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
페르칸 기사 양성소 (4)
훈련의 성과가 차츰 나타나기 시작했다.
딱히 뭔가를 가르친 건 아니었다.
‘나에게 한 방 먹이기만 하면 된다.’
이 조건만을 걸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요 1주일 동안, 각자 손에 익은 무기를 들고 열심히 내가 내 준 숙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하나 아직 멀었다.
이제야 조금 해볼 만해졌을 뿐.
나는 본격적으로 단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거냐?’
10일차에 접어들었다.
학생들은 체력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슬슬 한계가 올 것이다.
물론 나는 아직 여유가 있다.
제더필은 내가 질문을 던졌다.
“강사님, 정말로 인간 맞아요?”
“그러면. 내가 몬스터로 보이냐?”
“그건 아니지만…….”
“입으로 떠들 시간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움직여라. 전장에서도 지금처럼 적이랑 수다나 떨 거냐?”
“…….”
제더필은 대답 대신 롱 소드를 들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근성 하나는 좋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근성만으로 나를 잡을 순 없다.
실력, 그리고 전술이 필요하다.
제더필은 학생들과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이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뭔가 있나 보군!’
나는 위기감보다는 기대감을 느꼈다.
슬슬 이들도 뭔가 보여 줘야 할 때가 왔다.
아무리 F반이라고 해도 그렇지, 그래도 명색이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서 교육을 받은 학생들 아닌가?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제더필이 먼저 내게 달려들었다.
선공은 늘 제더필의 몫이었다.
‘녀석이 제일 실력이 좋으니까.’
제더필을 필두로 양 사이드에서 켄다와 네인이 활약을 펼쳤다.
나에게 처음으로 단검을 휘두르게 만들었던 바로 그 전법.
‘시야를 좁히고 사각지대를 만들어 기습을 노리려는 거겠지.’
좋은 작전이다.
1 대 다수의 전투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제더필이 짠 거 같은데.
하지만 이미 나에게 간파 당한 전력이 두 번이나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건 너무 안일한 태도였다.
투웅!
제더필의 롱 소드를 쳐 내 버렸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공격’이라는 것을 펼쳤다.
“……!”
발을 뻗어 제더필의 가슴을 살짝, 아주 살짝 차 버렸다.
제더필은 ‘아픔’이라는 감정보다 ‘놀람’이라는 감정을 드러내면서 5미터 가량을 나가 떨어졌다.
나름 힘 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튕겨나갔다.
그래도 크게 다치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리타이어 된 제더필의 빈자리는 다른 학생들이 채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각각 움직이던 F반.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팀이 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지 나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켄다와 네인도 리타이어. 서른한 명의 학생 중 열다섯 명을 리타이어시키고 난 뒤, 나는 단검을 거두어들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제 앞으로 4일 남았다. 내가 떠나기 전까지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 주길 바란다.”
“네!”
처음과는 달리 기운찬 대답을 들려주는 이들.
변화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나 또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 * *
11일차.
오늘도 F반과의 훈련에 어울려 주기 위해 훈련 장소로 향했다.
도중에 다른 반 학생 무리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강당에서 이상한 몬스터가 목격되었다던데.”
“무슨 몬스터?”
“온몸이 새까맣다고만 들었어. 저번에 C반 애들이 봤다던 그 몬스터랑 동일한 거 같던데.”
듣자마자 바로 알아차렸다.
‘검은 괴물이야!’
녀석은 분명 여기에 있다.
틀림없다.
오늘뿐만 아니라 나는 요 며칠 동안 양성소 내에서 검은 괴물에 관한 소문을 세 번 정도 접했다.
‘양성소 안에 있는 건 틀림이 없는데…….’
문제는 아직까지 녀석이 어디 있는지, 혹은 누구에게 잠식되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천오백 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을 전부 찾아 인물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혹시 학교에 없는 학생들 중 한 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해 현재 집에 가 있는 학생들은 총 세 명.
‘어쩌면 그 셋 중 한 명일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로 그럴까?’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내가 생각을 너무 한정적으로 하는 것일지도 몰라.’
양성소에 있으면서 동시에 아직 내가 확인해 보지 않은 부류가 있었다.
‘설마?’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 * *
13일차가 되었을 때 제더필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아냐! 강사님이라면 분명 그런 공격에 빈틈을 보이지 않았을 거야. 좀 더 빠르게! 그리고 정교하게 일격을 가해야 해!”
“알았어!”
포메이션을 다시 정비하는 제더필.
이미 해가 저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훈련은 계속 이어졌다.
고되고 험난한 시간이지만, 이들은 점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도 할 수 있어!’
제더필을 비롯해 켄다, 그리고 네인을 비롯해 서른한 명의 F반 모두가 다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
상대는 그 유명한 로인이다.
벨레너의 13난제 중 2개나 클리어한 전설적인 남자를 상대로 F반은 다른 어떤 기사 지망생들보다도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미 F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소문이 양성소 전역에 퍼졌다.
몇몇은 F반을 오히려 응원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의 이 기분을 제더필은 오랜만에 느껴 봤다.
기사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심장이 요동쳤다.
이것만으로도 제더필은 본인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되었다.
로인이 기사 양성소를 떠나는 날이 된 것이다.
제더필은 학생들을 불러 모았다.
“좋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하고 해산하자. 내일이 마지막이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해 보자고. 알았지?”
