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
마법의 도시, 라우 (1)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그동안 추진해 왔던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 건설이 드디어 오늘로 완공된 것이다.
나는 완공식에 강제로 불려 나가게 되었다.
“로인 님, 여기 가운데에 서시면 됩니다.”
“나 이런 형식적인 의례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귀찮기만 하고.
하나 라그너는 생각이 많이 다른 모양인가 보다.
“원래 이런 ‘보여 주기’도 필요한 법입니다. 앞으로 전 세계를 찾아봐도 이렇게 전문적인 차원 이동 마법 시설이 갖춰진 곳은 이곳, 나울밖에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나울이라는 도시를 전 세계에 알리는 거죠. 마케팅 수단에 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최대한 이용하는 게 바로 장사의 법칙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장사에 대해선 나보다 라그너가 한 수 위다.
내가 라그너보다 뛰어난 건 미래의 지식을 알고 있다는 점 하나뿐.
사업적 수완은 라그너에게 한 수 접고 들어가야 한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 완공식에 많은 마법사들이 참가했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눈여겨보고 있는 인물은 바로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 기간트였다.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노인이었다.
딱 봐도 ‘아, 이 사람. 마법사네.’라는 인식이 확 들 정도였다.
나는 기간트의 인물 정보 창을 확인했다.
-기간트
-인물 등급 : 조연
-종합 능력 : SSS
-마법사 길드를 이끌고 있는 수장. 어렸을 때부터 마법사들 사이에서 천재라 불리며 엘리트의 길만을 걸어온 남자. 온화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라그너는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살짝 찔렀다.
“로인 님.”
“알고 있어.”
굳이 말해 주지 않아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뭔지 잘 안다.
나는 기간트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기간트 님, 처음 뵙겠습니다. 로인이라고 합니다.”
인물 등급이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간트에게 말을 붙일 수 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다.
이미 친밀도가 최대치에 달했기 때문이다.
로그 상단은 웨일 상단과 더불어 마법사 길드의 핵심 스폰서로 자리를 잡았다.
길드를 운영하는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법.
내가 돈을 주는 사람인데, 기간트가 날 싫어할 리 없지 않은가?
결국, 친밀도 최대치 달성의 이유는 ‘돈’이다.
역시 돈이 최고다.
내가 먼저 자기소개를 하자, 기간트는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생각보다 굉장히 젊으시군요! 허허. 반갑습니다. 마법사 길드의 길드장인 기간트라고 합니다.”
서로 악수를 주고받았다.
악수를 할 때, 기간트의 기다란 수염이 내 손등을 간지럽힌 건 덤이었다.
기간트를 비롯해 나는 그와 함께 나울로 온 마법사 길드의 간부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에 기간트는 나를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젊으신 분이 우리 마법계에 많은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계시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게다가 불모지라 불리던 차원 이동 마법에 이렇게 아낌없는 투자를 하시다니! 우리 길드가 하지 못한 일을 로인 님께서 하신 겁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마법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내 말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모양인지 기간트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마법사 길드는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조직이다.
아무리 기간트가 길드의 수장이라 하더라도 독단적으로 어느 한 프로젝트를 줄기차게 밀고 나갈 수는 없었다.
기간트는 차원 이동 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차원 이동 마법을 연구하기에는 전문 인력과 지식, 그리고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마침 내가 나타난 것이다.
‘기간트에겐 내가 구세주나 다를 바 없겠지.’
기간트와 친밀도를 최대치로 만들어 둔 덕분에 ‘이놈의 인기는 여전하네, 여전해!’ 칭호 달성 조건까지 이제 세 명만 남은 상황이다.
칭호만 따면, 나는 이제 단역들한테도 아무런 문제없이 바로 소통이 가능해진다.
‘후딱 해 둬야지, 원…… 이제는 단역들한테 쩔쩔 맬 짬밥은 아니잖아?’
부지런히 칭호 작업도 해 둬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로인 님.”
나에게 다가온 라그너가 목소리를 낮춘 채 말했다.
“단상에 올라가셔서 한 말씀 하실 차례입니다.”
“그것도 해?”
“물론이죠. 연설문은 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필요하시다면 그걸 보고 하셔도 됩니다.”
연설문을 받긴 받았는데…… 굉장히 길다.
“너무 긴데……? 내가 대충 편집해서 말해도 되지?”
“가능하시겠습니까?”
가능하다말고.
이래봬도 나, 편집자 출신이야.
얕보지 말라고.
* * *
모든 식순이 끝난 후에 마법사 길드 사람들은 나울을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다시 한번 기간트와 악수를 했다.
“로인 님, 바쁘지 않으시다면 나중에 저희 마법사 길드도 한번 찾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드에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인데, 그만한 대접을 해 드려야 예의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도 나는 언제 한번 마법사 길드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 시설은 완공되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세올라 혼자서 저 넓은 연구소를 사용하게 만드는 건 낭비다.
세올라를 서포트 해 줄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 부분은 마법사 길드의 협력을 구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다음 주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다음 주는 언제든 한가합니다. 후에 날짜를 구체적으로 조율해 보도록 하죠.”
“예.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시길.”
기간트 일행을 보낸 후에 나는 다시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가자, 고개만 빼꼼 내미는 세올라와 마주쳤다.
“……그 사람들, 갔어요?”
“갔어. 그보다 왜 길드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거야?”
“그냥…… 무섭잖아요.”
