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33화 (133/240)

# 133

마법의 도시, 라우 (3)

나는 프렌에게 말했다.

“철창을 열어 주세요. 그리고 제가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철창을 닫으시면 됩니다.”

“그게 무슨……!”

“말씀드렸죠? 여동생 분은 제가 치료해 드리겠다고.”

나는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칠흑의 조각을 숙주한테 떼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프렌은 말도 안 된다며 나를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마법사들조차 피나의 폭주를 막지 못하는데…… 절대로 안 됩니다!”

여동생 이름이 ‘피나’로군.

처음 알았다.

프렌뿐만 아니라 라그너도 내 생각에 반대하고 나섰다.

“다시 한번 생각하시면 안 됩니까? 분명 더 나은 방법이 있을 겁니다!”

“방법은 이것뿐이야.”

“로인 님!”

라그너에겐 미안하지만 칠흑의 조각과 숙주를 떼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정말로 글레드의 힘을 사용하는 것밖에 없다.

모두가 반대할 때 유일하게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있었다.

바로 드레인이었다.

“후배라면 잘 해낼 거예요.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하게 해줍시다.”

“역시 선배님입니다. 제 마음을 잘 아는군요.”

“몇 년 동안 같이 행동해 왔는데 동료에 대한 믿음 정도는 있어야지.”

검은 괴물은 애초에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잠식 3단계에 접어든 검은 괴물조차도 나를 어쩌지 못했다.

드레인은 그걸 잘 알기에 내 편을 들어준 것이다.

결국 프렌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단, 조건을 걸었다.

“무슨 일이 생긴다 싶으면 바로 제가 개입하겠습니다.”

어떤 개입일지 나는 얼추 감을 잡았다.

스스로 여동생의 목숨을 끊어 주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미 난 글레드를 통해 숙주와 칠흑의 조각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그 감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할 수 있어!’

더 이상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사람들에게 억울한 죽음을 선사하지 않아도 된다.

구할 수 있다면 내 손으로 직접 구해 주고 싶다.

어쩌면 글레드가 이걸 바라고 있기에 나에게 힘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

철컹!

철창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족쇄에 묶인 피나는 이를 드러내며 나에게 위협을 가했다.

아직까진 괜찮다.

족쇄가 꽤 튼튼해 보였다.

마법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구속구라고 했으니까 쉽게 끊어질 리는 없겠지.

“안녕, 아가씨? 난 로인이라고 해.”

초면이니까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나 피나는 내 상황극에 어울려 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인지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검은 연기가 몸 주변에 너울거리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방치하면 칠흑의 조각은 작은 소녀의 몸을 집어삼킬 것이다.

좋아…….

‘슬슬 시작해 볼까?’

내가 글레드의 힘을 발휘하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쩌적!’ 소리가 들렸다.

족쇄와 연결된 벽이 뿌리째 뽑혀 나온 것이다.

“로인 님!”

“위험합니다!”

프렌은 공격 마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전에 내가 먼저 글레드를 꺼내 들었다.

화르륵!

내 오른손에 생명의 불씨가 깃들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프렌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화이트 플레임? 어떻게 그걸……!”

“말했잖아요.”

나는 싱긋 미소를 지어 줬다.

“내가 고쳐주겠다고!”

불길한 모든 것들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불꽃.

글레드는 소녀의 몸에 잠식되어 있는 검은 연기들을 전부 불태워 버렸다.

피나의 입에서 고통 어린 신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이 고통은 피나의 것이 아니다.

칠흑의 조각이 내지르는 비명이다.

피나의 팔다리를 좀먹고 있던 검은 연기는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나에게 떨어져 나온 칠흑의 조각은 구석으로 도망쳤다.

“어딜 가려고!”

나는 보온통같이 생긴 실험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칠흑의 조각을 그 안에 넣은 후에 뚜껑을 닫았다.

렉스 연구소에서 개발한 휴대용 특제 봉인 장치다.

아무리 칠흑의 조각이라 하더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선배, 잠깐 이것 좀 맡아 줘요.”

“자, 잠깐만! 이, 이걸 가지고 있으라고? 내가?”

“잠시면 돼요.”

나는 드레인에게 칠흑의 조각을 넘겼다.

드레인은 바들바들 떨면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나는 피나의 상태를 살폈다.

‘숨을 쉬고 있어.’

점점 호흡이 안정되어 가고 있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프렌에게 엄지를 추켜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리에 힘이 풀린 프렌은 그 자리에서 바로 주저앉았다.

뒤이어 굵은 눈물 한 방울이 그의 볼 위로 흘러내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인 님!”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칠흑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것.

이것이 내게 주어진 사명이니까.

* * *

프렌의 여동생이 잠식 단계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기간트는 만사를 재치고 병실을 찾았다.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거짓 보고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군요.”

다행이라는 감정과 동시에 호기심을 보이는 기간트.

“설마 화이트 플레임을 사용하신 겁니까?”

“예, 잘 아시네요.”

“칠흑의 약점이 글레드라는 보고를 테일에게 받은 적이 있었지요. 칠흑에 관련된 연구 사항은 대부분 극비이기에 길드 내에서도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프렌은 거기에 해당되지 않았나 보군.

“사실 렉스 연구소에 있는 글레드로 피나를 치료할 수 있었겠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소녀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인류 전체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외부로 노출시키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니까요.”

