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60화 (160/240)

# 160

뒤집힌 도시, 리플란 (1)

문제다, 문제야, 하필 그 많고 많은 지역에 가장 위험한 곳인 뒤집힌 도시로 가다니.

난 그 자리에서 파랑새에게 물었다.

“그쪽으로 간 단원들이 누구누구입니까?”

적어도 R팀에는 없었다.

왜냐?

라비에게 용병들의 위치를 항상 파악해 두도록 지시해 두었다.

만약 뒤집힌 도시에 갔다면, 라비는 분명 나에게 따로 보고했을 것이다.

아직까지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R팀 용병이 그곳에 가지 않았거나…….

‘아니면 나 몰래 갔거나.’

몰래 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르시아와 그의 부하들은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용병들이다.

위험한 지역은 나의 동의 없이 가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 뒀다.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그곳에 가진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쪽은 드레인, 혹은 대장 직속 소대원들뿐인데, 이들도 거의 희박하다.

대장 직속 소대원들은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해야 한다는 욕심이 없다.

드레인의 경우는 누구보다도 벨레너의 13난제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결론.

우리 팀원들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사고를 일으킨 문제아들은 S팀, 혹은 B팀 중 하나일 터.

파랑새는 쓴웃음을 지었다.

“B팀이야.”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레임스 부대장이 단원들 몇몇을 데리고 벨레너의 10번째 난제에 도전하러 떠났어. 그것도 무단으로. 이것을 알게 된 게 이틀 전이지.”

“그럼 며칠째 실종된 겁니까?”

“글쎄…… 대충 추산해 보면 한 일주일은 된 거 같은데.”

“살아는 있습니까?”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번에 탐사대를 꾸리려는 거지.”

“그렇군요.”

최악의 경우에는 이미 전원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벨레너의 13난제에 연관되어 있으니까.

난제들은 늘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레임스가 이끈 탐험대가 전멸했을 확률이 크지만, 벨레너의 13난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섣불리 확정지어선 안 된다.

그리고.

‘명색이 부대장인데, 쉽게 죽진 않겠지.’

레임스가 나를 안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는 폼으로 B팀 부대장을 거머쥔 게 아니다.

실력은 있는 편이다.

광기의 정령을 각성시키기 이전의 가르시아와 맞먹는 전투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B팀 용병들도 실력자들이 많다.

살아 있으리라 믿는 수밖에 없다.

파랑새는 내게 물었다.

“받아들일래?”

“해야죠.”

“다시 한번 물을게. 받아들이는 거 맞지?”

오랜만에 듣는 파랑새의 ‘두 번 질문하기’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겠습니다. 대신 궁금한 게 있어요.”

“뭔데?”

“리오나는 어디 있습니까? 설마 리오나도 난제를 해결하려 들어갔다가 같이 실종된 건 아니죠?”

“실종된 인물은 레임스 부대장과 B팀 소속 용병 다섯 명뿐이야. 리오나 대장은 그때 가족분들과 함께 휴가 시간을 보내고 있었으니까 관련이 없지.”

“리오나의 표정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하군요.”

“하하하…….”

파랑새는 어색하게 웃었다.

* * *

어수선한 현장을 벗어난 나는 반드와 함께 다시 나울로 돌아갈 준비를 갖췄다.

도시를 벗어나기 직전에 세이라가 나를 찾아왔다.

“나중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만나겠지, 언젠가는.”

세상이 칠흑에게 먹히지 않는다면 말이지.

세이라는 아쉬움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도시를 떠나는 나를 끝까지 응시했다.

-세이라와의 친밀도가 대량으로 상승합니다.

-세이라와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음유시인의 마음을 훔친 자’ 칭호를 얻습니다.

-칭호의 효과로 노래 실력이 소량 상승합니다.

뭐냐, 이 칭호 효과는?

그보다 세이라와 친밀도가 최대치가 된 게 ‘이성적인 호감’ 때문인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또 나도 모르게 여자의 마음을 훔친 건가?’

나란 남자, 참으로 나쁜 남자다. 후후후.

* * *

일단 나울로 빠르게 이동했다.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뒤에 나울에 입성했다.

한적한 R팀 본부.

아직 휴가 기간은 끝나지 않았기에 용병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사무원들은 여전히 본부를 지키고 있었다.

“대장님!”

라비가 나를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의뢰가 들어왔어요. 아니, 의뢰라기보다는…….”

“구조 요청이지?”

“네? 이미 알고 계셨어요?”

“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빨리 돌아온 거야.”

라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내게 의사를 물었다.

“용병들을 호출할까요?”

“아니, 됐어. 다른 팀에서 지원군이 오기로 했으니까.”

“몇 명이나 보내 준대요?”

“두 명.”

“너무 적은 거 아니에요?”

“어쩔 수 없지. 그쪽도 용병들이 전부 휴가를 떠나 버렸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딱히 큰 불만이 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두 명이라고 해도, 그 두 명이 네임드들이니까. 대장급이 오기로 했거든.”

“네? 대장급들이라면 설마…….”

“리오나하고 제나드 단장.”

“완전 정예 멤버들이네요.”

“그렇지?”

그래서 나도 R팀 용병들을 호출하지 않기로 했다.

그 둘만 있어도 든든하니까.

어차피 나머지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다.

“반드, 너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만약 케프리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바로 그쪽으로 가고.”

“정보를 어떻게 입수하지?”

“흰색 가면 쓰고 다니는 호기심 변태, 기억나지?”

“마일이라는 자인가?”

“어, 그 녀석이 정보를 가져다줄 거야. 이미 마일에게는 모두 다 이야기해 뒀어. 만약 케프리에 관한 정보가 들어오면, 케프리를 붙잡으려 하지 말고 일단 감시 차원으로 따라붙기만 해. 알았지?”