“당연하지!”
“강사님께 제대로 한 방 먹여 주자!”
“우리는 할 수 있어!”
의욕이 불타올랐다.
마지막으로 합을 맞춰 보려고 할 때였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려왔다.
학생들의 시선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향했다.
“여러분, 아직도 안 자고 뭐하고 있나요?”
F반의 본래 담당인 마리였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묻는 그녀.
제더필은 학생들을 대표해서 답변했다.
“연습하고 있었어요.”
“로인 씨랑 하는 그 훈련이요?”
“네, 강사님. 내일이 마지막이라면서요? 그때까지 어떻게든 강사님이 내 준 미션, 클리어하려고요.”
“아, 그런가요?”
마리의 눈웃음은 짙어졌다.
“적극적이네요. 그러면 그 훈련, 제가 도와드릴까요?”
“강사님이요?”
“네, 이래봬도 저 또한 페르칸 기사 양성소 출신이에요. 기본적인 실력은 된답니다.”
“…….”
제더필은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마리 정도면 연습 상대로 좀 부족하지 않을까?
이런 주장이 많았다.
마리는 로인에 비하면 한없이 약하다.
그리고 그녀는 페르칸 기사 양성소를 졸업하고 이곳저곳에 기사단 시험을 응모했다가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기사 양성소로 다시 들어와 강사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사들 중에서도 마리의 실력이 가장 부족하다.
이건 학생들도 암묵적으로 아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연습 상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꽤 난다.
결국 학생들은 마리의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마리 강사님 정도야…….’
‘……쉽게 제압할 수 있지!’
학생들은 마리를 얕봤다.
실제로 그녀는 로인에 비한다면 얕보일 만한 실력을 지녔다.
그러나 실전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은 이 생각이 크나큰 오해였음을 깨달았다.
“갑니다!”
제더필이 먼저 앞장섰다.
롱 소드를 크게 휘둘렀다.
남은 학생들도 마리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하나 마리는 혼을 한 번 휘젓는 것만으로 학생들을 전부 떨쳐 냈다.
바닥을 뒹구는 학생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마리 강사님이 이렇게 강했나?’
‘말도 안 돼!’
‘뭔가 이상한데?’
속으로 여러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마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죠. 안 그래요?”
마리는 쓰러져 있는 제더필의 복부를 걷어찼다.
퍼억!
엄청난 충격이 몰려왔다.
아주 살짝 찬 것처럼 보였는데, 로인 이상 가는 파워를 냈다.
콜록거리는 제더필.
몸을 가누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리는 제더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여러분들은 약해요. 실력이든, 정신적이든, 가정환경이든, 모두가 다 나약한 존재들이에요.”
마리는 제더필뿐만 아니라 F반 모두에게 들으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리 당신들이 발버둥 쳐 봤자 세상은 바뀌지 않아요. 천민 출신의 기사? 누가 그런 존재를 국가 공인 기사단의 일원으로 받아 줄 거 같아요? 천만에요! 가문, 혈통, 그리고 돈! 이 중 어느 것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당신들은 절대로 기사가 될 수 없어요. 그거 아나요? 저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 절망하고 또 절망한 여자라는 걸.”
광기마저 느껴지는 마리의 외침에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아는 평소의 마리와 너무 다른 모습에 할 말을 잃은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리는 자신이 할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저, 그리고 당신들 같은 패배자들에게도 기회는 있어요.”
마리의 표정이 다시금 달라졌다.
마치…….
환희에 찬 그런 얼굴이었다.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거예요.”
“그분……이라고요?”
“네, 그분께선 이렇게 속삭이셨죠. 내가 패배자가 된 건 내 탓이 아니라고, 어긋나 버린 세상 때문이라고, 근본부터 썩어 빠진 세상을 나와 함께 바꾸자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씀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들려왔죠. 이 달콤함, 이 황홀함을 부디 당신들에게도 꼭 전파하고 싶어요.”
제더필의 머리를 들어 올린 마리는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분을 받아들인다면, 당신들도 저처럼 강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더 이상 패배자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되는 거죠. 어때요? 저와 함께하시겠어요?”
“…….”
“방법은 간단해요. ‘예.’라고만 답하면 돼요. 그러면 그분의 속삭임이 당신에게도 들리기 시작할 거예요.”
그녀의 말은 F반 학생들에게는 악마의 유혹 그 자체였다.
힘을 가질 수 있다.
더 이상 F반이라 천대받고 무시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욕망은 예전부터 줄곧 가져왔다.
하지만 제더필은, 그리고 F반 학생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희는 이미…… 충분히 강합니다. 그러니까 그딴 수상쩍은 힘 따위는 필요 없어!”
“안타깝네요.”
마리의 눈빛에 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죠. 여러분들의 담당 강사로서, 어느 길이 틀리고 어느 길이 맞는지 직접 알려 줄게요.”
그녀의 오른손이 검은 연기에 물들었다.
검은 연기는 제더필의 목을 조여 오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직감한 제더필이지만, 마리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순간, 한 남자의 목소리가 마리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내 학생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 빌어먹을 검은 괴물 녀석아.”
풍겨 나오는 강렬한 살기에 마리는 자신도 모르게 제더필로부터 멀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훈련장 한가운데로 떨어진 남자.
“드디어 찾았네.”
로인.
그는 마리를 보면서 짙은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