그렇지……. 그렇긴 하지만…….”
카이딘도 알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답은 하나뿐이다.
“가자. 행군이다.”
고되고 긴 여행이 될 것이다.
* * *
라스 일행은 앵글 브릿지 위를 걷고 또 걸었다.
비탈길이었기에 다리를 건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경사가 심하지 않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헉헉, 죽겠……네!”
카이딘은 숨이 턱 밑까지 차오름을 느꼈다.
엔드라도 마찬가지였다.
짙은 안개 속을 그냥 걷는 것도 힘든데, 여기에 경사진 곳을 하루 동안 걸어야 하다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나름 체력에 자신 있어 했던 카이딘과 엔드라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잠깐만…… 우리, 좀 쉬었다 가자……!”
“그, 그러죠, 여러분! 이러다가…… 싸우기도 전에 쓰러지겠습니다…….”
라스 일행은 결국 두 사람의 의견에 따라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헐떡이는 두 남자와 다르게 엘라시아와 릴리안은 멀쩡했다.
수분 보충으로 목을 축인 카이딘은 둘에게 물었다.
“너희는 왜 멀쩡한 거야?”
엘라시아가 먼저 답했다.
“엘프가 산 오르다가 헐떡인다는 말 들어 본 적 있나요?”
“……아니, 없지.”
엘프들에겐 등산이 곧 생활이다.
이 정도는 그녀에겐 어린애 장난에 불과했다.
“그럼 릴리안은? 넌 어째서 멀쩡한데.”
“난 체력 증강 마법을 사용했거든.”
“그럼 왜 우리한테는 안 걸어줘!”
“이럴 때 체력 단련이나 시켜 주려고. 너무 마법에만 의존하면 본인의 체력이 안 길러지잖아.”
“혼자만 마법 사용해 놓고……. 네가 그런 말할 처지가 되냐.”
“나는 몸으로 때우는 타입이 아니니까. 하지만 넌 다르잖아, 안 그래?”
“말솜씨…… 많이 늘었네.”
처음에는 일행들과 제대로 말도 섞지 않았던 릴리안이었으나.
지금은 카이딘을 논리로 박살 내 버릴 정도로 말을 잘한다.
어쩌면 카이딘이 말을 못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라스는 애초에 카이딘, 엔드라와 급이 다른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을 잃은 이후부터 칠흑을 쓰러뜨리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죽어라 수행을 거듭해온 결과, 라스는 강철과도 같은 체력을 가지게 되었다.
신체 능력으로 따지면 라스가 넘사벽이다.
카이딘은 엔드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에겐 역시 너밖에 없다.”
“하, 하하하……!”
체력 부족 때문에 짙은 동료애를 느낄 줄이야.
두 사람조차 예상치 못 한 전개였다.
* * *
앵글 브릿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된 라스 일행들.
야영을 할 때, 이들은 적어도 불이 부족할 걱정은 없었다.
불 그 자체인 라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하더라도 충분히 수면을 취한 다음에 이동하는 편이 좋다.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칠흑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라면 더더욱 이길 확률이 낮아진다.
그래서 이들은 밤이 된 김에 다리 한가운데에서 잠을 청한 다음 행군을 이어 가기로 했다.
도중에 엔드라가 앵글 브릿지에 관한 정보를 들려줬다.
“밤이 되면 몬스터들의 출몰 확률이 더욱 높아진다고 합니다. 어느 때보다도 불침번 근무에 더욱 신경을 써야 됩니다.”
“그러는 게 좋겠어. 안 그래도 아까부터 뭔가 싸한 느낌이 들거든.”
라스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누군가가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사냥꾼의 눈빛들이었다.
이 느낌은 해가 저문 이후부터 지금까지 계속 라스를 압박했다.
라스의 감은 제대로 적중했다.
취침에 들어가기 전이었다.
엘라시아가 외쳤다.
“뭔가가 와요. 조심하세요!”
무기를 꺼내 든 카이딘은 불만을 표출했다.
“아니, 이 빌어먹을 몬스터들은 잠도 못 자게 하네! 적어도 잠은 자게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안개 속에서 날아드는 다수의 비행 타입 몬스터, 드라벗이 날개를 활짝 펼치면서 라스 일행을 덮쳤다.
기다란 부리, 날카로운 발톱을 주 무기로 삼는 몬스터들이었다.
라스는 오른 손에 커다란 불구덩이를 만들어냈다.
손에서 벗어난 불구덩이는 공중에서 강한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불길에 휘말린 드라벗은 그대로 비명횡사했다.
몬스터가 많은 것이 오히려 라스에게는 기회가 된다.
라스의 능력, 인페르노 하트는 1대 다수에 사용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강한 화력을 지녔다.
