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8화 (138/240)

# 138

망할 주인공 보정! (1)

식인 호수를 조종하고 있던 리치의 소멸로 인해 벨레너의 4번째 난제는 클리어되었다.

대신 그에 따른 희생이 있었다.

우선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내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던 호수 자체가 사라졌다.

더 이상 ‘호수’라 불릴 만한 곳이 아니었다.

이제는 그냥 움푹 파인 맨땅일 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죄송합니다. 리트로 님.”

나는 리트로에게 사과했다.

기력을 되찾은 리트로는 오히려 되물었다.

“왜 사과하는 건가?”

“리트로 님의 소중한 저택을 저희가 부숴 버렸으니까요.”

“아…… 그거라면 됐네. 물론 저택도 소중하긴 하지만, 식인 호수를 클리어하기 위해서 반드시 없애야 했다면, 어쩔 수 없지. 신경 쓰지 말게.”

사실 반드시 없애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냥 귀찮아서 다 부숴 버렸다.

하나 리트로에게 그것까지 말하고 싶진 않았다.

그보다 리트로는 몰랐던 진실을 알아낸 것에 대해 더 많은 신경을 집중시켰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에게 그런 사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 왜 나에게 식인 호수의 탄생 배경을 이야기해 주지 않았었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거 같군.”

두 사람에게 있어선 일종의 치부일지도 모른다.

얽히고설킨 사랑 이야기.

손주에게 들려주기에는 부적합했을 거란 생각을 한 모양인가 보다.

어쨌든 벨레너의 4번째 난제는 클리어되었고.

이제부터 정산 타임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보상을 줘야 하나?”

모든 용병들이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식인 호수를 클리어하기 위해 적지 않은 투자와 손해를 감수했다.

비록 마지막 일격을 가한 건 나였지만, 여기 있는 용병들 모두가 식인 호수 클리어 작전에 동참한 건 사실이다.

더 큰 분쟁이 발생하기 전에 나는 책임을 질 인원을 지목했다.

“첸버가 잘 조율해서 리트로 님께 말씀드릴 겁니다.”

“내, 내가?”

첸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 미묘한 신경전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첸버뿐이다.

왜냐하면 그는 용병 조직 모두와 알고 지내고 있으니까.

넓은 인맥은 이럴 때 활용하라고 있는 게 아닌가?

“부탁드릴게요, 첸버 씨.”

“……자네한테 한 방 먹었군.”

첸버는 쓴웃음을 지었다.

* * *

용병대장들을 소집한 첸버는 회의를 가졌다.

회의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각 용병 조직의 활약 비중에 따라 보상을 분배하기로 했다.

저주 받은 저택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한 용병 조직 세 군데.

얀의 스트레이트, 제나드의 S팀, 그리고 나와 반드의 R팀이 가장 많은 분배를 받게 되었다.

나머지는 거의 비등비등했다.

원래는 내가 좀 더 받아도 됐지만, 나는 그 돈을 사망자가 나온 용병 조직에게 돌아가게끔 했다.

일종의 위로금이다.

그들은 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로인 대장이라고 했나? 그대의 선심, 절대로 잊지 않겠네.”

“앞으로 어려운 일 있으면 우리 바스타드를 불러 달라고!”

“우리도 언제든지 자네를 돕도록 하지!”

용병들이 거친 자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의리는 있었다.

정산 문제도 끝났고, 이제 슬슬 돌아갈 때가 되었다.

S팀과 R팀은 재정비를 마치고 내일 오전에 마을을 떠나기로 했다.

저녁에는 회식을 가지기로 했다.

S팀과 R팀은 가게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회식 자리에 베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에도 이런 회식 자리가 있으면 ‘제가 있을 자리는 아니네요.’라고 말하고서 빠졌다.

회식 자리에 강제로 참여하라고 명령하고 싶진 않았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선이니까.

샐러리맨이었던 나이기에 잘 안다.

“자! 모두 잔을 들자고!”

분위기메이커, 드레인이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벨레너의 4번째 난제 클리어 축하를 기념하며! 건배!”

“건배!”

각자 다른 크기의 술잔을 부딪쳤다.

