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8화 (128/240)

# 128

글레드를 만나기 위한 자격 (3)

몸이 무겁다, 그것도 굉장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들다.

‘그냥 이대로 다시 잘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나 도중에 나의 수면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email protected]#!”

알 수 없는 라크리어였다.

모르는 언어라서 그런 걸까.

자꾸 뭐라고 하는지 신경 쓰인다.

게다가.

‘목소리 겁나 크네!’

눈을 안 뜨고는 못 배길 정도로 큰 소리였다.

결국 버티다 못해 눈을 뜨고 말았다.

그러자 꼬맹이 몇몇이 화들짝 놀라더니 내가 누워 있던 움막을 뛰쳐나갔다.

뭐야?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지른 거 같잖아.

일부러 놀라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잠시 후.

“일어나셨습니까, 로인 님.”

아는 얼굴이 등장했다.

마일이 내게 다가왔다.

온몸이 쑤셨다.

설마 동굴 정상에 오르고 난 이후에 정신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굴러떨어진 건가?

‘용신단 없었으면 진짜 죽었겠는데?’

내가 얻은 벨라시오닉의 보물이 용신단이라 천만다행이다.

만약 얀의 업다운사이징과 같은 아이템이었더라면 분명 나는 죽었을 것이다.

“동굴 안에서 정신을 잃었었나 보네.”

“아니요, 로인 님이 여기까지 직접 걸어오셨습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내가? 직접 두 발로 마을까지 걸어왔다고?”

“역시 기억나지 않으시는가 보군요.”

그럴 리가 없다.

난 동굴 꼭대기에서 정신을 잃었다.

내 몸이 저절로 여기까지 왔다는 게 말이나 되나.

그러나…….

뒤늦게 나타난 라스퉁은 그럴 수 있다는 듯이 말했다

“고대의 정령이 자네의 몸에 임시로 빙의해서 안전하게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겠지.”

“왜 그런 짓을 합니까?”

“자네가 시험에 통과해서 그런 걸세. 만약 통과조차 못했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놔뒀겠지.”

살벌한 시험이었네.

내가 블루로즈단에 입단했을 때 봤던 테스트보다도 더 잔혹한 것 같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전 아직 글레드를 못 봤습니다만.”

내가 여기까지 온 목적은 그거다.

그런데 정작 글레드를 못 보고 이대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은가?

라스퉁은 내게 손짓했다.

“따라오시오.”

“…….”

“몸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 3일이나 쉬었으니까.”

내가 정신을 잃은 지 3일이나 지났나?

어쩐지…… 몸이 너무 찌뿌둥하다 싶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후에 마일과 함께 라스퉁을 따라 이동했다.

내가 들렸던 바로 그 동굴이 눈앞에 펼쳐졌다.

‘굉장히 작은 동굴인데…….’

어떻게 그런 암벽이 동굴 안에 있었던 걸까?

아무리 봐도 암벽이 있을 만한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다.

혼자서 호기심 천국에 빠져 있을 무렵. 라스퉁이 알아서 해답을 들려줬다.

“이 동굴은 정령들의 세계와 이어져 있소.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지. 하지만…….”

라스퉁은 동굴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흰색의 불꽃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다.

“시험에 통과한 자가 다시 이곳을 찾으면, 고대의 정령의 흔적과 만날 수 있소.”

생명의 불씨, 글레드다.

공중에서 일렁이는 글레드에게 손을 뻗었다.

‘뜨겁지 않아.’

따스하다.

이것이…… 글레드라는 건가?

고대의 정령의 흔적.

그리고…….

칠흑을 쓰러뜨릴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글레드의 위로 상태창이 하나 떴다.

-생명의 불씨, 글레드

-등급 : 측정 불가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

-알 수 없음

‘글레드도 아이템 취급을 받네.’

렉스 연구소에 있을 때에는 이런 아이템 정보창이 안 떴는데…….

그때는 글레드가 시험관에 봉인되어 있어서 그런 건가?