라스의 강력한 공격 한 방으로 인해 드라벗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선빵필승’이었다.
릴리안이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카이딘과 엘라시아가 드라벗들 사이를 종횡무진 다니면서 어그로를 끌었다.
그 사이에 엔드라가 언령술을 준비했다.
허리에 있는 작은 물병 입구에 검지, 중지 손가락을 넣었다.
손가락 끝에 검은 물감이 묻어 나왔다.
그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공중에 각양각색의 문자들이 각인되었다.
“카이딘 님, 엘라시아 님! 뒤로 물러서세요!”
엔드라가 공중에 새긴 글자에 불이 붙었다.
글자들은 드라벗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드라벗과 충돌을 일으킨 글자는 그 자리에서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나머지가 시간을 끌어주는 사이에 릴리안이 강력한 범위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바람이여!”
강풍이 몰아쳤다.
강풍은 칼바람이 되어 드라벗의 날개와 피부를 사정없이 찢어 버렸다.
하늘을 빼곡하게 수놓았던 드라벗은 라스 일행 앞에서 한순간에 시체 더미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앵글 브릿지 밑에 있는 바다 수면이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해인(海人) 몬스터.
카이딘은 혀를 찼다.
“이제는 포라톤까지 나오냐?”
드라벗과 포라톤은 일반 모험가들이 상대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축에 속하는 몬스터로 분류된다.
둘 중 하나만 나타나도 애를 먹곤 하는데, 앵글 브릿지에서는 이런 몬스터들이 마치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작은 들짐승인 것처럼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라스는 릴리안에게 외쳤다.
“나한테 버프 걸어 줘! 내가 알아서 처리하고 올게!”
“알았어!”
릴리안은 빠르게 캐스팅을 마쳤다.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 라스는 공중으로 크게 도약했다.
목표는 포라톤의 머리다!
“헙!”
짧게 호흡한 라스는 오른 손바닥을 펼쳐 포라톤의 이마를 강하게 후려쳤다.
그러자…….
퍼어어어엉!
굉음과 함께 강한 폭발이 발생했다.
포라톤의 머리는 라스의 일격에 고깃덩이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라톤의 거대한 몸체는 수명을 다한 채 다시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앵글 브릿지 위에 무사히 착지한 라스는 손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냈다.
그러고는 ‘무슨 일 있었어?’ 하는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졸리니까 이제 그만 자자.”
* * *
중간에 아주 사소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라스 일행은 무사히 스카이 랜드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안개 지역은 딱 앵글 브릿지까지만이었다.
스카이 랜드에 도착한 순간, 오랜만에 접하는 탁 트인 시야에 카이딘은 환호를 질렀다.
“이제야 숨통이 확 트이네!”
다른 일행들도 카이딘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스카이 랜드는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천 년이 넘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아름다운 자연의 경관을 자랑했다.
그러나 겉모습에 속아선 안 된다.
“저 안에 앵글 브릿지 때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우글거리고 있겠죠?”
엔드라의 말이 정답일 확률은 매우 높았다.
하나 라스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시간 없으니 빨리 이동하자.”
“예.”
걸음을 떼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근처에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 차례도 아니다.
여러 차례 폭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설마…….’
라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폭음이 들려온 장소로 시선을 던졌다.
간간히 보이는 검은 연기의 흔적이 라스를 더욱 초조하게 만들었다.
‘티이나의 정보가 사실이었어!’
게다가 이 정보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폭음이 들리는 방향을 향해 빠르게 이동을 개시했다.
중간에 라스 일행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추종자 세력과 마주치게 되었다.
추종자들은 놀란 눈으로 라스를 바라봤다.
“저, 저 녀석들은 설마……!”
“라스다! 라스가 나타났다!”
“모두 집결해라! 녀석을 칠흑 님에게 보내선 안 된다!”
라스는 추종자들의 외침을 듣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칠흑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까지 온 게 헛수고로 돌아가진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라스에게는 천금같은 ‘복수의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라스는 동료들에게 외쳤다.
“정면 돌파한다! 이대로 놈들을 뚫고 칠흑이 있는 곳까지 향할 테니까 다들 정신 줄 꽉 붙잡고 따라와!”
라스의 오른손에 피보다 진한 색을 지닌 인페르노 하트의 불꽃이, 그리고 왼손에 화이트 플레임, 글레드의 불꽃이 깃들었다.
라스의 손에서 불이 치솟을 때마다 추종자들은 비명을 질러 댔다.
‘아직 멀었어!’
라스가 품은 복수라는 이름의 불은 오히려 갈수록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만큼은 내가 반드시 없애 주마, 칠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