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
뒤집힌 도시, 리플란 (2)
나는 리플란을 본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놀랄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동굴 끝에 이렇게 넓은 장소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게다가 천장에 도시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광경 또한 나에게 경이로 다가왔다.
심지어 도시 규모가 작은 것도 아니었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매우 넓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나는 리플란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
그저 벨레너의 13난제 중 하나라는 것 정도밖에 모른다.
제나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리오나는 벨레너에게 꽤 많은 정보를 들은 모양인지 자신이 아는 정보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리플란은 전쟁이 싫어서 지하로 은둔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야. 우리가 지나온 동굴은 지하 도시로 향하는 입구지.”
“지하 도시라…….”
만화, 애니, 영화에서 지하 도시의 존재를 가끔 접하긴 했다.
물론 인간의 상상을 기반으로 만든 요소였기에 각 매체마다 다르게 표현되긴 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지하 공터 천장에 위치한 거대 도시, 리플란.
리오나는 계속 설명을 이어 갔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지하 도시에 악랄한 사령술사 하나가 잠입하게 되었지. 그 사령술사는 마침 사람들을 희생시켜 자신만의 사령 군단을 만들 계획을 꾸미고 있었어. 사령술사는 지하 도시가 자신의 먹잇감이 되기에 적합한 요소를 전부 갖췄다고 생각했어. 사람 숫자도 많을뿐더러, 여기서 학살을 한다 하더라도 외부로 밝혀질 일도 없었기 때문이지. 왜냐하면 지하 도시 리플란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장소였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이렇게 깊은 곳에 숨어 지내는데, 과연 누가 알아차릴까?
“지하 도시 사람들은 결국 잠입한 사령술사와 목숨을 다해 싸웠어. 사령술사를 쓰러뜨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사령술사의 마지막 저주는 피하지 못했지.”
“그 저주가 뭔데?”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거.”
뒤집힌 도시.
이것이 사령술사가 마지막으로 리플란에 남긴 저주의 정체였다.
“벨레너 님께 들은 바에 의하면, 도시 한가운데에 ‘중력의 핵’이라는 아이템이 있대. 이 아이템이 리플란을 거꾸로 매달아 버린 원인이라고 하더라고. 이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야. 오로지 벨레너 님만 가지고 있던 고급 정보지.”
“오호, 그래?”
타임 그레이브에서 벨레너를 만났던 일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하나 도움만 된 건 아니었다.
“사실…… 레임스한테도 벨레너 님이 해 준 이야기를 정리해서 들려준 적 있어. 내가 만약 이 이야기를 레임스에게 말하지만 않았더라도 레임스가 이곳으로 올 생각은 안했겠지.”
리플란까지 오는 동안 리오나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있었다.
레임스와 B팀 용병들이 고립된 이번 사건은 리오나 본인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말.
아마 이것을 가리켜서 한 말일 것이다.
하나 리오나가 이런 일까지 염두에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자책에 빠지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다.
“일단 레임스 일행부터 찾고 나서 생각해 보자. 후회는 그때 해도 늦지 않아.”
“……응.”
리오나는 내 말을 듣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수색은 하긴 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감이 안 잡혔다.
리오나도 마찬가지였다.
도시는 위에 매달려 있다.
그럼 저기까지 가면 되나?
때마침 제나드가 입을 열었다.
“일단 위로 가기 전에 밑부분부터 먼저 수색을 해 보는 게 좋을 거 같군.”
뒤집힌 도시, 리플란 아래에는 다수의 건물 잔해들이 박살 난 상태로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들이 뭔지 몰랐다.
그러나 곧 나는 밑에 깔린 건물 잔해들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었다.
갑자기 위쪽에서 ‘우르르르르…….’ 하는 불길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리 셋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천장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건물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뒤로 물러서!”
제나드는 우리에게 경고했다.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쿠우우우웅!
건물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후폭풍으로 강력한 먼지바람이 불어와 우리를 덮쳤다.