오늘은 나도 술에 취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식인 호수 때문에 갈증을 많이 느꼈다.

그래도 호수의 물을 마실 순 없었기에 일부러 참았다.

그 참았던 갈증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맥주 한 잔을 비워 냈다.

“여기, 맥주 추가요!”

“네! 곧 가요!”

“여기도 한 잔 더!”

“어이! 우리 테이블은 왜 안 내 주는 거야! 한참 기다렸다고!”

여기저기서 맥주를 주문해 댔다.

갈증에 고통 받아 왔던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시원한 맥주는 갈증을 채워 주기에 충분했다.

독하지 않으며 매우 시원하다.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네.’

늦은 밤까지 야근하고 난 후에 퇴근하면, 편의점에 들러서 수입 맥주 캔하고 안줏거리를 사서 마시고 그랬는데…….

맥주를 마시니 그때 생각이 난다.

옛 생각에 잠기며 술잔을 수차례 기울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술에 취한 단원들이 한두 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은 거의 자정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용병들에게 외쳤다.

“내일 아침에 일찍 출발할 거니까 슬슬 들어가서 자라.”

“대장니임……! 붤써 드러가면 안 대져! 바믄 지금부터라구여!”

혀가 잔뜩 꼬인 채 말하는 파이스의 모습에 골치가 아파 오기 시작했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 필요한 건 뭐?

주먹이다.

“나한테 한 대 맞고 들어갈래, 아니면 그냥 곱게 들어갈래?”

“죄송함다, 대장님! 바로 정리하고 들어가겠슴다!”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파이스를 필두로 나머지 단원들도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술값은 이미 첸버가 다 계산한 뒤라고 했다.

내 팀에 소속되어 있는 단원들을 숙소로 보낸 뒤 나는 마지막 정리를 한 뒤에 가게를 나왔다.

‘대장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서 마무리를 해야 하다니……. 어휴.’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내 팀에서 사상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대만족이다.

어렵게 모은 단원들이다.

한 명, 한 명이 내게는 소중한 전력이다.

‘슬슬 나도 들어가 볼까?’

더 늦기 전에 들어가서 쉬어야겠다.

인적이 드문 새벽 거리.

숙소로 가던 길에 나는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제나드잖아?’

단장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집이 어디야?”

“…….”

소년과 소녀.

작은 아이 둘에게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맞춘 제나드.

“집이 없어?”

“…….”

소년과 소녀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옷차림만 봐도 알 것 같다.

부모 없이 이곳저곳을 떠도는 아이들이다.

제나드는 상냥한 미소와 함께 두툼한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이거 받아라.”

소녀가 제나드가 건넨 주머니를 받으려 했다.

그러나…….

“안 돼! 낯선 사람이 주는 거 함부로 받으면 큰일 나!”

소년은 소녀의 행동을 막았다.

똑 부러지는 아이네.

그리고 현명하다.

소년은 제나드를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나드는 소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최대한 밝게 웃었다.

여태껏 보지 못했던 단장의 의외의 일면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 형, 나쁜 사람 아니니까. 그저 너희를 돕고 싶을 뿐이야.”

“……왜요?”

소년은 물었다.

질문은 매우 타당했다.

처음 보는 아이들을 도와줄 의리도, 임무도 제나드에게는 없다.

제나드는 소년의 질문에 답했다.

“나 같은 어른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결국 제나드는 소년의 옷 주머니에 강제로 돈 주머니를 쑤셔 넣었다.

“이거면 당분간 먹고 살 걱정은 없을 거야. 빼앗기지 않게 조심하고. 돈 주머니 꺼낼 때에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 꺼내지 마. 알겠지?”

“……네.”

소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아이들의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 준 제나드는 다시 마스크를 쓰고 S팀 숙소로 향했다.

흠. 뭐라고 해야 되나.

‘못 볼 걸 봤다는 느낌인데…….’

기분이 나쁘다든가 한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제나드라는 남자의 캐릭터성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일화를 접한 기분이다.

‘카인, 그자는 캐릭터 설정을 도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딱히 나쁘단 뜻은 아닌데, 그래도 이질감이 너무 심하잖아.

제나드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갑자기 몇몇 불한당이 소년과 소녀에게 접근했다.

