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출범식 (1)
지원자들의 신체 능력 테스트가 모두 끝났다.
이것으로 두 번째 시험이 전부 끝나……진 않았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
마법사들은 신체 능력 테스트를 보지 않는다.
대신 마력 테스트라는 것을 본다.
마력을 얼마만큼 다룰 수 있느냐에 따라 해당 마법사의 역량이 결정된다.
초급, 중급, 상급, 마스터 마법사를 구분하는 가장 큰 척도가 바로 마력이다.
이 마력 테스트를 위해 나는 특별한 마력 측정기를 준비했다.
“이쪽이야.”
나는 바슬라를 데리고 시험장 구석으로 향했다.
바슬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이게 마력 측정기라는 건 아니겠지?”
“맞아.”
“내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데?”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마력 측정기는 커다랗게 생긴 푸른 돌덩이 같은 외형을 하고 있다.
블루로즈단 용병들을 뽑을 때에 사용했던 마력 측정기도 이와 같은 부류였다.
그러나 레드 라인 입단 테스트는 특별한 마력 측정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사이즈의 마력 측정기.
사파이어처럼 생긴 이것이 바로 내가 특별히 준비한 휴대용 마력 측정기다.
바슬라는 휴대용 마력 측정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마력 측정기 맞아?”
“어. 이미 여러 차례 성능 테스트도 했으니까 안심하고 사용해도 돼.”
참고로 이 마력 측정기는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세올라의 차원 이동 마법에는 무수하게 많은 마력 측정기가 사용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마력 측정기는 너무 크다.
공간을 많이 차지할뿐더러 안정적인 차원 관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 개의 마력 측정기가 필요한데, 거대한 돌덩이들을 한 공간으로 모으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세올라는 본격적인 차원 이동 마법 연구에 들어가기 전에 마법사들과 협업해 휴대용 마력 측정기를 개발했다.
사이즈만 줄였을 뿐 위력은 기존의 마력 측정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아니, 오히려 휴대용 마력 측정기가 더 효율이 좋다.
오늘 레드 라인 입단 테스트를 위해서 연구소 측에 양해를 구하고 이렇게 하나를 가져오게 되었다.
몰래 가져온 건 아니다. 절대로.
바슬라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와…… 이거, 상품으로 팔면 불티나게 팔리겠는데? 특히 마법사들한테 인기 많을 거야.”
“안 그래도 이미 유통 경로 다 확보해 뒀어. 조만간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할 거야.”
“역시 로그 상단의 대표답네.”
“이제 곧 레드 라인 수장이라는 타이틀도 달게 되겠지. 아무튼 이거 끝나고 인적성 테스트도 봐야 하니까 후딱 하자. 룰은 대충 알지?”
“어, 알고 있어. 측정기를 빛내기만 하면 되잖아?”
“맞아. 마법사라가 역시 잘 아네.”
마력 측정기의 기본 골자는 같다.
측정기가 빛을 뿜어낼 만큼 마력을 불어넣으면 된다.
빛의 세기가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를 통해 해당 마법사의 등급을 알 수 있다.
바슬라는 자신이 가진 마력 전부를 마력 측정기에 불어넣기 시작했다.
많이 해 본 솜씨다.
하지만 쉽진 않을 것이다.
‘상급 마법사가 아니면 저 마력 측정기를 빛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
독자적인 정보에 의하면, 바슬라는 중급 정도의 실력을 지닌 마법사라고 알고 있다.
중급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는 상급을 원한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으니 말이다.
‘자, 어디 한번 그 마력 측정기를 빛내 보시지!’
이번에는 운으로 안 될 테니까 말이다.
계속해서 마력을 불어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측정기는 묵묵부답이었다.
이렇다 보니 바슬라의 얼굴에 초조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거, 제법 어려운데……!”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아, 알고 있어!”
당연한 말이지만, 시간을 무제한으로 줄 생각은 없다.
많이 줘 봤자 5분, 그 이상 줄 생각은 없다.
바슬라는 이를 악물었다.
손이 부르르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력 측정기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런!”
바슬라의 표정이 변했다.
저건 마치…….
딸꾹질이 나올랑 말랑 한 얼굴이었다.
설마 또 여기서 기적이 벌어지나?
럭키 매지션, 보여 주나요!
‘그럴 리가. 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딸꾹질 한 번으로 순식간에 상급의 수준까지 올라가진 않겠지.’
그러나 나는 이 순간 깨달았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을.
“히끅!”
필살의 딸꾹질 전법.
그러자 여태껏 무반응이었던 마력 측정기가 맹렬하게 빛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거의…….
‘마스터에 근접한 수준이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경우를 다 봤나!
일순간 빛을 뿜어내던 마력 측정기는 삽시간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성공했음에도 본인조차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바슬라는 나를 바라봤다.
“성공이지?”
“…….”
짧지만 그래도 조건은 달성했다.
진짜 운 하나는 좋은 놈이다.
스텟을 행운에다가 집중 투자했나?
보면 볼수록 신기한 캐릭터다.
* * *
3차 인적성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사실 2차가 가장 어렵고, 그 다음이 1차, 마지막으로 3차다.
3차는 인성 쓰레기만 아니면 웬만하면 다 합격한다.
기대주로 뽑은 게럴과 제더필을 비롯해 내 눈에 띄었던 몇몇 유망주들은 어렵지 않게 3차까지 무사통과했다.
총 서른두 명의 레드 라인 1기 멤버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아.”
단상으로 올라온 라그너는 최종 합격한 멤버들에게 말했다.
