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4화 (134/240)

# 134

식인 호수 (1)

벨레너의 네 번째 난제를 클리어해 달라고 요청을 해온 젤리쉬 가문의 현 가주, 리트로.

파랑새의 말대로 리트로의 의뢰 때문에 용병업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두 개의 난제를 클리어를 한 나 덕분에 요즘 부쩍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하려는 용병들의 숫자가 급격히 늘었다.

‘저 녀석도 했는데 까짓것 나라고 못 할쏘냐!’라는 인식이 강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했지.’

내가 운 좋아서 난제들을 클리어한 줄 아나?

이게 다 지략과 실력을 겸비한 나였기에 가능한 성과다, 이 말이야!

아무튼 도전의 바람이 불어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타이밍 좋게 리트로가 용병들의 도전 정신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식인 호수 클리어에 도전하기 위해 수많은 용병들이 근처 마을로 집결했다.

블루로즈단은 S팀과 R팀, 이렇게 두 팀만 참가를 하게 되었다.

용병들 사이에 섞여도 우리 블루로즈단의 존재감은 빛났다.

특히 내가 이끄는 R팀은 용병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많이 받았다.

파이스는 설렘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 주목받고 있네요.”

“그러게. 시간이 갈수록 주목도가 더욱 높아지는 거 같아.”

“근데 죄다 남자들뿐이네요. 어디 예쁜 여자 없으려나?”

파이스 이 녀석, 그냥 본부에 두고 올 걸 그랬나?

어디를 가도 여자하고 술만 찾으니…… 골 때린다.

익숙한 용병 마크들이 보인다.

‘어디 보자. 저건 트윈소드고, 저건…… 스트레이트인가?’

얀이 이끄는 신흥 용병 조직이다.

마침 드레인도 나와 같은 곳을 본 모양인지 설명에 임했다.

“요즘 스트레이트가 많이 치고 올라오고 있어.”

“그래요?”

“실력은 있으니까. 특히 얀이라는 남자의 능력은 무시 못 해. 근데 듣자하니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뭐였더라? 어느 귀족의 자제라는 이야기를 들은 거 같은데…… 맞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네.”

용병 무투 대회 당시 얀은 자신을 쫓아온 난입자들 때문에 도중에 기권을 하고 도망쳤다.

그때 난입자들이 얀을 부른 호칭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도련님’이라고.

하여튼 특이한 녀석이다.

안정적인 귀족 생활을 포기하고 왜 용병 따위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근데 생각해 보니 리오나도 같은 케이스구나.

세상은 넓고, 아직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자들은 많은 거 같다.

아직 의뢰주인 리트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동안 나는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된 게럴, 바슬라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로인, 너는 볼 때마다 위상이 쑥쑥 올라가 있는 거 같더라. 짜식, 부럽다.”

게럴은 웃으면서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나중에 크게 성공해도 날 잊지 말라고. 나하고 바슬라까지 챙겨 주면 더 고맙고.”

“블루로즈단에 받아 달라는 소리냐?”

“받아준다면야 기쁜 마음으로 가지! 아, 트윈소드 관계자가 있으면 곤란한데, 이거.”

혹시 누가 들었나 싶어서 뒤늦게 주변을 살피는 게럴이었다.

요즘 트윈소드는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다.

딱히 트윈소드에 안 좋은 일이 발생해서 그런 게 아니다.

새로 치고 올라오는 신흥 용병 조직에게 실적으로 점점 뒤처지고 있어서 그런 거다.

트윈소드는 역사가 꽤 오래된 용병 조직이다.

역사만 하더라도 20년이 다 되어 간다.

이 정도면 장수한 축에 속한다.

보통 용병 조직은 길어 봤자 10년 하고 해체되곤 하니 말이다.

“입단 기회를 줄 수는 있어. 하지만 들어오려면 테스트를 봐야 해. 그건 알고 있어라.”