“너, 방금 저 남자한테 돈 받았지?”

“긴말하지 않으마. 내놔.”

벌써부터 벌레들이 꼬였다.

소녀는 무서움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년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그래도 여동생으로 보이는 소녀를 지키기 위해서 울음을 꾹 참아 냈다.

장하네.

하나 불한당들은 소년의 모습에 짜증이 나는 모양인지 바로 손찌검을 하려 했다.

“이 꼬맹이가…… 어딜 눈을 그따위로 떠!”

“한번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손이 위로 올라가는 순간, 나는 남자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거기 수컷 셋.”

남자들의 시선은 내게 고정되었다.

“너희에게 선택지를 주마. 첫 번째, 오른 주먹으로 맞는다. 두 번째, 왼 주먹으로 맞는다. 아, 참고로 안 맞는다 같은 선택지는 없다. 무조건 맞아야 하니까 골라 봐.”

“뭐?”

“저 새끼가 돌았나?”

“거기 너, 머리가 좀 이상한 거 같은데. 혹시 미쳤냐? 우리가 누군지 아냐? 엉?”

“누군데?”

어디 그 잘난 이름이나 한번 들어 볼까?

“누구냐 하면 말이다! 이 골목 제일의 주먹! 세바…….”

뻐어억!

남자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내 주먹에 맞고서 공중에 붕 뜨더니 그대로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처박힌 모습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미안. 이름 정도는 들어 주려고 했는데, 엑스트라 주제에 너무 시간을 질질 끄는 거 같아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때려 버렸어.”

“이, 이놈이!”

남자들은 단도를 꺼내 들었다.

그런다고 내게 상처 하나 낼 수 있을까?

천만에.

오히려 남자들의 행동은 불 난 집에 기름을 펑펑 쏟아붓는 격이나 다를 바 없다.

“오늘 니들은 뒈졌다.”

히어로 놀이나 한번 해 볼까?

* * *

남자들은 얼굴이 퉁퉁 부운 채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죽이진 않았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만 팼다.

“앞으론 조심해라. 그리고 애들 건들면 언제든 내가 와서 네놈들한테 정의의 심판을 날릴 테니까 잘 기억해 두고. 알았냐?”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래그래, 어서들 가 봐. 맞다, 가진 돈은 다 내놓고 가고. 심판 비용이라고 생각해.”

“드, 드리겠습니다!”

제피뿐만 아니라 값나가 보이는 아이템들까지 다 주고 갔다.

꼭 주먹을 써야 말을 듣는다니까.

한편. 나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년과 소녀에게 다가갔다.

둘은 잔뜩 겁을 먹었다.

“괜찮아. 안 해치니까. 아까 너희에게 돈 주고 간 형 있지? 그 형이랑 친구니까 겁먹지 않아도 돼.”

“저, 정말요……?”

“그럼! 그리고 이것들도 너희가 다 가져. 산타가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산타가 뭔데요?”

그러고 보니 여기 아이들은 산타가 뭔지 모르지?

“아이들한테 선물 주는 걸 좋아하는 할아버지. 흰 수염에 빨간 옷을 좋아하고, 사슴을 타고 다니는 할아버지야. 어때. 멋지지?”

“……별로요.”

이세계 아이들에게는 산타의 콘셉트가 안 먹히나 보다.

“아무튼 밤이 너무 늦었으니까 저기 보이는 숙소에 들어가서 자고 가. 내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서 방 하나 잡아서 재워 줄 거야. 참고로 내 이름은 로인. 자, 어서 들어가.”

아이들을 숙소로 보냈다.

무사히 들어갈 때까지 내 눈은 아이들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잘 들어갔네.”

나도 슬슬 내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였다.

“좋은 일을 했군.”

불쑥 등장한 첸버가 내게 손짓했다.

“착한 일을 한 청년에게 이 아저씨가 고급술을 대접하도록 하지. 어떤가?”

“술에는 안주가 필요하잖아요.”

“마침 좋은 안주가 있지. ‘단장의 과거’라는 이름의 안주. 이 정도면 최상급 안주 아닌가?”

“그러네요. 바로 가죠.”

안 마실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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