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54화 (154/240)

# 154

그 남자의 과거 (1)

마르카스의 시선이 파이스의 뒤에 서 있는 나와 드레인으로 향했다.

“저분들은 누구냐?”

“이쪽은 블루로즈단 R팀을 총괄하고 계신 로인 대장님, 그리고 그 옆은 드레인 부대장님입니다.”

“블루로즈단? 용병 조직 아닌가?”

“예. 맞습니다.”

“네가 그쪽과 무슨 연이 있다고…….”

“모르셨군요. 저, 용병단에 들어갔습니다.”

“뭐?”

마르카스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 사람, 용병 알레르기라도 있나, 왜 저렇게 용병을 싫어해?

우리가 뭐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파이스, 아무리 갈 곳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성직자가 용병 조직에 들어갔다고? 기가 차는군!”

“잊으셨습니까, 대주교 님? 전 더 이상 성직자가 아닙니다. 그냥 힐 스킬 조금 다룰 줄 아는 힐러죠.”

파이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실로 파이스다운 태도였다.

그럴수록 마르카스의 미간은 더욱 일그러졌다.

“언제 철이 들 거냐?”

“이미 들고도 남았어요.”

“내가 보기에는 아직 멀었다. 수양이 부족해.”

“수양은 이제 필요 없잖아요? 성직자도 아닌데.”

성직자의 신분에서 벗어난 게 저리도 좋을까?

마르카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이곳에 부른 이유에 대해 알고 있느냐?”

“그냥 간만에 얼굴 한번 보자고 부른 거 아닌가요?”

“그런 사소한 일이라면 너를 교단까지 오라고 따로 호출하지도 않았을 거다.”

파문당한 자를 교단으로 들이는 건 굉장히 눈치 보이는 일이다.

뭔가 중대한 사항이 있으니 파이스를 이곳까지 데려온 것이리라.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중대한 사항이란 바로…….

“다시 교단으로 복귀해라, 파이스.”

내 이럴 줄 알았다.

어쩐지. 뭔가 느낌이 싸하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감시 차원에서 파이스와 같이 이곳까지 오게 된 건데.

왜 안 좋은 예감은 늘 이리도 잘 맞아떨어지는지 모르겠다.

파이스는 마르카스 대주교에게 되물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세요?”

“그래, 진심이다.”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한들 제가 ‘좋죠! 바로 복귀하겠습니다!’라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네가 필요해.”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제가 돌아올 만한 상황은 없을 텐데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파이스는 절대로 라피엘 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카르탈이 파문당했다.”

“……!”

파이스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카르탈?

누군데, 그게.

적어도 소설 속에 등장한 적 없는 인물이었다.

‘아니, 어쩌면 4, 5권에 나올지도 모르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나와 달리 드레인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혹시 카르탈 대주교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마르카스는 드레인의 물음에 떨떠름한 표정으로 답했다.

뭐야, 드레인은 알고 있었나?

나는 드레인에게 조용히 물었다.

“누군데요? 아는 사람입니까?”

“아는 사이는 아니고. 이름만 들어 본 적 있어. 라피엘교에 적지 않은 세력을 가지고 있던 대주교로 아는데…… 카르탈이 주관하는 예배에 아내랑 같이 참가했던 적이 있었지. 그게 불과 3개월 전의 일인데, 설마 그 사이에 파문을 당했다니……. 이해가 안 가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종교 활동 멀쩡히 잘 하고 있는 사람을 왜 파문시키지?

마르카스 대주교는 우리를 슬쩍 바라봤다.

그런 뒤 파이스에게 따로 말을 했다.

“따로 이야기를 하자꾸나.”

외부 사람한테는 이야기해 줄 수 없다는 뜻인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조직의 비밀이라는데 내가 멋대로 따라가서 들을 수는 없으니까.

마르카스는 주변에 있던 성직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우리에게 다가와 말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실 테니 잠시 쉬고 계십시오. 쉴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희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나는 이들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예, 가시죠.”

“엥? 이대로 그냥 갈 거야?”

드레인은 설마 내가 이들의 말에 곱게 따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모양인지 바로 되물었다.

“네, 갈 건데요?”

“궁금하지 않아? 왜 파문당했는지 말이야.”

“궁금해한다고 한들, 마르카스가 우리에게 알려 줄 리가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안 되는 일을 무리해서 추진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에게는 보다 확실한 방법이 있다.

‘정보는 바로 캐낼 수 있지.’

비장의 수단이 있다.

이럴 줄 알고 챙겨온 물건이 하나 있다.

바지 뒷주머니에 고이 꽂혀 있는 수첩 하나.

베르투의 수첩이다.

* * *

휴게실에서 머무르는 동안, 나는 베르투의 수첩을 통해 마일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다.

라피엘교의 카르탈 대주교가 파문당한 이유를 알려 달라.

이것이 나의 요구였다.

답장은 빠른 시간 내에 왔다.

-추종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뭐?

추종자와 연관이 있다고?

하지만 마일은 ‘소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소문이면, 근거 없는 거 아니야?

그러나 마일의 대답은 단호했다.

-근거가 전혀 없진 않습니다. 오히려 사실에 가까운 소문이더군요. 물증만 없을 뿐, 심증은 이미 충분한 듯합니다. 그리고 성직자가 칠흑에 엮이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문감이지요. 라피엘교는 그에 대해서 매우 엄격하거든요.

하긴. 마일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는 베르투의 수첩을 덮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네.

