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7화 (137/240)

# 137

식인 호수 (4)

굳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할 필요도 없다.

저택 자체를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않은가?

어쩌면 저주 받은 저택 자체가 이 식인 호수를 움직이는 힘의 원천일지도 모른다.

임시 철거반이 된 얀은 커진 봉을 휘두르며 신나게 저택을 부숴 댔다.

그러기를 잠시 후, 반드가 저택 밑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에 뭔가가 보이는데?”

지하로 향하는 통로였다.

얀은 봉을 다시 원래의 크기로 되돌렸다.

딱 보니 수상쩍은 냄새가 풀풀 풍겨 나왔다.

나는 지하로 향하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열 테니까 다들 준비해.”

각자 무기를 꺼내 들었다.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왜냐하면 여긴 식인 호수니까.

문을 오픈하는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지하 쪽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공간은 넓지 않았다.

1, 2평 남짓 된다.

지하실이라기보다는 아주 작은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하나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건 내 상상을 뛰어넘었다.

해골이었다.

놈의 목에 걸린 녹색의 목걸이가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

나는 문을 닫아 버리고 곧장 몸을 날렸다.

동시에 등 뒤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폭발로 인해 형성된 먼지구름이 안개와 뒤섞였다.

안 그래도 시야 확보가 잘 안 되는 환경인데, 엎친데 덥친 격으로 더 안 보이게 되었다.

하나 해골이 걸치고 있던 녹색 목걸이의 빛은 확실하게 보였다.

목걸이는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목걸이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해골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해골의 모습을 본 제나드는 대검을 겨눴다.

“스켈레톤인가? 하급 몬스터 따위가 식인 호수를 만들어 냈다고? 이해가 안 가는군.”

나도 제나드와 같은 생각이다.

스켈레톤은 약한 등급으로 분류되는 몬스터의 일종이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스켈레톤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스켈레톤과는 달라 보였다.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누가 나의 잠을 깨웠는가?

말을 한다는 점이랄까?

성대를 통해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스켈레톤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신체 기관이 없다.

텔레파시로 말을 걸고 있었다.

일반 스켈레톤은 할 수 없는 기술이다.

게다가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저 녀석…….

“리치야.”

죽음을 초월한 마법사, 리치.

내 예상이 맞을 거다.

아니, 확신한다.

리치는 목걸이의 힘을 이용해 주변의 안개를 밀어냈다.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시야 확보는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는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식인 호수의 물이 점점 불어나더니, 우리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다.

더 이상 호수라 부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거대한 액체 괴물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거 같다.

참고로 색깔은 파란색이다.

얀은 손으로 봉 끝을 툭툭 건드리면서 리치를 응시했다.

“아무리 봐도 저 녀석이 식인 호수를 조종하는 근원 같은데?”

“너도 그렇게 보이나 보군.”

제나드가 얀의 말을 받아 줬다.

굳이 서로 상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우리 넷은 각자 동서남북 방향으로 마주 보며 서로 등을 맞댔다.

물 촉수들이 우리를 향해 뻗어왔다.

봉을 다시 크게 키운 얀은 우리에게 외쳤다.

“다들 무사히 살아서 보자고!”

원래 이런 말은 플래그가 되는 법인데…….

저 말 하면 꼭 누구 한 명은 죽더라.

불길한 말을 남긴 채 액체 괴물을 상대하기 시작하는 얀.

제나드 역시 대검을 휘두르며 액체 괴물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반드도 마찬가지였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 물 촉수들을 향해 드래곤 클로를 휘두르려 했다.

그러나…….

-쿨 타임입니다.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드래곤 클로는 글레드와 마찬가지로 제한 시간이 있다.

빙판길을 건너올 때부터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으니, 슬슬 시간이 다 되었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그러나 하필이면 이 타이밍이라니.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이게 다 얀의 플래그성 발언 때문이다.

용언 마법을 사용하고 싶었으나, 식인 호수에게는 용언 마법이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청각이라는 게 없는 존재다.

그러니 용언 마법이 통할 리가 있겠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마나를 둘둘 두른 주먹을 휘둘렀다.

뻐억!

경쾌한 타격 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거대 액체 괴물과 싸웠다.

빈틈이 생겼다 싶을 때, 나는 리치를 노렸다.

‘어차피 액체 괴물을 조종하는 건 저놈이다! 리치만 쓰러뜨리면 돼!’

소환사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소환사 그 자체다.

MMORPG 게임을 할 때, 소환사 캐릭터와 대전하면 소환수는 다 무시하고 소환사만 패면 이긴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리치는 내가 본인을 노릴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바로 앞에 베리어를 쳤다.

투웅!

꽤 튼튼한 베리어였다.

“해 보자, 이거지?”

전력을 다해 후려쳤다.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베리어가 산산조각이 났다.

리치는 침음을 흘렸다.

-범상치 않은 녀석이로군. 누가 보낸 거냐? 젤리쉬, 그자인가?

“젤리쉬를 아냐?”

-나를 이렇게 만든 자의 이름을 어찌 잊겠나!

몰랐던 사실이다.

젤리쉬가 이번 일의 원흉이라고?

나는 베리어를 깨고 리치를 바로 공격할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뜸을 들였다.

묻고 싶은 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세히 말해 봐라.”

-…….

리치는 나를 노려봤다.

눈동자가 없어서 나를 바라보는 건지 아닌 건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느낌상으로는 그랬다.

리치는 손을 크게 내저었다.

그러자 갑자기 식인 호수가 그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놓치지 않아!”

식인 호수의 원흉이 리치임을 알게 되었으니, 저 녀석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나는 리치의 뒤를 쫓았다.

제나드도 내게 합류했다.

“저 녀석이 왜 도망치는 거냐?”

