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페르칸 기사 양성소 (2)
원장실에서 와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와반 님, 저예요.”
“일찍 왔군. 들어오도록 해.”
“네.”
젊은 여성의 목소리였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인물은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2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와반은 나에게 여성을 소개했다.
“마리 양이라고 합니다. 2주 동안 로인 씨가 담당할 2학년 F반의 전담 강사죠. 성실하고 우수한 사람입니다.”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와반 님. 아직 많이 부족한 걸요.”
소개받은 마리는 와반의 칭찬에 수줍게 반응했다.
“마리 양이 로인 씨에게 많은 걸 알려 줄 겁니다. 제가 마리 양에게는 따로 사정을 이야기해 뒀으니, 모르는 게 있으면 그녀에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렇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리 양.”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젊은 나이에 페르칸 기사 양성소의 강사라…….
능력이 좋은가 보다.
‘게다가 바로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보니 엑스트라 등급인 거 같고.’
하기야, 여기 원장인 와반도 엑스트라인데 강사라고 별수 있겠나.
굳이 인물 정보는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와반과 짧게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 후에 마리와 함께 장소를 이동했다.
“관사로 안내할게요. 로인 씨 온다고 강사들이 열심히 청소해 뒀어요.”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2주만 있다가 떠날 예정인데요, 뭘.”
너무 과한 대응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 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사님들 중에서 몇몇은 로인 씨의 열성적인 팬이어서요. 로인 씨가 이곳에 특별 강사로 초빙되었다고 했을 때에는 난리도 아니었어요.”
“팬이요?”
“네, 로인 씨의 업적은 유명하니까요. 벨레너의 13난제를 두 개나 클리어하셨다면서요? 그 후일담은 부디 꼭 듣고 싶다고 여기저기서 벼르고 있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거, 이거…… 나 완전히 인기 스타 다 됐네.
칼바의 용암 동굴은 필요에 의해 클리어하긴 했지만, 도플갱어의 숲은 본의 아니게 클리어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 뭐라고 해야 할까?
약간은 좀 어리둥절하다.
‘그래도 기분이 나쁘진 않네. 시간 나면 다른 벨레너의 13난제도 도전해 볼까?’
그건 일단 여기 양성소에 몰래 잠복해 있을 칠흑의 조각부터 찾고 나서 생각해 보자.
지금은 그게 최우선 사항이니까.
* * *
내가 2주 동안 생활할 방에 첫 방문을 했다.
깨끗하다.
그리고 매우 넓다.
‘돈 많은 양성소답네.’
직원 복지시설이 굉장히 좋다.
게다가 몇몇 강사들에게 들었는데 월급도 꽤 짭짤한 편이었다.
‘나도 은퇴하면 여기서 강사로 일이나 할까?’
……강사 생활은 개뿔!
원래 세계로 안 돌아갈 생각이냐?
나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면서 짐을 풀었다.
벌써 해가 떨어져 가기 시작했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는 기숙사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이 없다.
‘밥이나 먹으러 갈까?’
식당으로 이동하려고 했으나 위치를 잘 모르겠다.
‘어쩌지?’
하나 이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입구를 나오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로인 씨, 슬슬 식사하러 가셔야죠?”
“줄곧 여기서 기다리고 계셨던 겁니까?”
“계속은 아니고요. 동료 강사님들이랑 수다 좀 떨고 있었는데, 마침 로인 씨가 곤란한 표정으로 관사를 나오는 게 보여서요. 보자마자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식당 위치를 몰라서 곤란해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죠.”
눈치가 굉장히 빠른 여자다.
뭐, 덕분에 내가 편해졌으니 잘됐다.
마리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페르칸 기사 양성소 식당은 학생, 강사가 같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군대에 있을 때에는 간부들이 따로 밥 먹는 곳이 있었지.’
이름하야 간부 식당.
그곳의 취사병이 엄청 편해 보였던 게 기억에 남는다.
학생과 강사들이 한곳에 어우러져 밥을 먹는 모습이 눈에 자주 들어왔다.
학생들과 잘 어울리는 강사들이 있는 반면, 잘 못 어울리는 강사들도 보였다.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을 편하게 생각하진 않으니까.’
충분히 이해한다.
“마리 씨, F반 학생들은 어디 있습니까?”
“저기 보이네요.”
다른 학년, 다른 반 학생들에 비해 유독 무거운 분위기를 취하고 있는 학생 그룹이 있었다.
뭐랄까.
눈치를 보면서 밥을 먹는 것 같았다.
‘아니, 눈치 보는 거 맞네.’
처음에는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이들은 다른 학생들과 명확히 다른 언행을 취하고 있었다.
주변 학생들도 유독 마리의 반 학생들을 무시했다.
그걸 증명하려는 듯이 곧바로 사고가 발생했다.
“야, F반.”
한 무리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마리가 담당하고 있는 반은 2학년 F반.
‘2학년 중에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문제아들이 모여 있는 반이기도 하지.’
F반에게 말을 건 무리의 학생들은 2학년 A반이었다.
제복을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A반은 실력으로나, 집안으로나, 학년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반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잘난 A반 학생들은 F반 학생들에게 대놓고 이런 요구를 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좀 비켜라.”
“어차피 너희들은 졸업도 못하고 도중에 나갈 놈들이잖아.”
“기사 될 자격도 없으면서 밥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나 보네.”
이들은 노골적으로 F반을 폄하하면서 서로 키득거리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에 항상 존재하는 그것.
‘계급이지.’
예전부터 계급이라는 건 줄곧 존재해 왔다.
노예, 천민, 귀족 등등.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리고, 자신은 그들보다 우월하게 보이고 싶어 한다.
이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든 다 똑같은 거 같다.
