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식인 호수 (2)
살아 있는 물과의 대결.
난생처음 겪어 보는 전투에 나와 용병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오른쪽이다! 수비를 견고히 해!”
가르시아의 명령에 따라 용병들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우리 R팀은 다른 용병들에 비해 비교적 체계적인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군인 출신이니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직까지 큰 피해를 입진 않았지만…….
‘성과도 없어.’
에나의 캐스팅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렸다.
마침 에나의 양손에 강렬한 마나가 응집되었다.
“대장님, 다 끝났어요.”
“그럼 바로 시작해!”
에나의 양손에서 강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찬기는 호수에서 뻗어 나온 물 촉수들을 전부 얼려 버렸다.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얼지 않은 다른 호수 쪽에서 더 많은 물 촉수들이 형성되어 에나를 노렸다.
반드와 파이스가 각각 무기를 들고 촉수들을 베어 냈다.
그러나 촉수를 잘라 냈다고 끝이 아니었다.
호수의 물은 다시 형태를 변형해 우리를 공격했다.
잘라도, 잘라도, 잘라도.
놈…… 아니, 식인 호수는 끊임 없이 모습을 변화시키며 우리를 노렸다.
에나가 내게 외쳤다.
“대장님! 호수를 다 얼릴 순 없어요! 너무 넓어서 불가능해요!”
호수 전체를 얼리지 않으면 식인 호수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없다.
이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가르시아! 선배! 후퇴할 테니 병력들을 뒤로 물리세요!”
더 이상의 소모전은 무의미하다.
그래도 의미 없는 전투는 아니었다.
식인 호수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는 방금의 전투를 통해 대강 알게 되었다.
‘괜히 벨레너의 13난제가 아니네.’
그중에서도 특히나 더 난이도가 높았다.
과연 내가 클리어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 * *
잠시 용병들에게 휴식 시간을 부여했다.
리트로가 언제까지 식인 호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한을 정해 두진 않았다.
덕분에 시간은 많다.
나는 천천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우리 R팀만으로는 안 되겠어.’
설령 S팀의 힘을 빌린다고 하더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단위의 협력이 필요하다.
나는 다시 에나를 불렀다.
“너 혼자 호수 전체를 얼리는 건 힘들다고 했지?”
“네, 기껏해야…… 3분의 1 정도가 한계에요. 호수가 너무 넓은 것도 있지만, 식인 호수가 계속 움직여서 좀처럼 얼지 않아요.”
일반 물이었다면 에나 혼자서 금방 얼려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살아 움직이는 물, 식인 호수다.
그녀 혼자의 힘으론 한계가 명확하다.
‘방법을 강구해야 해.’
이대로 계속 식인 호수 근처에서 시간을 낭비할 순 없다.
가져온 물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이 바닥나면, 그 용병 조직은 어쩔 수 없이 마을로 재정비를 하러 가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용병들의 체력을 상당히 많이 갉아먹는다.
결국 이건 체력전이다.
더 지체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선배.”
나는 드레인을 찾았다.
“첸버랑 잠깐 상의 좀 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애들 좀 맡아 주고 계세요.”
“알았어.”
드레인에게 잠시 내 빈자리를 맡긴 뒤, 나는 S팀이 머무르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S팀도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식인 호수와의 전투, 그리고 끊임없는 갈증.
첸버와 제나드는 그렇게까지 갈증을 느끼진 않는 듯했다.
문제는 S팀 용병들이었다.
“무, 물…….”
“수통에 물 남아 있는 사람, 없어?”
“너! 물 있으면서 왜 없다고 구라 치고 있었냐! 뒈질래?”
물을 마실 수 없다는 것 때문인지 용병들의 신경은 매우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그때 제나드가 목소리를 낮게 깐 채 이들에게 경고했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언성을 높였다간……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겠지?”
“죄, 죄송합니다! 단장님!”
“시정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시정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군대에 있을 때에나 들을 수 있었던 대사인데.
“S팀도 고생이 많네요.”
“자네 왔나?”
첸버가 나를 반겼다.
애써 티를 내려 하진 않았지만 첸버도 알게 모르게 갈증과의 싸움을 이어 가고 있는 듯했다.
얼굴에 티가 다 난다.
“큰일이군, 이대로 가면 아무것도 못하고 병력들을 뒤로 물려야 할 판국이야. 그러면 우리 블루로즈단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될 텐데.”
첸버는 유독 블루로즈단의 위상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용병 무투 대회도 그렇고.
“안 그래도 첸버 씨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부탁?”
“식인 호수 근처에 있는 용병 조직의 대장들을 한 곳에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이 업계에서 발이 넓다고 소문이 자자한 첸버 씨라면, 충분히 가능하겠죠?”
나는 못하는 일이다.
발이 넓지도 않을뿐더러 저들과 친분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첸버의 대답은 긍정적이었다.
“할 수는 있지. 그런데 어떻게 하려고?”
“저들에게 협력을 요청할 겁니다.”
“협력이라고? 자네, 잊었는가? 이번 의뢰의 콘셉트는 ‘경쟁’이야. 협력이 아니라고. 누가 먼저 클리어를 하느냐에 따라 벨레너의 13난제를 클리어했다, 못했다가 갈리는 거야. 서로 먼저 그 명성을 거머쥐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인데, 우리에게 협력해 줄까? 내가 보기에는 힘들 거 같은데.”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죠. 이대로 가면 모두가 다 실패할 거예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적은 확률이라도 거기에 걸어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흐음!”
첸버는 아직도 나의 제안을 망설이는 듯했다.
