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7
안티 히어로 (1)
나울로 돌아온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검은 괴물, 그리고 그 괴물과 함께 행동하는 소년.
기묘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그 소년의 모습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았다.
‘대체 정체가 뭐지?’
혹시 내가 델리피나 전기 3권에서 잊은 부분이 있나 싶어 계속 머리를 굴려 봤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3권에서 그런 등장인물이 나왔던 기억은 없었다.
본 적도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년의 인물 정보라도 봐 둘 걸 그랬네.’
설령 소년이 소설 속 중요 인물이 아니라 할지라도 상관없다.
소년의 정체가 궁금한 거니까.
나는 마일을 호출했다.
이제는 알아서 척척 등장하는 마일.
“부르셨습니까, 로인 님.”
“너한테 의뢰하고 싶은 게 하나 더 있는데…….”
“알고 있습니다.”
마일은 도중에 내 말을 잘랐다.
알고 있다?
정말로?
“뭔데? 맞춰 봐. 못 맞추면 벌칙 받는 거다?”
“무슨 벌칙인지 모르겠지만, 받을 일은 없으니까 굳이 머리 안 쓰셔도 됩니다.”
가면을 벗은 마일은 바로 입을 열었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소년을 찾아 달라는 의뢰 아닙니까?”
“뭐야, 어떻게 안 거야?”
“이제는 척하면 척이죠. 저와 로인 님 사이가 어디 보통 사이입니까? 하하하!”
“다 좋은데…… 그 말, 남들 앞에서는 하지 마라. 이상한 오해 받을 수 있으니까.”
남자와 이상한 쪽으로 엮이는 건 극구 사양이다.
아무튼 뭐, 굳이 내가 입 아프게 설명 안 해도 되니 좋긴 하다.
“가지고 있는 정보 있어?”
“정보라고 하기에는 자격 미달이긴 합니다만…… 소문은 들은 바 있습니다.”
“소문? 어떤 거?”
“최근에 ‘검은 괴물을 잡아먹는 검은 괴물이 나타났다.’라는 소문이 여기저기에서 돌고 있더군요. 들은 적 있으십니까?”
“아니, 처음 듣는데.”
만약 알고 있었다면 분명 관심을 쏟았을 것이다.
모르니까 관심을 못 쏟은 것이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 소문의 주체가 얼마 전에 로인 님이 마주쳤던 그 소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고 있습니다.”
“확인된 건 없다 이거지?”
“예, 어디까지나 소문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로인 님에게 미리 ‘자격 미달인 정보다.’라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베르투는 소문을 정보로 취급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확인된 것만을 ‘정보’로 취급한다.
소문은 이들에겐 상품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일이 나에게 소문을 언급한 이유가 있다.
소년이 누구인지, 그리고 뭐하는 자인지, 확인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으면 마일은 나에게 떠도는 소문이라도 들려주기로 했다.
원래 이건 베르투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그러나 마일이 나에게 말했듯이, 우리가 보통 사이는 아니긴 하다.
생사가 갈리는 현장을 같이 헤쳐 온 전우다.
이렇다 보니 예외적으로 마일은 나에게 베르투의 현자 규정에 어긋나는 특혜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소문이 도움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소문조차 접하지 못한 것보다야 나은 편 아닌가.
“소문의 근원지는? 어디서부터 퍼지기 시작한 거야?”
“클루도입니다.”
“그 근처를 수색해 보면 흔적이라도 발견할 수 있겠군.”
“아마도 그럴 겁니다. 혹시 모르니 좀 더 자세히 정보를 모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할게.”
마일을 보낸 뒤 나는 클루도의 위치를 확인했다.
‘배를 이용하면…… 편도로 하루면 가겠네.’
그럼 광범위한 정보 수집은 마일에게 맡겨 두고…….
‘나는 직접 발로 뛰어 볼까?’
어차피 블루로즈단은 타임 그레이브라는 크나큰 의뢰를 치른 덕분에 한동안 의뢰를 받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임시 휴업이다.
할 것도 없으니 클루도를 직접 방문하기로 했다.
그전에…….
‘체크할 게 있지.’
데르킨 백작 관련 일 때문에 요즘 미뤄 둔 일이 있었다.
차원 이동 마법이다.
* * *
상당히 오랜만에 연구소를 찾았다.
내가 신경 쓰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소는 그래도 어찌어찌 굴러가고 있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바로 나를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다.
“로인 님 오셨습니까!”
“잘 있었어?”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프렌이었다.
원래는 세올라가 소장이었다.
한 3개월 정도 소장 지위를 맡았을까?
그쯤 되어서 세올라는 나를 찾아왔다.
와서 이렇게 말했다.
‘못 해 먹겠어요!’라고.
그래서 부소장이었던 프렌이 소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다.
다행이도 프렌은 리더십이 있는 편이었다.
마법사 길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 경험이 연구소를 꾸려 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세올라는?”
“지금쯤 자고 있을 겁니다. 깨울까요?”
“아니, 됐어. 굳이 깨울 필요까지야…….”
어차피 세올라에게 볼일이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연구소에 얼굴 한번 비춘 것뿐이다.
연구 성과를 듣는다면 더 좋겠지만, 만약 차원 이동 마법에 성공했으면 바로 나에게 보고가 들어왔을 것이다.
보고가 안 들어온 걸로 봐선 아직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러면 굳이 보고를 들을 필요가 없다.
내가 바라는 건 오로지 결과뿐이니까.
프렌은 나에게 연구소 이곳저곳을 안내했다.
부쩍 사람들이 늘었다.
예전에는 텅 빈 느낌이 강했는데.
“큰 문제는 없지?”
“예,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앞으로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해는 한다.
