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시작의 기억 (2)
벨라시오닉의 기억을 접하고 난 후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벨라시오닉의 혼을 어떻게 깨운담?’
용신단에 벨라시오닉의 혼이 잠들어 있다는 건 이번 일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하다못해 방법 정도는 알려 주면 좋잖아? 망할 도마뱀 녀석!’
나도 모르게 벨라시오닉을 욕했다.
아무튼 이건 나중에 고민해 보도록 하고.
나는 다시 후율의 유산이 보관되어 있는 방을 빠져나왔다.
내가 나오자, 재단의 간부들은 나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안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응? 알고 있던 거 아니었나요?”
“후율 님의 유산은 후계자에게만 처음으로 공개되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안에 어떤 내용물이 있는지 모릅니다.”
젊어 보이는 간부가 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랬군.
그렇다면 이자들은 후율이 벨라시오닉과 아는 사이였음을 모른다는 뜻이다.
안에 벨라시오닉의 기억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것도 당연히 모르겠지.
오히려 잘됐다.
“안에 금은보화와 아이템들이 가득하더군요. 눈으로 추정할 수 없을 정도로요.”
“그것 말고 다른 건 없었습니까?”
“예, 특별히 눈에 띠는 건 없었습니다.”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벨라시오닉의 기억이 보관되어 있었다는 걸 굳이 이들에게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괜히 내가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녔다가 추종자들에게 정보가 새어 나갈지도.
나는 간부들의 의문을 간결하게 해소시켜 줬다.
그런 뒤에 마일에게 다가갔다.
“너무 많아서 지금 당장 액수로 환산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나중에 내가 상단 인력들 동원해서 저기 안에 보관되어 있는 금은보화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게끔 할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줘.”
“…….”
마일은 대답 대신 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안에 뭔가가 있었군요.”
“…….”
이 녀석. 눈치가 왜 이리 빨라?
역시 현자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가면을 쓰고 있었기에 마일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할 순 없었다.
나는 마일의 대답에 고개만 끄덕여 줬다.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해선 묻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지 않아?”
“물론 궁금합니다. 하지만 제가 여쭤봐도 로인 님께서 속 시원히 대답해 주실 거 같지 않아서 일부러 말을 아낀 겁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래서 마일은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특한 녀석, 특별히 상을 주기로 했다.
“힌트는 줄게.”
마일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는 게 보였다.
나는 작게 읊조렸다.
“시작의 기억이 보관되어 있었어.”
그렇다.
모든 일의 시작.
그리고 이 사단이 발생하게 된 시초.
시작의 기억.
그것이 후율이 남긴 유산의 진짜 정체였다.
* * *
나, 로인이 후율의 유산을 클리어했다는 소식이 용병계에 또 다시 일파만파 파졌다.
내가 통산 4개의 벨레너의 난제를 클리어한 셈이었다.
막대한 유산을 가지고 돌아온 나.
라그너는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이게 대체 뭡니까?”
“보다시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마차 수십 대를 대여해 가져온 수많은 금은보화들을 가리켰다.
“돈이야.”
“이게 그 유명한 후율의 유산입니까?”
“어, 참고로 다 가져오지도 못했어. 극히 일부에 불과하니까. 나중에 네가 따로 상인들을 파견해서 가져오게 해 줘. 아마 이곳으로 다 옮기는 데까지 몇 달 걸릴 거야.”
“어마어마하군요……. 살아생전 이렇게 많은 금화들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금은보화도 중요하지만, 최우선사항으로 가져온 물건들이 있었다.
나는 뒷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이 안에는 수십 개의 환약들이 들어 있었다.
후율의 유산 중에서 등급이 높은 아이템들을 환약으로 변환시켜 뒀다.
오면서 계속 삼켰지만, 워낙 많은 탓에 아직 한참 남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용신단의 레벨이 50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용언 마법을 터득합니다.
-새로운 미개방 스킬 정보가 확인되었습니다.
-미개방 스킬 정보를 열람하시겠습니까?
바로 이 수수께끼의 스킬이다.
얻은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킬의 정보만 얻었을 뿐이다.
나는 미개방 스킬 정보 내용을 확인했다.
-벨라시오닉의 혼(미개방)
-보물을 삼키는 드래곤, 벨라시오닉의 혼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벨라시오닉의 기억과 지식을 공유합니다.
벨라시오닉의 기억은 자신의 혼을 용신단에 담아 뒀다고 했다.
도움 안 되는 도마뱀…… 어흠!
벨라시오닉의 혼을 어떻게 일깨울지…… 이게 나의 최대 고민이었다.
이 고민은 용신단의 레벨이 50에 도달했을 때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미개방 스킬 정보가 바로 벨라시오닉의 혼에 관련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벨라시오닉의 혼을 개방하려면 용신단의 레벨이 100에 도달해야 합니다.
이게 문제다.
50까지 올리는 데에도 빡셌는데, 100레벨을 만들라니?
레벨을 가장 빨리 올리는 방법은 벨라시오닉이 삼켰던 보물을 다시 되찾아 내가 도로 삼키면 된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경험치를 가장 많이 준다.
그래서 나는 마일에게 한시라도 빨리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최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라고 지시를 해 두었다.
‘아직 별 말이 없는 걸 보면 멀었나 보네.’
그럼 일단 내가 아는 곳부터 순회공연을 돌아 볼까.
나는 라그너에게 뒷일을 맡기고서 바로 집으로 향했다.
일단 잠을 좀 자고 싶었다.
그동안 일루엣 대도서관에서 낮이나 밤이나 책만 들여다보느라 너무 피곤했다.
‘자고 난 다음에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하고 용병 본부에 들르면 되겠지.’
