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62화 (162/240)

# 162

뒤집힌 도시, 리플란 (3)

공중을 향해…… 아니, 리플란을 향해 날아올랐다.

리오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점점 더 나에게 가까이 붙었다.

속도가 워낙 빨랐기에 리오나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등에 업고 가는 것보다 이렇게 안고 가는 게 정답이었어.’

그러나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쩌저적!

건물 한 채의 밑동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했다.

‘망할!’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거, 떨어진다!

‘하필이면 지금이냐……. 빌어먹을!’

타이밍이 너무 안 좋다.

난 지금 양손으로 리오나를 붙잡고 있는 터라 건물이 떨어져 내린다 하더라도 박살 낼 수 없었다.

게다가 떨어지는 곳이 바로 내 머리 위였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나를 노리고 건물이 떨어지다니, 이 정도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 봐도 무방해 보였다.

어쩐다.

머리를 빠르게 굴리기 시작했다.

가속이 붙은 상황에서 이대로 한 손을 빼면, 리오나가 오히려 속도를 버티지 못하고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

‘차라리 밑으로 갔다가 다시 위로 올라올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차라리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

근처에서 제나드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대로 올라가라! 저건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니까!”

스릉!

제나드는 대검을 꺼내 들었다.

리오나를 안고 있는 나와 달리 제나드는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검날을 세운 뒤에 떨어지는 건물을 그대로 일도양단(一刀兩斷) 내 버렸다.

건물은 두부처럼 깔끔하게 양쪽으로 잘려 나갔다.

‘저 정도 실력은 되어야 단장이라 불리는구나.’

용신단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저 정도의 체술을 보유하고 있다니, 소름이 돋을 정도다.

동시에 ‘제나드가 적이 아닌 동료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다.

제나드 덕분에 나는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리플란에 거의 근접할 무렵, 갑자기 무게중심이 바뀌었다.

공중에서 반 바퀴 도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중력이 바뀌는 순간, 우리는 리플란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또 다른 문제가 펼쳐지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수십 미터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꼴이 되어 버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건 낙사 각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상식이 안 통하지!’

소설 속으로 들어온 것부터 나는 이미 상식을 등진 남자가 되어 버렸다.

방법은 뭐다?

그냥 두 다리로 착지한다!

쿠우웅!

온몸이 전율했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용신단이 만능은 아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다.

그래도 낙사를 면한 게 어디란 말인가?

“후우우……!”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리오나는 실눈을 떴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모양인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괘, 괜찮아? 너, 살아 있는 거 맞지?”

“이렇게 멀쩡히 숨 쉬고 있잖아. 심장도 뛰고 있고. 두 다리, 두 팔도 제대로 붙어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도대체 너는 정체가 뭐야?”

“블루로즈단 R팀 대장, 로인.”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리오나가 듣고 싶은 건 이 대답이 아닐 것이다.

그 이상의 것이겠지.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선은 딱 여기까지였다.

과정에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는 무사히 리플란에 도착했다.

제나드는?

“단장! 어디 있어요?”

목소리를 높였다.

쩌렁쩌렁 울리는 나의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서로 합류하는 게 중요하다.

“단장부터 먼저 찾는 게 좋겠어.”

리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 자체는 허름하기 짝이 없었다.

풍화되어 가는 건물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버텨 왔던 걸까?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앞으로 나아가던 순간,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리오나도 느낀 모양인지 반사적으로 검을 빼 들었다.

“뭔가…… 있어.”

리오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형체 없는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령(死靈)이다.

일반적인 사령은 아니었다.

리플란의 주민이었다가 사령술사의 술법에 희생되어 몬스터로 재탄생한 존재들로 보였다.

이미 리오나에게 리플란의 옛날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사령 몬스터가 튀어나올 줄은 예상하고 있었다.

사령술사가 자신만의 군대를 만들기 위해 도시 주민들을 노렸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숫자가 너무 많아!’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다.

용의 숨결로 싹 쓸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레임스 일행의 위치가 파악되지 않았어. 멋대로 용의 숨결을 사용하면 그 녀석들까지 휘말릴 수도 있잖아.’

여러모로 제약이 걸렸다.

일단 먼저 오는 놈을 향해 발 차기를 먹였다.

하나 내 발은 사령 몬스터를 관통해 버렸다.

“어랏?”

어느새 뒤로 돌아들어 간 사령은 내 머리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내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잘려 나갔다.

내가 가한 공격은 무시당했는데, 사령이 가한 공격은 제대로 먹혀들어 갈 뻔했다.

뭐 이런 불공평한 상황이 다 있나!

리오나가 나에게 팁을 알려 줬다.

“사령은 물리 공격이 안 통해! 마법 대미지로만 공격할 수 있어!”

나는 마법을 사용할 줄 모른다.

아니지. 한정된 몇 개의 기술만 사용할 줄 안다.

용의 숨결이라든지, 드래곤 클로라든지, 용언 마법이라든지.

하나 용의 숨결은 지금 사용하기엔 너무나도 큰 기술이고, 드래곤 클로는 물리 공격이다.

그리고 용언 마법은 마법이긴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나 통하지, 유령들에게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답은 이것뿐이다.

“흡!”

권왕 휴즈가 알려 준 방식을 사용하기로 했다.

양손과 양발을 마나로 감쌌다.

리오나도 자신의 검에 마나를 덧씌워 사령들을 베어 넘기고 있었다.

