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47화 (147/240)

# 147

시간의 무덤 (1)

용병들은 의뢰가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에 매우 의아해했다.

첸버의 출정 명령이 떨어져도 곧바로 움직이지 못했다.

레임스가 손을 번쩍 들었다.

“첸버 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해 보도록.”

“왜 의뢰가 하나뿐입니까? 다른 의뢰는 없습니까?”

블루로즈단 전체 소집령에 의뢰가 달랑 하나만 나온 건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질문이 튀어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첸버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렇게 됐다.”

납득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사정을 알고 있다.

실은 블루로즈단에 수십 개의 의뢰들이 들어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레이샤르는 첸버와 제나드를 찾아가 이 의뢰들을 다 클리어하고 얻을 수 있는 보수 금액의 수십 배를 주겠다고 물밑에서 거래했을 것이다.

합리적으로 따져 봐도 블루로즈단 입장에서는 레이샤르의 의뢰 하나를 수행하고 다른 의뢰들을 클리어한 보상의 수십 배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다.

게다가 레이샤르는 인간로 둔갑해 저들을 찾아가지 않았다.

드래곤 레이샤르로서 의뢰한 것이다.

첸버는 머리가 좋은 남자다.

드래곤의 의뢰를 수행함으로써 레이샤르와 친분을 다져 놓는다면, 차후에 많은 도움을 받을 거란 사실도 계산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많은 용병 조직들이 자신들의 활동에 도움이 되는 마법사 길드에 잘 보이려 노력한다는 사실은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나 마법사 길드와 드래곤…… 두 존재를 놓고 비교한다면 단연 후자다.

마법사 길드 10개가 있어도 드래곤을 이기지 못한다.

그만큼 드래곤은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존재다.

그래서 첸버는 레이샤르의 의뢰를 수행할 것을 택했다.

‘첸버다운 선택이야.’

역시 블루로즈단의 브레인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레이샤르가 직접 우리에게 의뢰를 해온 만큼…….

‘굉장히 위험한 의뢰라는 것을 뜻하지.’

어쩌면 블루로즈단이 전멸할지도 모른다.

첸버의 선택은 도박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당률이 굉장히 높다.

‘성공만 하면 초대박이지.’

이 속사정을 용병단 모두에게 들려줄 순 없다.

왜냐하면 의뢰인이 레이샤르라는 게 밝혀지면 안 되니까.

웅성이기 시작하는 용병들.

그때, 전체 소집령에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제나드가 등장했다.

“조용.”

제나드의 묵직한 한 마디에 용병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번 의뢰는 굉장히 위험한 임무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명심해라. 성공한다면 막대한 보상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제나드는 힘 있게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두 가지다. 첫 번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그리고 두 번째, 모두가 살아서 귀환한다. 이번 의뢰가 끝나면 당분간 굵직한 의뢰는 없을 것이다. 충분한 보상과 휴가를 제공하겠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싸워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서 돌아와라. 알겠나!”

“예! 단장님!”

“블루로즈단을 위하여!”

“단장님을 따르겠습니다!”

잊고 있었다.

블루로즈단은 다른 용병 조직에 비해 결집력이 굉장히 강하다.

그리고 단장에 대한 믿음 또한 높다.

제나드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이제 와서 ‘난 빠지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용병은 없었다.

그러나 충성심 이야기를 하면, R팀은 조금 다르다.

R팀 용병들의 충성심은 제나드가 아닌 나로 향해 있다.

나는 타임 그레이브 전투에 참가하겠다고 일찌감치 용병들에게 말을 전해 뒀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나를 따르겠다고 선언했다.

베라만 빼고.

아무튼, 드디어 처음으로 데르킨 백작과 전면전을 벌이게 되었다.

‘어떻게 될까?’

불안감.

동시에 기대감이 샘솟았다.

* * *

타임 그레이브로 향하기 전에 나는 미리 만들어 둔 환약들을 전부 삼켰다.

이게…… 의외로 먹으면 포만감이 든다.

그래서 나는 아침, 점심, 저녁 내내 밥 대신 환약으로 변환시킨 아이템들을 삼켰다.

덕분에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시간을 두고 하나씩 천천히 삼키려고 했는데…… 이 정도면 과식인데?’

그래도 체하진 않았다.

후율의 유산과 함께 잠들어 있던 아이템을 전부 삼킨 결과…….

-용신단의 레벨이 63을 달성했습니다.

50레벨에서 시작해 13레벨을 더 올렸다.

하나 100레벨까지 만들기에는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하아, 어느 세월에 다 올리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벨라시오닉의 혼 각성 스킬은 둘째 치고 데르킨 백작과 맞붙기 전에 하다못해 강력한 액티브 스킬 하나라도 배우면 좋을 텐데.

뭐 삼킬 만한 아이템이 또 없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울에 있는 아이템 상점에 들러 보기로 했다.

“어서 옵……! 아니, 로인 대장님 아닙니까!”

근육질의 대머리 아저씨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누런 이가 시원스럽게 드러났다.

“아이템 좀 구입하려고 왔는데요.”

“어떤 아이템을 찾으십니까?”

“유니크 급 이상 되는 아이템 있으면 전부 주세요. 다 살 테니까.”

“유니크 등급이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대머리 아저씨는 직원과 함께 창고로 향했다.

5분 뒤, 그는 미안한 표정과 함께 아이템 몇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죄송합니다, 대장님. 유니크 급으로 5개밖에 없네요.”

적다.

심각할 정도로 적다.