“네가 시험 치른 것처럼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가서 한 달 생존하기, 이런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사일런트 포레스트는 내가 클리어를 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지도에 남아 있지 않다.

그냥 이름 없는 평범한 숲이 되어 버렸다.

만약 내가 사일런트 포레스트에 가지 않았더라면 벨레너의 13난제는 14난제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게럴뿐만 아니라 가끔 얼굴을 봤던 용병들과 안부 인사를 나눌 무렵이었다.

단상 위에 한 중년 남자가 올라섰다.

뒤따라 온 젊은 남성이 우리를 향해 외쳤다.

“다들 주목!”

용병들은 단상 위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목소리를 크게 낸 남자는 중년 남자를 가리켰다.

“이분이 젤리쉬 가문의 현 가주이신 리트로 님이시다. 다들 리트로 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다.

헛기침을 몇 차례 하며 목을 푼 리트로.

“우선은…… 내 부름에 응해줘서 다들 고맙소. 의뢰 내용은 의뢰서에 적혀 있듯이 간단하오. 식인 호수 던전을 클리어해 주시면 되오.”

말이야 쉽지, 사실 클리어가 굉장히 어려운 던전이다.

벨레너의 13난제라 해도 모든 난제들이 동급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건 아니다.

그중에는 어려운 것도 있고, 비교적 쉬운 것도 있다.

식인 호수는 그중에서도 어려운 축에 속한다.

참고로 도플갱어의 숲은 쉬운 편, 칼바의 용암 동굴은 중간 정도 되는 난이도의 난제였다고 한다.

나도 뒤늦게 들은 거지만 말이다.

그래도 벨레너의 난제는 함부로 얕보면 안 된다.

쉽다고 어영부영 덤벼들었다가는 목숨을 잃기 십상이다.

“가장 먼저 식인 호수 던전을 클리어하는 자에게 사례금을 드리겠소. 의뢰서에 명시되어 있듯이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다들 힘을 내서 난제를 클리어해 주길 바라오. 이상!”

할 말만 마치고 단상을 내려갔다.

짧아서 마음에 든다, 대대장의 훈시마냥 길어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던전을 공략하면 된다.

첸버는 우선 나를 불렀다.

첸버의 곁에는 제나드가 ‘후아아암!’ 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대장, 출정 준비를 해야 하는데 너무 긴장 풀고 있는 거 아닙니까?”

“현장에 도착해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첸버도 알잖아요? 저, 할 때는 하는 남자라는 거.”

“그렇긴 하죠. 그래도 이번 던전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블루로즈단이 한창 잘나갈 때 단장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고 싶진 않으니까 긴장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나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들, 만담하는 건 좋은데…… 나를 부른 이유부터 좀 알려 줘요, 기다리기 지루하니까.

첸버는 이제야 내 쪽으로 관심을 돌렸다.

“R팀 정비는 잘되어 가고 있겠지?”

“예. 완벽합니다.”

R팀을 전부 데려왔다.

잘 기용하지 않는 베라까지 데려왔을 정도다.

S팀 역시 우리 팀과 마찬가지로 모든 인원을 투입했다.

그야말로 총력전이다.

“아직 많은 단원들이 식인 호수가 어떤 던전인지 체험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먼저 섣불리 움직이지 마. 식인 호수가 어떤 건지 우선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작전을 확실히 세우고 움직이도록.”

“명심할게요.”

첸버가 굳이 이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그렇게 하려고 생각했다.

몇 차례 의견을 교환한 뒤에 나는 다시 R팀으로 돌아와 용병들을 이끌었다.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

S팀과 R팀이 단체로 이동을 개시했다.

진귀한 광경이다.

‘이렇게 보니까 멋있네.’

전장을 향해 나아가는 장수의 기분이 이럴까?

식인 호수의 모습은 더욱 절경이었다.

호수 밑바닥까지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물.

안개가 가득 끼어 있어서 호수 가운데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고요하면서도 멋진 풍경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호수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곳인데.’