나는 두 사람에게 외쳤다.
“엎드려요!”
군대에 있을 당시에 배웠던 후폭풍 대처 방식이다.
강력한 먼지 폭풍이 우리 몸 위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콜록, 콜록!”
리오나가 기침을 토해 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휴, 죽겠네, 죽겠어!”
미세먼지 상태가 매우 나쁨이다.
한국에 있을 때가 절로 떠올랐다.
한때 미세먼지 때문에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
안 그래도 월급은 적은데, 건강 생각해서 비싼 공기 청정기를 무리해서 구입했던 것도 생각나고.
본의 아니게 옛 일을 떠올렸다.
나는 리오나를 불렀다.
“저 위에 있는 건물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어?”
“그런 거 같은데?”
“중력의 핵이라는 아이템 때문에 도시들이 저기에 매달려 있는 거라며?”
게다가 레전드급 아이템으로, 꽤나 고등급이라 들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과 거의 동일한 가치를 지닌 희귀 아이템이다.
그렇다면 위력도 꽤 강력할 터.
리오나 대신 제나드가 자신의 생각을 들려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력의 핵의 영향력이 약해져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 아이템이라는 게 영구적인 물건도 아니고 말이야.”
일리가 있는 말이다.
위에서 건물이 비정기적으로 계속 떨어진 모양인지, 이를 예상하지 못했던 수많은 모험가들의 시체가 건물 잔해에 깔려 있었다.
밑 지역부터 수색하기로 했는데…….
‘만약 여기서 발견된다면, 살아 있을 거 같진 않군.’
다른 것도 아닌 건물이 하늘 위에서 떨어지는데, 과연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평범한 인간이라면 불가능하겠지.
아니, 아무리 잘 훈련된 용병이라도 힘든 일일 것이다.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건물이 낙하하는 일이 없었다.
건물 잔해에 깔린 사체를 들여다봤다.
“우웩.”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이 나왔다.
시체 보는 일에 나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
갑옷을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블루로즈단의 표식은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디자인도 다르다.
‘좋아, 다음.’
이동을 하려던 찰나였다.
위에서 또다시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집 한 채가 마치 나를 노린 것처럼 내 머리 위쪽으로 빠르게 낙하했다.
나는 자세를 낮췄다.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서 타이밍을 쟀다.
‘지금이다!’
오른 주먹을 빠르게 휘둘렀다.
‘투웅!’ 소리와 함께 집 한 채는 반파가 되면서 각각 좌우로 반파되어 튕겨 나갔다.
방어력 위주의 대형 몬스터도 때려잡는 내 주먹이다.
이 정도는 장난에 불과하다.
하지만 10층, 11층쯤 되는 건물이 떨어지면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았다.
용신단을 먹어 튼튼한 신체를 가진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정도로 거대한 건물을 주먹으로 박살 내다 보면, 제나드와 리오나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다.
자칫 건물 파편이 그들에게 튀기라도 하면 큰일이지 않은가.
‘최대한 빨리 살펴봐야겠어.’
나는 내가 맡기로 한 구역을 빠른 속도로 훑었다.
결과적으로 블루로즈단 용병들로 보이는 시체는 없었다.
제나드, 리오나도 우리 용병단의 표식이 있는 사체들은 발견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봐야 했다.
적어도 레임스 일행이 떨어지는 건물에 깔려 죽었다는 뜻은 아니니까.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여기에 없다는 건…….”
나는 위쪽을 가리켰다.
“저희가 저기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 되겠죠?”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제나드.
그래. 좋다.
올라가는 건 그렇다고 치자.
근데 말이지…….
“어떻게 올라가면 됩니까?”
이게 가장 큰 문제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도시를 무슨 수로 올라간단 말인가?
모르면 뭐다?
물어보면 된다.
“리오나. 혹시 방법도 알고 있어?”
“대충. 그런데 좀 힘든 방법이야.”