안 그래도 유니크 등급 아이템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에 비해 경험치도 거의 안 주는데, 숫자까지 부족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거라도 주세요.”

“하핫! 매번 감사합니다!”

나중에 나울로 우수한 대장장이를 몇 명 모셔 와야겠다.

레전드 등급 아이템을 자체 생산할 수 있다면, 주기적으로 용신단의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유니크 아이템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바깥으로 나오려 할 때였다.

“로인 님! 여기 계셨군요.”

라그너가 인사 후에 빠른 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야?”

“로인 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왜,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

“그런 건 아니고요. 저를 따라오시지요.”

라그너는 먼저 앞장서며 길을 안내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만히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뒤를 따르기로 했다.

라그너가 나를 안내한 곳은 그의 개인 사무실이었다.

“대규모 전투를 치루기 위해 출정하실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이걸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자그마치 3개나 놓여 있었다.

놀란 나머지 말을 제대로 이을 수 없었다.

이걸 대체 어디서?

당황하는 내 모습에 라그너는 친절히 설명을 들려줬다.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로인 님이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모은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보이는 대로 사들였습니다. 3개밖에 구입하지 못했지만요.”

“3개만으로도 충분해. 그나저나 이거, 돈 좀 많이 썼겠는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 사비로 산 거니까요. 경비 처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더 걱정되는데?”

사비로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3개나 구입할 정도라니.

하긴, 우리 로그 상단이 돈을 많이 벌긴 했지.

라그너 정도 되는 위치면, 쌓아놓은 돈이 꽤 많을 것이다.

그래도 나를 위해 이런 귀한 물건을 준비하다니…….

감동이다.

“고마워. 잘 쓸게.”

“고맙다는 말은 오히려 제가 로인 님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드려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라그너는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반드시 살아 돌아오세요. 제가 드리는 부탁입니다.”

라스를 도와주러 가는데, 그 과정에서 내가 죽어 버리면 무의미하다.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서 다시 이곳, 나울의 땅을 밟을 것이다.

“알았어. 꼭 돌아올게.”

라그너와의 약속.

나는 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 * *

라그너가 준 벨라시오닉의 보물 3개를 환약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도 아이템 삼켰는데.”

이걸 먹으면 또 엄청 배부르겠지?

아이템의 등급이 높을수록 포만감 또한 크게 느껴진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아이템 중에서도 최고등급으로 인정받는다.

이거 먹으면 오늘 하루 3끼는 다 먹은 셈이다.

“에라이, 모르겠다!”

칼로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포만감만 드는 거니까 살 찔 염려는 없다.

꿀꺽!

연달아 3개의 환약을 삼켰다.

그러자…….

-띠링! 경험치가 오릅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70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액티브 스킬, ‘용의 숨결’을 획득하였습니다.

드래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기술이 몇 개 있다.

‘브레스’는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래, 브레스 같은 스킬이 있을 줄 알았어!’

마침 잘됐다.

안 그래도 대량 학살용 스킬이 필요했다.

강력한 마법 공격을 가하는 범위형 스킬.

대규모 전투에서 꼭 필요한 기술이다.

‘타이밍 좋게 얻었네.’

이게 다 라그너 덕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 덕분에 용신단의 레벨도 오르고 새로운 액티브 스킬까지 얻었다.

만약 내가 타임 그레이브에 있는 벨라시오닉의 보물들도 차지한다면…….

‘100레벨도 꿈은 아니야!’

타임 그레이브 전투에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 * *

출정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한 가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베라를 데리고 가는 게 과연 옳을까?’

거길 가면 분명 엘라시아와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또 꼬이게 될 텐데…….

한 가지 방법은 있다.

‘마주치지 않게만 하면 괜찮긴 해.’

하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바로 근처에만 있어도 서로의 기운을 감지하는 게 바로 하이엘프 종족의 특성이다.

어쩐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론을 내렸다.

‘그냥 데리고 가자.’

지금은 베라와 엘라시아가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데르킨 백작과의 전면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선 살고 봐야 한다.

베라는 중요한 전력이다.

그녀가 있고 없고에 따라 전투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일단은 생존, 그리고 승리가 목표다.

그래서 나는 결국 베라까지 출정 멤버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로써 R팀은 전원이 출정길에 오르게 되었다.

여기에 예정에 없던 추가 멤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면을 쓴 마일이 R팀 단원들 앞에서 자기를 소개했다.

“로인 님에게 부탁을 받고 이번에 출정 멤버로 합류하게 된 마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용병들은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였다.

드레인은 나에게 작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물었다.

“저 사람, 데리고 가도 돼? 차림새가 너무 수상쩍은데?”

“믿을 만한 녀석이니까 괜찮아요.”

마일은 뛰어난 정보력으로 우리들의 눈이 되어 줄 존재다.

뿐만 아니라 싸움도 잘한다.

마일이 우리를 도와준다면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일은 나에게 부탁을 받고 부대에 임시로 합류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 반대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마일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로인 님은 제게 있어서 소중한 고객님이니까요. VVIP를 지키는 것도 현자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

물론 녀석은 내 목숨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든 지식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게 더 걱정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나는 그걸 단번에 눈치챘다.

그래도 뭐, 상관은 없다.

내 지식 덕분에 마일이라는 든든한 아군을 얻게 되었으니 이득 아닌가?

이제 슬슬 출발할 때가 되었다.

S팀, B팀과 합류하기로 한 지점까지 단숨에 이동해야 한다.

나는 용병들에게 외쳤다.

“출발한다! 나를 따르라아아!”

이 말, 예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소원 성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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