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
시간의 무덤지기, 벨레너 (1)
방금…… 뭐라고 했나?
“벨레너라고요?”
“설마 저희가 아는 그 벨레너입니까?”
“동일 인물이에요?”
“이름만 같은 건 아니죠? 그렇죠?”
사방에서 질문이 날아들었다.
나도 한마디 하자고.
한편, 갑자기 질문 세례를 받게 된 벨레너(로 추정되는 인물)는 우리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나를 아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특히 아이템 헌터, 카이딘이 가장 흥분했다.
“벨레너의 13난제를 만든 그분 아닙니까! 세상에! 아니, 그런데 어떻게 살아 계십니까? 벨레너의 13난제는 백 년도 더 된 일인데……. 아, 맞다. 여기 타임 그레이브지?”
본인이 물어 놓고 본인이 알아서 대답한다.
13난제라는 말을 들은 순간, 벨레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13난제? 나는 그런 걸 만든 기억이 없는데.”
기억할 리가 없다.
왜냐하면 벨레너가 사라지고 난 이후에 그가 클리어하지 못했던 것들이 알려지고 알려져 ‘벨레너의 13난제’라는 게 탄생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나는 벨레너가 죽은 줄 알았는데.
설마 여기서 시간의 무덤지기 역할을 하면서 멀쩡히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눈을 반짝이는 카이딘.
마치 어렸을 적에 동경하던 대스타를 눈앞에서 만난 듯한 반응이었다.
‘기뻐할 만한 사람은 한 명 더 있지.’
마일도 아마 카이딘과 같은…… 어쩌면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좋겠네, 마일.
오늘 계 탔네.
* * *
데르킨 백작과의 전면전이 끝났다.
그를 죽이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래도 모두가 다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첸버를 제외하고 부대장급들은 용병들의 부상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리오나, 그리고 첸버와 함께 벨레너의 집으로 향했다.
원래 첸버는 제나드도 데려오려 했다.
그러나 제나드는 별로 흥미 없다면서 스스로 이 자리를 거부했다.
라스 일행은 전부 다 왔다.
이것으로 모두 참석하…….
“로인 님, 섭섭합니다. 저를 두고 어딜 가려고 하신 겁니까?”
마일이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나를 노려 봤다.
“너, 집에 안 갔냐?”
“살면서 한 번 올까 말까 한 지역이 타임 그레이브 아닙니까? 오기 어려운 곳을 방문했는데 금방 돌아가면 안 되죠. 그리고 소식 들었습니다. 저 남자가 용병계에서 전설로 알려진 바로 그 ‘벨레너’입니까?”
“일단은.”
“오호, 이런 귀한 기회를……! 로인 님과 함께 움직이면 얻어 가는 게 참 많은 거 같습니다.”
“그러냐? 좋겠네.”
가면 때문에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나는 왠지 마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분명 함박웃음을 짓고 있겠지.
모두가 다 죽었을 거라 예상했던 벨레너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이번 기회에 많은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이 마일의 심정일 것이다.
그건 카이딘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벨레너는 우리를 자기가 살고 있는 통나무집으로 안내했다.
“들어오도록.”
“실례하겠습니다.”
벨레너 말고는 아무도 안 살았다.
하기야, 마일이 말했던 것처럼 타임 그레이브는 오기 쉽지 않은 지역이다.
시간이 불안정하게 흘러가는 이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벨레너 혼자서 살기에는 여유 있을 법한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니 집이 꽉 차 보였다.
벨레너가 먼저 우리에게 물었다.
“바깥의 시간은 많이 흘렀나 보군.”
여기까지 오면서 벨레너는 첸버에게 얼추 바깥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해 들었다.
특히 라바인 전투 이야기가 나왔을 때 벨레너의 표정은 사뭇 심각해졌다.
벨레너가 사망했다고 알려지고 난 이후에 라바인 전투가 발생했다.
그러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칠흑이라…….”
“칠흑의 존재를 예전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칠흑에 가장 관심이 많은 내가 기회를 틈타 물었다.
벨레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 그때는 칠흑이라는 존재가 지금처럼 활개치고 다니지 않았으니까.”
칠흑의 존재가 세상에 공표된 건 라바인 전투 이후다.
벨레너가 칠흑의 존재를 모르는 건 당연했다.
“그렇다면 아까 검은 연기의 소환수들을 다루던 자가 칠흑의 추종자였다는 소리군.”
“예, 그렇습니다.”
나는 벨레너의 말을 받아 줬다.
그밖에 벨레너는 궁금한 점을 우리에게 물었다.
주로 역사책에 나오는 옛 이야기들뿐이었다.
대답은 주로 마일과 엔드라가 답했다.
마일 못지않게 엔드라 또한 굉장히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엔드라.
라스의 동료 중 한 명으로서 언어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통달한 남자다.
유명한 언어학자이면서 동시에 실력 있는 언령술사로 정평이 나 있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지 화술 능력 또한 일품이었다.
말을 조리 있게 잘 이끌어간다.
‘슬슬 우리가 벨레너에게 물어볼 차례가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려고 할 때였다.
엔드라가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저희는 타임 그레이브에 벨레너 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 세간에는 벨레너 님이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어찌하다 여기에 머무르게 된 겁니까?”
민감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엔드라도 조심스럽게 물어본 것이다.
이 순간, 모든 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대체 왜 타임 그레이브에 은거하고 있었던 걸까?
벨레너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사랑하는 이가 있었지. 내 마음을 처음으로 훔친 아름다운 여인이었어.”
갑자기 사랑 이야기?
이건 좀 뜬금없는데?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사람 인생이라는 게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이니까.
