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그 남자의 과거 (2)
파이스가 어째서 라피엘교를 박차고 나왔는지에 대한 모든 사정을 알게 되었다.
사실 마르카스가 않는다면, 나는 마일에게 따로 물어볼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르카스가 알아서 우리에게 와서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해 줬으니 마일에게 묻는 수고를 덜하게 된 셈이었다.
여기서 나는 의문이 하나 생겼다.
“왜 그런 걸 저희에게 이야기해 주는 겁니까?”
이게 궁금했다.
마르카스는 낮에 파이스를 데리고 따로 이야기할 시간을 가질 정도로 우리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는 걸 꺼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갑자기?
마르카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여러분들이 파이스를 설득해 주셨으면 해서 일부러 모든 사정을 털어 놓은 겁니다.”
“어떻게 설득하라는 겁니까?”
“다시 라피엘교로 돌아오도록 말이죠.”
이기적인 남자네.
파이스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런데 그건 깡그리 무시하고 라피엘교에 파이스를 넘기라고 부탁을 해?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거절하겠습니다.”
마르카스가 직접적으로 호소해 온 만큼, 나 또한 마찬가지로 거두절미하고 바로 내 생각을 들려줬다.
그럼에도 마르카스는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거절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야 어쩔 수 없군요.”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추가 질문을 꺼냈다.
고개를 끄덕이는 마르카스.
오케이 사인을 받아 냈다.
“왜 꼭 파이스여야 합니까? 라피엘교라면 대체 인력은 많을 텐데요.”
라피엘교는 결코 작은 종교 집단이 아니다.
규모로 따지면 톱3 안에 들 정도로 크다.
이런 종교 조직에 파이스 같은 인재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마르카스는 생각이 달랐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파이스는 굉장히 유능합니다. 실력뿐만 아니라 신을 향한 믿음 또한 대단하죠. 그리고 자신만의 올곧은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바라는 건 자신이 믿고 있는 신념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사람, 그러니까 파이스 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결국 파이스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거군.
마르카스는 파이스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유가 부족하다.
납득이 안 가는데.
그때 드레인이 작게 중얼거렸다.
“유흥을 굉장히 좋아하는 성직자인데…….”
“그건 라피엘교에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에?”
나와 드레인은 혀를 찼다.
처음부터 그런 놈이었나?
그러나 마르카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래도 사고를 저지른 적은 없으니까요. 물론 주변에서 따가운 눈총은 많이 받았지만요.”
라피엘교 최고의 아웃풋, 파이스.
이 녀석…….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괴팍한 녀석이네.’
보통내기가 아니다.
* * *
마르카스가 나가고 난 뒤, 파이스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장님. 아는 사람들이랑 이러쿵저러쿵 수다 좀 떨다가 이제 복귀했습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오늘은 여기서 머물러야 하니까. 숙소도 배정받았고.”
“여기 숙소, 나름 괜찮습니다. 침대도 푹신하고요. 누워 보면 침대 품에서 벗어나기 힘들 겁니다. 하하하!”
웃을 때가 아니라고, 이 녀석아!
“마르카스한테 들었어. 카르탈에 관한 것도, 그리고 네가 교단을 뛰쳐나가게 된 계기에 관한 것도.”
“대주교님이 그런 것까지 다 말씀하셨습니까?”
“와서 술술 말해 주더라고. 그리고 추가로 이런 부탁도 했지. 네가 라피엘교로 다시 복귀하도록 도와 달라고.”
“대장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거절한다고 했지.”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파이스는 나에게 엄지를 추켜올려 줬다.
이 반응만 봐도 파이스는 복귀 의사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내일 마르카스 대주교님한테 교단과는 확실히 인연을 끊었다고 말을 전할 겁니다. 그다음에 바로 여길 떠나면 될 거 같아요.”
“미련은 없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고아인 저를 거둬 주신 분이 마르카스 님이시니까요.”
몰랐던 정보다.
나를 대신해 드레인이 파이스에게 물었다.
“고아? 그건 무슨 소리야?”
“전쟁 중 부모님을 잃었습니다. 졸지에 고아가 되었죠. 갈 곳 없는 저를 마르카스 대주교님이 거둬 주시고 라피엘교의 신도로 키웠어요. 뭐, 지금은 은혜를 원수로 갚게 되었지만요.”
……그래서였군.
마르카스는 지나칠 정도로 파이스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파이스의 신념 어린 태도가 마음에 든다느니 뭐니 하는 말을 했지만, 그거 가지고 납득이 되진 않았다.
이제야 좀 알 것 같다.
마르카스는 파이스에게 애착이 많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 온 자식 같은 존재니까.
그러나 파이스는 라피엘교를 떠난다고 선언했다.
라피엘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을 존중해 주는 것 역시 마르카스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라고 멋대로 나 혼자 생각을 해 봤다.
파이스는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신경 쓰이는 게 좀 있긴 한데…… 아마 마르카스 님이라면 잘 해결하실 겁니다.”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까 제가 지인들이랑 이야기를 하고 왔다고 말씀드렸죠? 사실 무얼 좀 조사하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어떤 조사인데?”
“카르탈을 따르던 신도들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카르탈이라는 자 또한 대주교의 자리에 올랐던 남자다.
마르카스처럼 카르탈 역시 그를 따르는 신도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름하야 카르탈 라인.
그러나 카르탈이 추종자와 엮여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파문을 당하고 말았다.
