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68화 (168/240)

# 168

레드 라인 (2)

로그 상단에서 처음으로 사병들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간 직후 많은 사람들이 레드 라인에 들어오고 싶다는 지원서를 제출했다.

1차 모집 인원 숫자는 대략 삼십여 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서를 제출한 사람은 천 명이 넘어갔다.

모집 기간도 굉장히 짧았다.

10일 정도밖에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많은 지원자들이 몰릴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 못했다.

‘역시 돈의 힘인가?’

페이를 굉장히 높게 걸었다.

아마 현존하는 그 어떠한 사병 조직도 우리 로그 상단에서 지급하는 페이를 따라잡진 못할 것이다.

즉, 돈으로 찍어 누른 것이다.

‘역시 돈이 최고야.’

라그너를 꼬드겨 로그 상단을 만들기를 정말 잘했다.

이거 아니었으면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도 못 만들었겠지.

천 명이 넘어가는 지원자들이 제출한 지원서를 일일이 다 살폈다.

서류 전형 통과 기준은 블루로즈단 R팀 용병 모집 때 적용시켰던 기준과 매우 비슷하다.

전과자는 안 된다.

그리고 내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할 만한 사람들을 우선순위로 삼기로 했다.

지원서를 확인하던 도중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게럴? 가만, 바슬라도 있잖아?”

그 딸꾹질 마법사도 있나?

마법사는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럭키 매지션보다 차라리 다른 마법사를 뽑는 게 더 좋지.’

게럴은 그렇다 치더라도 바슬라는 영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바슬라에게는 미안하지만, 녀석의 마법은 너무 복불복이다.

중요한 순간에 딸꾹질이 나와 영창을 방해하니, 본인이 원하지도 않은 마법이 튀어나올 때가 많다.

그중에는 바슬라의 현재 능력으로 발현하기 힘든 고차원 마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럭키 매지션’이라 불리고 있었다.

일단 바슬라의 지원서는 따로 빼놓기로 했다.

합격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보류 개념이다.

나중에 바슬라 말고 다른 실력 있는 마법사가 보이면 난 주저 없이 바슬라를 탈락시킬 것이다.

하나 문제가 발생했다.

‘……뭐야. 왜 마법사가 없어?’

지원자 중에서 마법 포지션을 지닌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바슬라 한 명뿐이다.

‘내가 잘못 본 건가?’

다시 한 번 확인을 해 봤지만, 그건 아니었다.

망할, 마법사가 없으면 곤란한데.

마법사가 조직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꽤 크다.

실제로 에나와 베라는 우리 R팀 일원으로서 많은 활약을 해 왔다.

에나의 경우에는 용암 동굴뿐만 아니라 식인 호수에서도 맹활약을 펼친 적이 있었다.

베라는 언제, 어느 때라도 1인분 이상의 활약을 꾸준히 해 왔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더 마법사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천 명이 넘어가는 지원자 중에 마법사가 바슬라 한 명밖에 없다니.

“…….”

갑자기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탈락시키고 마법사 길드에 차라리 쓸 만한 상급 마법사를 우리 쪽에 달라고 할까?

그러는 편이 좋아 보이는데…….

일단 나는 마법사 길드 측에게 연락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기간트에게 직접 받은 수정구가 있다.

이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으면, 영상통화처럼 기간트와 직접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원거리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나는 수정구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파란 빛이 새어 나오더니, 기간트의 상반신을 반투명한 홀로그램처럼 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드르렁……!”

자고 있다.

타이밍이 안 좋네.

그냥 나중에 원거리 통신을 시도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정구를 끄려 할 때였다.

“……켁켁!”

갑자기 기간트가 숨을 헐떡거렸다.

수면무호흡증 같아 보였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한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던데…….

어쩔 수 없네.

“기간트 님!”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기간트가 화들짝 놀라 깼다.

눈을 끔뻑이면서 주변을 살폈다.

고령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습이었다.

“어, 어흠! 로, 로인 님이십니까!”

“안녕하세요, 기간트 님.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아직 해 떨어지려면 멀었는데, 꾸벅꾸벅 조실 정도면…….”

“허허허, 오늘따라 유독 낮잠이 쏟아지는군요. 점심을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러나 봅니다.”

식곤증이라.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편집자 생활을 할 때, 점심밥 먹고 회사에 들어와서 원고를 보려고 하면 원고가 너무 눈에 안 들어오는 때가 있었다.

이유는 바로 ‘졸려서’다.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이라 할지라도 기간트도 결국 사람이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봤다는 것에 의의를 두도록 하자.

“다름이 아니고…… 제가 이번에 사병 조직을 하나 꾸릴 예정이거든요. 마법사가 필요한데, 혹시 추천해 주실 만한 마법사가 있습니까? 가급적이면 상급 이상이 좋겠습니다.”

“상급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기간트는 통화를 중단하고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기를 잠시 후…… 기간트는 미안하다는 표정과 함께 말했다.

“죄송합니다. 여유가 되는 상급 마법사들이 없군요. 요즘 들어서 마법사들을 찾는 곳이 늘어서요.”

“그럼 중급 마법사도 안 됩니까?”

“중급까지 내려간다면…… 사람은 있지만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는 마법사들뿐입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괜찮을 리가 있겠나?

일반 전사라면 신인이어도 능력만 있으면 상관없다. 하지만 마법사는 무조건 경력직으로 뽑아야 한다.

마법사가 어떻게 활약하느냐에 따라 레드 라인 멤버들의 목숨이 크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신인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만, 기회를 준답시고 추종자나 검은 괴물과 싸우는 전장 한복판에 신인의 등을 떠밀었다가는 무의미한 희생만 발생할 것이다.

