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6화 (136/240)

# 136

식인 호수 (3)

작전 전달은 모두 끝났다.

이제 준비만 하면 된다.

용병대장들과 상의하에 포지션을 정하는 와중이었다.

“다들 고생이 많군.”

리트로 젤리쉬.

이번 의뢰를 맡긴 자가 직접 식인 호수를 방문했다.

내가 대표로 리트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위로 차원에서 방문했지. 그리고 자네들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난 예전부터 식인 호수에 자주 오곤 했네. 물론 호수 바로 근처까지는 못 가고 주변만 어슬렁거리면서 봤지. 풍경 자체는 매우 아름다우니까.”

손꼽히는 경관이라는 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식인 호수의 무서움을 맛보지 못했을 때 드는 착각에 불과하다.

얼마나 지독한 곳인지 알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 경관도 지옥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 내가 딱 그런 상태거든.

리트로는 대규모 작전을 펼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용병들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성공했으면 좋겠군…….”

많은 의미가 함축된 말이었다.

리트로는 이번뿐만 아니라 식인 호수 난제를 클리어하기 위해 수차례 도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를 했고, 결국 오늘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리트로가 왜 이토록 식인 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면 물어보라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식인 호수에 집착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집착이라…….”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된 표현을 사용했군요.”

“아니, 자네 말 그대로일세. 집착……. 맞아, 나는 이곳에 집착하고 있지.”

리트로는 호수 가운데를 가리켰다.

안개에 가려 흐릿하게 보이는 한 저택.

“저곳 때문이라네.”

“저주 받은 저택 아닙니까?”

“내 선대, 그러니까 할아버님 대에는 평범한 저택에 불과했지. 오히려 굉장히 값어치 있는 곳이었어.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가 할아버님과 가족들을 공격했고, 이곳을 저주 받은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더군. 그때에는 할아버님이 할머님과 막 결혼을 하고 애가 생긴 찰나였기에 나는 그 자리에 없었네. 그저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지.”

과거의 일을 회상하기 시작하는 리트로는 내게, 그리고 용병들에게 부탁했다.

“나는 저곳에 두고 온 할아버님, 할머님의 기억과 소중한 추억을 되찾아 주고 싶다네. 두 분은 비록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하다못해 손자로서 마지막 남은 한을 풀어 드리고 싶군. 그러니 아무쪼록 잘 부탁하네.”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착한 손자를 두셨군.

그의 효심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 봐야겠다.

* * *

각 용병 조직들은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을 호수 여기저기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중에는 내가 아는 얼굴도 있었다.

럭키 매직의 창시자이자 딸꾹질하는 마법사로 잘 알려진 바슬라였다.

“호수를 얼리기만 하면 됩니까?”

“어, 저기 있는 저 청년이 그렇게 말하더라.”

트윈소드 용병 한 명이 나를 가리키면서 바슬라의 질문에 답해 줬다.

나는 바슬라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다.

“잘 부탁해, 친구.”

“일단…… 노력은 해 볼게.”

자신 없어하는 말투였다.

설마 빙결 마법 대신 폭발 마법이라도 사용하는 건 아니겠지?

바슬라의 마법은 랜덤성이 있어서 조금 불안하다.

그렇다고 바슬라를 뺄 수는 없었다.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마법사들의 숫자는 총 여덟 명.

안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마법사를 한 명 더 줄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에나도 자리를 잡았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바로 에나다.

에나 혼자서 호수 전체의 3분의 1 가량을 얼릴 수 있다.

나머지 일곱 명의 마법사들은 에나가 얼리지 못한 식인 호수를 얼리면 된다.

작전은 시작 시간은 저녁 9시.

밝을 때 했으면 좋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식인 호수 근처에서 야영을 하는 건 자살 행위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빨리 식인 호수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해 저녁임에도 작전을 수행하기로 입을 모았다.

‘문제는 저주 받은 저택으로 달려갈 러닝 맨의 여부야.’

우리 R팀에서는 속도에 자신이 있는 반드, 그리고 내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

S팀의 경우에는 단장 제나드, 딱 한 명뿐이다.

나머지 용병들도 각자 속도에 자신 있어 하는 용병들을 한두 명씩 내보냈지만…….

만약 제시간 안에 식인 호수를 건너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호수에게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이건 목숨을 건 달리기다.

작전의 아이디어를 낸 건 나지만, 총 지휘는 첸버가 맡기로 했다.

나는 러닝 맨으로서 활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휘를 할 수 없다.

그래서 첸버에게 양보한 거다.

작전 시작 신호 또한 첸버가 줄 것이다.

나는 스트레칭하기 시작했다.

반드에게도 스트레칭을 권유했다.

“이제부터 미친 듯이 달려야 하는데. 미리 몸이라도 풀어 두는 게 좋지 않아?”

“괜찮아. 라드리치의 능력을 6레벨까지 개방하면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것 따위는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쉬우니까. 후후후……!”

바다 아니거든?

딴죽을 걸려고 했으나 타이밍을 놓쳤다.

“다들 위치로!”

첸버의 목소리가 용병들을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1분 뒤, 작전이 시작된다.

* * *

자세를 낮춘 나는 크라우칭 스타트 자세를 취했다.

익숙한 자세가 아니다 보니 약간 어색했다.

‘실제로 이런 자세가 속도를 빠르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육상 선수가 아니니 이런 걸 잘 모르겠다.

그냥 흉내 한번 내 본 거다.

반면, 반드는 양손을 뒤쪽으로 젖히고, 상체를 앞으로 내미는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모 유명한 닌자 만화에서 닌자들이 저렇게 달리던데.

역시 중2병 감성 충만한 반드다운 자세였다.

“준비!”