마나를 두르면 물리 공격도 마법처럼 대미지가 들어간다.

이 특성을 이용한 것이다.

‘이래서 검사도 마나를 다룰 줄 알아야 하는구나!’

아까 나를 공격했던 사령의 머리와 턱을 붙잡았다.

위, 아래 방향으로 놈의 턱을 찢어 버렸다.

-기에에에에에엑!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사라지는 사령.

성불이라도 한 걸까?

정확히 알지는 못한다.

당장은 놈을 쓰러뜨렸다는 게 중요하니까.

사령의 숫자가 워낙 많았기에 정면 돌파 방식은 사용할 수 없었다.

치고 빠지고, 또 치고 빠지고…….

나답지 않은 싸움 전략이었다.

성격 같으면 그냥 주먹 막 휘두르면서 ‘다 덤벼!’ 하고 외쳤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로인! 이쪽이야!”

리오나가 내게 손짓했다.

우리는 구석 쪽으로 몸을 날렸다.

사령은 우리 둘을 끝까지 쫓아왔다.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곳을 뱅글뱅글 돌았다.

도중에 막다른 길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막혀 있으면 어떻게 한다?

‘뚫어 버리면 그만이지!’

벽을 박살 내 버렸다.

내 주먹은 건물도 쪼갠다.

그런데 이런 벽 하나 못 뚫는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계속해서 도망치고 도망쳤지만, 사령 녀석들의 추격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계속 이렇게 영원히 도망칠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대장! 이쪽입니다!”

이 목소리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초췌한 얼굴을 한 레임스가 서 있었다.

“레임스! 살아 있었어?”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러나 레임스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안부 따위를 물을 때냐? 빨리 이쪽으로 오라니까! 리오나 대장 데리고 어서 와!”

“오케이!”

나는 다시 리오나를 안아 들었다.

적지 않게 당황하는 리오나였지만, 그래도 일단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은 모양인지 다시 한번 얌전히 내게 안겼다.

나는 크게 도약했다.

일단 담벼락에 착지한 뒤, 건물 외벽을 따라 레임스가 있는 곳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레임스는 빠르게 이동했다.

“이쪽으로!”

우리는 레임스를 따라 고층으로 이동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갈 때마다 레임스는 철문을 닫았다.

9층 정도에 도착했을 무렵이 되어서야 그제야 우리는 사령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안 올라오는 거야?”

나는 혹시나 해서 레임스에게 질문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레임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답했다.

“……저놈들은 고층까진 못 쫓아오더군. 여기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알아낸 정보야.”

“그래? 다행이네.”

솔직히 다행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도망치는 데엔 성공했지만, 결국 사령들에 의해 갇힌 셈이었으니 말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될 무렵.

리오나는 굳은 얼굴로 레임스를 노려봤다.

“묻고 싶은 게 산더미야.”

“……죄송합니다, 대장님.”

레임스는 본인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 리오나였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생존자는?”

나는 리오나를 대신해서 질문을 던졌다.

“나를 포함해서 셋뿐이야.”

“전부 사령에게 당한 거야?”

“아니.”

레임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령에게 당한 게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한테 당했다는 건가?

갑자기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그전에 레임스는 나와 리오나에게 장소 이동을 제안했다.

“꼭대기 층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도 안전한 건 아니니까요.”

일단 레임스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는 사령들을 완전히 따돌리고 난 다음에 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 * *

우리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최상층 위에는 나와 리오나, 제나드가 방금 전까지 서 있었던 지면이 천장 대신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보니 참으로 신기한 광경이었다.

아래에서 뒤집힌 도시를 올려다볼 때에도 놀랐는데, 그 반대의 풍경 역시 심상치 않았다.

‘보면 볼수록 놀라운 도시야.’

지금까지 접했던 벨레너의 13난제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스케일이 큰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감상에 젖기에는 너무 이르다.

리오나는 레임스로부터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용병들의 이름을 전해 들었다.

이후에 리오나는 짧게나마 그들의 명복을 빌어 줬다.

리오나는 블루로즈단 대장들 중에서 부하들을 가장 아끼는 대장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일까?

B팀 용병들은 리오나를 향해 높은 충성심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레임스다.

그런 레임스가 설마 리오나의 말을 무시하고 이곳까지 오다니…….

‘참 별일이 다 있네.’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한편, 리오나는 레임스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너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소중한 부하들이 목숨을 잃었어. 네 행동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설마 모르겠다고 하진 않겠지?”

“……죄송합니다, 대장님.”

리오나도 화가 많이 날 것이다.

내가 리오나의 입장이 되었더라도 같은 소리를 했을 거다.

아니, 어쩌면 잔소리만으로 끝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리오나의 쓴소리가 이어질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령들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변했다.

“대화 도중에 미안한데, 갑자기 쟤들 왜 저래?”

나는 레임스에게 사령들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순간 레임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큰일이야! 녀석이 온다!”

“녀석이 누군데?”

“동료들을 죽이고 우리를 여기에 고립시킨 놈!”

레임스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이었다.

흑발의 젊은 남자가 사령들과 맞붙었다.

오로지 혼자서 사령들을 상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한 손으로 사령을 잡더니, 입으로 사령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우적, 우적!

처음 보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남자는 마치 괴물 같았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정체불명의 괴물.

몬스터를 삼키는 남자를 보며 레임스는 두려움에 휩싸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칠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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