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엑스트라-123화 (123/240)

# 123

페르칸 기사 양성소 (3)

오늘 하루는 참관만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내일부터는 내가 본격적으로 F반을 담당하게 된다.

오전에는 이론 수업, 오후에는 실기 수업.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론 수업은 내가 입대했을 때 받았던 정신교육과 거의 흡사했다.

기사로서의 마음가짐, 행동 양식, 품위 유지 등.

‘듣는 내가 다 지루해질 정도네.’

학생들도 그렇게까지 높은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F반은 낙오자들의 모임이다.

이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으니 방법이 안 보인다.

하나 칠흑의 조각에게는 잠식시키기 좋은 먹잇감들이다.

인간이 마음이 무너졌을 때를 틈타 녀석은 달콤한 유혹의 속삭임을 건네 오니까.

‘페르칸 사건이 설마 F반에서 벌어지는 건가?’

일단 학생들 중에서는 아직까진 추종자로 보이는 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전부 다 평범한 학생은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이가 몇몇 보인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소년이 있다.

-제터필

-인물 등급 : 엑스트라

-종합 능력 : B

-기사로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소년. 라스조차 인정할 만큼 뛰어난 잠재 능력을 가지고 있다.

제터필.

3권 초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소년이다.

비중 있게 등장한 건 아니다.

중간에 라스 일행이 불한당들과 싸움이 붙었는데, 제터필이 라스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라스는 제터필을 보고서 훌륭한 기사가 될 거 같다는 말을 남겼다.

이게 전부다.

‘4, 5권에 나오려나? 내가 이 뒷이야기를 모르니 원…….’

비록 제터필의 등급이 엑스트라라고는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제터필은 패배자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미 기사가 되기를 반쯤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아까운 인재야.’

델리피나 전기가 배드엔딩이라는 걸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안달이 났다.

칠흑, 그리고 추종자들과 싸울 수 있는 전력이 있다면 최대한 기용해야 한다.

만약 제터필이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해!’

제터필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든 기사 지망생들을 보호해야 한다.

‘어디 있어, 칠흑의 조각!’

머리를 굴려 보자.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 * *

이론 수업을 마친 후에 실기 수업에 돌입했다.

훈련장에서 가장 시설이 안 좋은 곳으로 배정받은 F반.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의 의욕은 이미 땅에 떨어져 있었다.

마리는 이들을 보면서 외쳤다.

“이후부터는 자율적으로 연습하세요.”

“……네.”

아니, 잠깐만.

“마리 씨, 그래도 돼요?”

“그래도 되냐니요? 무슨 뜻인가요?”

무슨 뜻이고 자시고…… 당신, F반 담당이잖아!

그런데 이대로 방치하면 되냐고.

“강사니까 뭔가 가르쳐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그러나 마리는 쓰디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어차피 머지않아 양성소를 다 관둘 애들이에요. 그때까지 고생시켜 봤자 서로 힘들기만 할 뿐이잖아요? 그냥 편하게 있다가 가라고 배려해 주는 거예요.”

내가 보기에는 전혀 배려처럼 보이지 않았다.

‘손을 놓아 버린 건가?’

이 아가씨, 보기와는 다르게 책임감이 없네.

분명 와반은 마리를 성실하고 착실한 강사라고 칭찬했는데.

흐음. 이건 좀 그러네.

하나 오늘은 참관만 하는 날이다.

내가 나서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

F반이 그늘에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이나 자고 있는 사이에 나는 다른 반을 쭉 둘러보기로 했다.

‘이럴 때 학생들의 인물 정보를 쭉 봐 둬야지.’

보다 보면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되어 있는지, 혹은 추종자인지 알 수 있다.

인물 정보를 보면 다 나온다.

훈련장을 빠르게 둘러본 결과…….

‘여기에 있는 학생들 중에선 없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엔 이르다.

이제 겨우 5분의 1 정도 살펴본 것에 불과하다.

아직 내가 인물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 학생들이 수두룩하다.

1, 3학년 F반도 확인했다.

그러나 다들 멀쩡했다.

‘만약 칠흑의 조각에게 잠식된 자가 있다면, F반에 있을 확률이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건 계산 외였네.’

설마 A반에 있는 건 아니겠지?

성공이 이미 보장되어 있는 엘리트 중에서도 엘리트들만 모인 반인데. 세상에 불만 가질 이유가 전혀 없지 않은가.

‘그래도 모르는 거니까.’

일단 확인해 보기로 했다.

* * *

참관 1일차 겸 수색 1일차가 지났다.

2일차의 아침 해가 밝아왔다.

어제 하루를 꼬박 투자했지만, 목표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상하네. 소설 속에선 분명 양성소 내부 인물의 소행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유력 용의자들이라 생각했던 자들을 죄다 살폈지만, 하나같이 다 멀쩡했다.

인물 정보에 오류가 생긴 건 아닐까?

그럴 리는 없다.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경우는 겪은 적 있지만, 오류 때문에 인물 정보가 잘못 표기되었다는 경험은 아직까진 해 보지 못했다.

‘골치 아프네.’

일이 귀찮게 되었다.

일단 출근은 해야 한다.

오늘부터 나는 F반을 담당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F반을 가르치게 되었다 해도 마리가 출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녀도 같이 수업에 들어온다.

그저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는 역할을 할 뿐.

1교시, 이론 수업.

나는 단상에 서자마자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원, 옷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집합한다. 실시.”

“예?”

“훈련장요?”

“이론 수업 안 해요?”

학생들은 적지 않게 당황하는 듯했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이미 이론 수업을 위해서 교과서까지 다 꺼내 놓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오늘 이론 수업은 없다.

