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9화 (129/240)

# 129

악당의 생각 (1)

레미의 호위 임무를 맡게 된 나는 에나와 파이스를 데리고 합류 지점으로 향했다.

데르킨 백작이 주최하는 위플 대회는 ‘일렉터’라는 도시에서 열린다고 들었다.

‘일렉터. 들어 본 적 없는 도시야.’

3권에는 나오지 않는 도시 이름이다.

그래서 굉장히 낯설다.

‘애초에 데르킨 백작이 위플 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안 나오는데.’

4권에 나오나?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지금 이야기의 흐름은 3권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런데 4권에 나오는 이벤트가 벌써 열린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동하는 와중에도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반복했다.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다.

그것을 알아내야 하는데…….

‘이럴 줄 알았다면 라스퉁에게 관심법 좀 배워 올 걸 그랬나?’

라스퉁이라면 데르킨 백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라스퉁을 우리 용병단에 고용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라스퉁은 여우리족과 함께 고대의 숲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카인이 예외적인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카인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하지만 아직까지 카인의 소재지는 불명확하다.

뭐라고 해야 좋을까, 퍼즐 조각들이 여러 개 널려 있는데, 이 조각들이 서로 안 맞는 그런 느낌이다.

뭔가 하나씩 부족하다.

‘이런 거 굉장히 싫어하는데.’

이래봬도 난 예민한 성격이라고.

작은 불협화음 하나 있으면 굉장히 신경 쓰는 그런 타입으로서 지금의 상황은 굉장히 괴롭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우리는 어느 새 레미와 합류하기로 한 지점에 도착했다.

레미는 우리보다 한 발 먼저 도착해 있었다.

“여기에요, 오빠!”

레미와 만날 때만 오빠 소리를 듣는다.

현실에서도 오빠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적은 거의 없었는데…… 묘한 기분이군.

“그동안 잘 지냈지?”

“네! 그보다 오빠가 제 의뢰를 받아들이실 줄은 몰랐어요. 요즘 워낙 바쁘다고 들었거든요.”

“뭐, 그렇지.”

바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데르킨 백작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을지 몰라서 일부러 바쁜 와중에도 억지로 짬을 내서 레미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시 또 모르지 않은가?

‘제2의 파리마 사건이 발생할지도.’

여러 가지 의심이 들지만 이런 것들은 일단 가 보면 알게 될 거다.

“슬슬 출발할까?”

“네!”

레미는 기운차게 답했다.

일행은 레미, 그리고 레미의 시중을 드는 하녀 한 명, 우리 용병들 셋까지 모두 다섯 명이다.

이동하는 와중에 레미는 내게 위플 대회 참가 여부를 물었다.

“오빠는 대회 신청 안 하시나요?”

“할 필요가 있나?”

“꽤 잘하시잖아요. 우승 상금도 크고, 부상으로 따라오는 것들도 많은데. 한번 도전해 보시는 게 어때요? 현장 접수도 받는대요.”

“글쎄다.”

부상으로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딸려 온다면 신청할 생각은 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데르킨 백작이 뭣 하러 벨라시오닉의 보물을 남에게 주겠어?

어림도 없지.

* * *

세계 대회라는 호칭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딱 봐도 위플을 잘할 것처럼 생긴 사람들밖에 안 보였다.

위플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전략과 전술을 겨룰 수 있는 일종의 테스트 수단과 같다.

머리 꽤나 쓴다는 사람들은 이곳에 다 몰려든 것 같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여기에 데르킨 백작이 검은 괴물 몇 마리만 풀어도 초토화되겠어.’

이럴 줄 알았다면 용병들을 더 데려올걸 그랬나?

어차피 나중에 가르시아 부대가 이곳으로 합류하기로 했다.

내일 합류하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그때까지만 아무런 일도 발생하지 않으면 된다.

예선만 총 5일에 걸쳐서 시행된다고 한다.

본선은 32강부터 치러진다.

결승전까지 고려한다면 대회 기간만 하더라도 6~7일이 소요된다.

‘어마어마하네.’

거액의 상금이 걸릴 만도 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와중에 귀족 무리가 지나가는 모습이 내 시야에 포착되었다.

그곳에는 데르킨 백작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살짝 몸을 낮추며 데르킨 백작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숨겼다.

‘귀족들이 꽤 많이 모였어. 아무리 봐도 불안한데……?’

설마 이 많은 인원들을 잠식시키려고 그러는 건가?

데르킨 백작의 꿍꿍이가 무엇일지 도통 모르겠다.

일단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때마침 레미가 로비에서 에나와 함께 위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에나, 너도 위플 게임 할 줄 알아?”

“잘하는 건 아니에요. 기본 룰만 알아요. 그런데 레미 아가씨, 정말 강하시네요. 저는 상대도 안 되겠어요. 이 정도면 아가씨가 그냥 우승하시겠는데요?”

레미는 에나의 말을 부정했다.

“세상은 넓고 강자들은 많아요. 로인 오빠도 강자 중 한 명이기도 하고요.”

“어머, 대장님이요?”

에나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긴. 에나는 내가 위플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니까.

내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직 감을 못 잡고 있을 거다.

레미는 나와 직접 겨뤄 봤기에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로인 오빠도 꽤 강해요. 그때는 제가 이기긴 했지만, 솔직히 겨우 이긴 거거든요. 만약 로인 오빠가 위플 게임에 좀 더 시간을 투자했더라면, 분명 제가 졌을 거예요.”

“그건 아니야. 네가 나보다 잘해. 나는 인정할 건 인정할 줄 아는 남자야.”

