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2
마법의 도시, 라우 (2)
마법사 길드의 주축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한 우리들.
완공식 때 만났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집합해 있었다.
최소 상급 마법사들뿐이었다.
하나같이 다 실력자들이다.
이들은 세올라의 차원 이동 마법에 관한 지식에 감탄했다.
“세상에, 그런 방법을 사용할 줄이야……!”
“확실히 세올라 양의 이론을 도입하면, 게이트를 여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르겠군요.”
가능한 게 아니라 이미 현실로 만들어 냈다.
내가 직접 체험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낯선 마법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영 불편하게 여기던 세올라였으나, 자신의 지식이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난 모양인지, 드레인 뺨치는 수다력을 보여 주기 시작했다.
잘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마법사들끼리 벌이는 학식의 장에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를 생각은 없다.
나는 라그나, 기간트와 함께 따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여기에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기간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
“차원 이동에 소질을 보이는 마법사들을 제 연구소로 데려가고 싶습니다.”
“안 그래도 몇몇 마법사들에게 말을 전해 뒀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기도 전에 나울의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에 이미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더군요.”
기간트는 나에게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들어가기를 희망하는 마법사들의 명단입니다. 총 35명입니다. 초급 마법사가 20명, 중급 마법사가 12명, 그리고 상급 마법사가 3명입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
이 정도면 대만족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연구소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세올라 한 명밖에 없었거든요.”
“하하하! 감사야 제가 드려야죠. 만약 로인 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그들은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었을 겁니다. 혹은 원치도 않는 마법 분야를 억지로 공부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마법사 생활을 연명해 갔을지도 모르죠.”
수염을 쓸어내리는 기간트.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이라는 건 굉장히 많은 분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전투에 사용되는 공격 마법만 있는 게 아니죠. 조명 마법, 수면 마법, 공학에 관련된 마법, 그리고 로인 님이 추진하시고 싶어 하는 차원 이동 마법 등등……. 저는 마법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전쟁에 동원되기 위한 마법만을 발전시키고 싶진 않더군요.”
잠시 호흡을 고른 기간트는 솔직하게 자신의 신념을 털어놓았다.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마법. 제가 추구하는 마법의 길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차원 이동 마법만큼은 무슨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발전시키고 싶다.
그래야 내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
하나 기간트는 나의 이런 속내를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로인 님 같은 분과 만날 수 있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나이는 저보다 많이 어리시지만, 저의 오래된 벗처럼 느껴지는군요.”
할아버지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아무튼 뭐…… 그렇다 치고.
다시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명단에 이름이 적힌 자들을 나울로 데려가면 됩니까?”
“사실 한 명 더 데려가 주셨으면 하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프렌이라는 상급 마법사가 있습니다. 차원 이동 마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젊은 마법사죠. 학구열도 대단합니다. 차원 이동 마법 하나만 놓고 본다면, 마법사 길드에서 프렌을 뛰어넘을 마법사는 없을 겁니다.”
“근데 왜 명단에 없습니까? 못 가는 이유라도 있나요?”
그렇게 뛰어난 인재라면, 무조건 넣어 둬야 하는 거 아닌가?
게다가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문제될 건 없어 보이는데.
기간트는 의자에 몸을 묻었다.
“프렌이 넘어야 할 현실의 벽이 생각보다 높더군요. 벽 너머에 있는 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무슨 이야기인지 궁금해졌다.
* * *
나는 라그너와 함께 프렌의 연구실로 향했다.
도중에 마법사들은 나를 힐끗 쳐다봤다.
‘뭐 하는 사람들이지?’ 하는 시선에 대다수였다.
마법사들은 외부 활동을 잘 안 한다고 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진 않다.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마법만 주야장천으로 연구만 하다 보니 현실과 동떨어진 채 생활하는 마법사들이 많다고 들었다.
뭐, 나를 못 알아봤다고 섭섭해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어흠!
프렌의 연구실은 꽤 깊숙이 있었다.
기간트에게 듣자 하니, 혼자서 고독을 씹으면서 연구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하던데…….
차원 이동 마법을 연구하는 마법사들은 왜 이리도 소극적이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고유 특성인가?
라그너가 손으로 한 연구실의 푯말을 가리켰다.
“저기군요.”
마법사 프렌이라는 명패가 걸려 있었다.
똑똑똑.
노크를 했다.
들려온 대답은…… 없다.
다시 한번 노크를 시도했다.
이번에도 반응은 없다.
“다른 데로 간 거 아닐까요?”
나는 라그너의 말을 부정했다.
“아니, 여기에 있어.”
안에서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파동이다.
게다가 꽤 크다.
이 정도면 상급 마법사 정도 된다.
프렌은 상급 마법사라고 했다.
그렇다면 연구실 안에 있는 게 틀림없다.
조금 거칠게 노크하기로 했다.
쾅쾅쾅!
그제야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로그 상단 대표, 로인입니다.”
기간트는 이미 프렌에게 내가 연구실을 방문할 거란 사실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연구실의 문이 열렸다.
반곱슬의 짧은 머리를 한 30대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렌입니다.”
피곤함에 찌든 목소리였다.
면도도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얼굴에다가 안경에는 먼지도 가득 끼어 있었다.
