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6화 (126/240)

# 126

글레드를 만나기 위한 자격 (1)

마일을 따라 이동한 지 반나절이 지났을 때였다.

저 멀리 거대한 숲의 모습이 들어왔다.

마일은 숲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곳이 글레드가 있다고 알려진 고대의 숲입니다.”

왜 고대의 숲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일단 크다.

숲이 넓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무며 풀이며 돌이며 모두가 다 크다는 뜻이다.

나무가 거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고층 빌딩 수준으로 컸다.

나는 고대의 숲 나무들을 올려다봤다.

“저기서 나뭇가지라도 하나 부러져서 떨어지면 최소 사망이겠네.”

“보기와는 다르게 여기 나무들은 꽤 튼튼합니다.”

“그래? 그럼 여태껏 나뭇가지 낙하로 사망한 모험가들은 한 명도 없었겠네?”

“있긴 합니다.”

“튼튼한 거 맞냐?”

“아마도요.”

거기서 가정법을 사용하지 말라고.

역시 마일의 말은 쉽게 못 믿겠다.

고대의 숲을 향해 계속 안으로 들어갔다.

도중에 ‘쿵쿵’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야?”

“몬스터인 거 같습니다만.”

“고대의 숲에 몬스터도 살아?”

“예, 그리고 여기 몬스터들도 나무나 풀처럼 한 덩치 합니다. 저기 보세요.”

티라노사우르스 같은 거대한 공룡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처음 보는 몬스터다.

현자답게 마일은 친절하게 몬스터의 정보를 내게 알려 줬다.

“챠일드쿠프라는 몬스터입니다. 고대의 숲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대형 몬스터죠. 잡아서 팔면 꽤 비싼 가격에 팔릴 겁니다.”

“우리의 목적은 저 녀석을 사냥하러 온 게 아니잖아. 최대한 안 싸우고 몰래 지나가야지. 기운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제가 보기엔 조용히는 못 지나갈 거 같습니다만.”

마일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챠일드쿠프는 이미 우리의 기척을 파악한 상태였다.

코를 벌름거리면서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크와아아아아아앙!

일드쿠프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포효하면서 우리 쪽으로 달라왔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달려오는 속도는 느린 편은 아니었다.

강제로 싸워야 할 판이다.

“저 녀석, 우리에게서 떨어뜨릴 수는 없어?”

“후각이 매우 발달되어 있는 몬스터입니다. 처리하지 않으면, 저희가 고대의 숲에 머무르는 한 계속 뒤를 쫓아올 겁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 너는 저쪽에 숨어 있어. 내가 처리할 테니까.”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마일에게 싸움에 참가하란 말은 애초에 하지도 않을 생각이었다.

현자가 무슨 싸움이란 말인가?

그러나 마일은 벌써부터 전투태세에 들어섰다.

“로인 님의 발목을 붙잡을 정도까진 아닙니다.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마일은 흰 장갑 대신 다른 장갑으로 교체했다.

검은 장갑이었다.

손가락 부분의 끝에서 기나긴 와이어들이 펼쳐졌다.

공중으로 팔을 크게 휘젓는 마일.

챠일드쿠프는 입을 벌린 채 바로 우리 앞까지 다가왔다.

하나 그게 다였다.

더 이상 챠일드쿠프는 접근해 오지 않았다.

아니, 접근하지 못했다.

마치 몸이 굳은 것처럼 달려오던 그 자세 그대로 멈춰 버렸다.

마일이 펼친 와이어 거미줄에 딱 걸려 버린 것이다.

“그 와이어, 굉장히 튼튼해 보이네.”

“아스랄을 가공해 만든 와이어입니다. 웬만한 물리력으로는 끊을 수 없죠.”

아스랄이라…… 기억이 난다.

모그 신전에서 아스랄로 된 벽을 박살 내 주변을 놀라게 만든 적이 있었다.