‘가만, 아이템이라고 하면……?’

갑자기 머릿속에 가설이 하나 세워졌다.

‘내가 삼킬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나의 의문을 해소시켜 줄 메시지가 들려왔다.

-흡수 가능한 아이템이 존재합니다.

-아이템을 흡수하면 용신단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흡수하시겠습니까?

역시!

내 이럴 줄 알았다.

글레드도 삼킬 수 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 지금 당장 삼킨다!’

불꽃의 형상이 가루가 되어 작은 환약으로 변했다.

화이트 플레임이라는 이명답게 환약의 색깔 역시 흰색이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라스퉁과 마일은 탄성을 내뱉었다.

“글레드가……!”

“모양이 변하다니, 신기하군요. 이것도 제가 몰랐던 정보입니다.”

마일의 펜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마일에게 경고했다.

“여기서 본 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 오직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만약 제가 그걸 거부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너를 죽인다.”

“…….”

마일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잠시 후 한숨과 함께 마일은 어깨를 으쓱이는 제스처를 선보였다.

“알겠습니다. 방금 본 장면은 무덤까지 가져가겠습니다. 죽는 것보다 비밀을 지키는 게 당연히 이득이니까요. 젊은 나이에 죽긴 싫습니다.”

“땡큐.”

역시 현자다.

상황판단력이 제법이다.

나는 환약을 그대로 꿀꺽 삼켰다.

-글레드를 삼켰습니다. 삼킨 아이템의 효과로 ‘생명의 불꽃’ 스킬을 획득하였습니다.

-용신단의 레벨이 오릅니다.

-3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추가 스텟이 오릅니다.

-드래곤 피어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드래곤 클로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이미테이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용언 마법 스킬 레빌이 오릅니다.

-새로운 용언 마법이 15종 추가됩니다.

글레드 하나 삼켰을 뿐인데 어마어마하다.

용신단과 스킬 레벨들도 순식간에 올라갔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바로 새로 추가된 스킬, ‘생명의 불꽃’이다.

-생명의 불꽃

-물리 공격력 : ???

-마법 공격력 : ???

-지속 시간 : 10초

-생명의 불, 글레드의 힘을 일시적으로 다룰 수 있는 스킬. 불길한 것들을 모두 정화해 불태워 버린다.

새로운 액티브 스킬을 획득했다.

용신단의 능력은 아니다.

나는 삼키는 아이템마다 해당 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스텟, 옵션 등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글레드도 마찬가지였다.

‘이 힘만 있으면, 칠흑과 대적해도 밀리진 않겠어.’

솔직히 말해서 이 고대에 숲을 찾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큰 기대는 안 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고대의 숲이 아니었다면, 이 세계는 정말로 베드 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몰라.’

천만다행이다, 정말로.

* * *

글레드의 힘을 얻은 후에 나는 마일과 함께 마을을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에 나는 라스퉁에게 다가가 부탁을 하나 남겼다.

“혹시 카인이 이곳에 오거든, 제가 찾는다는 말을 꼭 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네라면 카인과 만날 자격이 있지. 알겠소. 그리하리다.”

라스퉁은 내가 왜 카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아는 눈치였다.

하긴 내 머릿속을 자기 머릿속 들여다보듯이 하는 사람인데 이유를 모를 리 없을 거다.

그래도 라스퉁은 협조적인 사람이라 다행이다.

문제는 카인이다.

‘카인, 그자가 과연 나에게 협조적으로 나올까?’

그건 아직 모르는 거다.

고대의 숲을 빠져나온 후에 들린 첫 번째 마을.

그곳에서 나는 마일과 작별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나울까지 조심해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로인 님.”

“고생 많았어. 그리고 고대의 숲에서 험한 말을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사람은 제각각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제가 지식을 탐하는 현자라 하더라도 지켜 줄 건 지켜 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어, 들어가.”

순간이동 마법진을 타고 모습을 감추는 마일.

저 녀석이 입이 무거웠던가, 아니면 가벼웠던가?