세올라가 말하는 ‘그냥’이라는 단어를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다.
예전부터 그녀가 유독 마법사 길드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있다는 건 눈치채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완공식 때 코빼기조차 비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냥 낯을 많이 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연하인 나에게조차 아직도 존댓말을 사용할 정도니까.
참고로 나는 세올라가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서 말을 놓고 있는 거다.
블루로즈단 용병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인격 파탄자 밈 때문에 함부로 반말을 찍찍 내뱉고 있는 게 아니다.
……진짜다.
“다음 주에 마법사 길드를 방문할 거야. 그때는 무조건 가야 해.”
“왜요?”
“왜긴, 이제부터 네 부하들이 될지도 모르는 연구원들을 뽑으러 가는 길이니까 가야지.”
“저 혼자 하면 안 돼요?”
“안 돼.”
단호하게 나가야 할 때에는 단호하게 나가는 편이 좋다.
한숨을 푹 내쉬는 세올라.
“알았어요. 그럼…… 조건이 있어요.”
“무슨 조건?”
“에나 씨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에나는 왜?”
“제 유일한 친구니까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친구가 되었군.
하긴 접점은 많으니까.
같은 여자고, 같은 마법사고.
친해질 이유는 충분하다.
“알았어. 그럼 에나가 간다고 하면 너도 가는 거야.”
“네, 갈게요!”
거래가 성사되었다.
* * *
에나는 마법사 길드에 가겠다고 했다.
덕분에 세올라도 졸지에 마법사 길드행을 결정짓게 되었다.
마차에 오른 우리들.
세올라는 입술이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왜 가겠다고 한 거야, 대체…….”
“오랜만에 가는 거라서요. 보고 싶은 얼굴들도 있고요.”
빙그레 웃는 에나와 달리 세올라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세올라는 에나가 분명 안 갈 거라고 생각을 해서 내게 그런 조건을 건 듯했다.
하나 도박은 실패했다.
세올라와 에나는 둘째 치고.
“선배는 왜 가고 싶어 한 거예요?”
나는 내 옆에 앉은 드레인에게 물었다.
“한번쯤 구경 가고 싶었던 곳이니까. 내 버킷리스트였거든.”
공적인 일을 사적인 욕심 채우는 데에 이용하는 드레인 당신은 대체…….
뭐, 상관없다.
비상시를 대비해 싸울 줄 아는 용병이 한 명이라도 더 있다면 좋지.
마차를 타고 이틀을 달린 끝에 라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법의 도시, 라우.
확실히 미래지향적 디자인이 물씬 풍기는 것들이 많이 보였다.
몇몇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라그너, 혹시 저게 뭔지 알고 있어?”
오토바이 비슷하게 생긴 디자인의 탑승물이었다.
단, 바퀴가 달려 있지 않다.
공중에 둥둥 떠 있다.
라그너는 친절하게 내게 설명해 줬다.
“마법사 길드에서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1인 탑승차입니다. 부유석에 마력을 부여해 공중에 떠 있도록 설계했다고 하더군요. 추진력을 더하기 위해 마석들을 군데군데 장착시켰다고 합니다. 아직 시운전 단계라서 상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흠, 그래?”
“로그 상단이 저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모르셨습니까?”
“본 거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나라고 모든 걸 다 기억할 수는 없다.
소설 속 내용을 기억해 내는 것만으로도 빠듯하다.
떠 다니는 오토바이 말고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서 봤던 엘리베이터도 보였다.
드레인은 정신없이 구경하기 시작했다.
“애들 데리고 와서 보여 주면 정말 좋아하겠는데?”
“그러게요.”
마치 놀이동산에 처음 왔을 때의 기분이다.
우리는 따로 숙소를 잡기 위해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마법사 길드 측에서 숙소를 제공해 주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곧 거대한 탑 세 개로 연결되어 있는 건축물 앞에 도착했다.
이곳이 바로 마법사 길드다.
신분증을 제시하기도 전에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우리에게 길을 터 줬다.
“마법사 길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우리를 보는 사람들은 죄다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런 경험을 거의 못 해 봐서 그런 걸까?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졌다.
안내자로 붙은 남자의 뒤를 따라 우리는 기간트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걸어갈 필요도 없었다.가만히 서 있으면 바닥이 알아서 움직이며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줬다.
그야말로 ‘Amazing!’ 한 기분이다.
‘나울도 이렇게 발전하면 좋을 텐데.’
라우에 비하면 나울은 시골처럼 느껴졌다.
나름 발전을 많이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갈 길이 멀구먼.
기간트는 직접 나와 친히 우리를 반겼다.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 에나! 오랜만이구나!”
“안녕하세요, 기간트 님. 오랜만에 봬요.”
에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기간트에게 인사를 건넸다.
에나가 마법사 길드 출신이라는 건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길드장인 기간트와 알고 지낼 정도라는 건 처음 알았다.
완공식 행사 당시 에나는 다른 임무를 수행하느라 참가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기간트의 놀라움은 배로 느껴졌다.
나는 에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떤 관계야?”
“제 스승님이세요. 저에게 마법을 알려 주신 분이죠.”
꽤 친한 사이였군.
연줄이 제법인데?
반면, 기간트와 세올라는 처음 보는 사이었다.
“세, 세올라라고 해, 해요…… 자, 잘 부탁드, 드려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인사하는 세올라.
우리 차원 이동 마법 연구소 소장이 이렇게 소극적이라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