‘확실히…… 아스랄이 강도가 대단하긴 했지.’

챠일드쿠프가 쩔쩔 매는 이유가 있었다.

마일은 내게 마무리를 양보했다.

“이제 끝내시면 됩니다.”

“네가 직접 안 하고? 마음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저는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나라고 좋겠냐?

이렇게 된 이상, 최대한 고통 없이 보내 주기로 했다.

* * *

챠일드쿠프뿐만 아니라 다양한 몬스터들이 고대의 숲에 서식하고 있었다.

문제는 공격성이 높은 몬스터들이 꽤 많다는 거였다.

조금만 이동해도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드는 몬스터들.

마일이 놈들을 속박하고, 내가 마무리를 하고…….

이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이제 지쳤다.

“몬스터밖에 없는데. 정말 여기에 있는 거 맞아?”

“예, 대충 이 정도로 헤집어 놓으면, 아마 슬슬 등장하기 시작할 겁니다.”

“뭐가? 새로운 몬스터?”

“아니요.”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털며 일어선 마일은 전방을 가리켰다.

“저들입니다.”

몬스터 말고 나와 같은 인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한 명이 아니었다.

총 다섯 명.

체격이 제각각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천을 옷처럼 둘둘 걸쳤다. 그리고 나무로 만든 가면을 썼다.

마일의 가면에 비하면 세련미는 떨어졌다.

투박함이 돋보이는 가면을 쓴 남자가 우리에게 물었다.

“#$#)@#([email protected])%^?”

내가 잘못 들었나?

무슨 말을 하는 거 같긴 한데.

‘못 알아듣겠어.’

다시 한번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email protected]%^#@#)!”

뭐라 뭐라 말하는 건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난생 처음 접해 보는 언어 체계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모르겠다.

길을 가다가 미국 남자가 나한테 길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당혹감이 느껴졌다.

묘한 기류가 형성될 때 마일이 입을 열었다.

“&^$#$^#@[email protected]*&.”

대화가 통한다!

“어떻게 대화가 가능한 거야?”

“저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라크리어입니다. 고대 언어죠. 아는 이는 거의 없을 겁니다.”

“너는 라크리어를 어떻게 아는데?”

“잊으셨습니까? 저, 48인의 현자 중 한 명입니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녀석, 현자였지.

그래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으니 다행이네.

안심했다.

남자는 마일과 대화를 나누더니 이내 손짓을 했다.

저게 무슨 제스처인지 나도 알 것 같았다.

“따라오라는 뜻, 맞지?”

“예, 근데 문제가 좀 있습니다.”

“무슨 문제인데?”

“그건 저들의 마을로 가게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겁니다.”

또 나왔다.

마일의 안 좋은 버릇 중에 하나가 바로 이거다.

이유를 말해 주지 않고 ‘그때 가면 알게 될 거다.’라고 말하는 거.

스포일러를 해 주는 게 그리도 싫은가?

아무튼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일단 저들을 따라 이동해 보기로 했다.

문제 생기면 실력을 발휘하면 되니까.

뭐, 걱정 없겠지.

* * *

남자의 뒤를 따라가는 동안, 마일은 내게 저들의 정보를 제공했다.

“여우리족이라고, 예로부터 고대의 숲에 계속 살고 있는 부족입니다.”

“사나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이 숲에서 용케도 잘 살고 있네.”

“그러게 말입니다.”

수다를 떨면서 이동하기를 15분.

여우리족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마을 사람들은 창과 방패를 들고 우리를 맞이…… 아니, 경계했다.

“어이, 마일.”

“예, 로인 님.”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화로 잘 푼 거 아니었어?”

“실은…… 그 반대입니다. 저들은 저희를 고대의 숲에서 나가라고 경고하더군요. 일단 마을로 가서 이야기를 천천히 나눠 보자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희를 죽이든 쫓아내든 알아서 하라고 말을 전해 뒀습니다.”