그리 해도 늦진 않을 것이다.
‘얼마 만에 돌아오는 집이냐.’
문고리를 열고 안으로 들어서려던 찰나였다.
‘뭔가 이상해.’
낯선 자의 흔적이 느껴진다.
침입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안 그래도 나는 데르킨 백작과 추종자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언제 나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다.
‘대놓고 쳐들어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네.’
누군진 모르겠지만, 참교육을 시켜 주기로 했다.
2층으로 향했다.
녀석들은…… 아니, 놈은 위에 있다.
‘한 명이 전부야?’
나, 제대로 얕보였네.
곱게 돌려보내 주려 했더니만, 안 되겠다.
침실로 향했다.
언제든 바로 반응하게끔 신경을 곤두세웠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그대로 발로 ‘뻥!’ 걷어찼다.
박살 난 문 조각이 낯선 침입자를 향해 날아들었다.
녀석이 문 조각들을 쳐 내는 동안, 나는 빠른 속도로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바로 일격을 가했다.
내 주먹이 놈의 안면 바로 근처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환영 인사가 상당히 거칠군.”
지식을 탐구하는 자, 레이샤르.
그가 침입자의 정체였다.
* * *
“무례함을 저질러 죄송합니다, 레이샤르 님.”
“괜찮네. 요즘 같은 시기에 낯선 자가 집에 몰래 들어와 있으면 충분히 의심할 만하지. 내 잘못이야.”
레이샤르는 쿨하게 이번 일을 넘겼다.
솔직히 내가 100퍼센트 잘못한 건 아니었으니까.
추종자로 오해하게끔 만든 레이샤르의 탓도 있다.
레이샤르는 나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자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어떤 일입니까?”
“조만간 라스 일행과 데르킨 백작이 크게 충돌할 걸세. 장소는…….”
레이샤르가 장소를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타임 그레이브(Time Grave)로 알고 있습니다.”
이름하야 시간의 무덤.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타임 그레이브는 다른 지역과 다르게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평균 시간보다 2분의 1가량 늦다고 한다.
레이샤르는 놀라움을 드러냈다.
“음? 그걸 어떻게 알았나?”
“저의 독자적인 정보망이 있습니다.”
참고로 정보망의 이름은 ‘《델리피나 전기》(저자 카인)’이다.
타임 그레이브에서 라스와 데르킨 백작의 대대적인 충돌이 발생한다.
이유가 있다.
레이샤르가 그 이유를 언급했다.
“그곳에서 다량의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타임 그레이브에서 발견되어 그런지 보물들의 상태 또한 상당히 괜찮다고 들었네.”
하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이니까.
아이템의 풍화 작용도 그만큼 더뎠을 것이다.
데르킨 백작은 자신의 힘을 키우기 위해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노리고 있다.
타임 그레이브에서 발견된 다량의 벨라시오닉의 보물은 데르킨 백작에겐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데르킨 백작의 음모를 알고 있는 라스 일행이 이걸 방관할 리 없다.
레이샤르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원래대로라면 라크스 공작도 이번 전투에 참가했어야 했지만, 그자는 다른 추종자 세력과 전투를 벌이는 중이라 합류가 늦어질 것 같더군. 그래서 자네를 대신 그쪽에 투입하고 싶네.”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저를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블루로즈단 전체를 필요로 하시는 겁니까?”
“큰 규모의 전투가 벌어질 테니 후자가 좋겠군.”
“그러면 힘들 겁니다. 블루로즈단이 움직일 만한 명분이 필요합니다. 그 명분이 없다면 아무리 제가 R팀 대장직을 맡고 있다고 해도 블루로즈단 전체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듣고 보니 그런 문제도 있군.”
하나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나는 레이샤르에게 슬쩍 말을 흘렸다.
관심을 보이는 레이샤르.
“들어 보도록 하지.”
“레이샤르 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비책을 레이샤르에게 들려줬다.
레이샤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작전이군. 자네 말대로 하겠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레이샤르 님.”
“오히려 내가 부탁해야 하는 입장인데, 이 정도야 뭘. 그리고 상황이 너무 긴박하다 싶으면 중간에 내가 개입하겠네.”
“아니요, 레이샤르 님은 가급적이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을 겁니다. 어쩌면 제2의 벨라시오닉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르니까요.”
인간이 잠식당하는 것과 드래곤이 잠식당하는 건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거의 인류 멸망 직전까지 갈 것이다.
“내 미처 그 생각을 못했군. 그럼 아무쪼록 자네가 힘을 좀 내 주게.”
“맡겨 주세요.”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도 모른다.
왜냐하면 소설 속 내용과 이 세계의 내용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으니까.
어쩌면…….
‘이번 전투에서 라스가 죽을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배드엔딩이다.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어떻게든!
* * *
블루로즈단 소집령이 떨어졌다.
간부 소집령이 아닌 단원 전체 소집령이다.
전체 소집령에서는 각 용병들이 맡고 싶은 임무를 할당받는다.
저번에 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시브 방어전 의뢰를 할당받은 적이 있었다.
용병들은 벌써부터 어떤 의뢰 명단이 꾸려져 있을지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첸버가 커다란 두루마리를 펼친 순간…….
용병들은 눈을 의심했다.
“의뢰가…….”
“하나밖에 없습니까?”
첸버는 용병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여줬다.
-타임 그레이브 전투
-의뢰인 : ???
-보수 금액 : 차후에 협의
-내용 : 10일 뒤에 있을 추종자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시오.
“이번 의뢰는 하나뿐이다. 그런 의미로 블루로즈단 전체가 타임 그레이브로 향한다. 출정 준비를 서두르도록!”
이야기의 흐름은 내 계획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