“오늘 여러 가지 테스트들을 보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했다는 의미로 로인 님께서 특별히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쪽으로 이동하시죠. 그 자리에서 앞으로의 방향성, 레드 라인의 운영 방침 등을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출범식 일자도요.”
우리는 레드 라인 멤버들을 데리고 나울의 가장 큰 술집으로 향했다.
오늘을 위해서 가게를 통째로 빌렸다.
술자리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100퍼센트 참석해 왔던 파이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르시아, 에나와 함께 B팀으로 파견 나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최종 합격한 레드 라인 1기생들과 함께 단체로 술잔을 들었다.
건배사 요청이 들어왔다.
갑자기 직장 다닐 때가 떠올랐다.
“어흠! 뭐, 거창한 말은 준비 안 했고요. 제가 ‘레드 라인!’이라고 외치면 ‘파이팅!’이라고 후창하면 됩니다. 자, 레드 라인!”
“파이팅!”
짠!
유리잔이 경쾌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가게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던 때였다.
라그너가 잠시 흐름을 끊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아아! 잠시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더 취하기 전에 일단 중요한 사항부터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집중해 주세요.”
아직 레드 라인이 어떻게 활동할지, 어떤 성격을 지닌 조직으로 운영될 것인지, 이들은 아마 듣지 못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통해 그것을 간략하게나마 알려 주기로 미리 라그너와 이야기를 나눈 상태였다.
“우선 ‘레드 라인’은 용병이 아닌 ‘기사단’으로 활동하게 될 예정입니다. 출범식을 가지고 나서부터 여러분들은 모험가, 용병, 기사 지망생이 아닌 기사라는 직책을 가지게 됩니다. 공식 후원은 바우너 그랑트 가문이, 그리고 금전적인 지원은 로그 상단이 도맡게 될 겁니다.”
기사단으로 승급시키는 데에 있어서 바우너가 많은 도움을 줬다.
귀족가가 전폭적으로 도와주니 생각보다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델리피나 전기》에서 나오는 기사의 개념은 비교적 간단했다.
반드시 귀족인 자만 기사가 되는 게 아니다.
귀족을 따르는, 혹은 지금의 레드 라인처럼 귀족가에게 이름만 빌리고 정식으로 출범식을 가지면 기사단으로 승급할 수 있다.
규모는 최소 서른 명 이상.
그래서 난 일부러 이 최소 조건을 맞추기 위해 서른 명 이상의 인원을 뽑았다.
라그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다들 아시겠지만, 여러분들이 따라야 할 분은 로인 님이십니다. 앞으로 로인 님을 위해 충성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
레드 라인을 이끄는 기사단장.
그게 바로 나, 로인이다.
“출범식은 정확히 일주일 후에 이곳, 나울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전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아, 로인 님, 혹시 하실 말씀이 계신가요?”
“물론 있지.”
나는 다시 잔을 들었다.
“하고 싶은 말. 오늘은 잔뜩 마시고 취하자!”
“역시 우리 단장님이십니다!”
“로인 단장님, 충성, 충성!”
고리타분한 순간은 끝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음 놓고 즐기자!
* * *
2일 후.
나는 바우너와 함께 어느 공터를 찾았다.
바우너는 공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어때요?”
“음…… 좀 더 넓었으면 좋겠는데? 훈련 장소 같은 것도 근처에 마련하고 싶거든.”
“그럼 딱 알맞은 곳이 있어요. 안내할게요.”
“미안해. 안 그래도 바쁠 텐데. 괜히 나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게 해서.”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인 형의 부탁인데, 무조건 해야죠.”
바우너 그랑트는 나를 향해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하긴 내 덕분에 나울의 성장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안 고마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바우너가 백작이 된 것도 나의 공이 매우 컸다.
어쩌면 바우너보다도 내가 나울을 키운 일등 공신일지도 모른다.
바우너와 함께 나는 다른 공터를 찾았다.
R팀 본부처럼 레드 라인 기사단도 거점을 만들어 두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날 때마다 바우너와 함께 땅을 보러 다니는 중이다.
“여긴 어때요?”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제야 겨우 마음에 드는 거점지를 찾았다.
“좋아. 여기로 하자. 라그너한테는 내가 말해 둘게.”
“네, 알았어요.”
“바쁠 텐데 어서 들어가 봐.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중에 식사나 한번 해요.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오냐, 알았다.”
바우너를 먼저 보낸 이후에 나는 라그너를 불렀다.
호출을 받은 라그너는 바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로인 님.”
“이 공터를 우리 레드 라인 기사단의 거점지로 활용할 거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말씀만 하시면 오늘이라도 바로 공사 들어가게끔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땡큐.”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레드 라인 기사단은 당분간 임시 거처를 이용할 예정이다.
거점도 거점이지만, 다른 것들도 문제다.
“기사단 마크하고 갑옷 디자인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그게…… 일단 시안을 들고 오긴 했습니다만, 솔직히 로인 님이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보여 줘 봐.”
“예. 여기 있습니다.”
사락, 사라락.
빠르게 종이를 넘겼다.
음…… 라그너가 한 말이 대충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뭔가 2퍼센트씩 부족하네. 실력 있는 디자이너 어디 없어?”
“있긴 합니다만, 로인 님이 불편해하실지도 모를 거 같아서 일부러 말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내가 불편해한다고? 난 디자이너랑 척을 진 적이 없는데?”
“그런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누군데그래?”
이쯤 되니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라그너는 ‘유명한 디자이너’라 생각되는 존재의 이름을 언급했다.
“체릴 양입니다.”
“…….”
그 스토커 아가씨인가.
라그너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