그들은 불만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불순한 움직임이 보일지도 모르겠군.”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파이스.
“예. 이런 불만이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교단 안에서 곪는다면, 나중에 큰 문제로 터지겠죠.”
“마르카스 님을 안 도와줘도 되겠어?”
“파문당한 제가 이제와서 마르카스 님을 도우면 오히려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될 겁니다. 저는 그냥 간섭 안 하는 게 제일 좋죠.”
하긴 일리가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라피엘교의 일이다.
우리와는 관계없다.
하지만…….
‘추종자와 엮여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는데.’
카르탈과 추종자의 관계.
과연 그게 사실일까?
의심의 불씨는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 * *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새벽 1시가 넘어갈 무렵.
“…….”
나는 도중에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
아까부터 자꾸 걸리적거리는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수상한데?’
근처에 순찰을 도는 병사들이 있긴 했다.
야간 근무조인 걸까?
그러나 야간 근무조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존재가 있었다.
이들의 행동은 ‘침입’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득 파이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카르탈을 따르던 자들의 움직임이 유독 수상쩍다고.
라피엘교에서 대주교까지 했던 남자가 곱게 물러설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귀찮은 일에 휘말렸네.’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잠에서 깬 나는 바로 밖으로 향했다.
교단에 잠입해 들어오는 침입자의 숫자는 꽤 되었다.
게다가 교단 안에 대기하던 신도 몇몇이 침입자들의 잠입을 도왔다.
침입자 중에서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풍채가 좋아 보이는 한 남자.
그는 푸른색과 흰색으로 치장된 의복을 입고 있었다.
의복에는 마르카스가 입고 있던 의복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저 문양은 대주교의 상징이다.
‘카르탈이라는 자인가?’
자신을 쫓아낸 교단에게 복수하려고 찾아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런 뒤에 성당의 탑에 달려 있는 거대한 종을 향해 던졌다.
댕! 댕! 댕!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잘 울리네!’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크고 우렁찬 소리로 울어 댔다.
순찰을 돌던 팔라딘들이 종탑을 향해 모여들었다.
종탑에는 침입자들이 모여 있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팔라딘들은 무기를 들고 침입자들에게 겨눴다.
후드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카르탈이 나섰다.
“감히 나, 카르탈에게 창을 겨누는 건가?”
“대, 대주교 님……!”
팔라딘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이내 이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주교는 무슨! 저들은 파문당했다! 이단으로 규정된 자들이다! 더 이상 이곳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쫓아내라!”
“예!”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신을 모시는 자들이긴 하나, 군인들만큼 엄격한 훈련을 받아 온 자들이 바로 팔라딘이다.
카르탈은 작게 웃었다.
“어리석은 녀석들.”
카르탈의 왼쪽 몸이 검은 연기에 먹히기 시작했다.
설마 저건……!
“너희가 모시는 신은 죽었다. 새로운 어둠의 신, 칠흑님의 말을 대신 전달하마.”
카르탈은 검은 연기에게 먹힌 왼쪽 손을 뻗었다.
“여기서 죽어라.”
손끝에서 뿜어져 나온 다수의 검은 가시들이 팔라딘들의 몸을 꿰뚫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웬만하면 집안싸움에 가담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나는 지붕에서 뛰어내렸다.
쿠웅!
그대로 착지해 카르탈 세력과 마주했다.
카르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넌 뭐지?”
“지나가던 행인이다.”
“그러면 곱게 지나가라. 괜히 죽기 싫다면 말이지.”
“어차피 곱게 지나갈 거라 해도 죽일 거잖아?”
“잘 아는군.”
카르탈은 웃었다.
검은 연기에게 몸의 반절이 잠식된 탓에 입 꼬리의 반절만 올라갔다.
기묘한 미소였다.
한편 소란이 벌어진 후에 뒤늦게 현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마르카스 대주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카르탈, 자네……!”
“오랜만이군, 마르카스. 나를 내쫓고 교단을 통째로 꿀꺽하니 어떤가!”
“…….”
마르카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색한 대치가 이어질 무렵, 파이스가 주 무기인 거대한 스태프를 들고서 카르탈에게 겨눴다.
“추악함의 끝을 달리는구나, 카르탈. 예나 지금이나 그 빌어먹을 심성은 어디 안 가서 정말 다행이야.”
“파이스, 네가 이곳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렸다고?”
“그래.”
카르탈은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슨 뜻이지?
나도 모르겠다.
나라고 다 아는 건 아니니까.
“파이스, 그리고 마르카스. 네놈들을 한꺼번에 일망타진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 날을 잡았다. 마르카스가 네놈을 이곳으로 불러올 거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거든. 마침 너희 둘이 가장 꼴 보기 싫었는데 잘됐지. 안 그런가?”
카르탈에게 따로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알아서 술술 이야기를 해 줬다.
제2의 드레인을 보는 줄 알았다.
수다 실력이 장난 아니네.
저러니까 본인이 추종자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세 들키지.
왜 파문당했는지 알 것 같다.
한편 파이스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안 그래도 그 사건이 계속 악몽처럼 떠올랐는데. 이렇게 한 방 먹여 줄 기회가 생기니 잘됐네.”
“나에게 복수라도 할 텐가?”
“내가 해야 할 건 복수가 아니야.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방관한 것에 대한 속죄지.”
파이스가 든 스태프의 끝에 빛이 감돌았다.
빛의 세기는 점점 강해졌다.
“미천한 저에게 속죄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이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