내 예상대로였다.

기간트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다.

소녀 한 명의 목숨과 인류 전체의 목숨을 고르라면 기간트는 후자를 택할 것이다.

대신 피나를 처분하지 않고 지하에 가둬 둔 건 기간트가 프렌, 피나 남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으리라.

피나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기간트는 다시 자리를 비웠다.

안정만 취하면 된다고 했으니까 큰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슬슬 대가를 받으러 가 볼까?’

나는 프렌을 찾았다.

마침 프렌은 병실 근처에 머무르고 있었다.

“프렌 씨.”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프렌은 바로 반응했다.

얼굴을 보니 결심이 선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 지하 감옥에서 했던 말, 기억하시죠?”

“예, 제가 나울의 연구소로 간다는 조건이었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요할 생각은 없다.

강제로 프렌을 데려가 억지로 연구를 시켜도 효과는 안 날 테니까.

무엇보다 본인의 의사가 중요하다.

프렌은 나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가겠습니다. 비록 피나의 문제가 해결됐지만, 차원 이동 마법은 예전부터 제가 관심을 가져왔던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아까 잠깐 세올라라는 분과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차원 이동에 대해 굉장히 해박하시더라고요. 세올라 씨 밑에서 배워 가면서 연구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던 대답이네요.”

“대신 저의 부탁을 하나만 더 들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무슨 부탁을 해 올지 나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피나 양이 안정을 취할 때까지 곁에 있게 해 달라……라고 말하시려는 거죠?”

“역시 로인 님입니다. 염치 불구하고 이렇게 재차 부탁을 드리는 점,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리고 입원비를 포함해 피나 양의 생활비는 전부 로그 상단이 지불할 테니, 금전적인 문제는 신경 쓰지 마시고 오로지 연구에만 매진해 주세요.”

“예?”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프렌.

내가 금전 문제까지 해결해 줄 거라곤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 그러면 제가 로인 님에게 너무 큰 신세를 집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금 말씀드렸죠? 오로지 연구에만 매진해 달라고. 공짜로 드리는 거 아니에요. 그만큼 성과를 내시면 됩니다.”

프렌에게만 특별 대우로 금전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게 아니다.

나울로 오겠다고 말한 마법사들 전원에게 같은 말을 들려줬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고.

대신에 연구 성과만 제대로 내 달라고.

덕분에 서른다섯 명의 마법사들과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달하게 되었다.

프렌도 마찬가지였다.

-프렌과의 친밀도가 초대량 상승합니다.

-프렌과의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3일 안에 36명의 엑스트라들과 최대치의 친밀도를 달성했습니다.

-히든 칭호 퀘스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칭호 : 다다익선(多多益善)

-효과 : 등장인물 모두에게 친밀도 +3이 적용됩니다.

앗싸!

전체 친밀도가 가산되는 칭호다!

딱 내가 원하던 칭호 옵션이다.

이로써 웬만한 단역 등장인물들은 최소 친밀도를 올릴 필요 없이 바로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해졌다.

마법사들에게 돈 뿌린 보람이 있네.

* * *

마법사 길드에서의 볼일은 다 끝났다.

다시 나울로 돌아온 나는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를 방문했다.

아직 마법사들이 나울로 이사를 하지 않아서 텅 빈 상태다.

‘과연 투자한 만큼의 결과가 나올까?’

정말로 차원 이동이 성사된다면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델리피나 전기 완결권 이후가 될지 이전이 될지, 그건 오로지 신만이 알고 있을 터.

‘돌아갈 수 있어!’

처음에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는 희망을 보았다.

‘하다못해 차원 이동을 한 번 더 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남은 4, 5권을 정독하고 올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멍하니 연구소 시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로인 대장.”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블루로즈단의 소식통, 파랑새였다.

“오래간만에 보는 거 같네요.”

“그러게 말이야. 근데 뭐 하고 있어?”

“잠시 감회에 젖어 있었어요.”

“그래? 네가 그렇게 감성적인 남자였을 줄이야. 몰랐네.”

알 리가 없겠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사람이 아니고선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의뢰가 들어왔어.”

“저희 R팀한테요?”

“아니, 블루로즈단 전체에게. 이번에는 큰 건수야. 단장도 출격한다고 하더라.”

얼마나 큰 건수이기에 단장까지 나선다는 걸까?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전쟁이라도 나는 겁니까?”

“전쟁은 아니고,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할 거라고 하던데?”

그렇군.

작은 의뢰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설마 벨레너의 13난제에 도전할 줄은 몰랐다.

근데 의뢰라고 하지 않았나?

“누가 이런 위험천만한 의뢰를 해 온 겁니까?”

“젤리쉬 가문이 용병 조직 전체한테 의뢰서를 돌렸어. 보수는 달라는 대로 줄 테니, 벨레너의 13난제 중 네 번째 난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더군. 그것 때문에 지금 용병계 전체가 들썩이고 있어. 그나저나 난 로인 대장도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거든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 길드에 있었던 몸이다.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가만, 근데 네 번째 난제가 뭐였더라?

쉽게 답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파랑새가 정답을 알려줬다.

“사람 잡아먹는 호수. 이름하여 ‘식인 호수’라고 불리더군.”

악명 높기로 손꼽히는 난제 중에서도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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