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56화 (156/240)

# 156

그 남자의 과거 (3)

카르탈을 따르는 추종자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뒤늦게 현장에 합류한 드레인은 나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대장! 우린 어쩌지?”

“어쩌긴요. 선택지가 없잖아요.”

싸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달려오는 추종자의 머리채를 낚아챘다.

힘 있게 전방을 향해 집어 던졌다.

날아간 추종자는 뒤따라오던 다른 추종자들과 부딪치면서 같이 나가떨어졌다.

다른 추종자 하나가 내 오른쪽 측면으로 다가와 단검을 휘둘렀지만, 나는 공격을 흘려 버린 뒤에 발로 뻥! 하고 차 버렸다.

마음 같아선 용의 숨결로 다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라피엘교 신도들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까지도 휘말릴 우려가 있다.

용의 숨결이 다 좋은데 힘 조절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타임 그레이브 같은 곳이었더라면 이런 걱정 없이 마음껏 스킬을 사용했을 텐데!’

그게 좀 아쉽다.

그래도 상관없다.

다른 스킬들을 활용하면 되니까.

“Gazua(멈춰라)!”

용언 마법의 영향권에 들어온 추종자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Azer(즐겨라)!”

갑자기 추종자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벌어진 춤판.

이게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추종자들 다수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특화된 용언 마법이다.

움직임에 제한을 거는 것과 동시에 강제로 춤을 계속 추게 만듦으로 인해 체력 소비까지 시킬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니겠나.

물론, 싸움판 한가운데에서 단체로 춤을 추니까 좀 웃기긴 하다.

어쨌든 나의 용언 마법 덕분에 그 많던 추종자들의 숫자는 크게 줄어 가고 있었다.

위기를 직감한 카르텔.

그의 안색이 점점 새파랗게 변해 가기 시작했다.

“네, 네놈이 설마…… 로인이란 녀석이냐!”

“그걸 이제야 눈치챘어?”

라스와 그의 일행들, 그리고 라크스 공작 다음으로 추종자들 사이에서 블랙리스트로 손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나, 로인이다.

만약 카르탈이 조금이라도 눈치가 빨랐더라면 애초에 이런 무의미한 싸움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르탈의 전력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타임 그레이브 때보다도 더 안 좋다.

루크나 마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데르킨 백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러면 식은 죽 먹기다.

카르탈이라는 작자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가 없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오늘 잘 걸렸다, 이 녀석아!’

감히 나의 소중한 부하를 건드려?

멀쩡히 살아 돌아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아무리 추종자들이 달려들어도 나를 막진 못했다.

추종자들은 내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종이 인형처럼 나가떨어지기 바빴다.

그렇게 추종자들을 때려눕히며 카르탈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카르탈은 침음을 내뱉으면서 검은 가시들을 발사했다.

사방으로 뻗히는 검은 가시들은 피아식별 없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학살해 갔다.

그때, 파이스가 신성 마법을 발동시켰다.

“홀리 실드!”

빛의 장막이 펼쳐지면서 사람들을 보호했다.

나 또한 파이스 덕분에 검은 가시 폭풍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땡큐, 파이스!”

“아닙니다, 대장님. 오히려 제가 다 감사할 따름이죠.”

파이스의 장막을 앞세우면서 나는 다시 천천히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다.

“파이스! 내가 신호를 주면 장막을 거둬! 놈의 심장을 도려낼 테니까!”

“예, 대장님! 믿겠습니다!”

믿으라.

그리하면 길이 열릴지어다.

파이스가 장막을 거둔 순간, 나는 드래곤 클로를 크게 휘둘렀다.

카르탈의 어깻죽지를 시작으로 검은 연기에 잠식된 신체 일부를 그대로 잘라 냈다.

일시적으로 무력화 상태에 접어든 카르탈.

파이스가 인첸트 마법으로 강화시킨 스태프를 거꾸로 들었다.

“먼저 지옥에 가 있어라. 곧 뒤따라갈 테니까!”

푸욱!

카르탈의 남은 어깨에 스태프를 찌르면서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고정을 시켰다.

나이스 어시스트!

이다음은 내 차례다.

검은 심장을 도려내기만 하면 된다.

이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인 약점이다.

사실 글레드를 활용하면 카르탈을 칠흑의 조각으로부터 분리시킬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아.’

뒤틀린 사상을 가진 자는 어쩌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당한 자들보다 더 위험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

눈앞에 있는 카르탈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글레드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카르탈은 최후의 발악을 펼쳤다.

파이스의 스태프에 박혀 꼼짝하지 못하는 자신의 남은 어깨를 스스로 잘라 냈다.

몸통과 하반신만 덜렁 남게 돤 카르탈은 발로 나를 밀쳐 냈다.

“내가…… 이대로 곱게 죽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카르탈은 담장을 넘어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 참 구질구질하게 구네.

어차피 저 정도로 심하게 부상을 당했으면 멀리 도망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미 남은 추종자들은 마르카스가 이끄는 라피엘교 신도들에게 전부 제압당했다.

오로지 카르탈 혼자만이 남은 상황이었다.

나는 드레인과 파이스에게 손짓했다.

“쫓아가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내 예상대로 카르탈은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검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시내 거리를 느릿느릿하게 활보했다.

다행이 늦은 시간대라 그런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크윽!”

카르탈은 이를 잘근 물었다.

어떻게든 우리들에게 도망치려 발버둥을 쳤다.