“뭔데? 일단 말이라도 한번 해 봐.”
나머지는 어떻게 하면 되겠지, 뭐.
고개를 끄덕인 리오나는 우리에게 거꾸로 매달린 도시, 리플란으로 진입하기 위한 과정을 설명했다.
“간단해요. 중력의 핵이 뿜어 대고 있는 능력 범위 안에 들어가면 돼요. 그러면 우리들도 역전된 중력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중력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갈 만큼 아슬아슬한 위치까지 점프하면 된다.
이 뜻이었다.
제나드는 나와 리오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는 가능한데 너희 둘은 어떻지?”
제나드 정도 되는 신체 능력이면, 저 정도 되는 높이까지는 충분히 뛸 수 있어 보인다.
나도 가능하다.
내가 불가능하면, 여기 있는 사람 모두가 다 불가능한 거나 다를 바가 없다.
신체 능력으로는 내가 최고니까.
“저도 가능합니다. 문제는…….”
리오나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힘들 거 같아요.”
그렇다고 리오나를 이곳에 혼자 놔두고 갈 수는 없다.
여기까지 온 이상, 셋 다 리플란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오나에게는 ‘대장으로서의 책임’이 있다.
본인도 어떻게든 리플란으로 가고 싶어 한다.
부하 단원들이 지금 죽을지 살지 모르는 위기에 처해 있는데, 대장인 리오나 혼자만 쏙 빼놓고 리플란으로 진입할 수는 없다.
갈 때는 다 같이 가야 한다.
‘어쩔 수 없지.’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리오나.”
나는 리오나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데려다줄게.”
“어떻게 데려다준다는 거야?”
“‘어떻게’기는? 간단하잖아?”
나는 내 등을 가리켰다.
“나한테 매달리면 돼.”
가장 확실하면서도 간단한 방법 아닌가?
* * *
“정말로 괜찮겠어?”
리오나는 다시 한번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문제없어. 그리고 내 능력은 네가 더 잘 알잖아? 사람 한 명 정도는 충분히 데리고 갈 수 있어.”
“……알았어.”
결국 리오나는 내 말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자세를 낮췄다.
리오나가 내 등에 업히기 편한 자세를 만들어 주기 위함이었다.
양팔을 뻗어 내 목에 두르는 리오나.
등에 굉장히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건 설마…….’
이게 뭔지 나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도 어른이니까.
리오나가 살아오면서 정말 많은 성장을 이뤄 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충분하구나, 리오나.
하지만 너무 충분해서 이쪽이 다 난감해질 지경이다.
동시에 또 다른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잠깐, 스톱.”
“왜?”
나는 리오나에게 다른 자세를 제안했다.
“자세를 바꾸자. 내가 널 안아 들고 갈게.”
“안고 간다고?”
“어. 이렇게.”
나는 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 자세를 취했다.
리오나는 굉장히 민망해했다.
“꼭 그렇게 해야겠어?”
“이게 아니면 집중할 수가 없을 거 같아.”
“집중이 안 되다니? 내가 널 방해하기라도 한 거야?”
했지,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본능이 이성을 방해할 거 같아서 차마 리오나를 등에 업고 갈 수 없을 것 같다.
리오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어. 지금은 네 의견에 따르는 수밖에 없지.”
“이해해 줘서 고마워.”
오른팔로 리오나의 등을, 왼팔로 리오나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감싸며 그녀를 안아 들었다.
리오나는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쌌다.
그사이에 제나드는 우리 둘에게 물었다.
“준비 다 끝났나?”
“예, 먼저 출발하세요. 뒤따라가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제나드는 뒤집힌 도시의 중심을 향해 높이 뛰어올랐다.
나도 도약을 위해 두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뛰어오르기 전에 리오나에게 미리 경고했다.
“꽉 붙잡아.”
“알았어……!”
터어엉!
내 몸은 마치 로켓처럼 빠른 속도로 위를 향했다.
가자, 리플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