원래 실험이라는 게 항상 안전하고 성공적인 결과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수십 번의 실패 끝에 한 번의 달콤한 성공이 찾아오는 법이다.
실패는 곧 과정이다.
성공으로 향하기 위한 과정.
“연구비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라그너에게 말해. 내가 라그너에게 미리 귀띔을 해 뒀으니까. 부족함 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 거야.”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탐나는 인재 있으면 무조건 데려오고.”
“안 그래도 눈독 들이는 마법사들이 몇몇 있습니다만…….”
“명단은 있어?”
“예, 안 그래도 가지고 왔습니다.”
프렌은 사람 보는 눈이 괜찮은 편이다.
나는 이름만 대충 쭉 훑었다.
총 다섯 명이었다.
“오케이, 알았어. 접선해 봐. 만약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 달라는 대로 줄 테니까 우리 연구소에 와서 일해 달라고 말해.”
“알겠습니다. 로인 님 덕분에 이들을 데려오기가 훨씬 수월해질 거 같습니다.”
“그게 내가 해야 할 일인데, 뭘.”
역시 돈이 최고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지만, 돈이 있으면 적어도 불행해지진 않는다.
내가 돈이 없어 봐라.
이런 연구소 같은 것도 못 차렸을 것이다.
다 돈이 있으니까 가능한 거다.
대신, 투자한 만큼의 성과는 나와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슬슬 3권도 후반부니까 대비를 해 둬야지.’
저번처럼 잠깐만 본래 세계로 넘어갈 수만 있어도 대만족이다.
4, 5권만 빠르게 훑고 오면 되니까.
* * *
연구소를 나온 후에 나는 바로 내 집으로 향했다.
클루도로 떠날 채비를 갖추기 위해서였다.
잠깐 들렸다가 올 거니까 짐은 많이 가져가지 않기로 했다.
집 밖으로 나온 순간,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장.”
반드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뜬금없네.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 그보다 휴가 아니었나? 쉬고 있지, 뭐 하러 여기에 있어?”
“소문 들었어. 나 말고 어둠의 기운을 간직한 자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고.”
“…….”
가만 있어 보자…….
내가 너무 오랜만에 반드와 직접 대화를 하다 보니 이놈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해석이 좀 느려진 것 같다.
그러니까…….
“라피엘 교단에서 만난 그 검은 괴물 소년을 말하는 거지?”
반드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알아들었네.
“그자를 찾으러 갈 거지? 나도 데려가.”
“왜, 아는 사이야?”
“어둠의 힘이 서로 공명하고 있거든…… 후후.”
공명은 개뿔.
무슨 제갈 공명도 아니고.
아무래도 반드는 그 소년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냥 뜬소문으로만 접한 게 다일 텐데, 뭐가 저렇게 마음에 드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원래는 나 혼자 가려고 했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 반드를 데려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어쩌면 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적이 될지도 모른다.
반드는 든든한 전력이다.
데려가면 분명 도움이 된다.
“그래, 같이 가자.”
의사소통에 많은 어려움을 겪을 테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 하면 된다.
* * *
배를 타고 바다를 지나 클루도로 향했다.
작은 항구도시였다.
항구도시라고 하니까 절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크라켄 토벌 때가 떠오르네.’
웨일의 의뢰를 받아 크라켄을 토벌하기 위해 항구도시에서 꽤 오랫동안 머물렀던 기억이 났다.
그 도시 이름이 아마 텐츠였을 거다.
크라켄 토벌 기억만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고 보니 세이라를 찾아 달라는 의뢰도 맡았었지.’
세이라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데.
……라고 생각을 했건만.
“대장.”
반드가 손으로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근처에서 저번에 우리가 찾아 헤맸던 그 음유시인 아가씨가 또 콘서트를 여나 본데?”
뭐지, 이 데자뷰는?
분명 저번에도 항구도시에서 라이브 행사를 개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포스터를 확인했다.
“진짜네.”
그러나 그때와 다른 점이 있긴 했다.
텐츠에서의 라이브는 세이라의 단독 콘서트였다.
하나 이곳 클루도에서 펼치는 콘서트는 다른 음유시인들과 함께 꾸미는 합동 콘서트로 보였다.
‘설마 이번에도 갑자기 탈주하거나 그러진 않겠지?’
세이라가 아무리 미녀라도 사람 찾기는 이제 사양하고 싶다.
뭐, 이제는 본인이 알아서 잘하겠지.
반드는 포스터를 가리켰다.
“보러 안 가? 과거의 인연으로 맺어진 관계잖아.”
얼굴 한번 봤다는 말을 저렇게 어렵게 돌려서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보러 가고 싶긴 하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었다.
“티켓이 없잖아.”
이번에는 세이라의 단독 공연이 아니다.
다른 유명 음유시인들과 함께하는 공연이다.
그런 곳을 세이라와 아는 관계라는 이유만을 들먹이면서 무리를 하면서까지 공연 준비 현장에 쳐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음유시인들에게 폐를 끼칠 수 있으니까.
티켓이 있다면 그냥 공연이나 한번 보는 정도?
그 수준에서 만족하고 싶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티켓은 매진이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니 깔끔하게 포기해야지.
하나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나와 반드에게 말을 걸어왔다.
“티켓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 제가 드릴 수 있는데, 어때요?”
많이 들어 본 목소리였다.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드레스.
여전히 빨강을 좋아하는 여인, 세이라가 우리를 향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로인 님.”
“그러게요. 엄청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저야 로인 님 덕분에 잘 지냈죠.”
그렇게 말하면서 세이라는 목에 감겨 있는 초커를 가리켰다.
내가 준 아이템이다.
설마 여기서 세이라와 마주치게 될 줄은 몰랐다.
인연이라는 말이 진짜로 있긴 한가 보다.
의도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만나게 되는 걸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