이 상태 그대로 이론 수업을 진행해 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싸움 기술이나 하나 더 배우는 게 득이 될 거다.

“이론 수업은 취소. 1교시부터 쭉 실기 수업할 테니까 집합해.”

“…….”

“…….”

학생들은 불만에 어린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나 양성소에서 강사의 말은 절대적이다.

양성소의 강사는 학생들에게 있어서 스승이다.

그러다가 기사가 되면 대선배가 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말은 잘 따라야 한다.

나의 폭탄 발언에 마리는 곧장 반대 의사를 표했다.

“로인 씨! 오전은 이론 수업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걸 멋대로 바꾸시면 어떻게 해요?”

“괜찮습니다. 제가 다 책임질 테니까 마리 씨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훈련장에 남는 공간도 없을 텐데…….”

“자리는 제가 미리 확보해 뒀습니다. 아주 좋은 자리로요.”

결국 마리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칠흑의 조각이 스며들지 못하게끔, 오늘 내가 이놈들의 정신을 단단히 무장시켜 줄 거다.

* * *

내가 잡아 놓은 훈련 장소는 훈련장 한가운데였다.

가장 좋은 자리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학생들의 시선은 F반으로 집중되었다.

F반 학생들은 마치 쥐구멍이 있다면 지금 당장 숨고 싶다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심한 녀석들이네.

“자, 실기 수업을 시작하겠다. 수업 내용은 간단하다. 내게 한 방이라도 먹이면 된다. 혼자서 덤비든, 너희 전부가 덤비든 상관없다. 한 번이라도 내게 유효타를 가한다면, 2주 동안 너희에게 아무런 터치도 하지 않으마.”

학생들의 눈이 번뜩였다.

제터필이 대표로 내게 다시 물었다.

“그 말씀, 정말이죠?”

“물론. 하지만 반대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면, 이 특훈은 계속될 거다. 명심해라.”

“좋아요. 받아들이겠습니다.”

F반 학생들은 무기를 들었다.

아마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다.

아무래 대단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30명이 넘는 인원을 상대로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지.’

나는 조금…… 아니, 많이 다를 거다.

시작 전에 나는 몸을 풀었다.

훈련장에는 용병 무투 대회 때처럼 모조품으로 만들어진 연습용 무기가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단검을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학생 몇몇은 내가 방패를 꺼내 들 줄 알았나 보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준비 다 됐나?”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그럼 어디 나한테 근성을 보여 봐라.”

덤벼 보라는 식으로 손짓을 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나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제터필이 롱 소드를 들고 가장 먼저 나에게 일격을 날렸다.

날카롭고 정확하다.

하지만…….

‘너무 느려.’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제터필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세 명의 학생들이 내게 일제히 무기를 휘둘렀다.

하나 내겐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허리를 살짝 숙이고 왼쪽으로 사이드 스텝을 밟은 것만으로도 모든 공격을 피해 낼 수 있었다.

맨날 용병이나 아니면 추종자, 등급 높은 몬스터들만 상대하다가 기사 지망생들과 겨루니까 난이도가 확 떨어졌다.

서른한 명의 F반 학생들은 오전 내내 나와 술래잡기를 했다.

나는 일부러 F반 학생들에게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오로지 피하기만 할 뿐.

이런 내 행동이 더더욱 F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호흡을 고르던 제터필은 나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강사님은 왜 공격하지 않는 겁니까?”

“왜? 내가 공격해 주기를 바라고 있어? 원한다면 해 줄 수 있지. 근데 내가 힘 조절은 자신이 없거든.”

“그러다가 큰코다치실 텐데요?”

“그건 나한테 유효타를 먹이고 나서 해야 할 말 아닌가?”

나는 웃었다.

여유 넘치는 나와 다르게 서른한 명의 학생들은 제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체력이 어마어마하게 소모되는 훈련이다.

솔직히 오전 내내 버틴 것도 잘한 거다.

마침 점심시간이 다 되었다.

“밥 먹고 할까?”

그때, 제터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밥 생각 없습니다.”

“그래?”

“강사님도 지금 당장은 배 안 고프시죠?”

내가 들려줄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 나도 안 고파.”

술래잡기 2차전이 시작되었다.

* * *

하루 종일 밥도 안 먹고 물만 마시면서 나를 죽어라 쫓아다녔던 F반 31인.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해가 저물 때가지 내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다음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내기를 걸었던 첫날보다도 움직임이 더 둔해졌다.

“다들 왜 그러냐? 첫날에 너무 무리해서 근육통에 시달리기라도 하는 거야?”

몸은 둔해졌으나 눈빛에는 이채가 감돌고 있었다.

‘반쯤은 성공했네.’

F반의 학생들에게 ‘의욕’이라는 것을 주입시키는 게 나의 목적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일단 성공했다.

4일차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학생들은 내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5일차.

변함이 없다.

6일차.

약간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7일차.

훈련의 성과가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웅!

켄다와 네인이 동시에 무기를 휘둘렀다.

참고로 두 명 역시 내가 눈여겨보는 학생들이었다.

‘공격하는 타이밍이 좋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이건 몰랐죠!”

뒤에서 제터필이 롱 소드를 들고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켄다, 네인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각이 안 나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단검을 들어 제터필의 롱 소드를 쳐 냈다.

투웅!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는 제터필의 롱 소드.

필살의 일격이라 생각했던 제터필의 공격은 허무하게 막혔다.

그러나 이건 장족의 발전이다.

왜냐하면…….

‘내가 처음으로 단검을 휘두르게 만들다니. 제법인데?’

F반 학생들은 조금씩 성장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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