지금 당장 실전 투입이 가능한 마법사가 필요하다.

근데 정작 내가 원하는 마법사가 없다.

‘이러면 골치 아픈데.’

우선 나는 기간트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기로 했다.

“바로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마법사가 필요한지라……. 죄송합니다, 기간트 님. 괜히 제가 기간트 님에게 헛수고를 하게 만들었네요.”

“허허, 아닙니다. 로인 님이 저희 마법사 길드를 위해 해 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요. 혹여나 나중에라도 부탁하실 일이 생긴다면, 언제든 저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는 점심시간 바로 직후 말고 다른 시간대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기간트는 내 말에 멋쩍은 듯 웃었다.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선택지가 없네.’

한숨을 내쉬면서 바슬라의 지원서를 합격 처리했다.

‘누가 럭키 매지션 아니랄까 봐, 서류 전형 심사에서도 운 좋은 거 봐라.’

이 정도 운이면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과연 2, 3차 시험까지 통과할 수 있을까?’

레드 라인 입단 시험은 운 하나로 통과할 수 없다고, 후후훗!

* * *

1차 서류 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들의 숫자는 총 백쉰 명.

이중에서 서른 명만이 레드 라인 1기 타이틀을 달게 된다.

속속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는 지원자들.

고르고 고른 사람들뿐이었기에 하나같이 스펙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중에는 내가 통과시킨 게럴과 바슬라도 있었다.

“로인!”

게럴이 손을 흔들며 내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간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지?”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게럴과 바슬라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중에 게럴이 목소리를 슬쩍 낮췄다.

“우리, 친구 아이가? 열심히 할 테니까 잘 좀 봐줘라. 하하!”

“그거야 너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아무리 아는 사이라 하더라도 레드 라인 입단 시험만큼은 무조건 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목숨이 달린 일이니까.

페이가 센 만큼, 위험한 일을 많이 하게 될 거다.

이들은 그걸 각오하고 여기까지 왔다.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한다.

혹은 강해져야 한다.

현재 강한 사람, 아니면 앞으로 강해질 사람을 뽑는 것이 2, 3차 시험의 목적이다.

2차는 신체 능력 테스트.

3차는 인성 테스트를 거행할 예정이다.

나는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는 블루로즈단 R팀 용병들을 데리고 도우미로 써먹기로 했다.

이중에는 드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인성 테스트라는 걸 보니까 생각났는데 요즘 로인 대장 인성 문제가 쏙 들어갔네? 자주 언급이 안 되는 거 같아. 섭섭할 정도야.”

“그걸 왜 섭섭해합니까, 선배?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고 가서 열심히 일해 주세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공짜로 용병들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일당은 주기로 했다.

신체 능력 테스트를 위해 모여드는 지원자들.

바슬라는 마법사 포지션으로 지원했기에 신체 능력 테스트에서 제외되었다.

내심 게럴이 얼마나 강해졌을지 궁금해졌다.

체력 테스트를 시작으로 근력, 그리고 대전 테스트까지.

게럴은 100점 만점에서 92점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 주면서 당당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경험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구나.’

처음 만났을 때의 게럴과 지금의 게럴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게럴도 용병 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을 테니 말이다.

게럴도 게럴이지만, 눈에 띄는 인물이 또 있었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서 임시로 강사 일을 했을 당시에 내가 맡았던 F반.

그 F반의 학생들 중 몇몇이 레드 라인 1기 멤버가 되기 위해 지원했다.

라스에게도 재능을 인정받았던 소년 기사 지망생, 제더필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못 본 사이에 제더필은 늠름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목검을 들고 우리 R팀 단원과 대련 테스트를 시행했다.

탁!

검을 옆으로 빗겨 쳐 낸 제더필은 반대편 측면으로 파고들어 상대방의 빈틈을 노렸다.

“이런……!”

측정관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제법이네.’

그새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대련뿐만 아니라 체력, 근력, 지구력 등에서도 우수한 능력을 뽐냈다.

측정관을 구석까지 몰아붙이는 기염을 토해내면서 그대로 테스트는 종료되었다.

최종 평가 점수는 96점.

게럴보다 높았다.

때마침 드레인이 다가와 제더필에 관한 특이 사항을 들려줬다.

“저 소년, 지금까지 신체 능력 테스트 본 지원자 중에서 최고점을 받았어.”

“그래요?”

“어. 듣자하니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이라던데? 보통 그곳 출신들은 유명 기사단을 1지망으로 두지 않나? 그런데 왜 레드 라인에 지원한 거지?”

“그만큼 레드 라인의 위상이 드높다는 뜻이겠죠.”

“얼씨구? 하여간 말은 잘해요.”

반쯤 농담으로 한 말이다.

제더필이 지원한 이유는 아마 나일 것이다.

이건 자화자찬이 아니라 진짜다.

신체 능력 테스트를 마친 F반 출신 소년, 소녀들은 나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강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어. 다들 잘 지냈어? 그나저나 많이들 강해졌네. 이제는 내가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성장했어.”

제더필은 내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아직 멀었습니다. 강사님의 밑에서 계속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모든 테스트를 통과해서 당당히 레드 라인 1기 멤버 명단에 이름을 올릴 테니, 지켜봐 주세요!”

“그래, 힘내.”

“예!”

이것이 스승의 마음일까?

제자들이 열심히 힘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절로 그려졌다.

열심히 가르친 보람이 있군.

‘나중에 원래 세계로 돌아가면, 편집자 때려 치고 선생이라도 해 볼까?’

숨어 있던 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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