“글쎄요, 일단 놈을 쫓아가 보죠.”

리치가 향한 곳은…… 리트로가 있는 장소였다.

갑자기 등장한 식인 호수와 리치 때문에 용병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이었다.

리트로를 지키기 위해서 용병들은 다시 한번 무기를 꺼내 들었다.

에나도 합류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식인 호수를 얼리려 했다.

그러나 전부 다 얼리진 못했다.

“옆쪽으로 흘러나가는 거, 누가 저 대신 얼려 주세요!”

마침 그곳에는 바슬라가 있었다.

“맡겨 둬!”

강한 자신감을 보이는 바슬라……였지만.

“딸꾹!”

저놈의 딸꾹질하는 버릇은 아직도 여전하네!

덕분에 빙결 마법이 아닌 화염 마법이 작렬했다.

당연한 결과지만, 식인 호수에게 화염 마법은 씨알도 안 먹혔다.

식인 호수의 얼어붙지 않은 부분을 이용해 리치는 단숨에 리트로를 사로잡았다.

“커억!”

거대한 손 형상을 한 식인 호수는 리트로의 몸을 점점 압박했다.

-드디어 찾았군…… 젤리쉬의 더러운 피를 이어받은 자여.

리치는 분노로 가득한 텔레파시를 내보냈다.

그러나 리트로는 리치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했다.

“대체…… 우리 가문에 무슨 원한을 지었기에 이런 짓을 하는 거요……!”

-궁금한가? 마침 잘 됐군! 젤리쉬 가문의 만행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으니!

리치는 웃었다.

지금 이 상황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젤리쉬, 그러니까 네놈의 할아버지는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았다. 루아, 사랑스런 나의 그녀.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나의 동반자……가 되었을 여자지.

“루아라면…….”

리트로는 힘겹게 말했다.

“나……의 할머님일 터…….”

-그래, 빌어먹을 젤리쉬가 루아를 데려가 신부로 맞이하고, 그 밑으로 너의 부모와 네가 태어났지.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루아는 내 여자였어! 내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

식인 호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거, 위험한데?

내가 나설까 하려던 찰나였다.

리트로는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할머님은…… 할아버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했소! 과거의 사랑도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현재의 사랑 또한 잃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라고 내게 늘 말했지!”

-거짓말이다! 루아는 젤리쉬의 농간에 넘어가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된 거야! 오직 나만 사랑한다고 외쳤던 그녀가…… 그런 거짓말을 할 리 없어!

“모르는 건 오히려 당신이오! 사랑하는 여자의 행복을 빌어 주는 게 뭐가 그리 어렵소! 당신의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짝사랑, 아니 집착에 불과하오! 더 이상 할머님의 마음을 부정하지 마시오! 할머님은 진심을 다해 할아버님을…… 우리 가족을 사랑했으니!”

-네 이놈!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리트로는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마음을 대변했다.

이쯤이면 됐다.

‘많이 참았어.’

나는 용언 마법을 발동시켰다.

“Asmbr(꿇어라)!”

쿠우웅!

리치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녀석이 일시적으로 식인 호수를 통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 에나가 식인 호수의 팔을 얼렸다.

이후에 제나드가 대검을 휘둘러 식인 호수의 팔을 잘라 냈다.

“리트로 님!”

가르시아와 드레인이 리트로를 성공적으로 구조해 냈다.

이제 마무리다.

나는 천천히 리치에게 다가갔다.

“제삼자인 내가 보기에는 말이야. 그냥 네가 짝사랑에 실패해서 괜히 젤리쉬 가문에 화풀이하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네 생각은 어때?”

-나의 뜨거웠던 감정을 부정하지 마라, 용병이여.

“부정은 안 할게. 짝사랑도 사랑의 일부니까. 하지만 집착이 너무 심하면…… 그건 스토킹이야. 오히려 사랑하는 여자를 괴롭히는 꼴이라고.”

보내 줄 때에는 미련 없이 보내 주는 것도 연인에게 해야 할 일이다.

리치가 되면서까지 젤리쉬 가문을 괴롭힐 집념으로 차라리 다른 걸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리치를 제거하기 전에 나는 놈에게 물었다.

그나마 내가 베풀 수 있는 자비였다.

리치는 웃었다.

-멍청한 녀석이군.

리치는 자신의 목걸이를 잘려 나갔던 식인 호수의 팔 쪽으로 던졌다.

리치의 몸은 그 자리에서 바로 풍화되어 사라졌다.

대신 식인 호수와 결합해 새로운 육체를 손에 얻었다.

“죽어라, 젤리쉬 가문의 더러운 피여!”

리트로를 없애기 위해 달려들던 리치.

그러나…….

“……!”

리치의 모든 행동이 정지했다.

그의 시선은 리트로의 눈동자에 향해 있었다.

맑고 투명한 푸른 눈동자.

리치는 그 눈동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루아의 눈동자와 같은 색…….”

리트로가 젤리쉬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하지만, 동시에 리치가 사랑했던 루아라는 여자의 피를 이어받기도 했다.

사랑하는 여자의 자손을 죽일 수는 없다.

그 망설임이 리치를 옭아맸다.

이틈을 노려 에나의 빙결 마법이 리치를 얼렸다.

이제 도망갈 곳은 없어졌다.

나는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마무리다.”

리치의 본체인 초록빛이 감도는 목걸이를 박살내 버렸다.

그러자 식인 호수는 순식간에 증발되었다.

이곳을 가득 채웠던 물들은 자그마한 물방울조차 남기지 않은 채 모습을 감췄다.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한 남자의 집착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이로써 벨레너의 네 번째 난제도 클리어했다.

드레인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더 이상 호수가 아니게 되어 버렸네.”

그러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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