“그런 중요한 딜을 왜 너 혼자서 정하고 난리야?”

“로인 님이라면 알아서 잘 해결해 주실 거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녀석 봐라?

귀찮은 건 전부 나한테 떠넘기네.

저번에 세올라의 집에서 먼지 뒤집어써 가면서 고물 아이템들 뒤지게 만들었다고 나한테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어흠!

대치 상황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미터의 장신을 가진 남자가 나와 상황을 정리했다.

손을 들어 뭐라고 지시를 내리자, 여우리족의 병사들은 우리를 향해 겨누던 창을 내렸다.

그러나 눈빛에는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일단 무기를 내려놓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장신의 남자는 나에게 물었다.

“네가 로인이라는 자군.”

남자의 말에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로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택해 말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마일을 살폈다.

혹시 마일이 부족 사람들에게 미리 내 정보를 전달한 게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러나 마일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름을 말한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저희가 누군지 설명해 주지도 않았고요.”

설마 저 남자도 베르투의 회원은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마일이 못 알아볼 리가 없을 테니까.

별의별 추측이 난무할 무렵.

장신의 남자가 직접 내 궁금증을 해소시켜 줬다.

“고대의 정령이 알려 줬다. 그리고 네가 이곳에 올 거란 사실도 미리 알고 있었지.”

광기의 정령 다음으로 고대의 정령인가?

그래도 가르시아에게 깃든 정령보다는 순한 듯한 느낌이다.

장신의 남자는 스스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소. 라스퉁이라 하오.”

“로인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마일이고요.”

“그쪽은 베르투의 현자로군.”

마일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가면을 벗었다.

“정체를 다 알고 있는 거 같으니, 굳이 가면은 안 써도 되겠군요.”

“고대의 숲에선 감추고 싶어도 다 알게 되지. 고대의 정령이 우리 여우리족과 함께 하기 때문이니까.”

이들은 확실히 평범한 인간과는 달라 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척척 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올 거라는 사실도 미리 알아내는 예지 능력도 그렇고.

마치…….

‘카인을 보는 듯하네.’

혹시 이 남자가 카인은 아닐까?

속으로 몰래 추측했다.

그때, 라스퉁은 슬쩍 웃었다.

“미안하지만 난 카인이 아니오. 그는 내 벗일 뿐.”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벗이라고요? 혹시 카인, 그자를 압니까?”

“알다마다.”

라스퉁은 충격적인 발언을 들려 줬다.

“카인 또한 우리와 같은 여우리족이니까. 모를 리가 없지 않겠소?”

* * *

카인이 여우리족이라니.

몰랐다.

애초에 난 여우리족이 어떤 부족인지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

고대의 정령과 함께 이 숲에서 살아가는 부족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전혀 모른다.

‘설마 여기서 카인의 흔적을 듣게 될 줄이야!’

이건 기회다.

“혹시 카인이 어디 있는지 압니까?”

“미안하지만 그건 잘 모르오. 카인이 이곳을 떠난 지 수십 년은 더 되었으니까.”

라스퉁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글레드를 찾으러 왔는데 카인에 관한 정보까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설랬다.

이곳에서 들어야 할 이야기가 하나 더 늘어났다.

라스퉁은 우리에게 손짓했다.

“여기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긴 뭣하니 장소를 이동합시다. 나를 따라오시오.”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나는 라스퉁을 따라 이동을 시작했다.

마일도 마찬가지였다.

“넌 안 가?”

“저 말씀이십니까?”

“어. 평상시에는 정보만 툭 던져 주고 금방 사라졌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안 그러네?”

“여우리족에 관한 정보를 가진 현자는 거의 없습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지식을 늘릴 겸해서 로인 님과 같이 어울리려고 했습니다만……. 저와 함께 하면 통역도 가능하고, 좋지 않습니까?”

“글쎄다……?”

단순히 여우리족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감시하기 위함인지. 마일의 속내가 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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