왜 악당들은 이렇게 구질구질한지 모르겠다, 그냥 안 될 거 같으면 얌전히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우리는 점점 카르탈을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어느새 합류한 마르카스와 팔라딘들도 포위망 좁히기에 동참했다.

본능적으로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카르탈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러더니, 갑자기 씨익 웃었다.

“혼자서 곱게 죽을 생각은 없지.”

카르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검은 연기가 크고 거대한 촉수를 형성했다.

구석 쪽으로 사라진 촉수는 이내 한 소년을 강제로 끌고 나왔다.

“……!”

순간 파이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파이스뿐만이 아니었다.

나를 비롯해 모두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카르탈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기억하고 있나, 파이스? 네가 그토록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사라져 간 아이들의 모습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지. 그리고 그 원흉이 너라는 것도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의외로 굉장히 마음이 여리더군. 까짓것 어린아이 몇 놈 죽인 게 그렇게까지 치를 떨 일이 있나, 안 그래?”

“카르탈……!”

파이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럴수록 카르탈의 미소는 짙어졌다.

저 녀석은 악당 그 이하도 아니다.

존재 자체가 쓰레기다.

나는 드래곤 클로에 마나를 주입했다.

드래곤 클로의 날이 번뜩였다.

그러나 카르탈은 기죽지 않고 오히려 이런 나에게 협박을 했다.

“워 워 워, 그러면 안 되지. 이 소년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안 그런가?”

키득키득 웃기 시작하는 카르탈.

뭣도 모르고 붙잡혀 온 소년은 아직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년은 대략 15세 정도로 보였다.

‘죽게 놔둘 수는 없어.’

그러나 소년을 살릴 방법도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년을 구하긴 힘들어 보였다.

무엇을 하든지 카르탈은 죽는다.

그러면 카르탈이 선택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바로…….

그가 증오하는 파이스, 마르카스에게 최후의 순간까지 후회하게 될 정신적 대미지를 남기면 된다.

그것이 지금 인질로 붙잡고 있는 소년의 죽음이다.

카르탈은 웃었다.

“그래, 바로 그거다. 너희들은 이 소년 한 명조차 구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세계를 구하겠다? 어림도 없지!”

검은 연기는 칼날이 되어 소년의 목을 쳤다.

“이게 내가 너희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복수다.”

“그만 둬!”

파이스의 외침은 애절하기까지 했다.

드레인과 마르카스, 그리고 라피엘교 신도들은 고개를 돌렸다.

소년의 목숨을 구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은 어렴풋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군.”

소년의 등에서 튀어나온 괴생물체가 말했다.

“감히 나를 집어삼킨다? 주제를 알아라, 잡종.”

괴생물체는 소년과 융합되더니 검은 괴물로 변했다.

검은 괴물은 오히려 카르텔을 잘근잘근 씹어 먹기 시작했다.

마치…… 짐승처럼.

우득, 우드득!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신도들은 귀를 틀어막았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인질로 잡았던 소년이 사실은 알고 보니 카르탈보다도 더 강한 힘을 지닌 검은 괴물이었다.

……대충 이런 이야기 흐름인 거 같은데.

‘그게 말이 되냐고.’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벌어졌다.

카르텔의 얼굴은 절망으로 물들었다.

비명을 질러 댔지만, 그 비명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소년에게 먹혀 버린 것이다.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소년은 우리를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 거기 서!”

신도들은 뒤늦게 소년을 쫓았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소년의 등에서 다시 튀어나온 괴생명체는 지면에 박힌 채 고정되어 있는 벤치들을 뜯어 우리에게 던지며 추격을 방해했다.

열심히 뒤따라갔지만, 움직임이 내 생각보다 너무 빨랐다.

결국 소년과 괴생명체를 놓치고 말았다.

처음 보는 타입이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서로 별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어.’

소년의 인격과 칠흑의 조각의 인격이 따로 존재하는 듯했다.

‘대체 정체가 뭐냐?’

내가 아는 지식 내에서는 저런 식의 추종자는 없었다.

애초에 같은 존재를 잡아먹는 검은 괴물 자체를 처음 봤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그것조차 모르겠다.

* * *

카르탈 사건 탓에 라피엘교는 한동안 혼란에 휩싸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말끔하게 상황이 정리되었다.

마르카스와 파이스를 제거하고 라피엘교를 독식하려 했던 카르탈.

그러나 그의 계획은 오히려 강한 역풍을 맞게 되었고, 카르탈을 따르던 세력들이 전부 괴멸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덕분에 마르카스의 고민은 말끔하게 해결되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이제 저 필요 없죠?”

파이스는 직설적으로 마르카스에게 물었다.

마르카스는 어이가 없는 모양인지 웃음을 흘렸다.

“카르탈의 세력이 남아 있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나는 너를…….”

“저는 저만의 길을 찾아갈 겁니다, 대주교님.”

“…….”

아마 파이스도 알고 있을 것이다.

마르카스는 파이스의 친부가 아니지만, 마음과 정성으로 길러 온 또 다른 의미로서의 아들이다.

상황이 안정되었으니 가급적이면 마르카스는 파이스를 자신의 밑으로 다시 데려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파이스의 태도는 완고했다.

파이스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마르카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껴라. 훗날 이와 같은 경험들이 너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주교님.”

파이스는 나와 드레인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오래 기다리셨죠? 대장님. 자, 이제 나울로 돌아가시죠.”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여 줬다.

더 이상 파이스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파이스에게 괜한 오지랖은 필요 없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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