도착한 후에 나는 첸버가 나눠 준 식인 호수의 주의 사항에 대해 확인했다.

-식인 호수를 보면 갈증이 유발된다. 그때 호수의 물은 절대 마시지 말 것.

-절대로 혼자서 행동하지 말 것. 최소 3인 1개조로 행동해야 한다.

-물속으로 들어가지 말 것.

실제로 호수를 보니 목이 마르기 시작했다.

갈증의 정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한다.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갈증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용병단 전체는 후자였다.

“어휴, 목말라!”

“나도 물 한 모금만 줘.”

“수통에 물 남는 사람!”

용병들은 미리 챙겨 온 물로 갈증을 해결했다.

반면 다른 용병단은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모양인지 벌써 챙겨 온 물이 바닥을 보였다.

결국 참다못한 용병 몇몇이 호수 쪽으로 다가갔다.

“이봐!”

나는 그들에게 주의를 줬다.

“주의사항 안 읽었어? 호수 물은 절대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알 게 뭐야!”

“목이 탈 거 같은데, 지금 그게 문제야?”

억지로 말리기도 전에 그들은 양손 가득 호수의 물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꿀꺽, 꿀꺽, 꿀꺽.

잘도 마시네.

이미 마셔 버려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나는 말없이 그들을 지켜봤다.

세 남자는 입가에 묻은 물기를 닦아 냈다.

“어휴, 이제야 살 거 같네!”

“근데 이 물을 마시니까 갈증이 사라지는데?”

“너희도 와서 마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마냥 챙겨 온 물만 미친 듯이 마시지 말고!”

소수의 용병들은 그들의 말에 혹했는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이상 현상이 발생했다.

“어?”

호수 물을 마신 남자 셋의 몸이 갑자기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내, 내 몸에 왜 이래……?”

“사, 살려……!”

말을 잇기도 전에 그들의 몸은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여기저기 튀기는 붉은 피.

남자들이 서 있던 곳에는 그들이 삼킨 물방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물방울들은 다시 호수의 일부가 되어 사라졌다.

“…….”

“…….”

그 광경을 목격한 용병들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들은 이제야 깨달았다.

왜 호수의 물을 마시지 말라고 했는지.

‘호수 전체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아.’

왜 벨레너의 13난제에 포함되었는지 이제 알겠다.

* * *

식인 호수 던전을 클리어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드레인은 그 조건을 용병들 앞에서 읊었다.

“호수 가운데에 있는 ‘저주 받은 저택’을 없애면 된다고 하던데?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한 거지만.”

“저택이 보여요?”

에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안개가 너무 짙어서 안 보인다.

뭔가가 있는 거 같긴 한데.

저게 저택인지 뭔지 모르겠다.

그보다 호수 한가운데에 저택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나?

‘아니지. 애초에 호수가 살아 움직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벨레너의 13난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생각에 제한을 두면 안 된다.

호수를 건너야 한다.

과연 어떻게?

방법이 있다.

“에나, 수수께끼 던전에서 독극물 다리 건널 때, 기억해?”

“호수를 얼리고 그 위를 걸어가자…… 이 뜻인가요?”

“정답이야.”

마구 날뛰는 골칫덩어리는 얼려 버리면 얌전해진다.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일단 시도는 해 보기로 했다.

나는 용병들을 이끌고 식인 호수로 향했다.

다른 용병 팀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관심 받고 있을 때, 멋진 모습을 보여 줘야지!

“에나, 시작해.”

고개를 끄덕인 에나는 곧장 빙결 마법 캐스팅에 돌입했다.

그러자 식인 호수에서 물줄기가 형성되었다.

수십 갈래의 물줄기는 마치 촉수마냥 움직이며 에나를 노렸다.

나는 용병들에게 외쳤다.

“에나를 보호한다! 절대로 물러서지 마!”

“예! 대장님!”

첫 전투가 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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