“오빠답지 않게 너무 겸손 차리시는 거 아닌가요?”

“겸손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지. 그나저나 오늘부터 예선 시작인데, 너는 안 나가 봐도 돼?”

“괜찮아요. 저는 시드권을 받았거든요. 본선부터 경기 펼칠 거예요.”

그럼 굳이 예선 경기 일정에 맞춰서 일렉터에 올 필요는 없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적으로 만날지도 모르는 상대방의 경기를 눈으로 봐 두는 게 좋으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유명한 말이다.

* * *

예선 1일차.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데르킨 백작이 이곳에 있다는 건, 추종자들이 근처에 어슬렁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뜻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추종자들이 어디에 잠복해 있을지 살펴보러 다니기로 했다.

어쩌면 루크나 마리를 만날 수도 있다.

그때가 되면……!

‘바로 전쟁이다.’

위플 게임 대회니 뭐니, 그런 건 다 후순위로 밀어 두고 일단 대피령부터 내려야 한다.

파리마 사건은 한 번이면 족하니까.

1일차는 아무런 사건 없이 조용히 흘러갔다.

하지만 2일차에 접어들었을 때 가르시아 부대가 합류했다.

“저 왔습니다, 대장님.”

“그래, 고생했어. 그리고 미안, 임무 복귀하려던 것을 내가 도중에 막아 버려서.”

“괜찮습니다. 어려운 임무도 아니었는걸요. 그보다 일렉터에서 추종자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입니까?”

“어디까지나 예상이야. 혹시 몰라서 너희를 이리로 불러서 대기시키려는 거니까 일단은 안심해. 뭐, 조용히 지나가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은 거고. 아무튼 별도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일단 대기해.”

“예, 알겠습니다.”

에나는 레미의 수행원으로 붙여 뒀다.

아무래도 남자인 내가 레미를 일일이 따라다닐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파이스와 나는 대회장 근처를 감시하기로 했다.

나는 파이스를 따로 불렀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 그리고 여자 따라다니지 마라. 술도 마시지 말고. 알겠냐?”

“저에겐 굉장히 힘든 임무가 되겠군요…….”

“힘들긴 개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을 말해 준 건데, 그것조차 안 지키려고 하면 어쩌자는 거냐?”

“노력해 보겠습니다.”

차라리 가르시아를 데려올걸 그랬나?

하지만 가르시아는 너무 눈에 띈다.

험상궂은 인상에 산만 한 덩치를 지닌 남자가 대회장을 어슬렁거리면 사람들의 시선을 독차지할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가르시아는 대회장까지 데려오지 않았다.

대신 가르시아에게 대회장 근처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해 놨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한 번씩 쭉 훑었다.

머리 위에 떠 있는 다수의 인물 정보 창을 확인했다.

아직까진 추종자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저나 많기도 하네.’

위플 게임이 델리피나 대륙에서 국민 게임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직접 피부로 와닿게 느낀 적은 없었다.

이걸 보니 괜히 국민 게임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상금도 어마어마하다.

1등 상금이 15억 제피.

2등 상금은 7억 제피, 3등은 2억 제피다.

1~3등의 상금을 합쳐도 24억 제피다.

실로 어마어마한 상금 규모라 할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레미 말대로 대회에 참가할 걸 그랬나?’

아니지.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자.

지금은 돈보다 델리피나 대륙이 칠흑에게 삼켜지느냐, 마느냐가 더 중요하다.

나는 단상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곳에는 데르킨 백작이 다른 귀족들과 함께 위플 게임을 관람하고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귀족들은 데르킨 백작의 정체를 아직 잘 모르는 듯했다.

‘라크스 공작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데르킨 백작에 관한 소문은 많이 돌고 있다.

그러나 물증이 없다.

그러니 아직 데르킨 백작을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다.

데르킨 백작의 주변에서 어슬렁거라는 한 남자가 유독 신경이 쓰였다.

로브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남자.

인물 정보를 확인한 결과.

‘추종자야!’

내 이럴 줄 알았다.

지체 없이 나는 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추종자를 잡아야 한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니 말이다.

빠른 걸음으로 추종자에게 접근했다.

그 순간.

“어이, 거기! 당신도 대회 참가자야? 그러면 줄을 서고 기다려야지.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안 보여?”

목소리 큰 아저씨가 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것 때문에 추종자에게 나의 접근을 들키고 말았다.

‘이런 망할!’

재수도 더럽게 없지.

추종자는 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놓치면 안 된다!

녀석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뒤에서 아저씨의 잔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저, 참가자 아니에요!’라고 소리쳐 준 뒤에 무시해 버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추격하는 데 속도가 더뎠다.

‘반드를 데려올걸!’

추격전에 특화된 반드라면 라드리치 어쩌고저쩌고 능력을 개방한다면서 빠른 속도로 추종자를 추격했을지도 모른다.

추종자는 대회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봤다.

나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로 했다.

‘스피드는 자신 있지!’

추격전에는 이골이 났다.

이런 것 정도는 웃으면서 따라잡을 수 있다.

골목길로 돌아섰다.

좁은 길목이다.

도망칠 곳은 없어 보였다.

‘거의 다 따라잡았어!’

조금만 더!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건너편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있군!’

바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언제든 단검을 빼어들 자세를 취했다.

코너를 돌자마자 나는 상대방을 확인했다.

그 순간,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반면, 상대방은 마치 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롭게 나를 반겼다.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가?”

“…….”

데르킨 백작.

그는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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