A반에게 인신공격을 당해도 F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정말로 자리를 비켜 주려 했다.
나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식판을 들고 향한 곳은 트러블이 발생한 곳이었다.
“실례 좀 할게.”
F반이 비킨 자리에 A반 애들이 앉기 직전에 나는 먼저 그곳을 차지했다.
갑자기 난입한 나를 보며 A반 학생들은 인상을 구겼다.
그러나 차마 뭐라 말은 하지 못했다.
내가 사복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학원 내에서 공식적으로 사복을 입고 돌아다닐 수 있는 사람은 학생을 제외한 양성소 관계자들뿐이다.
내가 사복을 입고 있다는 건, 다시 말해서 강사 혹은 이곳 직원임을 뜻한다.
적어도 학생보다는 높은 계급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몇몇 A반 학생들은 나를 알아봤다.
“저 사람, 로인 님 아니야?”
“그 사람이 여길 왜 와?”
“못 들었어? 앞으로 2주 동안 특별 강사로 온다고 했잖아.”
“엑, 진짜?”
아무리 귀족 집안의 자제들이라 하더라도 나를 쉽게 건드리진 못한다.
왜냐하면 내 뒤에는 라크스 공작과 이 양성소의 대형 스폰서인 웨일이 버티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들의 도움이 없어도 나는 이미 용병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존재다.
그 뿐만 아니라 나는 로그 상단이라는 거대한 자본 덩어리를 가지고 있다.
웬만한 귀족은 나를 건드릴 수조차 없다.
나는 뻔뻔하게 물었다.
“왜, 나랑 같이 밥 먹고 싶어?”
“…….”
“자리 없으면 다 같이 먹자고. A반, F반 구분 말고. 다 같은 학생이잖아. 안 그래?”
“……저희는 다른 데에서 먹겠습니다. 그럼 이만.”
결국 정말로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자존심 하나는 겁나 센 놈들이다.
한편, 나는 식판을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F반 학생들에게 손짓했다.
“와서 같이 먹자. 이 넓은 테이블을 나 혼자 차지하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
“…….”
“…….”
F반 학생들은 눈치를 보다가 이내 합석을 했다.
그러나 분위기는 그리 가볍지 않았다.
나에게 무슨 말이라도 걸어올 줄 알았는데.
내가 먼저 말을 걸어 볼까 했으나 이들은 후딱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떴다.
‘험난한 강사 생활이 될 거 같네.’
벌써부터 앞날이 보이는 듯하다.
* * *
다음 날.
나는 마리와 함께 2학년 F반으로 향했다.
조회와 함께 내 소개가 있을 예정이었다.
나는 이전에 서른한 명의 F반 학생들에 관한 신상 정보를 모두 머릿속에 넣어 뒀다.
‘예상대로였지.’
귀족 집안은 하나도 없고 다 평민이거나 아니면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천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페르칸 기사 양성소에 입학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실력이 좋아.’
입학 테스트 성적은 F반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귀족 집안 자제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 행사로 인해 눈치를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F반에 분류된 것이다.
‘외압이라는 건 절대로 무시 못 하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드르륵.
마리가 문을 열고 먼저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 드릴 분이 계세요. 로인 씨, 들어오세요.”
단상에 올랐다. 학생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나는 자기소개를 이어갔다.
“반갑다, 블루로즈단 R팀 대장을 맡고 있는 로인이라고 한다. 2주 동안 너희를 가르치게 되었으니 잘 부탁한다.”
학생들은 크게 놀란 듯했다.
내가 양성소에 올 거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F반을 맡을 줄은 몰랐던 모양인가 보다.
나는 학생들에게 턴을 넘겼다.
“나한테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물어보도록. 참고로 첫 키스는 언제 했냐는 질문에는 대답 못하니까 잘 기억해둬.”
반응을 보아하니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대신, 이런 질문이 왔다.
번쩍 손을 든 남학생을 가리켰다.
“말해 봐.”
“왜 저희 반을 담당한다고 하셨나요? A반이 더 가르치기 편하고 좋잖아요.”
다루기 쉽고 좋은 A반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계급 차이로 인해 벌써부터 세상에 불만이 가득한 F반을 맡겠다고 한 걸까?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문제가 많은 반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좋은 거다.
칠흑의 조각은 인간의 약한 마음을 파고드는 존재다.
눈칫밥을 먹으며 양성소 생활을 하고 있는 F반은 칠흑의 조각에게 노출되기 싶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F반을 골랐다.
‘하지만 여기서 칠흑의 조각 이야기를 꺼낼 순 없지.’
아직 와반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실을 여기서 공개할 순 없다.
이럴 줄 알고 괜찮은 핑계거리를 찾아왔다.
“너희가 마음에 들어서. 어때? 만족할 만한 대답이 되었나?”
질문을 했던 학생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강사님은 실력은 출중하지만, 사람 보는 눈이 없나 보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저희는 낙오자에요. 어차피 3학년으로 올라가기도 전에 여기서 쫓겨날 텐데 무슨 가능성이 있다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가능성이 있고 없고는 남들이 정하는 게 아니야. 너희가 정하는 거지. 너희가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해야 돼. 근데 벌써부터 ‘우린 안 될 거야.’라고 마음먹어 버리면, 그나마 있던 가능성도 없어지겠지.”
“…….”
“우리, 그나마 있는 가능성이라도 소중하게 대하는 게 어때? 그것조차 없애려고 하지 말자고. 어쩌면 80퍼센트의 확률보다 20퍼센트의 확률이 더 많이 당첨될 수도 있어. 인생이라는 건 모르는 법이니까.”
그래. 인생이라는 건 정말 모른다.
나만 봐도 그렇다.
설마 내가 편집자 생활하다가 소설 속으로 들어오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나조차도 몰랐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