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5화 (125/240)

# 125

페르칸 기사 양성소 (5)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 머무르기 시작한지 이제 14일차가 되었다.

솔직히 나는 그동안 안달이 나 있었다.

아직까지 검은 괴물이 누군지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검은 괴물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내 예상대로 놈은 F반의 약한 점을 골라 파고들기 위해 접근했다.

검은 괴물의 정체는 2학년 F반의 담당 강사, 마리였다.

‘애초에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은 나오지.’

학생들 중에서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당한 자가 없다면, 강사 혹은 양성소 관계자 중 한 명이라는 뜻이 아닌가?

이걸 좀 더 빨리 파악했어야 했는데 어리석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발견했으니 천만다행이다.

나는 제더필을 일으켜 줬다.

“괜찮냐?”

“마리 강사님의 상태가 이상해요!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홀리기만 했으면 다행이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태다.

나는 마리의 인물 정보를 확인했다.

-마리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SS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의 젊은 여성. F반 출신으로서 간신히 양성소를 졸업하고 기사단 입단을 위해 고군분투를 했지만, 현실에 절망하고 칠흑의 조각의 속삭임에 넘어갔다. 현재 잠식 단계는 3단계.

처음 마리를 봤을 때부터 저 여자의 인물 정보창부터 확인했어야 했다.

칠흑의 조각의 속삭임에 넘어간 자가 철석같이 학생일 줄 알고 확인을 안 했던 나의 불찰이다.

그래도 더 큰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발견해서 다행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외쳤다.

“물러서. 너희가 상대할 녀석이 아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보면 절로 알게 될 거야.”

미리 챙겨 온 단검을 빠르게 투척했다.

휘잉, 푹!

단검은 마리의 오른쪽 어깨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러나 마리는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단검을 뽑았다.

그러자 구멍 뚫린 그녀의 신체 부위에서 무수한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꺄아악!”

“저, 저게 뭐야?”

학생들은 비명을 질러 댔다.

처음 보는 광경에 겁이 날 것이다.

나도 검은 괴물과 처음으로 마주할 때에는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한편 마리의 몸에서 새어 나온 다량의 검은 연기는 그녀를 집어삼켰다.

이후 그녀의 신체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먼저 마리의 전신이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등에는 박쥐 날개 같은 것이 생겼다.

얼굴은 인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신, 머리에 양 갈래의 뿔이 형성되었다.

‘악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군.’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몬스터 중 서큐버스라는 몬스터가 있다.

변형된 그녀의 모습은 그와 흡사한 요염함을 자랑했다.

여태껏 봤던 평범한 검은 괴물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난 저런 형태의 검은 괴물을 몇 차례 본 적 있다.

‘데르킨 백작, 그리고 루크. 두 녀석이 비슷한 케이스였지.’

칠흑의 조각의 힘을 이용해 외형을 자신의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잠식 단계.

3단계를 넘어선 그 이상의 단계다.

‘그리고 가장 골치 아픈 녀석들이기도 하지.’

루크와 맞붙었을 때 꽤나 고생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신체를 변형한 마리는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당신은 양성소에 오고 나서부터 줄곧 저를 방해만 하는군요.”

“방해할 이유가 있으니까 하는 거지. 스승으로서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야지, 오히려 타락을 시키려고 하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 안 그래?”

“타락이 아니라 구원이에요.”

“구원이든 ‘십 원’이든 내 알 바 아니야. 그런 건 너 혼자 지겹도록 하라고.”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

나는 마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땅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 들어 마리의 날개를 잘라 냈다.

그러나 날개는 금세 다시 복원되었다.

‘재생력 하나는 좋네!’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혀를 차게 만드는 재생 능력이다.

마리의 손톱이 길어졌다.

“당신도 참교육을 시켜 줄게요!”

“강사가 강사를 가르치면 쓰나!”

아니지. 이미 마리는 강사가 아니다.

칠흑의 조각에게 잡아먹힌 불쌍한 중생에 불과하다.

손톱을 휘둘러 크게 할퀴었다.

몸을 옆쪽으로 살짝 빼면서 마리의 공격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클로는 이렇게 사용하는 거야!”

드래곤 클로를 발동시켰다.

마리의 상반신과 하반신을 절단 냈다.

그러나 마리는 다시 하반신을 재생시켰다.

이런 소모전은 의미가 없다.

‘심장을 노려야 해!’

그러나 마리는 내가 상대했던 검은 괴물들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했다.

심장을 공격하려 하면, 마리는 몸을 뒤로 빼면서 내 공격을 흘려 버렸다.

포위진을 만들어서 마리의 움직임에 제한을 걸어야 한다.

나는 문득 제더필과 F반 학생들이 나에게 보여 준 전투 방식을 떠올렸다.

내가 먼저 외치기도 전에 F반 학생들은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사님! 저희가 왼쪽을 맡을게요!”

“오른쪽은 맡겨 주세요!”

켄다와 네인이 각각 학생들을 이끌고서 측면을 막아섰다.

후방은 제더필이 맡았다.

“죽어! 괴물 녀석아!”

제더필의 롱 소드에 마리의 양 날개가 다시 한번 찢어졌다.

마리는 사납게 제더필을 노려봤다.

“패배자 주제에 감히 나를……!”

“패배자 같은 소리 하네! 아직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시작조차 안 한 우리들에게 패배자니 뭐니 그딴 소리는 집어 치워!”

나도 모르게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래, 바로 그 마음가짐이다!”

내가 가르침 방식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여기서 오는 보람은 꽤 컸다.