내 반응을 본 드레인은 바로 관심을 드러냈다.

“뭔가 알아냈어?”

“예, 근데…… 생각보다 문제가 크네요.”

“얼마나 큰 건데 그래?”

“그게 말입니다.”

내가 먼저 입을 열려고 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휴게실의 문이 열렸다.

파이스가 돌아온 줄 알았으나, 다른 인물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눴으면 합니다만.”

마르카스 대주교가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 * *

나와 드레인은 마르카스 대주교를 따라 그의 개인 사무실로 이동했다.

나는 도중에 마르카스에게 물었다.

“파이스는 어디 있습니까?”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오랜만에 인사라도 나누겠다면서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길. 원래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긴 해도 약속을 어기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건 나도 잘 안다.

파이스가 약간, 아주 약간 방탕한 생활에 찌들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제몫은 다 한다.

창밖을 바라봤다.

이미 해가 저물고 짙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당일치기로 왔다가 다시 복귀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내일 출발해야겠다.

파이스에게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은 줘야 할 테니 말이다.

나는 마르카스에게 다른 질문을 했다.

“파이스는 라피엘교로 복귀하는 걸 여전히 거부하고 있습니까?”

“예, 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파이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면 제게 큰 힘이 되긴 하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깊은 골이 생겨 버렸으니까요.”

“혹시 카르탈이라는 자와 연관되어 있습니까?”

“…….”

마르카스 대주교는 잠시 입을 닫았다.

굳이 여기서 속사정을 못 들어도 상관없다.

나에겐 훌륭한 정보통이 있으니까.

원래 나는 파이스와 연관된 사적인 일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다.

프라이버시는 존중되어야 하니까.

그러나 추종자와 엮여 있을지도 모르는 자와 연결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르카스는 나와 드레인을 한 번씩 쭉 훑었다.

“블루로즈단 용병들은 입이 무거운 편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나.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드레인은 다르다.

괜히 드레인이 수다쟁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나의 예상대로 드래인은 마르카스의 말을 부정하려 했다.

하나 그러기 전에 난 고개를 가로저으려던 드레인의 정강이를 가볍게 걷어찼다.

“끅!”

드레인이 정강이를 쥔 채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나는 빠르게 선수를 쳤다.

“예, 입이 굉장히 무겁습니다. 특히 저하고 여기 있는 부대장 드레인은 블루로즈단에서 입이 무겁기로 소문이 난 사람들이죠.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미안합니다, 선배.

저도 모르게 그만 발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어요.

드레인은 ‘두고 보자, 이 녀석!’이라는 뜻이 담긴 눈빛으로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한편 마르카스는 과거를 회상하듯 의자에 몸을 묻은 채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라피엘교에 어떤 의뢰가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칠흑의 조각에 잠식당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들이 발견되었다고. 그래서 저희는 병력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매우 작은 마을이었지요. 백 명이 채 될까 말까한 곳이었습니다.”

테일의 공식 발표를 통해 칠흑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리고 파리마 사건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각종 사건들은 사람들에게 칠흑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줬다.

사람들은 잠식된 자들, 아니 잠식된 생명체 자체를 두려워했다.

라피엘교 같은 종교 집단은 칠흑을 ‘신에 대항하는 부정한 것’으로 규정짓고 대대적인 토벌에 나섰다.

마을로 병력을 파견한 것도 아마 그 일환이었을 것이다.

“파견된 병력을 이끌던 자가 바로 카르탈이라는 남자였습니다. 파이스는 카르탈의 부관 자격으로 같이 그곳으로 향했지요.”

벌써부터 불안함이 솟구쳤다.

사건의 냄새가 난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다 칠흑에게 잠식된 건 아니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중에 한두 명만 잠식되어 있었습니다. 그 한두 명조차 잠식 2단계에 들어서기 전에 팔라딘과 프리스트들에 활약으로 인해 소멸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거였죠. 그런데 도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나와 드레인은 어느새 마르카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카르탈이 마을 사람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겁니다. 칠흑의 조각은 사람의 마음이 무너졌을 때를 파고들어 잠식하는 무서운 존재. 분명 잠식된 마을 사람들이 또 있을 거라고 판단을 내린 겁니다.”

합리적인 의심이긴 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한 조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하기로 한 겁니까?”

드레인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마르카스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그 자리에서 전부 죽이기로 했습니다.”

“…….”

최악의 선택을 했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자들과 같은 마을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야 하다니.

그들의 억울함이 나한테조차 느껴질 정도였다.

“파이스는 카르탈의 결정을 전면으로 부정했습니다. 어린 아이들도, 연약한 여자도, 힘없는 노인도 있는데 이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단으로 몰아 죽일 생각을 하냐고. 하지만 카르탈의 결정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의 파이스에겐 카르탈을 말릴 힘이 없었지요.”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 억울한 자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된 파이스.

나는 파이스의 심경을 얼추 헤아릴 수 있었다.

“그래서 파이스는 라피엘교를 떠나기로 한 거군요.”

“예, 제가 끝까지 말려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아직도 교단을 나갈 당시, 저에게 했던 파이스의 말이 기억이 남는군요.”

“뭐라고 했습니까?”

문득 궁금해졌다.

마르카스는 쓰디쓴 미소를 머금었다.

“추악한 교단에 남아 위선자가 될 바에야 차라리 이단이 되어 지옥으로 떨어지겠다……고 했습니다.”

실로 파이스다운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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