기억이 잘 안 난다.

* * *

오랜만에 보는 나울의 풍경.

‘음, 그리웠어.’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딱 맞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기 전에.

‘본부에 잠깐 들러 볼까?’

복귀 사실도 알려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로그 상단에도 잠깐 들려서 라그너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감시할 필요가 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외부에서 볼일들을 한꺼번에 다 처리하고 들어가는 편이 좋아 보였다.

또 나오기 귀찮으니까.

도대체 업무가 얼마나 쌓여 있을까?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본부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라비의 고음이 나를 가장 먼저 반겼다.

“대장니임!”

“왜? 또 뭐야?”

“너무 늦으셨잖아요! 뭐 하다가 이제 오신 거예요? 양성소에 연락해 보니까 대장님은 5일 전에 떠났다고 그러지, 다른 곳에 수소문을 다 해 봤는데 안 보이지! 실종 신고할 뻔했다니까요!”

“안 했으면 됐지.”

고대의 숲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시간을 할애할 생각은 없었다.

이게 다 내가 고대의 정령들의 속삭임 때문에 기절해 버린 탓이었다.

그래도 글레드의 힘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

얻은 성과가 크다 보니 라비의 잔소리는 애교로 넘길 수 있었다.

잔소리를 그친 라비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중요한 의뢰가 들어왔어요.”

“우리한테?”

“네, 라크스 공작님의 따님 아시죠?”

“첫째? 아니면 둘째?”

“리오나 대장님 말고요.”

“그러면 둘째겠군.”

리오나가 우리에게 의뢰할 이유는 없으니까.

“레미가 무슨 일로?”

“엘뷰라는 곳에서 세계 위플 대회가 열린다는데, 그 아가씨가 이번 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하나 봐요. 그런데 요즘 세상이 워낙 흉흉하잖아요? 수행원이 필요한데, 라크스 가문의 호위대가 여력이 되질 않아서 저희에게 의뢰를 한다네요.”

“수행 의뢰인가? 하기야 요즘은 위험한 세상이지.”

이게 다 칠흑 때문이다.

그나저나 라크스 가문은 이제 우리 단골이 다 된 느낌이다.

뭐만 했다 하면 우리만 찾네.

라비는 파일을 정리하면서 물었다.

“대장님이 직접 가실 거죠? 라크스 가문에 관련된 의뢰는 웬만하면 대장님이 다 처리해 오셨잖아요.”

예전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미안하지만 다른 인력으로 배치해 줘.”

“네? 정말요?”

“어. 나, 바쁜 남자거든.”

3권을 통해 알아낸 벨라시오닉의 보물의 소재지들을 전부 다 기억해 뒀다.

다른 사람들이 가로채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쓸 거다.

이것만으로도 바쁜데 언제 의뢰를 수행하고 있겠나.

하나 라비는 다른 쪽으로 나를 의심했다.

“혹시 대장님…… 의뢰 안 받아들이고 본인이 직접 위플 대회에 참가 신청하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내가 왜?”

“대장님도 위플 게임 잘하시잖아요.”

“잘하긴 하는데 어차피 레미가 참가하면 내가 못 이길 거야. 우승은 물 건너간 셈인데 뭐 하러 참가하겠어.”

“에이, 그래도 도전 한번 해 보세요. 2등 상금도 어마어마하던데요? 데르킨 백작이 통 크게 상금을 걸었더라고요.”

잠깐만, 방금 흘려들으면 안 될 말을 들은 거 같은데?

“뭐라고 했어? 데르킨 백작?”

“네.”

라비는 도리어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보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이번 위플 게임, 데르킨 백작이 주축이 되어서 개최하는 거예요.”

이런 망할!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레미한테 받은 의뢰, 내가 할게. 그리 전해 둬.”

“예? 방금까진 안 하신다면서요.”

“원래 남자의 마음은 갈대 같은 법이야.”

“여자의 마음 아니에요?”

“사소한 건 그냥 넘어가.”

데르킨 백작, 이번에는 또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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