폐인처럼 계속 연구만 해 온 거 같은데.
그러다가 몸 상한다고요, 아저씨.
첫 만남부터 건강 상태가 심히 걱정된다.
프렌은 우리에게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앉을 곳도 없었다.
사람이 앉아야 할 소파에는 책들이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손을 한 번 휙 내젓는 프렌. 그러자 책들이 알아서 책장에 꽂혔다.
굉장하군.
이런 능력 하나 가지고 있으면 굳이 시간을 내서 집안 대청소를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프렌은 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우리에게 물었다.
“차 마실래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저도요.”
나와 라그너는 정중히 거절했다.
위생 상태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프렌 님을 우리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라면…… 이미 한번 거절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예,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도 일부러 찾아왔다.
어떻게든 프렌을 데려가기 위해서.
프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제가 그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길드장님이라면 알고 계실 텐데요. 방금 길드장님과 만나고 오시는 길 아닙니까?”
“예, 하지만 구태여 이유를 묻진 않았습니다. 개인 사정은 당사자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게 예의니까요.”
“…….”
찻잔을 만지던 프렌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저에겐 여동생이 있습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저의 소중한 가족이죠.”
“여동생은 몇 살입니까?”
“나이 차이가 꽤 납니다. 저보다 8살 연하니까…… 15살이군요.”
만약 내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뿜었을지도 모른다.
8살 차이인데 15살이라면…….
‘프렌은 23살이라는 뜻이잖아?’
아니, 생긴 건 아재 중에서도 진성 아재처럼 생겼으면서.
진짜 나이는 20대 초반이라니.
심각하게 노안이잖아.
괜히 기간트가 프렌에게 ‘젊은 마법사’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게 아니군.
나는 프렌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혹시 ‘돈’ 문제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현실의 벽이라고 했으니까.
하지만 프렌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까다로운 문제에 부딪친 상태였다.
“제 여동생은…… 칠흑에게 잠식되었습니다.”
……저런.
* * *
나와 라그너는 프렌을 따라 지하로 이동했다.
도중에 드레인도 합류를 했다.
내가 일부러 드레인을 불렀다.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사람을 만나러 간다며? 그게 사실이야?”
“예, 선배. 제대로 잘 전해 들으셨네요.”
“미친…… 왜 잠식된 자를 여기에 가둬 두고 있는 거야?”
“앞장서 걸어가는 마법사 아저씨…… 아니, 마법사 청년의 친동생이라고 하더라고요.”
“가족이 잠식당한 건가? 하긴 가족이라면 쉽게 버릴 수 없지.”
게다가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라고 했다.
프렌은 여동생과 함께 어린 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당했다.
프렌이 거의 여동생을 키워 오다시피 한 거다.
그런 와중에 여동생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당했다고 하니.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솔직히 나는 그 심정을 100퍼센트 공감은 못 한다.
왜냐하면 소설 속에서 가족이라 부를 만한 존재는 아직까진 내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해는 한다.
지하실 깊숙한 곳.
빛조차 들어오기 힘든 곳까지 이동을 했다.
그곳에는 철창에 갇힌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를 듣자마자 경계심이 가득한 태도를 취했다.
하나 잠시 후…….
“나야, 너무 무서워하지 마.”
“……오……빠?”
“그래. 오빠 왔어. 나 알아보겠어?”
“…….”
소녀는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소녀의 모습을 보자마자 드레인은 순간 무기를 꺼내 들 뻔했다.
“이런 미친! 저 정도면 거의 잠식 2단계에 접어들기 직전 아니야?”
맞는 말이다.
소녀의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는 이미 검은 연기에 삼켜져 있었다.
인간의 형태를 아직까지 유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나는 프렌에게 물었다.
“언제 잠식된 겁니까?”
“잠식되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는…… 세 달 전이었습니다.”
세 달 동안 오로지 정신력만으로 버틴 건가.
대단하다.
15살의 어린 소녀의 정신력이라면, 칠흑의 조각에게 이미 몸과 마음을 지배당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기다.
그러나 소녀는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며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프렌의 지극정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두 주먹을 불끈 쥐는 프렌.
“제가 차원 이동 마법에 매달리는 이유는…… 여동생 때문입니다. 여동생에게 들러붙은 칠흑의 조각을 없애기 위해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겁니다.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면, 칠흑의 조각을 숙주로부터 떼어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프렌은 글레드가 칠흑의 조각을 떼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걸 모르나 보다.
아니, 설령 안다 하더라도 이게 방법이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글레드는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까.
렉스 연구소에 존재하는 글레드를 이곳까지 다시 옮겨 올 수는 없다.
옮기려는 과정에서 추종자들이 글레드를 없애기 위해 습격을 감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잠식 2단계 직전에 접어든 소녀를 렉스 연구소로 보낼 수는 없다.
소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
그런 존재를 연구소로 데려가는 건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진퇴양난이네.’
하지만 프렌은 운이 좋은 편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곳에 왔으니까.
“프렌 씨, 저와 계약 하나 하죠.”
“무슨 계약입니까?”
나는 몸을 풀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동생 분을 낫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 대신, 저와 함께 나울로 가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프렌은 이내 답을 들려줬다.
“여동생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달게 치르겠습니다!”
이것으로 계약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