첸버의 목소리가 식인 호수 전체에 쩌렁쩌렁 울렸다.

그가 든 조명탄이 터지면, 그것이 곧 작전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긴장되는 순간, S팀 쪽에서 밝은 조명탄 하나가 밤하늘을 갈랐다.

출발 신호다!

“가자, 반드!”

“라드리치 6레벨, 개방!”

우리는 지체 없이 바로 출발했다.

동시에 마법사들이 빙결 마법을 일제히 시전했다.

촤라라라락!

빙판이 빠르게 형성되었다.

다시 한번 식인 호수의 물 촉수가 마법사들을 덮쳤다.

나머지 용병들은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식인 호수 대 용병 연합의 전투가 펼쳐졌다.

물과 전쟁이라니, 살다 살다 별의별 것과 다 싸우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빙판이 형성됨과 동시에 나와 반드는 미친 듯이 호수 중앙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시간은 지나간다.

‘9초! 8초, 7초, 6초…….’

나는 머릿속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계산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미친 듯이 뛰고 또 뛰었다.

한편, 라드리치 6레벨 개방이니 뭐니 하는 헛소리를 내뱉었던 반드는 1등을 계속 유지했다.

‘빠르긴 겁나 빠르네!’

반드가 말은 이상하게 해도 속도 면에서는 확실히 우수한 능력을 보여 준다.

‘좋아, 나도 더 힘을 내 볼까!’

적어도 꼴찌는 하고 싶지 않았다.

4초 정도 흘렀을까, 갑자기 빙판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빙결 마법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풀리고 있어!’

예정된 지속 시간은 9초다. 하나 이 기세로 간다면…….

‘7초? 그 정도 될 거 같은데.’

2초가 부족하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일지 모르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1초…… 아니 초 단위 이하의 시간도 아깝게 느껴진다.

가장 먼저 저주 받은 저택이 서 있는 작은 섬에 도착한 인물은 예상대로 반드였다.

반드를 제외하고 나머지 용병들은 갈라지는 빙판길을 달려야 했다.

여기저기서 물 촉수가 튀어나와 우리 러닝 맨들을 노렸다.

내 바로 근처에서 달리던 제나드는 대검을 꺼내 들었다.

“귀찮은 녀석들.”

후웅…… 퍽!

검을 휘둘러 앞을 가로막는 물 촉수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그냥 뛰는 것도 힘든데 물 촉수의 방해도 뿌리치며 달려야 한다.

‘최악의 상항이야!’

나도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키면서 물 촉수들을 가차 없이 잘라 냈다.

빙판이 녹아 사라지기 시작했다.

발 디딜 곳이 점점 없어졌다.

식인 호수 속으로 빠지면, 그건 곧 사망 선고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독극물보다 위험한 게 바로 식인 호수다.

근처에서 얀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얀은 들고 있던 봉을 들더니 갑자기 자신이 서 있는 빙판 조각 위로 냅다 꽂아 버렸다.

그런 뒤.

“커져라!”

업다운사이징 아이템의 능력을 발동시켜 봉을 크게 키웠다.

그 추진력으로 저택까지 빠르게 날아갔다.

‘머리 좋은데?’

하지만 난 그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고!

아직 남아 있는 빙판 조각들을 발판삼아 계속해서 점프했다.

마지막 남은 빙판 조각을 딛고서 있는 힘을 다해 도약했다.

거의 공중을 날아오르다시피 했다.

푸스스스스스!

추진력 때문에 지면에 쭉 미끄러졌다.

저주 받은 저택에 2등으로 도착했다.

그 다음이 얀.

마지막으로 제나드가 합류했다.

그리고 나머지는…….

없다.

출발은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시작했는데, 정작 목표 지점에 도착한 사람은 나와 반드, 얀, 제나드. 네 명이 끝이었다.

나머지는 식인 호수에게 잡아먹혔다.

반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뒤쳐지는 자들을 기다리는 건 패배라는 이름의 죽음뿐인가? 약육강식의 세계는 참으로 무섭군. 후…….”

앞으로는 말을 좀 간단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

* * *

저주 받은 저택 앞에 마주 선 우리 네 남자.

처음 이곳 식인 호수를 방문했을 때에는 안개 때문에 저주 받은 저택이 어떻게 생겨 먹은 곳인지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섬에 도착한 후에야 드디어 제대로 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꽤 큰 저택이다.

자, 여기서부터가 문제인데.

“이걸……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얀이 우리에게 물었다.

마침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을 먼저 꺼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몰라.”

“뭐? 네가 아는 거 아니었어?”

“난 식인 호수에 처음 와 봤어. 저주 받은 저택이 호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도 오늘 와서 알았고.”

“여기 오면 클리어할 수 있다며?”

“구체적인 클리어 방식까지는 못 알아냈어.”

아직도 식인 호수는 미쳐 날뛰는 중이다.

신기한 게 있다면, 우리가 서 있는 곳은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저주 받은 저택은 건드리지 못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용병 생활을 해 온 인물은 바로 제나드다.

“단장은 뭐 아는 거 없어요?”

“저주 받은 저택을 제거하면 된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저주 받은 저택 안에 뭔가 있다는 뜻이군요.”

들어가서 수색해 보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귀찮게 뭐 하러 저택을 이 잡듯이 뒤져? 간단한 방법이 있잖아!”

갑자기 봉을 크고 두껍게 키운 얀.

그러더니 저주 받은 저택을 향해 냅다 후려쳤다.

한쪽 면이 우르르 무너지는 저택.

“부숴 버리면 되잖아? 그러면 안에 있는 것도 알아서 소멸되겠지.”

“…….”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쁘지 않은 방법이야.”

처음으로 얀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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