옛 일을 회상하기 시작하는 벨레너.
“하지만 그녀는 이내 죽을병에 걸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녀를 죽음이라는 늪에서 구해 내려 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시간을 늦추는 것뿐.”
“그래서 타임 그레이브로 오신 거군요.”
“그렇지……. 하지만 그녀가 죽고 난 이후에도 타임 그레이브를 떠날 수가 없더군. 왜냐하면 이곳은 그녀의 향기가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니까. 아직도 라벤더 향기가 날 때면…… 그녀를 떠올리곤 해.”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큼 벨레너의 마음속에 남은 사랑이라는 감정 역시 오랫동안 머무는 듯했다.
“…….”
“…….”
우리는 이 순간, 함부로 입을 열 수 없었다.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 때문이었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 뻥이다.”
“예?”
“뻥이라니요? 설마 방금 그게 다 거짓말이었다는 겁니까?”
벨레너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망할 노인네!
여태껏 근엄 더하기 위엄 넘치는 모습만 보이던 벨레너가 이런 질 나쁜 농담을 할 줄이야.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
벨레너는 웃음을 거둔 후에 우리에게 사과했다.
“미안하군. 너무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말이야. 아무 이야기나 지껄이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런 농담을 꺼내고 말았군.”
그래도 한편으로는 그 이야기가 거짓이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혼자서 외롭게 살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그런 과거 이야기까지 안고 있으면 얼마나 쓸쓸할까?
한 순간이라도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
* * *
칠흑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말한 벨레너.
이 덕분에 라스는 벨레너에게 딱히 뭐라 물을 만한 게 없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칠흑뿐이니까.
나도 마찬가지다.
벨레너에게 물을 게 없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그의 집에서 나왔다.
나와 라스, 이렇게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벨레너에게 묻고 싶은 게 굉장히 많은 듯했다.
이해는 한다.
용병으로 따지면 벨레너는 저들에게 있어서 대선배다.
벨레너가 알고 있는 몬스터, 던전에 관련된 지식은 그야말로 보물 중에서도 보물일 터.
“그러고 보니…….”
라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어디에 묻혀 있을까요?”
“글쎄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 질문은 벨레너에게 이미 했다.
벨레너는 ‘모른다.’라고 답했다.
라바인 전투가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뭔지도 당연히 모를 거다.
나와 라스는 본의 아니게 벨라시오닉의 보물 수색 작전에 돌입했다.
나는 용병들을 대동하기로 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찾는 즉시 나에게 보고하도록.”
“예, 대장님!”
수색 지시를 내린지 30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드레인이 나를 찾았다.
“대장, 찾았어.”
“정말입니까?”
“어, 근데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많진 않아. 한…… 5개?”
5개도 많은 거다.
벨라시오닉의 보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 물건인지, 나와 라스는 누구보다도 잘 안다.
왜냐하면 우리 두 사람은 벨라시오닉의 보물 덕분에 칠흑의 세력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묻힌 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 묻혀 있었다.
“누가 찾았습니까?”
드레인은 내 물음에 바로 반응했다.
반드를 가리켰다.
“암살자 씨께서 찾았어.”
역시 반드다! 감이 좋다니까?
나는 라스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어떻게 분할할까요?”
“분할?”
“예, 라스 씨도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원해서 이곳으로 온 거 아닙니까?”
“아, 저는 데르킨 백작의 손에 이 보물들이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 겁니다. 보물에 욕심은 없습니다. 그냥 로인 씨가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제가 독점하면 카이딘 씨가 또 뭐라고 그러지 않을까요?”
“여기에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묻혀 있다는 걸 비밀로 하면 됩니다. 그리고 레이샤르 님께서 말씀하시더군요. 로인 씨, 당신은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을 가지면 가질수록 강해진다고.”
레이샤르가 라스에게 용신단에 대해 살짝 이야기를 흘린 것 같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될 줄 알고 라스가 나에게 보물을 양도하게끔 만들어 주기 위해 일부러 말을 흘린 건가?
만약 그런 걸 모두 계산한 거라면, 레이샤르는 정말 머리 좋은 드래곤일 것이다.
‘아니지, 실제로 좋잖아?’
괜히 지식을 탐구하는 드래곤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라스 덕분에 나는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독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전에 나는 용병들에게 지시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발견했다는 건 S팀, B팀에게 비밀로 하도록 해. 알겠지?”
“예, 대장님!”
그들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타임 그레이브에 묻혀 있는지 모른다.
그저 데르킨 백작을 막아 달라는 레이샤르의 의뢰를 받고 이곳에 왔을 뿐.
보물을 챙기는 동안, 반드가 갑자기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죽음의 향기가 나는군.”
또 뭐래, 저 녀석은.
그냥 무시할까 했지만, 도플갱어의 숲 때의 일이 떠올라 버려서 무시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때 당시에 레이샤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반드는 감이 굉장히 좋다고.
보물을 찾은 것도 반드다.
혹시 또 모른다.
추가로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발견했을지도.
그러니 이번에는 전혀 다른 거였다.
반드를 따라간 곳에 놓인 곳은 다름 아닌…….
묘비였다.
‘누군가가 여기서 죽은 건가?’
정성스럽게 치장되어 있는 묘비.
최근까지 사람의 손이 닿은 흔적이 보였다.
나는 한쪽 무릎을 꿇고 비석을 쓰다듬어 보았다.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은 단 한 명, 벨레너뿐이다.
‘과거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고 했지.’
묘비에서 향기가 풍겼다.
라벤더 향이다.
“…….”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벨레너, 그 양반…….
‘……거짓말쟁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