이때 의외의 지원군이 등장했다.
“R팀 대장의 말대로 하죠, 첸버.”
제나드가 나를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굉장히 뜻밖이네, 제나드가 내 편을 들어 주다니.
내 제의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던 첸버였지만 제나드의 입김까지는 차마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인지 마지못해 결정을 내렸다.
“알았네. 로인, 일단 자네 말대로 하지. 하나 모두가 다 모일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니 그 점은 감안해 줬으면 좋겠군.”
“알고 있습니다. 과반수만 모여도 충분해요.”
전부 다 올 필요까진 없다.
애초에 용병들이 남의 말을 말 잘 따르는 순한 자들이 아니니까.
* * *
식인 호수에서 대기 중인 12개의 용병 조직 중에서 내 부름에 응한 조직은…….
놀랍게도 열두 곳 다였다.
이들도 많이 답답했나 보다.
하긴 여기서 마냥 시간만 축내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좋은 계획이 있다면 거기에 따르는 편이 훨씬 좋을 테지.
“어흠!”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모았다.
용병 조직에서 온 열두 명의 대표들이 나를 바라봤다.
거친 사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농담이지만.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이게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협력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그건 대충 들었소.”
“무슨 협력인지 말이나 해 보슈.”
“내용을 알아야 우리가 따르든 말든 할 테니까.”
누가 거친 용병들 아니랄까 봐 언행에 날이 바짝 서 있다.
“식인 호수를 클리어할 수 있는 열쇠가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저주 받은 저택에 있다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겁니다. 저희의 작전은 이렇습니다. 호수를 일시적으로 얼리고, 그 동안에 저주 받은 저택으로 용병들을 투입시킨다. 그들이 저주 받은 저택에 가서 조치를 취하면, 식인 호수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어떻습니까?”
용병대장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크게 세 가지 부류였다.
계획에 동의하는 자.
계획에 반대하는 자.
그리고 계획이 어떤 건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자.
세 번째에 속하는 용병대장을 나는 노골적으로 지목했다.
“얀, 너 방금 내가 한 말 이해 못 했지?”
“해, 했어! 그까짓 것, 뭐 어렵다고!”
“그럼 설명해 봐.”
“…….”
……무식한 녀석.
얀을 위해서 친절히 설명해 주자.
“오전에 우리 R팀은 식인 호수와 전투를 치른 적이 있었어. 그때 우리의 작전은 방금 내가 세운 작전과 동일했지. 하지만 우리 측 빙결사 한 명으로는 호수 전체를 얼릴 수 없어. 그래서 각 용병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마법사들을 모아서 한꺼번에 빙결 마법을 시전해 호수를 얼리는 거야. 그 틈을 노려 저택으로 돌진한다, 이거지.”
“과연! 그런 거로군!”
결국 마법사들의 협력을 얻기 위해 용병대장들을 모이게 한 것이다.
계획에 찬성하는 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제스처를 취했다.
반면 반대파의 입장을 고수하는 용병대장들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중 한 명이 물었다.
“식인 호수를 얼린다는 발상까지는 납득하오. 하지만 식인 호수가 고작 빙결 마법 따위에 당할까? 그런 의심이 드는군.”
합리적인 의심이라 생각한다.
나는 천막으로 에나를 불렀다.
“우리 측 빙결사가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줄 겁니다. 에나.”
“네, 대장님. 자, 여러분들 주목하세요.”
에나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시험관을 꺼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작은 물방울들이었다.
용병대장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게 뭐요?”
“식인 호수의 물을 퍼서 안에 넣어 둔 거예요.”
“헉!”
“뭐, 뭐시라?”
난리가 났다.
손톱만 한 크기의 물방울로도 사람 하나 죽일 정도의 살상 능력을 지닌 게 바로 식인 호수의 무서운 점이다.
그걸 몇 방울이나 시험관에 넣어 가지고 왔으니…….
용병대장들이 패닉에 휩싸이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마법사 길드에게 부탁해서 특별히 공수해 온 시험관이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마법이 걸려 있어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해요.”
“저, 정말인가……?”
“네, 절 믿으세요.”
상큼한 미소로 답하는 에나였다.
“여러분들에게 보여 드릴 게 있어요. 시험관을 주목해 주세요.”
에나는 빙결 마법을 발동시켰다.
시험관 안에 있는 식인 호수의 물방울은 금세 얼어붙었다.
1초, 2초, 3초…….
정확히 9초 뒤.
‘쩌저적!’ 소리를 내며 식인 호수의 물방울은 얼음을 깨고 다시 활동을 재개했다.
에나의 설명이 계속 이어졌다.
“다들 보셨다시피 빙결 마법 효과의 지속 시간은 고작해야 9초에요. 호수 전체를 얼린다 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겠죠.”
9초.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에나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나는 이 작전의 가장 큰 난관을 설명했다.
“호수에서 저주 받은 저택까지의 거리는 약 550미터. 이 거리를 9초 안에 돌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저주 받은 저택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있던 세계에서 남자 200미터 세계 신기록 기준이 19초 30이었다.
그런데 550미터를 9초 안에 달려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판타지 소설, 델리피나 전기 속의 세계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판타지 세계 아니겠나.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뿐입니다. 빙결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들을 선별할 것, 그리고 550미터를 9초 안에 돌파할 수 있는 러닝 맨을 선정하는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나는 목소리에 힘을 실으며 이들에게 말했다.
“식인 호수를 클리어할 수 있을 겁니다.”
뭐, 아니면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