나는 학생들의 용기를 대변하기로 했다.

바로 이 한 번의 공격으로!

숨을 크게 들아미쉬었다.

-크워어어어어!

액티브 스킬, 드래곤 피어를 발동시켰다.

일순간 퍼져 나오는 강한 살기에 마리의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이 순간을 난 놓치지 않았다.

마리의 심장이 있는 부위의 근처까지 접근했다.

그러나 도중에 난입자가 등장했다.

“……!”

위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척.

나는 마리의 심장을 도려내려던 드래곤 클로를 거두고 위쪽으로 휘둘렀다.

까아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귀를 틀어막고 싶을 정도였다.

지면에 박힌 거대한 사이드가 나와 마리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이드의 끝에 발끝을 올리며 조용히 착지한 남자.

얼굴의 반쪽이 검은 연기로 물들어 있는 루크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야, 용병 양반. 나, 기억하고 있겠지?”

솔직히 별로 기억하고 싶진 않았다.

루크는 한 손으로 마리를 들어 올렸다.

“백작의 명령이다. 강사 놀이는 그만두고 돌아오래.”

“백작님이……?”

“응, 여기서 너를 잃을 수는 없다나 뭐라나?”

“배, 백작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나요?”

거기서 얼굴을 왜 붉히냐.

이해 못할 행동을 보여 주는 마리를 번쩍 든 루크.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용병 양반.”

대답 대신 루크에게 드래곤 클로를 날렸다.

그러나 루크는 이미 마리를 안은 채 연기와 함께 사라진 지 오래였다.

누가 악당 아니랄까 봐 도망칠 때는 무진장 빠르네.

* * *

새벽에 벌어진 검은 괴물 사건은 페르칸 기사 양성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와반은 마리가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추종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마리 양이 설마 그런 상태였을 줄이야…… 전혀 몰랐습니다. 제가 확인했어야 했는데……. 제 책임입니다.”

“저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몰랐어요. 온전히 와반 님 책임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인명 피해는 없었으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인 씨 덕분입니다. 양성소에 와 주시지 않았더라면 분명 큰 사건이 벌어졌을 겁니다.”

그렇고말고. 와반의 말이 정확하다.

소설 속 내용으로는 실제로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내가 도중에 초를 쳤기 때문에 여기서 끝날 수 있었다.

‘이 계획을 데르킨 백작이 꾸미고 있었던 걸까?’

이건 소설에 없던 내용이었다.

몰랐던 사실이 하나둘씩 밝혀지니까 재미가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위기감만 증폭되었다.

여태껏 벨라시오닉의 보물 찾기에만 집중하던 데르킨 백작.

그랬던 그가 이제 슬슬 활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소설 속에서 봤던 것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조심해야겠어.’

더 껄끄러운 악당이 되기 전에 기회가 있다면 미리 뒤를 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건 나중에 레이샤르와 따로 논의를 해 보도록 하자.

검은 괴물 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난 뒤 나는 양성소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짐을 챙기고 양성소를 나서려던 찰나였다.

“강사님!”

F반 학생들이 좌우측에 나란히 서며 내게 길을 터 줬다.

“이건 무슨 이벤트야?”

“이벤트라기보다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요.”

제더필이 대표로 말했다.

“저희에게 의욕과 용기를 선물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사님께서 알려 주신 이 마음가짐, 평생 간직하며 불합리한 세상과 싸워 가겠습니다.”

믿음직스러운 말이었다.

나는 손을 내밀었다.

제더필은 내 손을 마주 잡아 줬다.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갈 곳 없으면 언제든 나에게 연락해. 블루로즈단의 문은 활짝 열려 있으니까.”

“하하하!”

내 말에 학생들은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으로 한 말 아니다.

진담이다.

물론, 그냥 입단시켜 줄 생각은 없다.

‘테스트는 봐야지.’

블루로즈단은 기사단 못지않게 들어오기 어려운 용병조직이니까.

* * *

페르칸 기사 양성소를 떠난 뒤에 나는 말을 타고 도시를 나섰다.

한적한 숲.

그곳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로인 님.”

흰색 가면을 쓴 마일이 나를 맞이했다.

정장 차림과 숲 배경의 조합이 굉장히 안 어울렸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보시다시피 로인 님을 기다렸습니다.”

“벨라시오닉의 보물이라도 찾았어? 아니면 카인의 흔적이라도?”

“나머지 하나가 더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마일에게 조사를 부탁했던 일은 총 세 개다.

두 개는 앞서 내가 언급했던 것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칠흑을 쓰러뜨릴 수 있는 희망의 열쇠와 연관되어 있다.

“……글레드에 관한 거야?”

“예, 그렇습니다.”

마일에게 글레드에 대한 정보를 듣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난 또.

이번에도 벨라시오닉의 보물 위치 정보를 가지고 온 건 줄 알았는데.

물론 글레드의 정보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없으면 이 세계는 배드엔딩을 맞이하게 될 테니 말이다.

“무슨 정보인데?”

“글레드가 있는 곳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예, 확실한 정보입니다. 믿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마일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디 있는데?”

“이 숲을 지나 쭉 직진하다 보면 또 다른 숲이 나옵니다. ‘고대의 숲’이라 불리는 장소인데,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군요.”

“글쎄, 어렴풋이 들어 본 기억은 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곳에 글레드가 있다는 거지?”

“네, 여기서 멀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곧장 나울로 돌아가시는 것보다 고대의 숲을 방문해 글레드의 모습을 확인해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뻔한 걸 물어보네.”

굳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바로 출발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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