“명령에 따르도록 하지.”

반드 정도 되는 실력자가 감시로 따라붙는다면 안심이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을 뿐, 실력으로는 문제가 없으니까.

* * *

그날 저녁, 리오나가 가장 먼저 나울을 찾았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미안해.”

“뜬금없이 웬 사과?”

“내 부하들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발생했으니까. 대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있어.”

“레임스가 네 허락을 구하지도 않고 멋대로 간 거라며? 신경 쓰지 마. 네 잘못도 아니잖아.”

“아니, 그래도 부하의 잘못은 상관이 책임져야 해. 이미 첸버 씨에게 말도 전해 뒀어. 이번 일이 끝나면, 대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

너무 큰 책임을 지려고 하는 거 같은데?

리오나는 고작 이런 일로 대장직에서 물러나기에는 아까운 인물이다.

대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소화해 온 사람이 본인 잘못도 아닌 일에 대장직을 내려놓겠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일단 이번 일부터 먼저 해결하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알았지?”

리오나는 내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단장 제나드가 등장했다.

그는 오자마자 바로 우리들을 재촉했다.

“출발하자. 시간 없다.”

뒤집힌 도시까지 거리가 꽤 된다.

이동하는 데에만 하더라도 최소 4일 이상이 소비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죽어라 달리면 2일 정도는 단축시킬 수 있을 거다.

우리는 혹시 몰라서 미리 충분한 숙면을 취해 뒀다.

계속 달리고 달렸다.

용병들의 목숨이 달려 있는 중대한 사항이었기에 우리는 사담조차 나누지 않은 채 무작정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덕분에 예상보다 빨리 뒤집힌 도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여긴 동굴 입구 아니야?”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래도 ‘도시’라는 단어가 붙은 장소 아닌가?

그런데 왜 동굴로 들어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리오나가 대신 설명을 들려줬다.

“뒤집힌 도시, 리플란은 지하 도시야. 이 동굴은 리플란으로 들어가는 입구지.”

“지하 도시였군.”

벨레너의 13난제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순간 헷갈렸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칠흑, 그리고 벨라시오닉의 보물, 이렇게 둘뿐이니까.

용병왕 벨레너를 직접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에게 13난제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는 데에 집중했다.

제나드는 관심 없다고 하고서 애초에 벨레너와의 담화에 참가하지도 않았고.

반면 리오나는 달랐다.

우리들 중 유일하게 모범생처럼 벨레너의 이야기를 전부 다 들었다.

가뜩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벨레너의 13난제.

그중에서도 뒤집힌 도시, 리플란은 베일에 싸인 비밀의 장소다.

여기서 리오나의 지식이 힘을 발휘했다.

“이 동굴을 따라가다 보면 리플란이 나올 거예요. 어두우니까 다들 조심하시고요.”

나는 미리 챙겨 온 라이트 볼을 공중에 띄웠다.

용병 생활을 하다 보니 라이트 볼은 한두 개씩은 꼭 가지고 다닌다.

동굴은 꽤 길었다.

이동하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했다.

체력 안배도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쉬는 도중에 나는 잠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레임스는 왜 멋대로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한 거야? 혹시 들은 거 있어?”

“아니. 따로 들은 건 없지만…… 추측은 돼.”

“뭔데?”

“…….”

리오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무거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초조함 때문이야.”

“초조함이라니? 갑자기 왜?”

“S팀과 R팀에 비해 우리 B팀은 성과가 미비했으니까. S팀이야 블루로즈단의 본대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R팀의 급성장은 B팀 용병들에게 압박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어. B팀과 R팀은 어찌 보면 경쟁 상대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최근에 R팀의 성장세가 너무 두드러지다 보니 B팀 내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다시 R팀을 재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던 거 같아. 그 고민을 가장 크게 느꼈던 단원이 바로 레임스고.”

알 만하다.

레임스는 리오나, 그리고 B팀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높은 남자다.

리오나의 말대로 초조했을 것이다.

내가 R팀에 합류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R팀은 엉망 그 자체였다.

블루로즈단 용병들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멤버들이 R팀으로 배치된다는 말이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R팀에게 밀리고 말았으니 자존심 강한 레임스가 가만히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제나드 단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런 무리수를 던졌다, 이거군.”

“죄송합니다, 단장님. 제가 단원들을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상관없어. 그리고 그런 경쟁심은 강해지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니까. 하지만…….”

제나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때로는 명을 재촉하기도 하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 * *

계속해서 이어지는 동굴 탐험.

몇 시간이 흘렀는지 감을 잡을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동굴을 탐험하는 건 처음이다.

‘아니지, 고대의 숲 때도 이와 비슷했구나.’

혹시 여기에도 고대의 정령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깊고, 그리고 어두웠다.

한기로 인해 체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에나가 왔다면 참 좋아했을 거 같네.’

추운 곳을 미친 듯이 좋아하는 여자니까 말이다.

그렇게 어둠, 방향감각 상실, 그리고 추위와 오랫동안 싸운 끝에…….

드디어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 온 거야?”

내 물음에 리오나는 잘 모르겠다는 듯이 답했다.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리오나도 확신하진 못했다.

벨레너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듣긴 했지만, 뒤집힌 도시에 오는 건 리오나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나드도, 나도 마찬가지고.

뒤집힌 도시, 리플란을 처음 방문한 우리들은 동굴을 통과한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각자의 입에서 탄성을 내뱉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뭐야?”

말 그대로다.

넓은 지하 공간, 그리고…….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대 도시, 리플란.

말 그대로 ‘뒤집힌 도시’가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